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6-1510)
자료 1
* 1487년, 캔버스, 템페라 ,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과 함께 보티첼리 최대 걸작의 하나이다.
지중해의 깨끗한 물거품에서 태어난 나체의 여신이 바람의 신에게 부드럽게 밀려져 옷을 들고 있는 요정이 기다리는 해안까지 다다른 장면이다.
화면 오른쪽에서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벌거벗은 비너스에게 겉옷을 건네주고 있으며, 왼쪽에서는 비너스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고 한눈에 반한 제피로스가 그녀에게 달려들고 있다.
바다의 요정인 크리로스의 양팔이 이 바람둥이 제피로스의 허리를 감아쥔 채 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포옹하고 있는 자세로 보인다.
주변에는 장미 꽃잎이 바람에 흩날린다.
수줍어 하고 있는 비너스의 신체는 10등신이며, 모델은 당시 피렌체의 최고 미인이었던 시모네타로 전해져 오고 있다.( 자료 출처 : http://quat.interpia98.net/) 「美(미)의 여신」 비너스라고 하면 대다수 사람들은 맨먼저 밀러의 「비너스」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을 떠올리게 된다.
「밀로의 비너스」는 그리스 시대의 조각이고, 「비너스의 탄생」 은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이다.
이 두 작품이 비너스의 대명사격이 되고 있는 셈이다. 그로부터 오늘날까지 수많은 미술가들에 의해 비너스가 태어나고 있지만 「비너스의 탄생」은 그 명제가 시사하듯이 비너스화의 효시처럼 인식되고 있을 정도다.
, 1482-83, 목판, 템페라, 런던, 내쇼날갤러리
르네상스 시대의 신혼 선물용 그림 중 하나인 보티첼리의 이다
신랑과 각시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간직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모두 사랑으로 극복하라고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자료 출처 : 이주헌의 신화 그림으로 읽기)
비너스는 미의 의인상이며 마르스는 군신 즉 딱딱한 것의 의인상이다. 아프로디테앞에 전쟁의 신 마르스가 무장을 벗은 채 곯아떨어져 자고 있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을 통해 부드러운것이 강한것을 이긴다고 말하고 있다. 보티첼리가 살던 르네상스시대에는 남자는 남자다와야 미남이며, 여자는 여자다와야 미인이었다. 모델은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의 애인 시모네타를 그린 것이라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으며, 1865년 바커가 피렌체에서 구입했던 것을 1874년 현재의 소장처인 런던 내쇼날 갤러리에서 입수했다.( 자료 출처 : http://quat.interpia98.net/)
산드로 보티첼리(1444∼1510)는 저 위대한 르네상스 미술의 정점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걸출한 화가이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와 상관없이 회화에 詩的(시적) 정서를 보태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공로만으로 이름값은 하고도 남는다.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봄」에서 보여주는 서정적인 미는 절로 詩興(시흥)을 돋운다.
, 1477-80, 목판, 템페라,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바사리의 은 메디치 가문의 코지모 대공(大公) 별장에 보티첼리의 그림이 2점 있는데, 하나는 이고 또 하나는 이라고 명기하고 있다.
또한 16세기 초의 한 무명 전기작가도 지오반니 데 미디치 델 반데 네레의 별장에 보티첼리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이 여러 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 별장의 1598년과 1638년의 재산 목록에도 보티첼리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음이 밝혀져 있다.
이상과 같이 과거의 소장처 기록이 확실한 보티첼리의 이 과 은 1815년에 이르러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간 후 한때 아카데미로 옮겨진 적이 있었으나, 1919년에 다시 우피치로 되돌아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작 연대와 동기에 대해서는 역시 여러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1475년의 기마(騎馬) 경연대회 우승자였던 줄리아노 데 메디치와 그의 애인 시모네타 베스푸치의 사랑을 축복한 시인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고전적 상징시 를 1475년 무렵에 회화화(繪畵化)한 것으로 말해지고 있다.
