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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응원 추태기승, 노출에 몰카까지 '옥의 티'

김준호 |2006.06.27 08:23
조회 188 |추천 0

거리응원 추태기승, 노출에 몰카까지 '옥의 티'

 

[기획취재팀] 2006년 독일월드컵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한국전이 열리는 날이면수십, 아니 수백만의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와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때문일까. 미국 서부지역 최대 유력지 LA 타임스는 '만약 FIFA가 응원 랭킹을 매긴다면 한국이 우승 후보 중 하나일 것'이라며 새벽시간에도 불구 전국을 붉게 물들인 한국의 열정적인 거리응원에 경이감을 표했다.

 

하지만 모두가 순수한 마음은 아니었다.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때와 달리 불미스런 사건사고도 많았다. 예를들어 응원을 틈타 여성의 몸을 더듬는 엉큼남이 기승을 부렸고, 승리를 핑계로 과도한 뒷풀이를 즐긴 일부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게다가 일부 남성들은 응원 보다 '도촬'(도둑촬영)에 열을 올렸고, 일부 여성들도 응원 보다 노출에 집중했다.

 

◆ 몰카족 기승, "방심하면 찍힌다"

 

디지털 시대가 낳은 역기능 중 하나. 이른바 몰카공포다. 휴대폰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의 대중화로 누구나 쉽게 몰카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역시나 여성들. 조금이라도 옷 매무시를 소홀히 했다간 바로 몰카족의 표적이 된다.

 

실제로 인터넷 게시판에는 여러장의 거리응원 몰카가 올라와 충격을 주고 있다. 물론 대부분 사진이 혼란한 상황을 틈타 그야말로 몰래, 몰래 찍은 것들. 하지만 치마를 입은 여성 뒤에 밀착해 그 속을 찍은 대담한 사진도 있다. 게다가 새벽 응원이라는 시간적 체력적 한계를 이용, 쓰러져 잠자는 여성만 골라 찍은 사진도 속속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우연히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월드컵 몰카 사진을 본 적이 있다"며 "순수한 마음으로 거리응원에 나선 일부 여성들이 음융한 카메라에 피해를 당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그는 이어 "사진 속에 여성 속옷이 잡히면 마치 월척이라도 건져 올린 듯 신나했다"며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네티즌의 자발적 정화 및 신고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알몸응원 등장, "자작극 의혹 논란"

 

지난 23일 스위스전. '압개녀'라는 정체모를 합성어가 각종 포털 사이트 인기 검색어를 장악(?)했다. 압개녀를 풀이하면 '압구정 개XX 여자'의 합성어. 그도 그럴 것이 당일 아침 6시경, 한 여성이 알몸에 가슴 부문만 바디 페인팅을 한 채로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활보했다. 때문에 네티즌이 붙인 별명이 바로 '압개녀'. 물론 그녀가 누군지 정체가 밝혀지진 않았다.

 

비단 '압개녀' 사건 뿐 아니다. 이번 월드컵 기간 동안 여러장의 알몸 응원 사진이 올라와 네티즌의 관심과 비난을 동시에 샀다. 특히 토고전 때 화제가 됐던 '엉덩이 스코어'(엉덩이에 '한국 3 - 1 토고' 스코어를 표기) 사진은 그야말로 엽기적. 이 외에도 알몸에 태극기만 휘두른 노출응원 사진도 나돌았다.

대부분 네티즌에 따르면 일부 알몸응원 사진은 2002년 당시 제작된 성인물의 일부. 한 네티즌은 "머리에 뿔 대신 '비 더 레즈(Be the reds) 두건을 쓰고 있는걸로 미루어, 2002년에 제작된 성인 화보물 같다"고 단정지었다. 그는 이어 "어쨌든 이번 월드컵 때 여성들의 노출이 파격적이었던 건 사실"이라며 "때로는 보기 민망해 얼굴이 화끈거린 적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 광란의 밤거리, "과도한 세러머니 눈살"

 

토고전이 열린 13일. 서울시내는 그야말로 광란의 밤이었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늦은 새벽까지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로 얼싸안았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그 도가 지나쳐 눈살을 산 곳도 있었다. 특히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그랬다. 한 젊은 남녀가 차 위에서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승리의 기쁨을 과도하게 표현했다.

 

뿐만 아니다. 지나가는 차를 막아 세워 밀치고 흔들는 '자동차 테러'도 여기 저기서 일어났다. 심지어 일부 흥분한 시민들은 정리에 나선 경찰차까지 막아 세워 흔들었다. 한마디로 서울시내 곳곳은 정리불가, 진압불가의 막가파식 광란의 밤이었다. 이에 압구정을 찾은 한 시민은 당시 분위기를 "그야말로 개판 5분전이었다"고 거침없이 표현했다.

 

게다가 자발성을 잃은 거리응원은 서울을 '난지도'로 만드는 데 한 몫했다. 물론 프랑스전 이후 쓰레기양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2002년만 못했다. 한 시민은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는 말을 예로 들며 "처음부터 대기업 위주로 돌아간 거리응원에서 주인의식과 책임의식을 바라기엔 무리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4년만에 다시 열린 거리응원은 겉은 여전히 화려했지만, 속은 시퍼렇게 멍들고 있었다.  

 

2006/06/26 13:14 입력 : 2006/06/26 1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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