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의 말 귀담아 듣지 마세요.
자신의 삶에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말은 이제 별로 새롭게 들리지도 않겠지만, 시대가 이렇게 변할수록 새삼스럽습니다. 스티븐 코비 박사는 심지어 "자신이 속한 모든 곳에서 주도적이어햐 한다"고까지 하잖아요.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고 더 절실한 건 역시 자기 안에 있는 자기를 알아야 하는 일입니다. 분명 '내가 살면서도 남 때문에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물론 독불장군, 청송처럼 사는 분은 박멸당한 세상입니다. 그래도 말이죠, 그래도 내 삶에 내가 주연이 아니라 조연, 나아가 지나가는 사람 1,2가 돼 버린다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습니까. 내 삶을 보는 수많은 눈. 내 삶에 얽혀 있는 수많은 다른 삶. 내 삶에 그물처럼 드리워져 있는 수많은 질서와 기준과 통제와 책임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해야 할 것들이지 모셔야 할 것은 아니지요.
우리는 남의 말을 무서워합니다. 사회적 시각으로 정말 비난받을 만한 것은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잔소리급의 남의 말은 더럽게들 무서워합니다. 상투적 안목에서 나오는 상투적 조언들을 어쩌면 그렇게 무서워하는지요.
대기업에 주저앉은 많은 꿈과 용기들도 주위의 '잔말(小言)' 탓입니다. 빛나는 '사'자 직업에 등극해 자신의 본연의 빛은 있었는지조차 잊고 사는 경우도 주위의 '단말(甘言)'에 충치처럼 녹아버린 탓일 겁니다.
"그렇게 좋은 회사를 왜 그만둬?"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데, 호강에 겨운 생각이지..."
"그 나이에 뭘 다시 해. 그냥 살아!"
말이 아니라 족쇄입니다. 인생을 밀도 높게 살고 싶어하는 건전한 본능을 무릎 꿇게 하는 골다공증 바이러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봅니다. 가끔씩.
주인공이었다 조연으로 전락할 것 같을 때, 다시 주연으로 도약하는 용감한 몸짓을, 칠순의 노시인이 유학을 떠나는 옹골찬 의지를. 치과 의사가 국수를 말아 파는 자아 추적을. S대 의대에서 의사시험 합격증을 받아든 날, 오래 꿈꾸어왔던 심리학 공부를 위해 어학 연수를 떠나는 어느 젊은 여학생의 푸른 어깨를.
남이 뭐라든 신경쓰지 맙시다. 내 속의 내가 무어라 하는지 들여보세요. 그가 새로움을 원할 때 부정한 짓이 아니라면 과감해져야 합니다. 완벽한 새 출발은 없으니까요. 새 출발을 위해 '어느 정도 조건을 만든 다음에...'라고 생각하면 더욱더 시간의 조건은 안 좋아집니다. 눌러앉거나 떠나거나 완벽하지 않긴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하기도 매한가지입니다. 남의 말이 귓전에서 맴맴거리는 것도 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가급적 많이 버리고 떠납시다. 내가 버리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이 날 버릴지도 모릅니다. 오늘 버린 것은 내일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맨 먼저 내가 있던 세상이 너무나 좁았다는 진실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이 됩시다. 내 인생에서만큼은. 남을 부리고 호령하고 살진 못할지언정 내 삶에선 끊임없는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한 편의 해외 리쿠르트 신문 광고 헤드라인 한 줄은 이 탈출의 짜릿함과 그 가치를 너무도 쉽게,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해안을 버려야 바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93년 11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세상을 보니…
세상이란 참 넓구나.
■ 오래 전 우연히 받아든 교양잡지에서 이 한 페이지를 읽었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를 그만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