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손을 놔버리면 모든 것이 끝난다.
난 항상 이별을 상상할 때면, 한적한 브런치타임이 조금 지난 시간
pm4:00를 떠올린다. 모두들 지쳐있는 그 시간,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바쁜 상념에 젖어있는 그들을 그려낸다.
마침 손님도 적게 오는 아이보리의 wall을 가진 카페에 앉아, 한참을 , 하염없이 , 찻잔만을 향해있는 그들의 초점까지 상상하면서…
투명하게 비치는 찻잔을 명백히 주시하면서, 어리석게도 그들은 괜한 딴청을 피는 생각을 했다. 입을 떼기도 벅차겠지 , 서로의 안부를 묻기에도 가슴을 부여잡고 심호흡을 하게 되겠지 , 서로의 눈을 보면 눈물이 나버리겠지 , 마침 슬픈 노래가 나오면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달아날까 싶겠지… 여자들이 생각하는 짜릿한 이별의 순간을 생각했다.
참으로 우습게도 그 상상은 단번에 무너지고 말았다. 난 생크림 거품이 듬뿍 든 카페라떼를 마셨고 , 그는 명쾌한 캔뚜껑 소리와 함께 사이다를 컵에 따라냈다. 가뜩이나 바쁜 점원에게 이래라 저래라 말하면서 짜증도 냈고 , 7월 한 여름 뒷목에는 흥건하게 땀이 베어있었다. 그는 부채질을 하고 , 나는 입가에 닿는 뜨거운 액체가 짜증이 났는지 금방 짠 시럽을 가득 부어버렸다. 그저 짜증만 나 있을 뿐이었다. 서로가 싫어졌기 때문이었을 까 , 그건 아닐 거다 , 단지 땀이 나는 여름이었기에…
그 날씨가 우리를 이별할 수 있도록 만든 매개체일까 , 충분히 그 값을 한 것 일까 , 덥고 습기찬 7월의 날씨는 3년의 시간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 우습기라도 한 듯이 , 우린 1시간도 채 있지 않고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을 꺼냈다. 그의 한 쪽 귀에는 이어폰이 꽂아져 있었고 , 난 잡지를 보며 말했다. 그것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vogue girl 최신호였다. "헤어질까 ?" "좋아." "deal." "Ok. deal."
만족스러웠다. d e a l 이라는 네 음절로 우리의 3년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 , 그만큼 우리가 뜨거운 관계가 아니었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선택이었다. 그 또한 그럴 것 이다. 어떻게 하면 더욱 간지럽지 않은 이별이 될 수 있을까 , 우린 각자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 차츰 deal이란 표현에 대해 배신감이 들기도 하겠지만 지금 당장 이 뻘쭘한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최대한의 선택은 그 뿐이었다고 고백할 수 없었다. 그 이상으로 파고들었다면 이렇게 가위질 하듯 싹둑 - 잘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는 악수를 청했고 , 유치한 헤어짐이라 생각해왔던 나지만 , 손을 내밀었다. 너무나 예쁜 만남을 예쁘게 끝낸다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그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음만 지을 뿐이다. 이 손을 놓아버리면 우리의 3년은 현재 메모리에는 남아있지 않게 되겠지 , 아마도 추잡하고 쓸모없는 공간쪽으로 점점 자리를 옮겨서 몇십년이 지나면 아예 내 삶의 이 시간들은 어느 미술학원을 다녔는지 기억이 안나는 것 처럼 , 어렸을 때 내가 어느 곳을 여행했고 , 그 여행지에서 무슨 인형을 샀는 지 처럼 , 새까맣게 잊혀질 것 이다. 철학의 탈을 쓰고 냉정해지려 노력하면서 손을 접으려 안간힘을 썼다. 인간은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어느 누구 스님이 된 듯이.
언제나처럼 "계산은 douth treat" 우리가 정해놓은 약속이었지만 ,그래서 일까 , 냉정하다고 생각해버리고야 말았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해왔던 게 왜 이제와 눈물이 날만큼 서운한 지 , 여자는 이래서 안되나봐 , 이런 철없는 생각까지 하게 됐다. 내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 특히나 그의 정갈한 옷매무새를 보면서 , 더 없이 미워져버렸다. 내가 없어도 저렇게 깔끔하게 다닐 것 같으니까 , 단 하나의 빈틈도 줘버리지 않은 그가 사무치도록 미웠다. 가장 바래왔던 그의 모습들이 다 채워지고 난 뒤에 이별을 마주친 순간 , 그가 조금이라도 내가 없으면 불안해 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했던 탓일까. 살얼음이 터져 나간 것 같이 침몰했다.
가슴에 , 사랑이라는 감정에 , 내 영원일 것 같은 사람을 단숨에 떠나보내는 그 시간은 길었다. 마지막 인사까지도 짧고 간단하게 끝내버리고는 난 택시를 타고 , 그는 내가 탄 택시 번호를 메모해두고
그렇게 내 3년의 사랑이 끝나버렸다.
철없던 시간부터 삶의 찌든내가 가득 묻어나던 순간도 , 아기를 갖고 싶다는 둘만의 작은 욕심도 , 서로를 방치해버렸던 마지막 까지도 -
모든 게 다 어영부영 시작해 끝내버린 것 같은 내 사랑이 끝나버렸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 슬픈음악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아리고, 쓰라리지도 않았고 이별을 얘기하는 순간은 단 일분도 채 되지 않았다.
단지 영상 28도의 날씨 뿐이었다. 오후 1시, 작렬하는 태양이 직각으로 내리꽂은 아스팔트를 피해 우리가 달아나버린, 에어컨디셔너의 바람만이 가득한 카페에서 우린 우스운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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