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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지

한혜진 |2006.06.05 02:17
조회 49 |추천 0


 양주에 회암사지

현재 아직도 발굴 중임.

향후 몇년은 더 발굴한다고 함.

 

 작년에 회암사지 근처의 다른 곳의 발굴장에서 열심히 호미질 하던 때가 생각나더군요. 발굴장에서 호미만 봐도 어찌나 반가운지~ ㅎㅎㅎ 그러나 다시는 발굴장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듬. ^^

 

각설하고 현재 회암사지는 이 발굴장에서 더 올라가 산 중턱에 작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잘 나간던 때와는 사뭇 다르지요. 회암사지는 조선시대 전기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다고 합니다. 태조 이성계는 나옹의 제자이면서 자신의 스승인 무학대사를 이 절에 머무르게 하였고, 왕위를 물려준 뒤에는 이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였다고 하네요. 이후 성종 때는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의 명에 따라 절을 크게 넓히는데 13년이나 걸렸다는. ㅋ 그 시대를 살던 서민들이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겠습니다. 그 후 명종 때 문정왕후의 도움으로 전국 제일의 사찰이 되었다가, 문정왕후가 죽은 뒤에 억불정책으로 절이 불탔다는... 권력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한마디~! 우리나라의 발굴 현실은 우리가 지금 이를 바득바득 갈며 미워하는 일본에 한참 뒤지고 있습니다. 발굴장의 인력이나 기술이 뒤지는 것이 아니고 그 것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의식이 한참을 뒤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발굴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호미 들고 나가 자원봉사를 하시듯 발굴을 하신다는군요. 그만큼 일본은 자신들의 문화재를 찾고 지키고 보존하는데 전 국민이 적극적이고 호의적이란 증거지요.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단 발굴 예정지로 정해져 지표조사를 나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얼굴 붉히며 덤비는 지역 주민이라는군요. 자신들의 재산에 피해가 가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무조건 반대부터 하시는 겁니다. 사실 지표조사를 한다고 전부 발굴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또 발굴을 한다고 해서 전부 위의 회암사지처럼 중요한 유구가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즉 발굴이 꼭 재산 피해를 가져오는 건 아니란 뜻이죠. 혹시라도 지역 주민의 재산에 피해가 가는 일이 발생한다면 나라는 법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해준답니다.

사실 발굴이 뭐 이렇게 중요하냐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해외에 떠도는 문화재 중 상당수는 일재 강점기 당시 일본이 발굴이란 명목 하에 도굴해 간 것들입니다. 또 지금도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최고로 치는 이도 다완의 역사를 찾겠다며 자신들의 돈으로 우리나라 가마터를 발굴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돈으로 발굴된 우리나라 가마터의 학술자료들은 누구의 것일까요? 일본사람들은 절대 그 자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모두 일본으로 가져가 버립니다. 즉 우리는 이도 다완을 연구하러 일본에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만든 우리의 찻그릇을 연구하러 일본에 가야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문화재 발굴은 문화재를 되찾아 지키고 보존하는 일 만큼이나 중요한 일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주변에서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주세요. 그 것이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첫 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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