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서범석 photographer/황영철
황성주 털털 피부과 황성주 대표원장
형벌을 치유하는 우리시대의 명의
환자에게 심어주는 3000개의 행복이야기
"모발이식은 예술이다. 또 환자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구원과 같은 것이다."
모발이식이 무엇이냐는 다소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대한 황성주원장의 짧고 명쾌한 답변이다.
국내의 독보적 모발이식 전문의를 넘어 기존 모발의학계의 학설을 뒤집는 논문으로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게 한 황성주원장. 그의 이 명료한 대답에는 "환자에게 만족을 주는 고마운 의사로 기억돼야 한다."는 의사로서의 철학이 담겨 있다.
모발이식이 시술이 아니라 예술의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환자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는 단순한 기술만 가지고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두상이 다 다르고, 탈모의 양상이나 진행과정 또한 다 다르다. 또 환자의 나이나 직업 등 사회적 지위가 다르고, 이들이 원하는 스타일 또한 천차만별이다. 아울러 머리카락의 굵기나 모양새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게 모발이식이다. 때문에 단순히 옮겨심기식 치료가 아닌,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혼신의 열정이 필요하다는 게 황원장의 지론이다.
탈모라는 형벌을 품고 사는 사람들
탈모는 당해본 사람만 아는 절체절명의 형벌이다.
"몇 년 전 살인사건이 있었습니다. 탈모 때문에 가발을 쓴 한 젊은이가 미팅에 나갔고, 함께 나간 친구가 '가벼운 농담' 삼아 가발을 벗어 보라고 한 게 발단이었지요. 격분한 젊은이가 흉기를 들고 그 친구를 무참히 살해한 것입니다."
황성주 원장이 들려주는 '그들만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알 수 있게 하는 예다. 황원장의 경험에 따르면 19살의 젊은이나 74살의 노인이나, 탈모로 인한 마음의 상처는 그 양상만 다를 뿐 그 무게는 똑같다는 결론이다.
때문에 환자의 마음을 잘 헤아려야 하는 것이 모발이식 전문의의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이다.
"일흔 살의 노인 한 분이 병원을 찾은 일이 있습니다. 처음에 전 그분을 그냥 돌려보내려고 했지요.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지만, 수십년을 그렇게 살아온 마당에 굳이 수술을 해야 할 까닭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탈모 때문에 안 해본게 없다는 푸념으로 시작된 그분의 생각은 달랐지요. 앞으로 1년을 더 살지 20년을 더 살지 모르지만, 단 하루라도 탈모의 고통을 벗어버리고 싶다는 것이지요. 탈모는 이들에게 있어 형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모발이식 수술을 받고 간 그 노인은 4년 뒤 역시 탈모로 고민하는 친구를 데리고 황원장을 찾아왔다. 74세 최고령 수술환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황 원장의 병원에는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중후반의 늦깍기 새신랑들의 청첩장이 특히 많이 들어온다. 모발이식 수술을 받은 노총각들의 대부분이 일이 년 이내에 결혼에 골인한다는 웃지 못 할 증거다.
주머니 속의 송곳을 꺼낸 보이지 않는 손
황성주 원장이 처음부터 모발이식 전문의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명망 받는 자리에까지 올랐음에도 그저 '운이 좋았다'는 겸양으로 일관하는 그의 태도 또한 이 때문이다.
"경북대 의대 인턴 시절 가장 절실했던 것은 밤잠이었습니다. 그래서 밤잠 잘 잘 수 있는 피부과를 택했지요. 그런데 의외로 피부과가 제 적성과 잘 맞았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경북대에 우리나라 유일의 모발이식센터가 생겼지요. 그 일이 제게는 더 없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피부과 전문의를 마치고 모발이식에 인생을 걸기로 했지요. 제가 가고 싶은 대학을 못 간 게 오히려 행운이었습니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그랬듯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을 찾은 게 경북대였다는 황 원장.
그러나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얼마나 열성적인 삶을 살아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남들 같았으면 좌절의 쓴 잔이나 위안이랍시며 기울일 판, 끈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내 자기 것으로 소화해 낸 황원장의 의지가 없었다면 지금의 오늘은 결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황원장의 서울 입성 후의 시절도 그랬다.대구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황원장은 과감히 서울 입성이라는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당시 황원장에게 서울은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는 가시밭, 그 자체였다.
그렇게 수년간의 인고의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모 일간지 가자가 그를 찾아 온 게 성공신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기사가 나간 다음 황원장은 각종 공중파와 케이블방송 섭외 담당자들의 '표적'이 됐다. 그리고 연예인 이홍렬 씨를 비롯한 이봉주,유남규,한기범 씨 스포츠 스타들이 연이어 그를 찾으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것.
"그 시절을 돌이켜 보면, 아무래도 보이지 않은 어떤 손이 절 이끌어 준것 같습니다.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우연과 주위의 도움이 더 컸으니까요. 그래서 전 감히 하나님이 절 이렇게 쓰려고 그렇게 인도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황 원장의 실체를 아는 사람들은 모든 공은 순전히 황원장 자신에게 있다는데 순순히 동의한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그가 인고의 세월 갈고 닦은 능력이 스스로 세상으로 나왔다는 얘기다.
