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4강전에 파묻혀 있던 대한민국 국민들,,,
난 그 29일, 뉴스를 봤을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북한 경비정 NLL(북방한계선)침범후, 우리 해군과 교전...
6명이 사망 18명이 부상을 입는 치열한 교전이였다.
27명이 탑승하는 참수리급 고속정 357번함.
그중에 사상자가 24명이라는것은, 그 교전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교전후, 정부는 쉬쉬하기 바뻤고, 국민들은 한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 그 교전을 잊어가고 있었다.
정부는, 북한을 자극할까 우려하여, 북한에 단 한마디 항의조차 하지 않았으며, 북한은 뻔뻔하게도, 우리 해군을 욕하였다.
사실 북한이 주장하는 NLL과 남한이 주장하는 NLL은 확실히 달랐으며, 이번 참수리 357번함은 북한이 주장하는 NLL안에 들어가 있었다.
또 다시 북한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월드컵 성과축하 편지를 보내왔다......
일단 서해교전 경과를 보여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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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9일 오전 10시 가량
북한의 경비정 두척이 NLL을 침범, 그 근처에 있던, 357번함 출동. 자매함인 358번함은 일정거리 유지.
우리 357번함 경고방송 및, 위협기동 실시. 북한 경비정 느린속도로 남하 및, 경고방송 무시.
1차 서해교전때 굉장한 성과를 올린 위협기동, 간단히 말하자면, 그냥 적 함정에 박아버리는 기동.
이번에도 357번함은 위협기동의 일환으로, 북한 경비정에 스쳐지나가도록 위협기동과 차단기동을 실시하였다.
357번함이 다가가는 순간, 북한 경비정의 함포는 이미 357번함을 향해있었다.
357번함은 설마 설마 하는마음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 해군의 대응 방식이, 적이 선재 공격하지 않을시에는, 절대 우리 해군함정이 공격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우리 함정은 손놓고 쳐다보고만 있었다.
적의 85mm함포가 우리 357호정에게 불을 내뿜었다. 선재공격이였다. 우리 357호정의 조타실에 명중, 정장 윤영하 대위는 그자리서 즉사, 부장은 파편에 심각하게 부상을 입었다. 조타실에 있엇던, 정탐장(레이더 관련) 한정길 중사는 한참후 정신을 차리고 조타실로 달려갔다. 조타실도 이미 적의 포격에 정지한 상황, 한정길중사는 페달을 미친듯이 밟았으나, 함은 이미 조종 불가능 상태. 또 함교는 완전히 연기로 가득차 있었다. 기관실도 역시 적의 공격에 노출되 있었다. 기관사 김현 중사는 머리에 파편을 맞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갑판에서는 우리 갑판 전투요원들이 치열한 교전을 펼치고 있었다. 우리 참수리의 20mm개틀링이 자동 조종이 불가능해지자, 수동으로 변경, 가지고 있는 탄약을 모두 퍼부었으며, 박경수 하사는 고속정의 좌현 M60을 가지고 적에게 총알이 다 떨어질때까지 사격을 가했다. 부사수는 서후원 하사였다. 박경수 하사는 총알이 다 떨어진후, 바닥에 엎드렸다. 양팔에 총알이 박힌 그는 부사수인 서후원 하사가 죽은것을 보고, K2소총으로 적에게 응사를 계속하였다. 자매함인 358정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358정은 피해는 거의 입지 않았으나, 가지고 있는 모든 탄약을 퍼부었다. 정장이 의식을 잃은상태이고, 부장은 피에 범벅이 된체, 함에 남은 병사들을 지휘하였다. 권상병은 왼쪽 손가락 전체가 적의 포탄에 날아가 버렸지만, 한손으로 K2소총의 사격을 계속하였다. 탄창 4개를 한손으로만 갈으며 전투에 임하였다. 또한 사망한 의무병은, 적의 포탄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도 용감하게 부상병들을 치료하다가 전사하였다. 상황이 이러하게 되자, 가장가까운 해군기지에서는 고속정 4척과 초계함 1척이 추가 지원되었으며, 상황에 대기중이였다. 하지만 서해의 지형적 특성상, 북한의 지상 대함미사일 포대에서 스틱스 대함미사일과, 실크웜 대함미사일을 우리 초계함에 조준 중이였으며 역시 우리 고속정들에게도 조준중이였다. 우리 해군의 고속정이나 초계함은 적의 미사일에대한 대응수단이 전무 하기 때문에, 근접 지원을 포기해버렸다. 우리 공군에서는 KF-16이 발진하여,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주한미군은 이 교전이 확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보았으며, 우리군도 확전의 가능성에 두려워 하고있었다. 5분간의 치열한 교전이 끝나고, 적 경비정은 북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기를 내뿜으며,,, 우리 해군함정은 그들을 끝까지 격침시키지 못하였다, 탄약을 전부 소비했고, 추가 지원은 적의 대함미사일에 위축이 되있는 상황이였기 때문이다.