꽃이 만발한 피에조레의 저녁놀이 깃든 숲속에 사랑의 신 큐피드를 거느린 미의 여신 비너스를 화면 중앙에 설정하고, 왼쪽에는 막대를 치켜들어 이슬을 털어내리는, 주로 신들의 사자(使者)로 등장하는 헤르메스와 엷은 옷을 걸친 미의 여신들, 그리고 오른쪽엔 온몸을 꽃으로 장식한 봄의 여신과 그 뒤로 꽃의 여신이 바람의 신에 떠밀리며 나타나고 있다.
보티첼리 특유의 감미롭고 섬세한 곡선의 리듬이 최대로 발휘된 걸작이다.
정적인 청색조의 숲속 분위기와 여신들의 투명한 색조의 아름다움이 아주 잘 조화되어 있다.( 자료 출처 : http://quat.interpia98.net/)
르네상스 회화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비잔틴과 고딕의 신성한 위엄으로부터 인간 중심의 새로운 가치체계를 성립시킨 르네상스야말로 보티첼리와 밀러의 「비너스의 탄생」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르네상스라는 시대는 그의 타고난 회화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거기에서 그는 주저없이 활보했다.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에서 태어나 필리포 리피라는 훌륭한 스승을 만났으며, 다빈치,미켈란젤로,라파엘로 등 거장들과 동시대를 살았을 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가문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다. 한마디로 대화가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완벽한 배경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은 거의 3세기 동안이나 갇혀 있었다.
19세기의 영국 문명비평가인 존 레스킨과 월터 페이터에 의해 그의 작가적 전모가 드러나면서 비로소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그러고나서 「비너스의 탄생」으로 단숨에 유명해졌다.
그가 서정적인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자연에 대한 애정과 이해를 통해서였다.
초기에는 스승의 영향으로 聖母子像(성모자상)-천사상 등에 열중하였고 양식적인 규범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봄」 이후 놀랄 만한 변신을 거듭하여 완연한 인간 중심의 회화로 이행하게 된다.
물론 그 후에도 종교화를 지속적으로 그렸다.
「석류의 성모」는 「비너스의 탄생」보다 1년 뒤에 그려졌다.
그래서일까, 이전의 엄숙한 종교적인 분위기와 달리 세속적인 색채가 짙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상징하는 석류를 테마로 한 이 작품은 원형화로서의 구도적인 짜임새는 물론이요,보다 인간적인 체취를 담뿍 담아들임으로써 종교화의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한 차원 끌어올린 걸작으로 평가된다.
더구나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성모의 섬세한 얼굴 표정이 「비너스의 탄생」의 비너스와 닮았다는 점은 그 자신의 내부에 이상화된 여성상을 간직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비잔틴이나 고딕시대의 신적인 위엄의 모습으로부터 탈피해 오른손으로 降福(강복)하여 왼손으로는 석류의 껍질을 벗기려는 아기예수 또한 따스한 인간적 퐁모를 지니고 있다.
성모를 중심으로 대칭구도를 이루는 5명의 천사들은 성별 구분이 모호한 미소년-소녀들로서 당시의 피렌체적인 미소년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들 천사상은 우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수어린 표정을 짓고 있음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순결의 상징 백합과 사랑의 상징 장미를 대비시킨 것도 탐미와 금욕,관능과 우수의 양극적인 이미지의 절묘한 조화를 염두에 둔 구성이다.
자료 인용 : http://www.artworld.co.kr/art/20th/moder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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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6-1510)
이탈리아 화가. 피렌체 출생. 르네상스 미술가 그룹의 제3의 작가인, 일명 산드로 필리페피(Sandro Filipepi)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의 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신부이며 화가인 필립포 리피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청년기의 작품에는 베로키오, 폴라이우올로 등 당대의 피렌체 제일의 유명 화가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만. 1470년대 중기에는 보티첼리의 독자적인 미술가적 개성이 확립되었다.
보티첼리는 아주 분명한 윤곽선으로 자신의 인물상들을 제작했으며, 처음부터 그는 그 인물들이 작품의 나머지 부분에 생생하게 반응하도록 배치하였다.