모발이식 의학계의 코페르니쿠스
황성주 원장은 한 때 기인으로 통했다.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생체실험 아닌 생체실험, 모발이식 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9년 전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모발을 이식한 곳은 왼쪽 무릎 아래 부분. 이식한 머리가 정말 안 빠지는지 의심하는 환자들에게 직접 확인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식한 머리카락은 빠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잘 자라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황원장의 딸이 태어나면서 발생했다. 딸아이의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나 머리깎기를 수 차례 할 때까지 황 원장의 이식모는 일정 길이에서 더 이상 자라나지 않았다.
때문에 황 원장은 '머리카락을 옮겨 심어도 본래의 성질을 유지한다.'는 당시까지의 의학계 정설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그래서 황원장은 다리에 이식한 모발 일부를 다시 뽑아 뒷머리,목,등,손바닥 등에 이식하는 2차 생체실험을 감행했다.
결과는 놀랄만한 사건이었다. '본래의 성질을 유지한다'던 머리카락은 이식된 피부에 맞게 성질과 특성이 달라지는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실제로 같은 곳에서 뽑아 이식한 머리카락들은 현재, 그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생장을 유지하고 있다. 다리에 이식한 모발의 길이는 5cm 안팎인 반면 뒷목에 이식한 모발은 20cm가 넘게 자라 있다.
황성주 원장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2001년 국제모발이식외과학회에 '이식모발의 굵기조절에 관한 연구'를 주제로 한 논문을 발표, 전 세계 단 한명에게 수여되는 연구상을 수상했다. 이때부터 세계가 황원장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모발이식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다
지난 2001년 그간의 정설을 뒤엎은 황원장의 논문은 지금도 모발이식의학계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를 정도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002년 드디어 전세계 관련 의사들의 바이블로 불리는 미국'모발의학교과서' 저자로부터 공동저자가 돼 달라는 연락이 왔다. 황원장뿐 아니라 국내 모바이식 분야의 위상이 세계 정상에 서는 순간이었다.
이밖에도 황 원장은 2003년 대한피부과학회 최우수 논문 선정,2005년 국제모발이식학회 최우수논문상,2006년 3/4월 국제모발이식학회지 표지논문 및 이달의 의사선정,2006년 국제모발이식학회 좌장 초청 등 명실공이 국제 모발이식계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도전과 실험정신은 '안주'라는 단어를 아예 모르는 듯하다. 때문에 황박사가 써내려가는 모발이식계의 새역사는 현재 진행형.얼마 전 한 자매가 황 원장을 찾아왔다. 수 년 전 급성 백혈병을 앓은 동생에게 언니가 골수를 기증한 것. 백혈병은 완치 됐지만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동생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언니가 다시 동생에게 머리카락을 기증하겠다는 것.
황 원장은 우선 골수기증도 모자라 머리카락까지 기증하겠다는 언니에게 복잡할 것 같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나 그 언니의 대답은 간단했다. '가족이니까.' 그 간단한 대답에 황 원장은 흔쾌히 무료수술로 자매의 정에 응답했다. 결과는 국내 최초 타인 모발이식 성공으로 나타났다. 세계에서는 이탈리아에 이어 두 번재 쾌거. 하지만 황 원장의 논문은 동생의 머리카락 즉, 골수 수여자의 머리카락은 기증자의 머리에서 생장할 수 없다는 사실까지 밝혀내 '역시 황성주'라는 찬사를 자아냈다.
믿기 어려운 기록,100%의 생장률
황성주 원장의 모발이식 수술은 100%라는 믿기 어려운 생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모발을 이식하고 측정한 정확한 생장률은 90%. 하지만 이 생장률은 1년이 지나고 2년 3년이 지나도 90%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10%가량의 자연적 탈모와 새 모발의 생장 현상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것. 때문애 90%의 생장률이 지속된다는 건 모발이식의 100% 생장률과 같은 의미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완벽에 가까운 생장률을 기록할 수 있는 것은 황성주 털털 피부과에서만 찾을 수 있는 시스템에 기인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또 시술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가 직접 집도하는 병원, 모발이식과 탈모치료만을전문으로 하는 최고의 병원, 항상 연구하는 자세로 최고의 의술을 베푸는 병원을 만즐겠다는 황 원장의 환자에 대한 3가지 약속과 일맥상통한다. 모발이식은 의사 혼자서 1시간 이내에 끝내는 간단한 성형시술과는 달리 5~7명의 모낭을 분리하는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4~5시간 정도 시술하는 힘든 수술이다.
머리카락 하나하나를 만지며 2000~3000개의 모발을 이식하고 나면 다른 고객을 진료하기가 힘들 정도다. 때문에 모발이식만 전문적으로 하지 않으면 수술을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가 할 수가 없다.
