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터키(突厥ㆍ돌궐)와 한국[펌]..민족 동질성 조회 813추천 152006/06/13 19:26
한국과 터키는 피를 나눈 형제국이다.
터키는 한자로 突厥(돌궐)이라고 표기한다. 몽골과 함께 중국에서 匈奴(흉노)라 칭하던 민족의 하나로, 6세기 중엽부터
8세기 중엽까지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우리 한민족과 같은 우랄 알타이어족이다. 고구려 전성기엔 글안, 여진(숙신)과 마찬가지로 일부는 고구려의 基層(기층)민중에 속했다.
돌궐은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 고구려의 遺民(유민)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우리 민족과 특별히 긴밀해졌다. 고구려가 멸망하자
, 대부분의 서민들은 초기엔 唐(당), 후엔 신라의 지배를 받으면 한반도에서 살아갔으나, 귀족계급 등 중상류층 가운데 일부는 唐에 포로로 잡혀갔으며, 일부는 몽골, 글안, 돌궐 등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 682년 동돌궐이
올란바토르(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제2제국」을 수립할 때, 여기에 참여했다. 그 숫자는 전 인구의 절반인 20만명이 넘었다는 설도 있다.
돌궐의 왕은 「單于(선우)」 또는 「可汗(가한)」이라고 불리며 그 아래에 左賢王(좌현왕), 右賢王(우현왕)이 있었다.
돌궐 제2제국의 單于는 고구려 遺民을 우대하여, 고구려 왕족의 일원이며 遺民의 수장인 高文簡(고문간)을 高麗王(고려왕)으로 봉했다. 왕은 둘 밖에 없는 것이 돌궐의 전통이었으나, 고구려 유민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이들을 통치하기 쉽도록 王을 한명 더 늘려 고구려인을 앉힌 것이다.
돌궐은 특히 고구려 遺民 가운데 여성을
뽑아 종교의 首長(수장)인 제사장에 임명했다. 이를 탕구르, 또는 탱글리라고 했다고 한다. 고조선 시대 샤머니즘의 首長 호칭이 「단군」이었다는 설을 인정한다면 아마도 같은 계통의 단어가 아닐까 싶다.
돌궐은 7세기에 톤유크라는 사람이 중앙아시아 소그드語 계통의 문자를 만들어 역사를 기록했다. 고대 터키어로 기록된 돌궐 碑文(비문)이 몽골 오르혼江, 남시베리아 예니세이江 상류 및 서북 몽골지방에 세워져 있다.
당나라의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된 돌궐은 8세기 무렵, 사라센제국의 용병으로 南下(남하)한다. 사라센은 이슬람교 창시자 모하메트의 후계자가 중동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에 걸쳐 이룩한 대제국이었다. 용병에 불과했던 돌궐은 11세기 무렵, 사라센제국을 멸망시키고 셀주크투르크 제국을 건설했다. 징기스칸의 몽골에 패해 그들의 지배를 받던 투르크는 13세기 말, 다시 오스만투르크를 세워 20세기
초반까지 7세기를 이어오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국민혁명으로 멸망했다. 동서양에 걸쳐 광대한 영토를 갖고 있던 터키는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편을 들다 독일이 패하는 바람에 많은 영토를 잃고 오늘날의 소국으로 전락했다.
터키는 과거 고구려의 기층민중이었으며, 「돌궐 제2제국」을 같이 한 우리 한민족에 대해 깊은 유대감과 함께 형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래서 6ㆍ25때 북괴가 남침하자, 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미국, 영국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군대(1만4936명, 전사 721명, 부상2147명)를 파견해 우리를 도왔던 것이다. 파병이 늦어지자, 터키의 고등학생들이
『왜 형제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지 않느냐』면서 데모를 벌였다는 말이 있다. 7세기 때부터 문자를 갖고 있는 그들은 역사를 통해 터키와 한민족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양국간의 경제 및 군사협력은 물론이고, 터키에 대한 깊은 연구가 행해졌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희망이다. 옛 터키어를 연구하면 잃어버린 우리의 과거 역사도 일부 그 속에서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p.s
역사를 바로알아야 후손에게 제대로 된
강대국인 우리조국인 대한민국을 물려줄텐데..
아쉬운 마음에 글을 퍼왔습니다.
4년전에는 우리와 3, 4위를 놓고 싸우던 한국과 조상이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의 나라 투르크(터키는 싫어하더군요...그렇게부르면..
거래처중에 터키..아니 투르크 인이 있어서^^*)
정서도 한국사람하고 아주 유사합니다.
예를들면 식사하면 우리 한국사람은 일본사람처럼 무조건 n분의 1로 나눠서
내는 것 여러모로 안좋게 생각해서
1차는 니가 2차는 네가 3차는 내가..그런식으로 번갈아가면서 내는것
아주유사합니다.
식사했는데, 서로 자기가 내겠다고 한국사람인 저하고 터키인 그하고 많이 다퉜죠^^*
이야기나누어보니 거래처인 그 터키인도
한국에서 몇년살아보니 자기 터키사람하고 정서적으로 아주유사하다고
신기해하고 낯선 외국인에도 이제는 자기조국같답니다...
친일 식민지사관물들은
지금의 역사교육이 안타깝구요..
더불어
한국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과 영토를 장악한
고구려사의 엄청나게 강력한 힘과 기상과 역사를
(어서 백두산까지 쪼그라든 조국대한민국이 아닌
우리 땅인 만주벌판과 간도지방등 모두 되찾아서
세계최강의 경제와문화, 스포츠강국의 대한민국이 되었음 하는 작은 바램..
