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폄우사(砭愚榭)

이태복 |2006.06.08 09:23
조회 49 |추천 0

폄우사(砭愚榭)  


 

‘폄우사’(砭愚榭)는 구중궁궐의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의 현판이다. 얼핏 보면 조어 같기도 한데 그 뜻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고사에 연유를 뒀음직하다. 일부 전공자를 제외하고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궁궐 안에 백관의 출입이 금지된 곳, 임금의 휴식과 사색을 위한 공간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어리석음에 돌침을 놓는 정자’라는 의미로 ‘폄우사’를 지었다는 것은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임금이 스스로 어리석음을 통렬히 깨달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비록 대간들이 있고 신하들이 조언과 비판, 각종 실무집행을 도와준다 해도 왕의 통치는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백성의 행복과 불행, 나라의 안위와 직결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고 어리석음을 깨쳐 슬기로운 국정을 펼쳐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그 되돌아보는 시간과 장소를 아무도 올 수 없는 군왕만의 휴식터에 ‘폄우사’를 세운 것이다. 그 이유는 국정의 최종책임은 군왕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휴식의 시간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든 장치가 있었음에도 조선의 임금들은 몇몇을 빼고는 거의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암매했거나 권력의 단맛을 즐겼을 뿐이다. ‘폄우사’는 그저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폄우사’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고통을 느낄 정도로 깨달았다면 조선 천지는 백성들의 함포고복(含哺鼓腹) 소리가 넘쳐나고 동아시아의 강대한 국가로 우뚝 섰을 것이다.


이 ‘폄우사’라는 현판을 떠올려보면서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이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폄우사’는 절대 권력자인 임금에게 요구된 엄격한 수양의 장치였다면, 민주화된 오늘의 ‘폄우사’는 우리사회에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오만과 독선을 경계해야 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각료, 집권여당의 ‘폄우사’가 중요하다. 지금도 그들에게 중요정책의 결정권이 있고 국가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과 언론은 그동안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지적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폄우사’가 필요하다. 구체적인 대안보다 1970~80년대식의 논리를 앞세우거나 견제의 역할도 감정에 치우쳐 성실하지 못했다. 따라서 야당과 언론 역시 ‘폄우사’를 통해 거듭나지 않는 한,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 어렵다. 대안이 없기 때문에 손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그들의 오만과 독선이 줄어들 것이다.


종교계와 대학교수들은 어떤가. 격변기일수록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들의 메시아적 역할이 권력의 부패와 잘못을 고쳐갈 수 있는데 이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권력과 너무나 닮은꼴이다. 감자탕 교회 같은 신앙공동체는 극소수이고 권력에 참여한 교수들은 현란한 말솜씨로 국민들과 나라살림을 어지럽혔을 뿐 국민들의 고통엔 입을 다물고 있다. 세상을 정화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줄 수 있는 고유의 역할만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폄우사’가 필요하다.


일제하 시대의 애국세력, 군사정권시절 민주화세력은 어떤가. 이제까지 역사의 부름에 온몸을 던져 뛰어왔으므로 누가 우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느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의 침략이 눈앞에 있는데도 제 역할을 다한 지사들은 많지 않았다. 망국노가 된 이후에도 이념의 오만과 독선에 빠져 통일단결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운동을 전개했고, 해방된 이후에 각기 외세를 등에 업고 주도권을 잡기에 혈안이 돼 싸움질로 날을 새지 않았는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정권 시절에 올바로 대처한 운동세력 역시 많지 않았다. 우리가 일일이 지난 운동의 과정을 되돌아보지 않더라도 우리의 어리석음을 침으로 찔러서 뼈아프게 느껴야 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특히 운동권이 나라를 망쳤다는 소리를 듣게 된 까닭은 전적으로 우리의 잘못이다. ‘폄우사’가 정녕 필요한 사람들은 운동하던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폄우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래도 ‘폄우사’가 필요하다고 공감하는 사람들만이라도 어리석음을 물리치는 용기를 가져보는 것이 어떤가. 그래야 우리사회에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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