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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Big

정병철 |2006.05.27 01:39
조회 488 |추천 2


아메리칸 하드 록 밴드 미스터 빅은 통쾌한 스트레이트 사운드를 들려주던 정상의 테크니션 집단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국내에선 'To Be With You', 'Just Take My Heart' 같은 말랑말랑한 발라드를 연주하는 밴드로 이미지가 둔갑해 버려 안타깝다. 특히 이런 편견은 노래를 불렀던 에릭 마틴에게 더욱 크게 작용했는데 사실 이는 그를 두 번 죽이는 잔인한 평가다. 왜냐하면 그는 누구보다 강렬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정통 하드 록 보컬리스트기 때문이다. 이는 밴드가 추구해온 음악 여정을 훑어보면 너무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알 그린 등의 블루스 음악에 영향을 받아 선 굵은 보컬을 들려줘왔다. 그의 목소리에서 피어오르는 진한 느낌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그는 기본적으로 매우 풍부한 성량을 가지고 있다. 끓어오르는 듯한 걸걸한 톤의 강렬한 샤우팅은 시종일관 그 힘을 잃지 않음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는 정상의 록 보컬리스트답게 다채로운 창법을 구사한다. 굵은 저음에서부터 속사포로 몰아치는 그로울링과 최고 절정에서 정확한 음정과 긴 호흡을 보여주는 흉성 창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머리를 쭈뼛 서게 하는 쇳소리의 두성은 그의 보컬 미학을 집대성하고 있는 최고의 매력 포인트다. 'Addicted To That Rush' , 'Rock & Roll Over' 등의 스트레이트 넘버에서 이를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성대가 그렇게 강하지 못한 탓인지 라이브 공연에서 종종 목이 쉬어 버린 모습을 보여왔다. 그래서 이 정상의 보컬리스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하루의 대부분을 목소리 단련에 투자한다 한다. 진정한 보컬리스트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oimusic 2004년 04월 남동균 어쿠스틱 넘버 'To Be With You'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던 미스터 빅(Mr. Big) 또한 머틀리 크루와 같은 카테고리에 속한다. 미스터 빅은 반(反) 연주미학을 무기로 한 그런지 광풍 속에 1990년대 들어 급속한 하향곡선을 그렸다. 밴드 내에서 더 이상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던 폴 길버트는 탈퇴했고 명 기타리스트인 리치 코젠이 자리를 대신했다. 반격을 꿈꿨던 그들. 허나 2000년의 [Get Over It]도 성과는 없었다. 시운(時運)을 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두 밴드의 최후를 통해 알 수 있다. oimusic 2002년 09월 배순탁 미스터 빅의 역사는 빌리 시언이 미국 최고의 하드 록 그룹 '밴 헤일런'의 초기 보컬리스트였던 데이빗 리 로스가 결성한 '데이빗 리 로스 밴드'(기타의 달인 스티브 바이도 참가)에서 두 장의 앨범 발매와 대규모 세계 공연 후에 탈퇴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뉴욕주 버펄로 출신(1955년 3월 19일생)의 베이시스트 빌리 시언은 그의 밴드 '탈라스' 시절부터 십 수년간의 투어 활동을 통해 괄목할 만한 기량을 연마하였다. 베이스를 기타 수준으로 자유자재로 다루며 멜로디 솔로는 물론이고 기타에서 쓰이는 태핑(tapping) 주법을 완벽하게 베이스에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라고도 한다. 월드 기타 매거진(world guitar magazine)에서 최고의 베이스 주자로 3번이나 거론되기도 했다. 빌리 시언은 1988년 소울풀하고 감미로운 목소리의 소유자인 에릭 마틴의 발굴로 미스터 빅의 밝은 미래에 대한 뼈대를 갖추기 시작한다. 뉴욕주 롱 아일랜드 출신(1960년 10월 10일생)이지만 'Army Brat'(부대 내의 심부름하는 어린아이)로 세계 곳곳을 돌며 성장한 에릭 마틴은 오티스 레딩과 윌슨 피켓 등의 음악을 접하게 되었고, 이러한 영향은 그의 음악적 노선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동기가 된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활약하던 그는 '에릭 마틴 밴드'로 솔로 지향적인 3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다. 최고의 피킹 테크니션으로 손꼽히고 있는 일리노이주 카본데일 출신(1966년 12월 6일생)의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는 만 5세 때 아버지로부터 기타와 앰프를 생일 선물로 받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다. 어려서부터 비틀즈, 레드 제플린, 밴 헤일런, 러시, 랜디 로즈, 잉베이 맘스틴, 키스, 에어로 스미스 등을 들으면서 음악 공부를 해나간다. 특히 11살 때 에드워드 밴 헤일런의 기타 플레이에 큰 충격을 받고 밴드 생활을 시작한다. 15세 때 마이크 바니(레코드사 의 사장)에게 데모 테이프를 보내 레코딩 제의를 받기도 했다. 198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LA로 이주해 기타리스트를 지망하는 아마추어들의 꿈의 전당이라 할 기타 학교 G.I.T.(Guitar Institute of Technology)에 들어간다. 그리고 '85년 10월, 입학 1년만에 G.I.T의 정식 교사가 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86년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레이서 엑스'를 이끌며 4장의 완성도 높은 앨범으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그 후 빌리 시언과 손잡고 미스터 빅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속주 기타리스트 크리스 임펠리테리의 그룹 '임펠리테리'의 명반 [Stand In Line]과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 테드 뉴전트 등의 앨범에 참여한 바 있는 드러머 팻 토피는 오하이오주 출신(1962년 12월 13일생)이다. 그는 애리조나 록 커뮤니티에서의 계약 기간을 마치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로버트 플랜트 등 유명세 있는 수많은 아티스트들과의 공연 등으로 음악계에서 그의 위치를 확고하게 다져놓는다. 이러한 슈퍼 멤버 4명이 모인 미스터 빅은 1989년 레코드사를 통해 그들의 셀프 타이틀 앨범으로 데뷔했다. 