그러면 남한의 5000만명,북한의 2300만명, 만주및간도의 조선족및 한민족후손들
3500만명~4000만명하면우리도 1억 2천만명~1억 3천만명의
강국이 되는것입니다.
지금의 남한인구 5000만명가지고는 힘듭니다.
우리를 둘러싼 중국이 13억명, 일본이 1억 2천만명,
러시아가 2억인가요?(러시아는정확히 모릅니다^^*..아시는분?)
강력한 조국을 건설하는데는
인구많은것이 필수적이죠.
지금은 통일한 (서독+동독)독일도 7000만명 수준이고,
세계적으로 인구가 1억이상인 나라는 10개국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리고.....
후손에게, 지금 자라는 아이들에게
제대로 교육하면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크게 느껴서 조국의 위대함과 자부심을
갖는데 큰 일조를 할것같습니다.
위글을 읽어보시면 왜 터키가 형제국이라고 우릴 좋아하는지 이유를 아실 겁니다..고구려유민이 20만명이나 포함되고,제2의 돌궐을 세우는데 고구려인이 주도적 세력이 되었으니 말 그대로 피를 나눈 제2의 고구려이라해도 틀린 말은 아니죠. 먼 이웃에 우리의 진정한 혈맹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고구려의 핏줄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격할 뿐이죠.
우린 그간 단순히 한국전 참전국이란 피상적인 이유로 터키를 생각해 왔으나 왜 그들이 자원병을 보냈으며, 1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형제국으로 기억하는지 이유를 잊고 살아왔죠..단순히 고구려와 인접한 친한 나라인 동맹국이 아니라 고구려 유민이 세운 제2의 돌궐족의 후예기에 그들은 우리를 동맹국이 아닌 혈맹국으로 부르고 있죠..고구려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중원에 공동대응 했을뿐아니라 고구려유민이 반수가 참여한 제2의 돌궐에서 나온 셀주크투르크 오스만투르크의 현신이 바로 오늘날의 터키이니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은 민족적 결합을 이룬 고구려 바로 그 자체입니다.민족구성원 절반이면 그들도 고구려의 후손이죠
그런데, 심히 의문나는 점은 한국전쟁은 알다시피 동족 간의 전쟁이었습니다. 고구려의 후예로 치자면 남한 쪽 보단 평양이 수도고 국내성이 영토근처에 있는 북한과의 유대감이 더 커야 하는 건 아닌지. 역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피를 나는 형제를 도왔다고도 볼 수 있고, 피를 나는 형제에게 총부리를 겨눴다고도 볼 수 있네요. 민족적 친연성을 생각하면 북한과 더 가까울테니, 좀 아이러니하네요.
그들의 종교를 보면 대답이 나요죠..이슬람국가들은 공산주의와 공존할 수 없는 사고를 가지게 됩니다..이슬람이 믿는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인데..당시 공산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였지요..1970년까지 우린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열등하였기에 우리 덕보려는 것은 없었죠.다만,그들도 구소련과 이웃하다보니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단 사실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후 당시 터기 대사는 동족인 한국의 대사로 부임하여 자랑스러워 하였죠 그런데 우린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아 터키에 무관심하였고 어느날 길가다가 터키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으나 아는 사람들이 없다했죠..그후,실망한 터키대사는 본국으로 가서 "더 이상 한국에대한 짝사랑을 하지 말자."라고 기고하였죠..제대로 된 민족의 역사교육이 필요했으나 실증주의사학과 군사정권의 정당성 결여가 가로 막았죠..우린 자랑스런 고구려의 후손이고 돌궐(터키)의 형제국이죠..
얼마전 작고한
이병도(일제시대 일본유학파로 실증주의 사학의 오야봉으로 민족주의 역사연구을 탄압하고 식민사관을 주입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승만친일정권수립과 더불어 문교부장관에 서울대총장까지 역임하면서 이놈에 반기를 들거나 식민사관에 맞선 민족사관주장하면 생매장되고 교수자리 얻기도 힘듬)의 그늘이 너무 크고 길었죠..
실증주의사학의 태두이자 을사오적 이완용의 손자인 이병도씨도 친일행적을 인정받아 온갖 영화를 누리다 해방후,문교부장관 서울대총장 등을 역임하며 민족주의 사학을 핍박하다 향년 90이
넘어 죽기전 "조국에 크나큰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고 갔다죠..친일이나 친미나 민족과 국가를 헌신짝보다 못하게 여기니...
슬픈 현실이네요...이런분들이 해방 후 국내 역사학계의 주류를 이루다보니 민족의 자존감을 일깨우는 역사는 가르칠 수 없었죠.일제 식민사관에 찌들어 자기 안일만을 위한 사람이 역사계를 주도하였기 때문이죠.
6.25당시 터키정부는
5천명만 파병하려하였으나 대학생 등 터키의 젊은이들은 "동족이 공산화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하며 서로 지원하여 정부는 1만5천명으로 제한하여 파병하게 되었던 것이죠..지금 생각하면 당시 터키가 눈물나게 고마운 존재죠..
우리라면 그리 할 수 있었을까요? 우린 신라중심으로
통일되고 근대사도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친일실증주의 사학에 의해 식민사관이 지배했지만,터키는1400년 전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후손에 역사교육시키고 있죠.다시 한번 피를 나눈 형제인 터키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