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마음에 짙게누운 깊은그늘
얼마전에 그를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이인지라 개인적으로는 소주 한잔이면 그냥 얼굴과 온몸이 홍당무로 되는 체질적인 관계로 평소 술을 멀리합니다만 그날은 너무나 오랜만에 만나는 처지인지라 그냥 반가운 마음에 뒤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볍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술을 몇잔을 걸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술을 몇잔 걸치게 되었다는 말은 그는 나의 술 체질에 대해 오래전부터 알고있는 처지인지라 자신과 건배를 하면 한잔을 가지고 4번을 나누어서 마시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와 건배를 할때마다 벌컥벌컥 목구멍으로 가볍게 넘겨 재낍니다. 그의 술 주량을 아는지라 호흡조절하며 마시라고 하였습니다.
술잔이 몇수 오고간 끝에 그의 요즘 근황에 대해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설날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라 예전부터 알고 있는 지인들로부터 만나자는 휴대폰 벨소리가 수시로 울리는 관계로 요 근래에는 하루가 멀게 술자리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못 마시는 술을 마셔야 하는 고통도 있지만 반가운 이들을 생각하며 감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이도 여느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한번 뭉치자는 얘기가 있어 여러 차례에 걸쳐 연락을 취했지만 그때마다 다른 이가 전화를 받아 휴대폰번호를 바꾼 것으로 생각하고 있던차에 집으로 연락을 해와 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근간에 만났던 이들로부터 그에 대한 안부를 물었지만 아무도 그와 관련된 소식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마당에 그가 먼저 연락을 취해 만났으니 반가운 마음이야 말로 형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도 나와 같이 머리에 검은머리보다 흰색의 머리가 더 많은 서리가 허옇게 내려앉은 상황인지라 서로 만나면 요즘 하는 일의 상황과 자식들의 성장하는 과정과 마누라의 늘어가는 잔소리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회포를 푸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에게 마누라와 자식은 현재 없습니다. 그는 1997년 I.M.F 당시 젊은 청춘을 받쳤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당하면서 한동안 경제적인 압박을 받으면서 마누라와 자식들과 이별을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으로 그 연령대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겪었던 불행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그런 고통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를 남달리 생각하며 수시로 불러내어 술자리의 친구가 되 주거나 주말에는 운동차원에서 그를 강제로 불러내어 말벗이 되어주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이 혼자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를 매우 버거워하는 깊은 속내를 나에게만은 솔직하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여느때와 다른 말을 하였습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나에게도 그간 털어놓지 못했던 자신의 좀더 깊은 속내를 털어놓기 위하여 조급하게 벌컥벌컥 벼락술을 마셔됐나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어느 동네에서 10평이내의 원룸을 사서 살고 있던 것으로만 알고 있었지 직접적으로 그의 집을 방문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니 내가 그의 마음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는 오늘 말했습니다. 자신은 그동안 다니던 사장포함 5명 정도 되는 곳에서 2년여간 선반일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I.M.F 전에는 책상과 시험실에서 개발된 제품을 최종적으로 생산을 위한 전초단계인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럼으로 그가 기계적인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신체적인 조건도 남보다는 조금작아 직접적으로 몸으로 떼우는 기계적인 일은 무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근간에 산행에서 만났던 그는 유달리 피곤해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몸은 고생은 되었지만 급여수준이나 일하는 조건(주간만)이 좋아 근무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느날 젊은 사장이 좀더 많은 매출을 위하여 그도 모르게 좀더 큰 설비로 교체하는 계획을 세운 후. 어느 때인가 대형설비가 들어오고 그가 작업하고 관리하던 작은 설비가 출하되었다고 했습니다.
그에게 단 일언반구도 없이 사장과 부인을 비롯한 처남 등의 비밀숙의 하에 급 진행을 시켰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새로 들어온 설비는 그가 운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라습니다. 또한 새로운 설비라 해당설비를 숙독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가내수공업과 같은 공장에서는 그런 시간을 허용치 않기에 며칠간 심적인 괴로움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장은 그보다 좀더 낮은 연령이긴 하였지만 그간 잘 대해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근 2년 여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평소 사장의 몸이 그렇게 온전한 상태가 아니였기에 자신을 대체할 새로운 인력들을 충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전에 그의 밑에서 기술을 배우고 익혔던 젊은 사람을 차장이란 직함으로 스카웃 하였습니다.