황 원장은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를 만들던 장인들의 정신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작품을 만든다는 각오로,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가 직접 시술하는 것이 신중하게 선택한 환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이라는 신념이다. "저희 병원 뒷편에 15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추어탕 전문점이 있고, 바로 옆집에는 100명이 들어갈 만한 30가지 이상의 메뉴를 가진 식당이 있습니다. 추어탕 전문점은 손님들로 만원을 이루어 밖에서 기다려야 하지만, 1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식당에는 파리만 날리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하면서 별맛이 없는 음식점보다는 한 가지라도 확실하게 잘하는 음식점에 손님들이 몰리는 것이죠. 저희 병원 역시 이것저것 다하는 병원이 아니라 한 분야에 집중해 고객의 마음까지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든다는 생각입니다."
황 원장이 말하는 모발이식 전문병원을 고집하는 이유다. 그는 또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의 팔 다리 목 이마 손바닥 등 신체 여러 곳에 직접 실험을 했듯,환자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연구를 쉬지 않고 있다.이런 연구하는 자세는 곧 최고의 의술을 베푸는 병원의 초석이 되고 있다.
4명의 전문의.모낭분리 전문팀,아시아 유일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황성주 털털 피부과는 사실 아사아에서 유일한 병원이다. 전문의 4명과 10여 명의 모낭분리 전문 간호사를 두고 있는 병원은 황성주 털털 피부과 밖에 없다. 이는 모발이식 결과는 전문성을 가진 의사의 시술 다음으로 모낭분리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발이식 수술은 다른 수술과 달리 팀워크가 필요한 '팀수술'로 불린다. 때문에 경북대학병원 모낭분리팀과의 공동연구로 모낭분리사를 양성, 자체 모낭분리팀을 확보해 거의 모든 모낭을 손실 없이 분리해 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다른 병원에서의 분리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하루에 여러 번의 수술에 투입되지 않으므로 고도의 정교함을 요하는 모낭분리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4명의 전문의를 둠으로 해서 상담실장으로 하여금 견적을 받듯하는 다른 병원과 확실한 차별을 두고 있다. 상담에서 진료, 시술의 전과정은 의사의 손으로 직접 한다는 이 병원의 철칙이다.
마음의 상처 치료하는 다섯 시간
모발이식 수술은 길게는 다섯 시간에 달하는 힘든 수술이다. 환자에게는 특히 부분마취로 인해 수술의 전 과정을 목도한다는 심리적 부담을 가져 올 수 있다.
때문에 황 원장은 자신 또한 수술을 마치면 맥이 탁 풀릴 정도로 힘든 상황이지만,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염두 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황 원장은 이러한 어려움을 풀어내는 열쇠를 ‘정직’에서 찾아냈다.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현재 심어진 머리카락 개수가 몇 개인지까지 수술의 진행사항을 환자와 공유하고 있는 것. 이를 통해 환자는 심리적 안정을 찾고, 황 원장 또한 한정된 머리카락을 가지고 최대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배열을 찾는데 도움을 받고 있다. “환자에게 정직한 것이 수술효과를 높일수 있다”는 것이 황 원장의 조언이다.
모발이식 수술을 집도하는 것은 또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아우르는 언변과 식견을 필요로 하는 적업이다. 다양한 환자들에게 맞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섯 시간의 수술시간은 황 원장과 환자와의 농밀한 유대가 형성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때 이제까지 숨겨왔던 탈모로 인한 속에 얘기를 털어놓게 된다는 황 원장의 전언. 탈모 치료는 물론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되는 순간인 셈이다. 이러한 유대는 수술 후 수년이 지나도록 끊지 못하는 질긴 끈이 된다.
아시아 최고의 허브병원 설립을 향해
지난 1월 국내 최초로 모발이식전문가의 자격을 취득한 황성주 원장. 이미 국내 최고의 자리를 확고히 하고 있지만, 그의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시아 최고의 허브병원을 만든다는 게 그의 ‘1차’목표다. 똑같은 기술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적 권위의 학술지에 황 박사의 논문이 표지논문으로 선정됐지만, 미국피부외과학회지 등 유수의 학회지에 곧 실릴 예정인 논문이 두편이나 더 있다. 개원한 의사라고는 믿기 어려운 왕성한 연구활동이다. 이는 아시아 유일의 병원을 넘어 아시아 허브병원으로, 다시 전세계 톱10 병원 진입을 위한 황 원장의 포석이기도 하다.
황성주 원장의 왕성한 활동은 의학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출범한 사단법인 한국기독교교육진흥원의 초대 이사장직을 맡은 것. 이곳에서 황 원장은 인성교육 기독교육 영어교육 등을 접목한 새로운 개념의 초등학교 설립에 힘쓸 계획이다. 또 내년 개교 예정인 평양과학기술대학교 설립이사, 한국가족상담센터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황원장은 또 SJ 장학재단을 운영, 치료비의 일부를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각종 사회단체 기부금만 1억원이 넘을 정도다. 이는 어려웠던 시절 다짐 했던 “내가 받은 것의 10배를 사회에 돌려주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시간. 그의 진찰실 벽에 붙어있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성경구절이 얼핏 “부족함 없는 의사”로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