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서, 황소전 -
당나라 장족(張족)의 에는 설진이라는 인육애호가가 등장한다.
측천무후때 항주의 임안위(무관직)에 설진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인육을 좋아했다.
한번은 그에게 돈을 빌려준 부부가 임안에 와 그의 집에 묵게 되었다. 설진은 그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하고 먼저 남편을 살해한 뒤 수은을 넣고 시체를 달여 뼈까지 녹였다. 그 뒤 부인가지 상미(賞味)하려고 했으나 이를 눈치챈 부인이 담을 넘어 탈출, 현 지사에게 고소했다. 지사는 자세한 내용을 조사한 후에 설진을 송청(送廳)하여 백타의 형에 처했는데, 태사했다.
설진의 이야기는 철경록에도 인용되어 있다. 당대의 덕종-헌종 시대에 조정 중신 중에 장무소라는 사람이 있었다.
에서는 이 장무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장무소는 절도사를 지내고 있을 당시 자주 사람고기를 먹었다.
군직을 마치고 경성으로 영전했을 때, 조정의 동료가 그에게 지방군정장관 재직중에 사람고기를 좋아했느냐고 물었다.
장무소는 빙긋이 웃으며 "비린내나는 사람고기를 누가 먹습니까"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장이 스스로 인육애호가임을 부정한 셈인데, 사람고기가 비린내난다고 말한 점이 이상하다.』
도 을 인용하여 장무소를 소개하고 있다. 에 따르면 원의 흠주 지사 임천지도 인육애호가의 한 사람인데 사람고기만을 먹었다는 이유로 관직이 파면되어 남해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 지방이 많은 허벅지나 팔, 어깨, 유방
기록에 의하면 인육은 젖을 먹은 염소 새끼 고기보다 더 연하고 맛이 좋았다고 한다.
전란이나 기근이 발생했을 때 인신을 매매하거나 아이를 버리는 일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흔하게 발생하며, 심지어는 '人相食'이라는 참황도 적지않게 발견된다.
장작은 금군의 침입으로 산동 경서 회남 등지에 기근이 들어 수만전을 주고도 쌀 한말을 구할 수 없어 인상식이 횡행했다며 당시 인육의 값이 개, 돼지 값보다 싸서 크고 비만한 자 1명의 값이 15000전에 불과했다고 하였다. 심지어 인육을 가리켜 '兩脚羊'이라고 부르는게 통상이었고, 마른 남자의 인육을 '饒把火', 부녀자의 것을 '不義羊', 어린아이의 것을 '和骨爛'이라고 칭하였다며 남북송 교체기의 참상을 전하였다.(張綽, ≪鷄助編≫, 卷中) 이런 전란기에 인신을 매매할 경우 그 가격 또한 대단히 낮아서 乾道元年에는 부녀 1명에 1斗米, 어린아이 1명에는 半斗米라는 상상하기 힘든 사례까지도 찾아볼 수 있다.(黃淮, ≪歷代名臣秦議≫, 拳246, 胡銓, ≪議荒政疏≫)
(유원준, , 동양학연구 Vol.4, 1998)의 각주6을 전재
천하가 모두 전란의 도가니가 되어 있는 지금, 회하 상류 지방의 군인들은 인육을 즐겨 먹는다.
어린이의 고기를 상품으로 치고, 여성의 고기는 그 다음으로 치며, 남성의 고기는 그 아래이다.
요리할 때는 먼저 사람을 두 개의 항아리 사이에 앉혀 놓고, 밖에서 불을 때던가 아니면 철시렁에 거치고 산 채로 굽는다.
혹은 손발을 묶고 팔팔 끓는 물을 부은 뒤 대빗자루로 껍질을 벗겨내거나, 혹은 자루에 담아 큰 냄비에 넣어 산 채로 찌는 수도 있으며, 잘게 썰어 소금에 찍어 먹는 경우도 있다. 남성일 경우는 두 다리를 자르고 여성인 경우는 두 유방을 도려내 먹는 것이 최고인데,
그 잔악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를 개괄적으로 일컬어 상육(想肉)이라 한다.
사람고기 먹는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돼지, 소, 닭 먹는거랑 뭐가 다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