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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이 야 기 조 각 모 음

이경희 |2006.06.18 23:36
조회 141 |추천 2

     아직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어떤 소설중에서...     

시간도, 공간도, 순서도, 주인공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러나 시작이 없었을지 모르는 이야기

 

 

 

 #.1

 

아직 나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녀가 대답을 한참 망설였던 것은

'아직'을 '아직도'로 들어버린 엉뚱한 귀의 첫번째 실수와,

그 '아직도'라는 말이 뜻하는 시간의 의미를

'그 때부터 같은 박자로 이어진 지금까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떤 정확한 시점에 그를 마음 속에 넣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마음을 지금까지 이어진 날 수로 정확히 나누어

매일 매일 규칙적으로 조금씩 좋아하긴 했었는지..

어떤 것이 지금 기대에 찬 그를 더 배려하는 것인지 망설이는 시간동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신호를 받기라도 한 것 처럼..

 

내가 오늘 커피를 충분히 마셨는지, 그 작가의 그 책은 어느 서점으로 가야 구할수 있는 것인지, 누군가 소개한 그 영화의 개봉일은 언제인지를 한참 동안이나 생각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녀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음....그게..음....' 이라는 희망찬 노래가 흘러나온다 생각해버린

질문을 던진 그는 이미 자랄대로 자라버린 자신감과 함께

기대에 부풀어 다음 행선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아! 생각났어. _안녕'

 

서둘러 말해버리고 돌아선 그녀는

어느 영화관, 어느 서점, 어느 커피숍에 앉아

기억의 조각모음을 시작하다.

 

 

 

 #.2 
                                                     


그것은 마치, 그 사람이

빠르고 날렵하지만 아주 또박또박한 속도로

나에게 걸어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3 

 

"그들만의 이야기에 쉽게 몰입하는 것은 정말 안좋은 습관이에요."

 

잠시 딴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바짝 다가와 충고를 한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말투, 계속 이어가는 말은 이렇다.

자신은 언제나 감정에 철저할 수 있다며 반복적으로 늘어놓는 말,

"...영화나 연극을 볼 때, 소설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

나는 그들의 삶에, 그들의 이야기에 전혀 간섭할 수 없는

철저히 초대된 관객임을,

그리고 그 결말은 그들이 바라는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을... "

인정하라는 것이다.

 

솔직히 맞다 싶다. 그래서 그 말에 조금이라도 순종해 볼라치면

그때는...

너무도 익숙한 나를 타인으로 만들어야만 한다.

 

 

 

 #.4 

 


나 갑자기 그녀가 생각났어.

우리는 어느 커피숍에 대각선으로 앉아있었고,

총총 다가와 _안녕, 하며 말을 걸어오는거야.

너무 섬세하게 다가왔었나? _안녕,이라는 말이 싫지 않았어.

 

어지러울 정도로 초컬릿을 씹어 먹다보니

초컬릿이 쓴 것인지, 마음이 쓰린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고...

그렇게 담담하게 말했어.

 

 

 

 #.5 

 

12초 뒤, 무언가 스쳐가듯 오히려 다행, 정말 다행이라 느꼈다.

12시간 뒤, 이것은 초컬릿 쯤으로 풀 수 있는 것이었다 생각하려 하니

기뻐지기까지 했다.

12일 뒤,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12주 뒤, 그녀는 아무것도 슬퍼하지 않는다.

12달 뒤, 그녀는 아직도 그 곳에 있다.

 

 

 

 #.6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이 잘못된 것 같았다.

어느 서점에서 그녀는 제목에 '처음'이 들어간 책을 모두 뒤지고 있었다.

이건 만남의 첫 부분, 첫장면이 잘못된 것이다. 분명..

자꾸만 좋은 사람인 것은 알겠지만 관계가 획기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처음,처음,처음..


그렇다면 '마음'은 어떻게 조절하는 거지?

마음은 정말 열고 닫는 것일까?

강,약인가?
왼쪽,오른쪽인가?
위,아래인가?
주고 받는 것인가?

돈을 주고 살 수도 있는 것인가?

 

처음,처음,처음...


 

 

 #.7 

 


지독한 과거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은
이상한 시간의 마법을 가진 그녀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다.

그녀를 만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은

시간을 되돌려만준다면 지난날에 대한 후회의 기억은

금방이라도 지우고 돌아올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곤 했다.

 

"잊고 싶은 과거를 보여드릴 수 있어요. 기회는 한 번.

 단 지금의 마음을 기억하지 못한채..

 그 기억 앞에 마주서서 스스로 _안녕,이라 고하는 말을 하면

 그 잊고 싶은 기억의 조각만 말끔히 삭제하고, 현실로 돌아올 수 있어요. ."

 

그렇게 막상 시간을 되돌려받은 이들은..

다시 추억이 주는 달콤함에 젖어 그녀의 _안녕,을 기억하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버리고, 또다시 정해진 후회를 맞이한다.

 

_안녕,이란 말만 소중히 간직해주었으면 되었는데..

소중히, 소중히..

그녀의 마음에 채워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한 깊은 슬픔들의 조각만큼

아직까지 아무도, 누구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은 누구의 기억일까..

그녀를 만난 그의 기억.

그를 만난 그녀의 기억.

 

 

 

 #.8 

 

언제 쓰여진 것인지, 누구로부터 쓰여진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편지.

 

_안녕.

오늘은 너에게 가벼운 인사부터 하고싶어.

너는 유독 눈을 좋아했지.

나는 비를 좋아하고..

 

오늘은 비가 내려.. 스산스산하게도.

그런데 지금은 이게 온통 눈이었으면 좋겠어.

왜냐면, 왜냐하면..

아무리 떠올리려해도 이젠

네가 웃는 모습이 생각이 안나.

어디선가는 웃고 있을지 모를 그런 날들로...

그런 눈 내리는 하늘로 바뀌어만 준다면, 하고 생각했어.

 

 

올려보내면 내려오고,

다시 올려보내면 내려오는

깃털과도 같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깃털.

그것을 달고 다니는 날 수도 없는 어떤 새에게는 

깃털은 즉 이겨내야 할 고통. 하지만 그 깃털 때문에

쉽게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어떤 새의 그 깃털.

 

너를 가진다는 건 항상

주먹 쥔 손 안에 든 공기를 가졌다여기는 착각이었지.

잡았다 생각했던 눈은 물이 되어 달라지고,

쌓이지 않으면 결국 빗물처럼 변한다는 것을...

 

이 곳엔 눈이 와.

그러나 나는 웃지 않아.

처음부터 그냥 조용한 비가 내렸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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