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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길과 차범근의 <행복론>

황혜진 |2006.06.21 11:30
조회 238 |추천 1
 

김태길과 차범근의


어제 EBS의 도올 강의를 봤는데, 김태길 선생님이 초청 강사로 나오셔서 도올과 함께 강의를 하셨다.

몇 가지 소중한 말들을 적어본다.


1.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종교를 가지면 철학자로서 내 신념 체계를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모두 기독교 신자이다. 내 노처는 나를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철학자에게는 ‘기도빨’이 먹히지 않는다.


2. 그래도 나는 신앙인이다. 내가 믿는 신은 인격신이 아니라 우주의 이법 자체이다. 윤리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며 철학자로서 사명감이 있기에 나는 신앙인이다.


-> 이러한 신관은 스피노자랑 통해 스피노자 얘기를 한 동안 함.


3. 스피노자는 큰 사람이다. 그는 네덜란드에 살았던 유대인이었다. 스피노자는 신을 부정했기에 유대교로부터 파문당할 위기에 처하였다. 그러나 아버지가 엄청 부자라 교회에 많은 기부를 하는 까닭에 파문을 면했다.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1) 철학자로서 스피노자의 명성이 퍼져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초빙되기에 이른다. 대학 측에서는 무신론적 발언을 삼갈 것을 요구했다. 스피노자는 철학자가 사유를 제한 당하면 더 이상 철학을 할 수 없다며 교수 자리를 포기하고 광학 기술자로 살았다.


2) 당시 교전국이던 프랑스의 한 사령관이 스피노자를 자신의 막사로 초청하였다. 스피노자와 프랑스 사령관은 철학적 담론을 나누었으나 사람들은 스피노자를 스파이로 의심하였다. 이후, 스피노자의 집에 낫과 쟁기 등 무기를 가지고 둘러싼 군중들...스피노자는 숨거나 피하지 않고 너무도 태연하고 당당하게 성난 군중들 사이로 걸어가 자신의 진실을 밝혔다. 


3) 스피노자의 아버지가 죽자 그는 아버지의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으나 유대교는 스피노자의 파문을 결정하였다. 파문은 유대공동체에서 그 사람을 더 이상 보호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갖는다.

스피노자의 누이와 매부는 그의 재산을 탐하여 가로채려 하였다. 스피노자는 탐욕으로 인해 사회 정의가 무너질 수는 없다며 누이와 매부를 고소하였고, 재판에서 승리하였다. 이후, 그는 전재산을 누이에게 주고 자신은 가난하게 산다.


4. 김태길은 가치의 서열을 중시한다. 더 중요한 가치와 덜 중요한 가치가 서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분별해 내는 가치감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점에 있어서는 김태길은 막스 셀러와 통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김태길은 종교를 신념 체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객관주의적인 가치 서열을 논하되,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있는 것이다.)


5. 김태길은 내재적 가치를 서열상 최고로 꼽았다. 건강, 장수, 사랑, 우정 등의 내재적 가치는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이를 김태길은 재미있게 설명한 바, 좀더 상세히 인용해보자. “서울 사람이 장수한다고 해서 부산 사람이 불행해 하느냐, 여성이 건강하다고 해서 남성이 억울해 하느냐.” 이에 비해 ‘돈, 향락, 권력’ 등은 총량이 정해진 제한된 가치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들은 불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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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행복론이 인상적이다. 며칠 전 본 차범근의 글에서도 유사한 행복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요새 차두리와 축구 해설을 하고 있는 차범근은 아들과 세대 차이를 느낀단다. 그가 자신의 경험으로 풀어낸 세대 차이에 대한 사례는 매우 구체적이며 살에 와 닿을 정도로 감각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나는 전투하듯 축구를 해 왔다. 내가 선발에서 제외되면 너무 화가 났고,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나는 언제나 최고여야 했고, 높은 기량을 가진 선수들은 나의 경쟁자였다. 하지만 두리는 다르다. 자기도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으면서도 베컴의 자서전을 머리 맡에 놓고 자고, 지단의 싸인을 받으며 좋아라 한다. 두리는 축구를 즐기며 행복해 한다.

 

차범근은 두리를 보며 배운단다. “남이 행복해한다고 해서 내 행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차범근과 차두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총량이 정해진 외재적 행복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과 가능성의 계발, 내면적 만족감에 터한 내재적인 것이다. 그래서 남의 행복이 내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김태길이 평생에 걸쳐 윤리운동을 하면서 얘기했던 거다. 중등교육을 거치며 국민윤리를 배운 사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중학교 때 지적 허영심에서 김태길의 을 사서 밑줄 그으며 읽었다. 그러나 살다보니 다 까먹었다. 그래서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픈’ 속물로 전락해버렸다.

 

차범근은 매우 쉽게 이 철학적 진리를 얘기한다. 김태길의 심오한 철학을 이해하지 못해도 차범근의 글을 읽다보면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차범근이 글을 잘 써서가 아니다. 열심히 살았던 경험에서 몸으로 깨달은 진실이 독자를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는 차범근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뛰었던 화려한 경력을 갖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어서가 아니다. 그는 순간순간을 충실히 살았으며, 그 경험에서 비롯된 삶의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는 아들 세대를 이해하지 못 해도 인정해 줄 수 있는 아량을 갖고 있다. 이렇게 차범근은 타자를 인정하기에 타자를 거울 삼아 자기를 비춰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얻은 깨달음의 진정성은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해온다. 그래서 차범근의 글이 감동적인 것이다.