초기의 작품에 속하는 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윤곽선의 뛰어난 그림구성 솜씨는 아주 젊은 시절에 제작한 이 작품에서 나타나 그의 미술의 주된 특징의 하나로 남아 있게 된다.
그뒤 피렌체의 주권자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아서 산타마리아 노벨라성당의 제단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에는 메디치가의 사람들을 모델로 등장시키고 있다. 피렌체미술계에서 보티첼리의 지위나 메디치가와의 접촉에 대한 상황증거가 되는 작품은 피렌체 교외에 있는 메디치가의 별장에 그린 과 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또 는 양식이나 우의의 유사함에서 앞의 두 작품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1480년 오니산티성당에 그린 는 엄격한 사실적 표현으로 초상화가로서의 역량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었다. 이듬해인 1481년에는 토스카나와 움브리아의 화가들과 함께 바티칸 궁전의 시스티나예배당의 벽면을 장식하는 영예가 주어졌으므로, 로마로 가서 모세와 그리스도의 이야기 세 장면 즉 , , 등과 교황의 초상을 그렸다.
그리고 1483년에 피렌체로 돌아와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1480년대 중기 이후에는 종교화에 전념하게 되어 , , , 등의 성모화에 몰두하다가 1490년대에는 수난의 장면들을 주제로 삼았다.
이 시기에 그려진 2점의 피에타(그리스 도교미술의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십자가에서 내린 그리스도의 시체를 무릎위에 놓고 애도하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함)는 수도사 사보나롤라가 주창하는 세속화에 대한 비판과 신벌의 예언을 믿는 보티첼 리의 종교감정의 고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1498년에 사보나롤라가 이단죄로 몰려 처형된 뒤에 그린 에는 이미 늙은 그의 정신적 충격이 음울한 명상적 표현으로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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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3
초기에는 《포르테차》 《유딧과 홀로페르네스》(1470, 우피치미술관 소장)와 《성(聖)세바스찬》(74, 베를린국립미술관 소장) 등에서 자연연구에 대한 소박한 정열을 보이는데, 그 미묘한 곡선과 감상적인 시정(詩情)에 일찍부터 독자적인 성격이 나타나 있다. 그 후 메디치가(家)를 중심으로 한 인문주의 학자·
시인들의 고전(古典) 부흥의 분위기와 신(新)플라톤주의의 정신에 접하고, 특히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시에 고취되어 그린 《프리마베라(봄)》(77∼78, 우피치미술관 소장)는 시적(詩的) 정신과 자연연구의 아름다운 결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1478년 메디치가에 대한 파치 음모사건의 범죄자가 처형되는 벽화제작을 위촉받아 그린 것은 카스타뇨의 알비치 음모자 처형도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하나, 그 때의 벽화는 훼손되어 그 진부는 알 수 없다.
80년 온니산티성당에 그린 《성(聖)아우구스티누스》의 벽화를 보면, 카스타뇨의 엄격한 리얼리즘의 영향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카스타뇨의 영향도 일시적인 것으로 81년에는 산마르티노성당에 감미로운 《수태고지(受胎告知)》를 그리고, 감상적인 《마니피카토의 성모》(우피치미술관 소장)와 《책의 성모》(밀라노의 포르디 페초리미술관 소장)도 이 무렵의 작품이다.
또 81년부터 82년까지는 기를란다요, 페르지노 등과 함께 교황 시크스투스 4세의 부름으로, 보티첼리가 총감독이 되어 바티칸궁전 시스티나예배당의 측벽(側壁) 장식을 맡았다.
82년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로마에서의 일로 자신을 얻어, 그 후 약 10년 동안은 점차 사실(寫實)을 무시하고, 독자적인 화경(畵境)을 열었으며, 가장 충실한 원숙기를 전개하였다.
