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 다녀오는 길에 고창 "정구"네 들렀다.
정구는 요번에 갓 제대한 후배다.
정구네는 고창 답게 복분자 농사와 수박농사를 지었는데
정구네 집은 아주 소박한 옛 시골집이다.
예전에 새집을 짓기 전 우리집과 아주 흡사하다.
지붕엔 시멘트 기와을 얹었고 전형적인 남도의 일자(一자)형 집에
물레(마루)가 있고 방 두개와 부엌이 딸린 그러한 집 말이다.
물론 부엌은 입식부엌으로 개량하였고 방 하나는 거실로 가운데 마루는 방을 들여 요즘에 맞게 개량한 시골집이지만 말이다.
마당엔 농사 짓는 집답게 비닐하우스건조장이 있고 뒤꼍엔 장독대와 마당 한켠엔 수돗가가 있고 그 옆엔 누렁이가 두 마리 살고 있었다 ^^
정구 어머니는 얼마전까지 읍내에서 식당을 하셨는데 이제 그만 치워버리셨단다. 철재와 내가 왔다가 닭을 한 마리 잡아주셨는데 시골집에서야 집에 손님이 오면 의례 닭을 잡아 대접하는 것이 손님대접이겠으나 사실 닭은 잡는 건 매우 귀한 손님이라는 뜻이다.
이른 장마로 복분자 수확이 바빠져 두 분 부모님을 대신하여 정구, 철재를 데리고 닭을 내가 잡았다.
먼저 솥에 물을 끓이고 닭의 목을 비틀어 잡았다.
닭장엔 네 마리의 닭이 있었는데 암탉을 잡아가자 수탉이 달려들어 닭장에서 암탉을 잡아내는 동안 정구가 긴 장대로 수탉을 견제하고 있어야 했다.
물이 끓으면 고무장갑을 껴고 닭을 커다란 고무다라에 담고 뜨거운 물을 찬물과 약간 섞어서 닭에 끼얹는다. 너무 뜨거운 물을 부으면 닭의 껍질까지 벗겨지기 때문에 찬물과 약간 섞어야한다. 뜨거운 물이 닿은 닭의 털은 쭉쭉 잘 벗겨진다. 그냥 고무장갑으로 쓱쓱 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곤 칼로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 내야한다. 암탉이면 뱃속에 알을 잘 골라내고 알집엔 아직 껍질이 단단해지지 않은 알이 한개 들어있기 마련이다. 알집 또한 잘 씻어서 따로 분리하고 심장과 간도 먹을 수 있다.
물론 아주 예전에야 내장도 일일히 칼로 따서 깨끗히 소금에 씻어서 먹었지만 요즘 닭 내장을 먹는 이는 아주 드물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똥집인데 삶아도 좋지만 생으로 잘게 썰어서 참기름과 소금을 섞은 기름소금에 찍어 소주 한 잔 곁들이면 금상첨화겠다. 물론 우리는 복분자주와 함게 곁들여 금상쌍첨화쯤 되었지만 말이다.
먹울 수 있는 것을 분리하면 취향에 따라 머리를 잘라 버리기도 하고 날개죽지의 끄트머리를 살짝 잘라내고 닭발의 껍질을 벗겨내고 발톱을 잘라주는게 예의다.
내장과 털은 파리가 끓지 않도록 땅에 파고 묻는다.
이제 닭을 솥에 넣고 인삼과 적당량의 쌀, 대추, 밤 취향에 따라 엄나무(벙구나무) 혹은 황기, 잣을 첨삭하고 삶으면 끝이다. 엄나무나 황기를 넣으면 고기의 풍미가 더 좋아진다.
난 미식가는 아니다.
음식에 대단히 까탈스러운 면모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식당에서 말이다. 아직 여느 가정집이나 우리 집에서 음식 타박을 해본 적이 없다. 돈을 내고 사먹어야 하는 식당에선 아주 까탈스럽게 군다. 물론 아무 식당에서나 그리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다 지나는 길에 먹는 식당이야 다시 볼 일이 없으니 그럴 일도 없겠으나 매을 드나들어야 하는 우리 동네 식당에서 반찬이 어지럽게 나오거나 상하거나 맛없는 음식이 나오면 그 날 식당 주인은 내게 호통을 듣거나 모진 꾸지람을 들어야한다. 우리동네 식당 아주머니는 내가 무섭단다.
한 번은 백반을 먹는데 반찬이 부실하게 나왔다. 무릇 백반이라하면 기본 반찬이 있게 마련이다. 생선구이 혹은 찌게, 돼지고기 주물럭이 그것을 대체할 순 있다. 밑반찬과 나물, 김치와 젓갈 .. 머 이정도인데 생선 한토막 고기 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워메 아주머니 밥상에서 비얌 나오겄소" 아님 "맴생이(염소) 풀 뜯어먹으라고 차린 밥상이요"하고 반찬을 다시 내오라하니 미처 장을 보지 못했다고 미안해 하시며 반찬 몇 가지를 내 오신다. 식당에서 난 봐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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