 

2002년 거리에 붉은 물결이 출렁이고 네티즌의 정치 참여로 노무현이 당선되자 조선일보는 다른 세대가 주는 이질감과 충격을 보도하기 바빴다. 그러면서 곧 나라가 망할 듯 호들갑을 떨었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는 실은 전통적 가치, 근대를 만들어준 자유주의적 가치를 지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 향락, 권력 등 물질적 가치가 그들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지키고 있는 것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보수가 보기에, 다른 사람의 가치 획득은 곧 자기 것을 빼앗김을 의미하며, 행복의 총량이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기에 남의 행복은 곧 자기 행복의 줄어듦을 말하는 것이다.

 

자식 세대가 가져가는 행복을 질투하고 있는 오만하며 못난 늙은이들. 우리는 이들을 아버지라 부르기 싫다. 차범근은 다르다. 자신은 순위와 성공을 위해 달려 부와 그에 따른 안락한 생활, 권력까지 가졌을지언정 다른 가치를 인정하며, 오히려 내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그는 아주 쉬운 말로 "남이 행복하다고 하여 내 행복이 줄지 않는다."라는 행복한 삶의 핵심을 표현해낼 수 있었다. 그는 한 세대의 상징적 아버지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 특히 옹졸하고 쪼잔한 아버지들이 인격적 카리스마를 완전히 상실한 이 시대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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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차범근의 칼럼을 옮겨 본다.


차붐@월드컵 7 나에게 축구는 '전투'였는데 아들 두리는 '행복한 생활'인듯 


[중앙일보   2006-06-18 19:29:50]

[중앙일보] 한국에서 우리 부자의 얘기가 화제라고 한다. 도대체 뭐가 재밌다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갈 뿐이다.


젊은 세대, 그들의 생각과 감각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가 그들과 함께 몸을 섞고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는 일인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요즘 TV에 나와 정신없이 떠드는 녀석이 하나 있다. 노홍철이라고. 몇 년 전,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이 친구가 왔다. 큰딸(하나) 대학 동기의 남자친구라고 하면서. 쓸데없는 얘기지만, 딸의 대학 동기는 유로 상공회의소를 거쳐 G그룹의 경영전략실에 근무하는 멀쩡한 재원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남자친구를 보자 기가 막혔다. 그런데 아이들은 재미있어 좋다고 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세대차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상황이 노홍철이를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곤혹스럽고 불편하다.


나는 10년간의 독일 분데스리가 생활 중 선발로 못 나온 게 딱 두 번 있었고, 중간에 교체돼 나온 게 한 번 있었다. 그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줄 알았다. 내가 얼마나 심하게 낙담을 했으면 감독이 그 다음 경기 전에 나를 불러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다음부터 너를 빼려면 미리 말해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뛰어라!"


그 당시 나에게 축구는 생활이 아니라 '밀리면 끝나는 전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 두리는 확실히 다르다. 축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생활'인 것 같다. 축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은.


그러니 TV 해설을 하면서 이놈은 "전 그때 후보라서 잘 몰라요"라고 멀쩡하게 얘기하는데 옆에 있는 내가 진땀이 났다.


내가 두리에게 배우는 게 하나 있다. 언젠가 자전적인 글에도 썼던 적이 있지만 '남의 행복이 커진다고 내 행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이 녀석은 항상 여유가 있다. 늘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남을 인정하는 여유가 없는 나에 비해 두리는 동료를 인정하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두리의 삶이 나보다 더 즐거운 모양이다.


'행복이'.


두리의 e-메일 닉네임이다. 굳이 그런 이름을 쓰는 걸 보면 천성이라기보다는 행복하고 싶어 스스로 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연예인들을 얘기하듯, 외국 축구선수들의 사생활까지 줄줄 꿰는 두리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다. 스페인의 황태자비가 화면에 잡히자 '예쁘죠?'하는 말이 하고 싶어서 혼났다며, 중계를 마치자마자 황태자비의 전력에서부터 사생활까지 쫙 얘기해 준다.


두리와 함께 해설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한때 '기자'를 꿈꿀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두리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이전처럼 유럽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축구의 흐름을 읽는 거야 자신이 있지만, 선수들의 현재 상황을 팬들에게 현실감 있게 설명해 줄 경험과 정보가 부족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두리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또 나와 다른 요즘 아이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의 얘기를 하는 것이니 내가 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본인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축구선수이면서 베컴의 자서전을 머리맡에 놓고 잠들거나 지단에게 가서 공에 사인을 받고는 즐거워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선수였어도 나에게는 한번 붙어 보고 싶은 경쟁자일 뿐이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성공'에 모든 것을 두었다. 그러나 두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행복과 즐거움'이 그들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부럽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그들에게 물려준 우리 세대가 자랑스럽다.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 중앙일보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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