물론 5명이 있는 직장에서야 직함은 약간의 수당이 붙는 이른바 명목상으로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젊은 친구가 들어오면서 그는 젊은 사람을 깎듯하게 예우하였고. 또한 젊은 사람도 사리가 분명하여 자신보다 나이있고. 경륜이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했다고 했습니다. 그럼으로 새로운 사람만 들어왔지 분위기는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그가 들어온 얼마후 그와 함께 일했던 그보다 젊은 사람을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온 젊은 친구는 완전히 위아래를 구분 못하는 인간이었지만 사장이나 새로운 차장이 그를 데려온 것은 그가 단지 일에는 물불을 안 가리고 한다는 장점을 높이사 그를 채용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으로 결국은 그가 있어야 할 자리가 도태되는 결과가 도래하여 더 이상 해당분야에서 일을 할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여타의 부문으로 이동을 하려해도 군에서 개인가정사에 따른 의가사 조기 제대한 사장의 조카를 맡아 키워달라는 사장누이의 유언을 받들어 조카를 해당분야에 투입하여 키워 제 밥벌이를 하게끔 만들어 주겠다는 사장의 생각도 있는 관계로 더 이상 해당공장에 있을수 없어 자진 퇴사를 결정하고 해당공장을 나와 구직활동에 힘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근 9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보니 자신이 일할만한 장소도 또한 자신을 받아들일만한 직장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자신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상황이 최악으로 몰리다보니 종잣 돈도 바닥나고 최종적으로는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전제품 등을 중고매매업체에 헐값으로 내놓으며 생활비로 충당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나마 매매에 내놓을 만한 물품도 없는 관계로 최종적으로 원룸집을 내놓으려고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은 그는 또 한번 낙담하지 않을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원룸빌라를 구입한 시기인 10년전에는 그래도 위치나 평수등이 좋아 구입하는데 여타의 집보다는 높게 대금을 지불하며 원룸을 구입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그가 구입한 금액으로는 “장기융자금:1500만원+지불금2300만원=총3800만원”을 주고 집을 구입하며 재산을 만들었는데,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은 공인중개사무실에서 제시한 “매매금액:1700만원-남은융자금:1000만원=실수령액:700만원”에 집을 내놓아야 매매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황망한 생각에 편히 수면을 취할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노력으로 만든 남은 마지막 재산을 가지고 뭔가 재기를 해보려고 하는 그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나 봅니다. 그런 심정으로 나를 찾은 그에게 나는 무슨 말로 위로를 해주어야 할지 몰라 한동안 손에든 남은 반잔의 술을 냉큼 들이키는 것으로 답답한 속내를 대신했습니다.
너무나 불공평한 대한민국 사회 어떤 능력있는 자는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일까 서민주택에 살면서 해외여행과 자동차를 소유한 채로 호의호식하며 잘도 살고. 또한 어떤이는 노동부에서 제공하는 실업자기금을 속여가면서 잘도 타먹고 있다고 하는데.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무능으로 인해 종잣돈을 들여가며 씨도 안 먹히는 구직활동에 전념하니 답답합니다. 이젠 얼마후면 나는 그를 추운거리에서 만날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럴수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매우 자존심이 강한 사람으로 평소신조가 거리에서 만나는 분들과 같은 추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굳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얼마남지 않은 그의 행보를 근거리에서 지켜보는 이내 심정은 정말 가슴이 아려옵니다.
요즘에는 날씨가 그나마 따스하여(?) 방안의 온도를 높이지 않아도 살수있어 좋다며 애써 웃음을 짓는 그 사람. 그는 근래에 한국전력에 TV시청료 2500원을 절약하기 위하여 취소신청을 냈고. CATV지역방송에 시청을 종료한다는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절약하고자 하는 5500원을 절약함과 동시에 한동안 멀리한 라디오청취에 심취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요즘 가능하면 낮에 밖의 외출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동네에 근 10여년 이상을 살다보니 밖을 나서면 만나는 정겨운 이웃들의 시선을 애써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이전에 직장을 다닐때에는 새벽아침 06:00 시에 칼같이 일어나 07:00 이전에는 차에 올라 직장으로 출근하는 길에 만나는 이웃어른들을 보면 공손히 인사하며 출근하였습니다.
그리고 늦은 저녁시간에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면 하루도 빠짐없이 단골가게와 비디오가게 들러 물품을 구입하거나 새로 나온 신 프로를 대여하며 자택으로 들어가는 매일 반복되는 동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그간 오랜 단골이었던 비디오가게가 물품매입자를 만나 물품을 처분하면서 그의 동선이 일부 차단되었습니다. 물론 그가 비디오가게를 매일 들렀던 횟수도 1주일에 1회 방문하는 것으로 부쩍 횟수가 줄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매일 들르는 동네 가게도 격일로 거쳐서 방문하고 구입하는 물품과 액수도 전보다는 많이 줄어 가게주인아줌마는 요즘 하는 일이 잘 안풀리냐고 걱정을 해주는 말을 들으면 괜히 가슴이 뭉클해지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부끄럽다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에게 무슨 말로 위로와 대책을 논의해주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는 이사회의 구성원에서 떨어져나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의 일환으로 늦은 저녁시간이면 남몰래 집을 나와 여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3시간 왕복을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값비싼(?) 대중 교통비를 낭비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럼 그는 답합니다. 나도 그들과 같이 늦은 저녁시간까지 일을 하고 퇴근할수 있는 직장생활을 할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과 함께 늦은 시각에 피곤한 몸과 마음을 버스에 실어 수면의 나락으로 빠져드는 그들의 모습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아주 평범한 대한민국의 한 중년의 남자가 한국사회에 지금 묻고 있습니다. 나도 당신들과 같이 피곤한 몸과 마음을 버스에 내 맡기고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고 싶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같이 그동안 절교하였던 신을 찾아 간절히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런 소박한 바람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길 함께 기원해 봅니다. 이번 설을 앞둔 주말에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을 불러내어 그와 함께 찐한 속 풀이라도 해야 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