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구리병이라고 아시는지?
필자가 젊은 검사 시절에 형사부에 근무하면서 사체에 대한 부검을 지휘한 일이 가끔 있었다.
당시 부검을 하면서 자주 만난 의사분과 부검을 마친 뒤 사체를 만지고 난 장갑을 벗고 불편한 속을 달래기 위하여 술을 한 잔씩 하였던 일이 있었다.
어떤 유명한 부검의가 젊은 검사의 기를 꺾겠다는 심사였는지 모르지만 여름철의 바닷가에서 며칠간 떠있다가 완전히 고무풍선이 된 사체를 부검하면서 검사를 수시로 불러 굼벵이가 들끓는 사체의 여기저기를 만지게 한더니 부검을 마친 뒤 됫병 소주를 들이킨다.
야, 나도 대한민국 검사다.
저 노인네에게 질 수는 없지?
됫병 소주를 마신 젊은 검사는 그날 사무실로 돌아가지 못하였다나?
필자가 처음으로 사체를 부검하는데 참여한 것은 사법연수생으로 검찰청에서 수련중일 때였다.
나이가 많은 연수생 조장이 총각 연수생들에게 연락이 왔다.
여대생 사체가 나왔는데 기가 막힌 미인이고, 담당검사가 사법연수생 두 명 만 데리고 간다는 것이니 선착순으로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으잉, 여대생이라고라?
선착순으로 따라갔는데 여대생은 여대생이었다.
허지만, 한강물에 떠다니다가 물에 퉁퉁 불은 엉망인 사체라 도저히 눈을 뜨고는 보지 못할 흉칙한 물건(?)이었다.
한번 볼 때마다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목젖을 달래면서 이리지러 도망다니다가 겨우 검찰청으로 돌아왔다.
그날 검찰청 구내식당의 점심 메뉴는 내장탕이었다.
점심은 커녕 저녁도 먹지 못하였다.
서당개 3년이면 어쩐다고 검사생활도 학년이 거듭되고(검사들은 보통 2년 정도 마다 근무지를 바꾸는데 한 번 바뀔 때마다 한 학년씩 올려 불러주는 농담이다) 사체도 보는 회수가 많아질수록 이골이 난다.
중견검사가 되어가면서 사체의 종류도 여러가지를 접하게 되고
죽음의 종류도 무수히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지금은 의학적으로 명칭이 부여되었겠지만
당시만 하여도 그냥 “폭구리병”이라는 이름없는 증상으로 숨진 분들이 가끔 있었다.
화장실에서 변을 보다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으려고 앉아있다가
사무실에서 잠깐 낮잠을 자다가, 아니면 지하철에서 졸다가 그만.....
참,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는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그냥 “폭 고꾸라진다”고 해서 “폭구리병”이라고 하였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요즈음도 이름모를 병으로 세상을 떠나는 분들이 많다.
그 이름모를 병에 도전하는 의사분들의 노고도 점점 커지고 있지만
사람이 해결하지 못할 많은 병들이 불쌍한 우리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황우석사건”과 같은 기막힌 일도 생기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 인간들이 불치의 병에 대하여 도전하는 것은 수많은 생명의 구제를 위하여 정말 위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대동맥박리라는 대단히 위험한 질병에 대한 병원의 과실에 대하여 법원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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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법원 2006. 4. 27.선고 2005나4956 손해배상(의)
○ 사안의 개요
1. 원고들의 피상속인인 윤00은 2002. 1. 7. 14:00경 점심식사 후 갑자기 가슴부위와 등 부위에 통증을 느껴 15:50경 피고가 운영하는 병원응급실에 내원하였는데
응급실에 근무하던 의사들은 심전도, 흉부 X-선 검사와 그 외 전해질 검사, 말초혈액검사, 혈당검사, CK-MB 검사(심근경색이 의심될 때 실시하는 심장세포효소검사)를 시행한 결과도 흉부 X-선상에 종괴가 관찰되는 것 외에 심근경색 등의 심장질환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나타나지 않자,
위 증상을 단순히 체한 것으로 보아 소화기 질환의 일종인 급성위장 관염(AGE)으로 진단하고 그에 따른 대증치료를 하였는데 그 이후에도 줄곧 극심한 흉통 및 명치부 통증과 오심을 호소하자 그날 20:30경 흉부 CT촬영을 하였는데
그 필름상 우측 폐상부에 4×5cm 크기의 종괴 외에 대동맥 부위에 대동맥 박리가 의심되는 균열선이 일반인이라도 알아 볼 수 있을 만큼 뚜렷이 관찰되는데도 위 응급실 의사들은 이를 간과하거나 무시하여 이에 대하여는 추가검사를 하지 않았고
다음날 08:00경 출근한 피고병원 내과 전문의도 윤00를 진찰한 후 흉통 및 오심의 증상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은 채 흉부 CT촬영 결과 폐 부위에 종양이 발견되어 폐암이 의심되니 큰 병원으로 전원하라고 권유하였을 뿐, 위 응급실 의사들과 마찬가지로 흉부 CT필름상의 대동맥 부위의 뚜렷한 균열선에 대하여는 발견을 하지 못하여 이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아 윤00는 그날 11:40경 의료진의 동행 없이 구급차로 서울소재 병원으로 전원하다가 14:10경 사망하였다.
