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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 쓴, 아래, 시들은, 다 구겨 버리고 싶다.

이상보 |2006.05.27 02:41
조회 39 |추천 0

자유게시판, 한가지 의문에 관한, 더 나은 해결 방안이자, 나의 사고의 전환점의 근거및, 증거.

 

숙제 : 나의 이름은 무엇이며, 나의 주소는 무엇인가?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나는, 긍정적 사고를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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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내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들에 관하여 생각해 보자.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그리고 난 나무를 만지고 감상하고 꺽을 수도 있다. 내 코앞의 산소를 연소시킬 수도 있으며, 이 종이에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다.

 

 내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무수히 많은 일들에 관하여 생각해본다. 나로 인하여 많은 것이 바뀌었다. 물론 내가 바꾸지 못하고 바꿀 수 없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 인해 내 존재가치가 사라지거나 줄어들지는 않는다. 우선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고,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부모님을 미소짓게 할 수 있다면, 친구와 우정을 샇고, 뭐 한두가지 더 알아가고, 새나 꽃이나 바라보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에밀리 디킨스의 시처럼 그러면 헛 되이 사는 것 아니리...

 산다는 것, 어쩌면 그 것에는 헛 된다는 게 없으리라. 산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의 이름은, 더 고민 할 것도 없이, '이 상보'로 하자. 그것이 이 세상에서 통용되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필연이든 우연이든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를 상보라고 불러주는 한 나의 이름은 상보이며 아름답다.

 

 주소 역시 바로 이곳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있을 꺼라고 예상하며 나를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이곳 이며, 난 여기에 있다. 너의 이름은 내가 알고 있으니 너의 이름이며, 넌 내가 찾을 수 있는 그 곳에 있다.

 

 

대충 결론은 이쯤 내린 걸로 하자. ㅎ

 

다른 의문이 든다.

 

그럼 난 자존하지 않는 것일까? 음... 내가 없다면 하나의 세계는 끝이 난다. 나랑 연관된 이들의 세계에도 적지 않은 손실이 있다. 내가 밥을 먹었고, 사람들을 만났고, 걸었으며, 담화를 나누었고, 배웠으며, 여전히 난 자유의지를 가졌고, 비록 이런 것들이 제한적이고 일탈을 허용하지 않아, 내 자의식의 발휘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 왜냐하면, 나의 자존으론 부족하기에, 너의 자존도 필요하기에, 나도 굽히고 너도 굽혔을 뿐, 우린 분명 자유의지를 지녔다. 난 자존한다. I am who I am... 그래도 자존에 관한 의문은 아진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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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를 쓰고 싶습니다.

 

다짐 하나, 더 이상 우울에 젖은 시는 쓰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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