357정은 기관이 완전히 파괴된체,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다. 358정이 357정을 예인할려고 하였으나, 357정의 심각한 피해에 침몰 위험성이 커지자, 357정을 포기하였다. 결국 357정은 침몰하였으며, 후에 인양되어 현재는 한국 해군사령부에 전시중이다.
이 교전으로 북한해군은 30~40명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했을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한국 해군은 6명 전사 18명 심한 부상이라는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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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생존자들도 죽지 못해 사는 상황이며, 그들 역시 파편으로 심하게 부상을 입었기때문에, 정상적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부의 보상은 전사 몇천만원이 전부였으며, 유가족에대한 지원대책은 단 한가지도 없었다. 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호국영령들을 정부에서 무시하고, 쉬쉬한다면, 도데체 누가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치겠는가!.. 윤영하 소령님(전사후 일계급 특진) 부인께서는 우리 대한민국이 부끄럽다며 현재는 미국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유가족도 부끄럽게 만드는 이 나라 대한민국......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쳤지만, 월드컵에 파 묻히고 정부는 북한에 덜덜 떨면서 조용히 입다물고 있고.............. 이게 나라인가? 이게 그 우리가 말하는 조국인가? 수 많은 젊은 사람들이 군대에서 그 2년이라는 긴 시간을 조국을 위해 헌신한다... 하지만 정부의 행동은..? ......
효순이, 미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치였을때는 좌파정권이 입에 거품을 물며 항의를 하고, 촛불집회를 거대하게 했지만, 추모식은 어떠한가? 서해교전 1주기 2003년, 수 많은 국군 장성들과 정부 고위 관료들이 추모식 현장을 찾았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2주기때, 우리 고위 정부 관계자는 없었으며 3주기때도 마찬가지였다. 2주기 행사와 3주기 행사를 실행한곳은 바로 주한미군이였다. 주한미군은 우리 6명의 전사자들을 영웅이라고 칭송하며 2주기 추모식과 3주기 추모식을 자신들이 거행하였다... 이번 4주기 행사에도, 뻔하다...
2002년 2차 서해교전때 우리 김대중 대통령님[!]께서는 일본에 앉아서 월드컵보며 히히덕 거리셨고,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가만히 앉아있었다. 노무현 대통령님[!]이 집권하신후 인양된 357정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 눈물만 흘리면 뭐하나? 노 대통령님[!]은 그 후로는 추모식에도 참여도 안하시는데. 바쁘신가보다...
왜 자꾸만 故윤영하소령님의 부인이 계속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국가가 부끄러워서 떠나신다는 그분......
해사 50기 故윤영하 소령님...
부사관 155기 故한상국 중사님...
부사관 158기 병기 402기 故조천형 중사님...
부사관 183기 故향도현 중사님...
부사관 189기 故서후원 중사님...
故박동혁 병장님...
편한곳에서 잘 계시리라 믿습니다...
정부에게는 몰라도, 저에게는 6분들 모두 영웅이십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치신 호국영령이십니다...
/(- -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