'Big Love', 'Addicted to That Rush' 등이 싱글 커트되어 방송 전파를 타게 되었고, 그것은 곧바로 같은 소속사 밴드인 러시의 투어에 동승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91년 2집 [Lean Into It]으로 그들의 명성을 더욱 높여주었으며 나아가 플래티넘을 획득한다. 이 앨범의 'To Be With You'는 호주와 오스트리아, 캐나다,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뉴질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그리고 미국차트에서 넘버 원 싱글이 되었으며 차트 상위권에 3주간 머무르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으며 아직도 애청되고 있는 팝의 명곡으로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oimusic 2001년 08월 조규철 그 동안 조용했던 미스터 빅(Mr. Big)이 드디어 새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96년 HEY MAN을 발표한 후 이들은 그룹 활동을 중단한 채 각자 솔로 앨범을 발표하거나 프로젝트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사실상 팀은 공중분해된 상태였고 끊임없이 해산설이 나돌았다. 베이시스트인 빌리 시언(Billy Sheehan)은 나이어신(Niacin)이란 프로젝트 밴드와 함께 활동했으며 보컬리스트인 에릭 마틴(Eric Martin)도 지난해 SOMEWHERE IN THE MIDDLE이란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기타리스트인 폴 길버트(Paul Gilbert)는 얼마 전 앨범 FLYING DOG을, 또한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던 드러머 팻 토피(Pat Torpey)조차 ODD MAN OUT이란 앨범을 발표하며 이들 미스터 빅은 그야말로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각자 솔로 활동을 하면서도 미스터 빅의 활동 재개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해왔기 때문에 한 때 '미스터 빅은 완전히 망했다'라는 소문도 들려왔다. 또한 얼마 전 폴 길버트가 미스터 빅을 떠났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면서(그의 정확한 탈퇴 시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미스터 빅의 팬들은 그룹의 해산을 사실로 받아들이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폴 길버트의 후임으로 포이즌(Poison) 출신의 실력파 기타리스트 리치 코젠(Richie Kotzen)이 가입했다는 소식이 들어왔고 그제서야 팬들은 미스터 빅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쉬기도 했다. 미스터 빅의 새로운 기타리스트가 된 리치 코젠은 어떤 인물인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당신은 분명 신세대 음악 팬일 것이다. 그는 잉베이 맘스틴(Yngwie Malmsteen) 이후 기라성 같은 속주파 기타리스트들이 우후죽순식으로 등장했던 지난 '8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던 기타 영웅중의 한 명이다. 각종 기타 잡지에 단골로 소개되던 그는 그러나 초창기 솔로 활동을 통해서는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후에 자신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던 포이즌에 가입, 일부 팬들로부터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결국 리치 코젠은 포이즌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다시 솔로 활동을 펼치며 자신의 기타 실력을 더욱 향상시키는데 주력했다. 그리고 마침내 미스터 빅의 멤버들과 전에 함께 연주 작업을 했던 것을 인연으로 미스터 빅의 정식 멤버가 되었다. 그러자 이들의 활동 재개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이웃 일본의 음악 팬들은 9월 16일과 21일 일본에서 있을(책의 발간 시점에서는 이미 공연이 끝나있겠지만) 미스터 빅의 일본 공연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한다(이들의 일본 공연은 2000년 1월에도 스케줄이 잡혀 있다). gmv 1999년 10월 유지훈 1988년에 결성된 정통 록 밴드. 데이빗 리 로스와 함께 음악 작업을 했던 빌리 시언(베이스)이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던 블루스 록 보컬리스트 에릭마틴을 끌어 들여 기타 전문학교인 GIT의 명강사 폴 길버트(기타)와 헤비 메탈 그룹 임펠리테리에서 드럼을 쳤던 팻 토피와 함께 라인업을 구성, 현재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 이듬해인 89년 이들은 정통 록 사운드를 담은 데뷔 앨범 Mr.big을 발표. Addicted to that rush의 히트에 힘입어 순회 공연 치르며 그룹의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90년엔 라이브 실황 앨범 Raw like sushi를 발표. 이는 일본에서만 발표된 소위 Sushi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 되었음. 우리나라에서는 이 가운데 Japandemonium이라는 이름의 세번째 작품만 95년에 공개되었다. 91년 두번째 정규앨범 Lean into it을 내놓아 To be with you를 빌보드 차트의 정상에 3주간 올려 놓고 Just take my heart를 16위에까지 올려 놓으며 플래티넘을 기록. 특히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이들은 92년 9월 한 차례 내한 프로모션을 갖고 비바 아트홀에서 미니 콘서트를 펼치면서 국내에 미스터 빅 팬들을 다수 확보했다. 93년엔 세번째 정규 앨범 Bump ahead를 발표, 캣 스티븐스의 고전 Wild world를 리메이크해 좋은 반응을 얻었으며 Promise her the moon, Mr.gone 등의 곡들을 히트시킴. 새로운 투어와 함께 캘리포니아 라이브 실황을 담은 Live & screaming를 내놓기도. 96년 들어 정규 4집 앨범 Hey man을 발표해 Going where the wind blows, Take cover 등의 새로운 히트곡들을 내놓고 있다. 이 앨범이 발표되던 올해 2월엔 두번째 프로모션을 위해 내한, GMV 단독 인터뷰와 표지 촬영을 갖기도 했다. 5월 11일엔 Hey man 투어의 일환으로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화려한 첫 내한공연을 펼치고 돌아갔다. gmv 1997년 01월 이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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