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16강전을 진출한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너나 나에게 떡 하나라도 떨어질 일은 절대로 없을 터. 그렇지만 꼭 이겨야 한다는, 그리고 이길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하나로 나 또한 1/48000000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교복과도 같은 빨간 티셔츠를 입고 응원에 나섰다.
시종일관 목이 터져라 ㅉㅉㅉ ㅉㅉ 대한민국~을 외쳤고 양손 검지손가락을 치켜세워 하늘을 찌르느라 어깨가 빠질 정도로 응원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았으랴. 독일 현지의 응원단부터 상암월드컵 구장과 시청앞 광장의 사람들까지... 모두들 앞으로 몇 년간은 지르고도 충분한 함성과 외침으로 목이 쉬었으리라.
하지만 우리는 졌다.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2:0이라는 스코어로 보기 좋게 무너지고 말았다. 대한민국 국민 중 누구 한사람도 우리가 스위스에게 지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이전부터 객관적인 전력은 눈에 들어오지도, 귓가에 들려오지도 않았다. 무조건 이긴다는 결연한 의지뿐...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이나 관중들이나 월드컵이라는 전쟁에 들어온 이상, 전쟁터에서 패배를 생각하는 장수 앞에 가로놓인 것은 곧 죽음이나 다름 없으니까.
경기가 끝난 지금, 뉴스와 기타 방송매체에선 스위스의 편파판정에 대해 강력히 피력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 같이 그럴 듯한 말이다. “FIFA회장이 스위스 인이다.” “몇 년 째 국채에 시달리고 있는 아르헨티나(주심의 나라인)가 부자나라 스위스한테 돈을 먹었다.” “스위스는 어거지라도 최소한 4강안엔 들것이다. 이것이 오심의 증거다.” 하나 같이 그럴 듯한 음모론이다. 실제로 정말 그럴 수도 있다. 그들 사이에 오고간 말들과 약속을 우리가 무슨 수로 알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경기를 지켜본 관중들아. 착하고 맹목적이며 애국으로 똘똘 뭉친 순수한 대한민국 국민들아. 한 번 냉정히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미 1:0으로 지고 있었다. 심판의 판정이 오심이었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분명히 센데레스의 멋진 헤딩골(분명히 제3자의 눈엔 멋졌을 것이다. 골키퍼가 미처 동작을 취할 새도 없이 꺾어졌던 화끈한 헤딩골 이었다)에 첫골을 빼앗겼고 수차례 문전을 쇄도하며 복수의 이를 갈았지만 번번이 틀어 막히고 말았다. 물론, 그 이후의 과정에도 의혹은 있다. 스위스선수들은 걸핏하면 수수깡 인형마냥 픽픽 쓰러져 나갔고 그때마다 주심의 호각은 여지없이 운동장을 갈랐다. 하지만 거기 까지는 충분히,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며 우리는 그러한 주심의 판정에 항의하는 일말의 구체적 항변조차 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그저 그랬던 일이었다고 치자.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나는 앞서 언급했던 주심의 판정에 분노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정을 충분히 알고 있다. 나또한 적지 않이 부화가 치민다. 하지만 우리가 1:0까지의 정당한 게임결과에 대해선 뭐라고 말을 할 것인가?
충분히 2:1로 역전할 수 있었 수 있는 분위기였음에도 심판의 오심판정에 선수들이 흔들렸다? 그래서 진것이다?
우리는 만약의 경우 그 반대로 말할 수도 있었다. 일본과의 경기를 치룬 뒤의 호주 대표팀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주심의 판정에 화가 났지만 결국 정의가 승리했다.”
이번 예선 3번째 경기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반 초반 실점이라는 초반 수비불안의 고질적인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다. 1경기의 토고전엔 전반 30분 쿠바자에게, 2경기의 프랑스전엔 전반9분 앙리에게 선취득점을 허용했었다. 이번 3경기도 이와 마찬가지 였다. 전반 23분 야킨이 문전으로 띄워준 볼을 센데라스의 명쾌한 헤딩골로 마무리 지음으로서 초반 수비벽의 구멍을 다시 한번 재확인하게 되었지 않는가.