이 무렵의 작품으로는 《성모자(聖母子)와 두 성(聖)요한》(85, 베를린 국립미술관 소장) 《마르스와 비너스》 (런던 내셔널갤러리 소장)《토르나브오니 렌미가(家)의 별장에서 나온 벽화》(루브르미술관 소장)를 비롯하여 《비너스의 탄생》 《메라그라나의 성모》(87) 《산바르나바의 성모》(우피치미술관 소장) 등이 있다.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주의를 무시하고 양식화된 표현과 곡선의 묘미를 구사하여, 장식적 구도 속에 시적 세계를 표현한 걸작이다. 그러나 그 후의 대표적인 작품을 보면, 《수태고지》(89) 《성모대관(聖母戴冠)》(90, 우피치미술관 소장)처럼 차차 신비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91년에 도미니크회의 영걸(英傑) 지롤라모 사보나롤라가 성마르코수도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메디치가의 이교주의적 정책과 피렌체의 퇴폐적 세태를 격렬한 예언자적 설교로 공격하기 시작하자, 보티첼리는 그 설교에 매혹되어 신비적인 경향을 더욱 강화시켰으며, 단테의 《신곡(神曲)》의 삽화에 열중하여, 조형(造形)예술가로서는 자멸의 길을 밟았다.
《카룬니아(비방)》(우피치미술관 소장) 《피에타》(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소장) 《게세마네 언덕의 기도》 (그라나다 카필랴레알 소장) 《성(聖)히에로니무스의 최후의 만찬》(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등이 그런 경향을 보인다.
그러다가 98년 사보나롤라가 순교하자 보티첼리는 그의 슬픈 추종자로서 예언자적 신비주의로 변모하였으며, 1501년 제작한 《신비의 강탄(降誕)》(런던 내셔널갤러러 소장)이나 《신비의 십자가》(미국 케임브리지 포그미술관 소장)와 같은 신비적 환상으로 가득찬 작품을 그렸다.
1504년 미켈란젤로의 다윗상의 설치장소를 심의하는 위원회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과 함께 출석하였으나, 그 후 그는 제작활동을 거의 중단하고 소식마저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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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titude, 1470,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24KB
The Birth of Venus, 1480, tempera on canvas,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60KB
Scenes from the Life of Moses, detail of the Daughters of Jethro, 1480s, fresco, Sistine Chapel. 171KB
, 1480년. 캔버스, 템페라,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지혜와 전쟁의 여신 팔라스가 무지를 상징하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의 머리털을 부드럽게 거머쥐고 있는 광경이다. 팔라스는 우아한 표정이며 그녀의 옷에는 메디치가문이 사용한 다이아몬드 문양이 그려져있다. 이 그림은 메디치 가문의 정치적 승리의 상징성 외에 이성(팔라스)이 본능(켄타우로스)를 제어한다는 도덕적 내면이 상징되어 있다는 해석도 있다 (자료 출처 : http://quat.interpia98.net/>
, 1489-90년, 목판, 템페라,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불의의 방문자인 천사를 맞아 책을 읽다 말고 몸을 천사 쪽으로 돌리고 있는 성모마리아가 그려져있다. 수태를 알리는 천사의 얼굴과 손의 표정에는 엄숙한 신의가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 이끌려 마리아도 두 손을 내밀고 있다. 풍부한 곡선의 두 인물과 배경의 수직 벽면과 문 및 지면의 직선 교차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 밖의 아름다운 원경은 실내의 그적인 장면의 긴장감을 부드럽게해준다. 보티첼리 특유의 곡선미와 애수어린 분위기가 충만한 작품이다. 체스텔로 수도원 제단화에 그렸던 것이다
Calumny, detail of Truth and Remorse, 1490-95,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131KB
,1500년. 캔버스, 템페라, 런던, 내쇼날갤러리