2. 원고들은 윤00에게 대동맥박리를 의심할 만한 증상이 나타났고 여러 검사 결과 심장질환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흉부 CT필름상 대동맥 부위에 뚜렷한 균열선이 나타났는데도 이을 발견하지 못하여 생명에 직결되는 대동맥박리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피고병원 의사들의 중대한 과실에 해당한다고 하고,
이에 대하여 피고는 흉부외과.진단방사선과.심장내과.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는 위 병원 정도의 의료기관에서는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 대동맥박리를 진단하기 어렵고 또 윤00의 우측폐 부위에 악성종양이 발견되어 이에 관심이 집중되어 대동맥박리를 진단할 여유가 없었으므로 피고의 잘못이 없다고 다툰다.
○ 쟁점
대동맥박리는 초기 진단과 빠른 치료가 되지 않으면 생명이 위급해지는 질병인데 대동맥박리가 의심되는 증상을 호소하고 흉부 CT필름 상의 대동맥 부위에 일반인도 알아볼 수 있는 뚜렷한 균열선이 나타났는데도 이를 발견하지 못하여 대동맥박리를 진단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피고병원의 과실여부 및 그 정도
○ 법원의 판단
1. 내원당시 윤00이 호소했던 흉통 및 배부통증의 증상은 식도염, 위궤양 등 경증의 질환과 협심증, 심근경색, 대동맥박리증 등 응급을 요하는 질환에서 모두 나타나는 증상이지만, 심근경색, 대동맥 박리증의 경우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이므로
이에 대한 검사와 진단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응급검사결과 심장질환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없었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위급성을 지닌 대동맥박리증도 그 원인질병으로 의심해 보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급히 소화기질환으로 진단을 내림으로써 초기 응급검사 및 진단 의무를 소홀히 하였고
뒤늦게나마 촬영한 흉부 CT필름상 대동맥 부위에 일반인이라도 알 수 있는 뚜렷한 균열선이 관찰되어 이를 망인이 호소했던 통증의 증상과 함께 고려했더라면 방사선과전문의의 확진이 없더라도 대동맥박리증 또는 최소한 대동맥 부위에 뭔가 이상이 있음을 쉽게 의심할 수 있었음에도
피고병원 응급실 의사뿐만 아니라 내과전문의 조차 이를 간과하거나 또는 무시하여 윤00에게 그에 대한 적절한 치료의 기회를 놓치게 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위와 같은 피고의 잘못은 윤00의 사망에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아 피고의 책임 비율을 70%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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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적으로 인간의 행위에는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이 있고,
무의식적인 것들 중에는 부주의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필자의 이론임).
무의식적인 행위, 인간의 의지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소위 고의가 아닌 행위에 대하여도
법은 일정한 잘못이 인정되면 법률상의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불행한 일이기는 하지만, 누구에게도 잘못을 탓할 수 없는
그러한 일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점차 많아져가고 있고,
법은 피해자라는 이름의 다른 인격을 보호하기 위하여 전문직의 종사자에게는 가혹하리만큼 고도의 주의의무를 부과하고 그로부터 인출되는 법률적 책임의 대가로 피해자에 대한 지원과 사랑을 부여한다.
그 사이에서 억울함을 주장하는 피해자와 가해자
법의 이념을 어떻게 구현하는가에 따라 법에 의한 새로운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하면 할수록 법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06. 5. 29.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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