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밤 안으로만 내리면 되니까 서두르지 마시고 차가 정류장에 서고 문이 열리면 그 때 일어나서 하차하셔도 아무도 뭐라고 안합니다.” 24일 오후 3시 서울역 버스정거장으로 들어오는 202번(태릉교통)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10여명은 노인을 위한 버스 기사 강봉권(37)씨의 안내방송에 가을 햇살만큼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선글라스에 검정색 제복,댄스가수들이나 사용하는 ‘헤드마이크’를 착용해 한 눈에 봐도 예사 버스기사는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강씨는 이미 남양주에서 서울역까지 오가는 승객들 사이에 ‘까마귀 DJ 아저씨’로 불리는 스타. 노선안내부터 날씨·막차시간·예식장·집회시위 안내까지 다양한 정보를 운전솜씨 못지 않은 정겨운 말솜씨로 들려주는 강씨의 방송을 기다리는 단골 승객도 늘고 있다. 강씨가 버스 안내방송을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 “졸다가 앞으로 굴러떨어지는 승객,미리 내리려다 넘어진 승객 등 버스 안전사고가 잦아 예방차원에서 안내방송을 시작하려 했다”는 강씨는 “당시 인기가수 나미씨가 헤드마이크를 착용하고 노래부르는 것을 보고 곧바로 같은 것을 사서 방송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처음 강씨의 방송을 접한 승객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하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지만 얼마 전 승객으로 탔던 할아버지가 “무조건 과일가게 앞에 잠깐 세우라”고 한뒤 사과 한박스를 사준 일도 있을만큼 지금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강씨가 진짜 스타로 대접받고 있는 이유는 바로 몸에 밴 선행 때문. 그는 백혈병에 걸린 동료기사의 딸을 돕기 위해 시작한 ‘헌혈증모으기 운동’을 8년째 이어오고 있다. 또 2002년 겨울에는 부인 정영순(33)씨가 직접 버스에 올라 100여만원의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아 보육원에 전달하기도 했다. 강씨는 “지난해에는 헌혈증 300장을 모 방송사가 후원하는 ‘백혈병·소아암어린이돕기 운동본부’에 기증했고 올해도 벌써 200장을 모았다”며 “특히 태릉에 있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들은 헌혈증을 직접 주기 위해 일부러 내 차를 타니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요즘 들어 ‘성대 보호’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는 강씨는 이날 방송에서 “따뜻한 음료를 마실때 음료의 김을 코로 마시고 입으로 내뿜기를 반복하면 목이 훨씬 촉촉해진다”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소개한 뒤 페달을 밟았다. 한장희기자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