보티첼리의 예술은 을 정점으로 신비의 경향이 짙어진다. 특히 피렌체의 퇴폐와 메디치가문을 중심으로 한 이교주의를 신랄하게 공격한 수도사 사보나롤나의 정열적인 예언과 사상에 감화를 받으면서부터는 그전까지의 이교적(그리이스적)이상주의와 관능미의 미묘한 결합이던 보티첼리의 매력은 신비의 환상에 치우쳐지면서 과거의 은은함과 시정을 상실해갔다. 이 그림은 보티첼리의 거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그림 이후에도 10년을 더 살지만 그 시기의 어떤 작품도 알려진것이 없다. 이 그림에 한해서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작연호를 넣었다. 화면 위쪽에 적힌 장문의 그리이스어 명문 속에 보티첼리 이름과 1500년 이란 연호가 보인다.( 자료 출처 : http://quat.interpia98.net/)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1445?~1510.5.17) 참고자료
피렌체에서 태어나 리피의 제자 폴라이우올로와 베로키오의 영향을 받았다. 피렌체의 조형적 전통과 스승의 영향이 있었으나,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름, 고딕적 전통과 시에나 파의 양식과의 결합에 있다.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적 수법에서 벗어나, 성징과 장식을 강조하여 시적 세계를 이룩한 그의 대표작이다. 이탈리아 화가. 피렌체 출생.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페리이다.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대표적 화가의 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신부이며 화가인 F.F.리피에게 그림을 배웠으며. 청년기의 작품에는 A.베로키오, A.풀라이우올로 등 당대의 피렌체 제일의 유행화가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만. 1470년대 중기에는 보티첼리의 독자적인 미술가적 개성이 확립되었다. 초기의 우의화[강의 1470]에서 볼 수 있는 역동적인 윤곽선에는 풀라이우올로의 영향이 엿보인다. 그 뒤 피렌체의 주권자 메디치 가의 후원을 받아서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제단화를 그리게 되었는데, [동방박사 세 사람의 예배 1478-80?]에는 메디치 가의 사람들을 모델로 등장시키고 있다. 피렌체 미술계에서 보티첼리의 지위나 메디치 가와의 접촉에 대한 상황증거가 되는 작품은 피렌체 교외에 있는 [메디치 가의 별장에 그린 봄 (1478)]과 [비너스의 탄생(1485)]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또 [마르스와 비너스 (1480년대)]는 양식이나 우의의 유사함에서 앞의 두 작품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있다. 1480년 오니산티성당에 그린 [성 아우구스티노(1480)]는 엄격한 사실적 표현으로 초상화가로서의 역량을 세상에 알린 작품이었다. 이듬해인 81년에는 토스카나와 움브리아의 화가들과 함께 바티칸 궁전의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면을 장식하는 영예가 주어졌으므로 로마로 가서 모세와 그리스도의 이야기 세 장면과 교황의 초상을 그렸다. 그리고 82년에 피렌체로 돌아와 작품활동을 계속하였다. 1480년대 중기 이후에는 종교화에 전념하게 되어 [산 바르나비의 성모(1480)],[성모대관 1488-90],[마니피카토의 성모(1485 ?)],[석류나무의 성모]등의 성모화에 몰두하다가 1490년대에는 수난의 장면들을 주제로 삼았다. 이 시기에 그려진 2점의 피에타(-그리스도교 미술의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십자가에서 내린 그리스도의 시체를 무릎 위에 놓고 애도하는 성모 마리아를 표현함-)는 수도사 G. 사보나롤라가 주창하는 세속화에 대한 비판과 신벌의 예언을 믿는 보티첼리의 종교감정의 고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98년에 사보나롤라가 이단 죄로 몰려 처형된 뒤에 그린 [신비의 십자가(1500)],[신비의 강탄(降誕 1501)], 에는 이미 늙은 그의 정신적 충격이 음울한 명상적 표현으로 반영되어 있다. 또 단테의 [신곡]에 붙인 삽화 연작 (1500-1507)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오 레스피기(1879~1936)는 음악사에 길이 남을 만큼 사랑의 신 큐피드의 축복을 받은 애처가이다. 