그렇담 한번 반대로 물어보자. 스위스의 초반 득점을 허용하기 전에 이번만큼은, 이번 3차전에서 만큼은 우리가 선취득점을 했었다면? 물론 그 이후에도 지금과 같은 전개상황을 똑 같이 맞이하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우리가 선취득점을 했었다면?
모든 문제의 해답은 우리가 선취득점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실점을 허용했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러한 결론은 결코 우리 선수들을 탓하자는 의도가 추호도 아님을 밝혀둔다.
선수들은 충분히 열심히 싸웠다. 모 중앙일간지의 23일자 1면 기사에 실린 기사에서처럼, 박지성 선수의 “2002년 월드컵에서의 나의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싶다”, 이천수 선수의 “이번에 반드시 16강에 올라 그녀에게 당당히 프로포즈를 하고 싶다” , 최진철 선수의 “아들의 기대에 힘입어 아버지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뽐내고 싶다”등등, 선수들은 각자의 꿈과 이상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 모든 꿈들에 어찌 거짓이 담겨있으며 또한 절실히 이루고 싶지 않았겠는가. 종전 까지 우리의 우상이었던 아드보카트 감독 또한 최선을 다해 지략을 짜낸 명장임에 틀림없기는 마찬가지다. (부디 이번 16강 좌절로 기타 외국인 감독들이 당해야 했던 웃지못할 해프닝을 또다시 겪지 않길 바란다)
이렇게 선수들 각자의 이상향과, 4800만 국민의 염원까지 담겨져 있던 이번 3차전에서 그들이 눈꼽 만큼의 소홀함을 가졌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도 한계는 있고, 한계에 따른 좌절도 따르는 법이다.
그 어느 각도의 눈과 마음으로 바라봐도 그들은 목숨을 걸고 뛰었음에 틀림없다.
노력은 단지 노력일 뿐이다. 희망도 단지 희망일 뿐이다. 응원하는 이들의 간절한 염원과 선수들의 눈물겨운 선전이 반드시 승리로 이어져야만 한다면 우리는 1998년에도 우승해야 했고 2002년에도 4강은 부끄러운 전적일 뿐이며 이번에도 16강을 넘어 우승을 해야 했다.
...10가지 실패 중에서도 단 한 개의 가능성을 볼 수 있는 우리가 되자.
우리는 건국 이래 최초의 월드컵 원정 첫 승을 거뒀으며 세계 최강 프랑스와 기적의 무승부를 연출하는 신화를 이뤄냈다. 이러한 결과는 홈이 아닌, 지구 돌아 반바퀴 남의 땅 독일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욱 객관적이고 그렇기에 더욱 고무적인 일이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당연히, 또한 세계인의 눈으로 보기에도 우리는 분명히 진보했다. 우리는 대한 축구역사 50년사 내내 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던 유럽 징크스를 훌륭히 극복해냈고 남의 땅 남의 나라에서 당당한 승리를 거둬내며, 하나도 아닌 두 가지 역사를 새로 쓰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성공과 진보의 x, y좌표 그래프는 결코 대각선으로 치솟지 않는다고 한다.
그 선은 가로로 흐르다 어느 순간 직각으로 치솟으며, 또 다시 한동안 가로로 가기를 반복한단다. 우리는 분명히 이번 2006 독일 월드컵으로 직각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 다음의 과정이 또 다시 가로로 흐르는 과정일지, 아니면 연이어 하늘을 향해 솟구칠지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우리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가 향하는 방향을 바로 잡아주는 손이 되어 주는 건 선수도 아니고 감독도 아닌, 우리 국민들 모두의 몫인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오늘의 실패를 거울삼아 내일을 바라보자는 말을 우리는 그전에도 질리도록 들어왔으며, 때문에 이토록 저주 받은 듯 말도 없다.
하지만 바보 같아도 이번 역시 그 말을 곱씹고 곱씹어 보자. 패배와 패배, 좌절과 좌절을 겪어오는 동안 결국 우리는 이 만큼 진보해내고야 말았지 않는가.
그리고 한번쯤은 웃어보자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헝가리에 9:0으로 패배했던 이름모를 동양의 작은 나라가 과연 우리나라였던 게 지금도 믿어지는 지를...
- 경기TV 임모 삼류 작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