그는 쉴새없이 음악활동을 하느라고 40세 때인 1919년, 뒤늦게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자기 제자인 엘사 올리비에지 산 자코모와 결혼했는데 그녀를 여신처럼 떠받들었다. 엘사는 성악과 작곡을 전공했는데 오페라· 성악곡· 실내악곡들을 작곡하여 여류 작곡가로서 이름을 날렸으며, 성악가이기도 하기 때문에 남편의 피아노 반주로 여러 곳을 다니며 독창회도 열었다. 박수갈채를 받을 때마다 “사랑하는 남편이 잘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라고 그 영광을 남편에게 돌렸고, 레스피기는 “내 아내는 바로 로마 신화에 나오는 뮤즈”라고 떠받들었다. 연주회장의 무대에 나타난 레스피기와 그 아내는 바로 아폴로와 뮤즈처럼 보였다고 한다. 아폴로는 태양, 미남, 음악의 남신이기 때문에 음악의 여신인 뮤즈와 함께 음악을 통하여 사랑을 속삭인다. 음악사에 나타난 부부 사랑에 대해서는 슈만과 그 아내 클라라의 사랑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고, 그리그와 그의 아내 니나의 사랑도 아름답지만 레스피기와 엘사와의 사랑은 눈물겨울 만큼 참다웠다. 레스피기는 병으로 엘사와 불과 18년밖에 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는데, 그때 아내에게 더 사랑하지 못하고 먼저 인생을 하직하는 것이 죄라고 말했을 만큼 진지한 부부사랑을 보여준, 이른바 ‘사랑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이같이 레스피기는 아내를 끔찍이도 사랑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조국도 사랑했다. 아니, 자기의 목숨보다도 조국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풍물· 역사· 문화유산을 음악으로 많이 그렸다. 그는 뜻한 바가 있어 21세 때 러시아로 가서 페테르부르크 왕립가극장의 비올라 연주자로 활약하면서 러시아 국민음악파의 대표적인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를 본받아 많은 작곡을 한다. 레스피기는 자기 나라 화가인 미켈란젤로·레오나르도 다 빈치·라파엘로를 비롯한 여러 화가들의 그림도 사랑했다. 그 중에서도 르네상스의 발상지인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보티첼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을 비롯 [봄],[마기의 경배]에서 큰 감동을 받아 1927년 작곡을 한다. 그는 그전에 걸작인 [로마의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교향시를 작곡했지만 [보티첼리의 세 그림]은 미술적인 색채가 더욱 강렬한 교향시여서 그의 아내 엘사가 좋아했다고 한다. [봄]은 여러 요정들이 춤을 추는 정경이기 때문에 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하여 음악이 생동한다. 처음에는 섬세하고도 찬란한 음색의 현과 플루트·클라리넷이 트릴(소리를 떨리게 냄)로 연주하면 은은한 혼이 응답하며 다시 조용한 현의 트릴과 함께 파곳(바순)이 나타난다. 빠른 이 서주 뒤에 오보에·클라리넷·파곳이 3중주를 이루는 가운데 춤곡이 나타나는데, 이 [봄]이란 그림이 계절을 찬양하는 춤의 장면이어서 춤곡의 프레이즈(악구)가 그림과도 같은 색채 적인 관현악법의 기법으로 전개된다. [마기의 경배]는 앞의 [봄]과는 달리 느린 음악이다. 마기, 즉 동방박사 세 사람을 상징하듯이 이국 정서가 물씬 풍기는 선율이 처음에 나타난다. 여기에 오보에가 새로운 프레이즈를 노래하면 그 뒤에 플루트가 독특한 8분의 15박자로 오리엔탈한 주제를 노래한다. 템포가 다소 빨라졌다가 다시 느려지며 바이올린들이 단편적인 선율을 노래한 뒤 처음에 나타났던 선율로 끝난다.
[비너스의 탄생]은 출렁거리는 물결 위에 뜬 조가비에서 태어난 비너스를 상징하듯이 흔들리는 현의 울림 속에서 플루트가 그지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노래한다. 그리고 클라리넷과 우아한 첼레스타·하프가 곁들어져 주제를 노래한다. 처음에 나타났던 물결처럼 흔들리는 현이 더 커지지만 마지막엔 조용히 끝난다. 눈을 감고 이 곡을 듣노라면 보티첼리의 그림에서보다 더 관능적이고 아름다운 비너스의 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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