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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는 미국의 자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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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폭한 비행기가 창문이 없는 걸로 보아 여객기가 아니고, 무역센터 건물 무너지는 속도가 자유낙하에 가깝고, 옆 화재도 나지 않은 건물이 폭삭 무너진 것은 여기서 공작을 하고 증거 인멸을 했다는등등의 많은 설이 있다. ~~~~~~~~~~~~~~~~~~~~~~~~~~~~~
http://video.google.com/videoplay?docid=-2301934902458285549
911 테러는 자작극임이 틀림 없는것 같다~~~~
안 믿었는데~~~ 설마... 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자작극 일까??
설마 했는데~~~ 그래도 미국 정부를 믿었는데~~~
부시 정권의 엄청나고 치밀한 계획에 의한 무시무시한 자작극~~~
정말 미국이란 나라~~~ 이젠 소름 돋는다~~
====== 낱낱히 파헤쳐진 의혹들 =========
1. 비행기와 상관없이 세계무역센터 7번 건물은 왜 무너졌나? 2. 철골로 된 세계무역센터 빌딩들은 어떻게 자유낙하속도로 무너졌나? 3. 붕괴된 층보다 20~30층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편들은 대체 무엇인가? 5. 세계무역센터 건물주는 9.11이 발생하기 6주 전에 35억짜리 테러보험과 함께 건물을 샀을까? 6. 9.11 이전 몇 주 동안 예고에 없던 대피훈련은 무엇인가? 7. 펜타곤 충돌 현장에서는 보잉 757기 파편이 없는가? 8. 비행기가 스쳤다는 펜타곤 잔디밭에는 왜 아무 흔적이 없나? 9. 펜타곤에서 엔진들이 들이받았을 자리의 왜 멀쩡한가? 10. 펜타곤 직원들은 사고 당시 군용 화약 냄새를 맡았다고 하는데? 11. 미국 정부는 사고기들의 블랙박스를 회수하지 못했다고 왜 거짓말을 했나? 12. 흔적없이 사라진 UA93편은 어디로 갔을까?
13. 미국 정부는 9.11 테러 당일 ~ 왜 주요 각료들의 비행기 탑승 취소와 비행탑승
취소 경고를 했나??.
14 . 거짓 전화통화 // 거짓 빈라덴 비디오~
******* 말이 필요없다~~ 동영상 부터 보시오~ *****




~~~~~~~~~~~~~~~~~~`
911 테러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 여객기가 충돌해 건물 2동이 완파되고 국방부 건물에도 여객기가
충돌하는 등 동시 다발적인 테러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테러로 인한 사망 실종자는 4763명이며 미국은 테러 용의자로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지목하고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 정신적 공황상태를 일으켰고 세계경제도 한동안 몸살을 앓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석연치 않은 점이 발견되고 음모설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 나오는 용어와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프리메이슨' 단원을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어떻게 미국정부가 국민을 희생시킬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전례를 살펴보겠습니다.
* 목차
3. 911 테러로 엘리트들이 얻은 수확 (결과이자 목적)
1. 미국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닙니다.
미국 정부는 보이지 않는 검은 세력에 의해 조정되는데 그들은 유대인 재벌과 이집트 신앙을 믿는
프리메이슨입니다.
유대인 재벌은 세계적인 금융, 석유, 무기, 곡물, 자원 기업을 소유하고 있고, 거의 모든 언론사도 이들의 손 안에
있어 언론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이 기독교 국가인 줄 알고 있지만 사회 고위층인 엘리트들은 거의 프리메이슨 소속입니다.
조지 워싱턴, 조지 부시, 빌 클린턴 등 대부분의 대통령이 프리메이슨이며 이들의 목표는 세계정부를 세우는 것이고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예를들어 이러한 공작을 수행할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 CIA는 마피아와 손잡고 마약거래를 통해서 돈을 법니다.
유대인과 프리메이슨의 부정을 보다 못한 링컨 대통령과 케네디 대통령이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두 분 다
암살 당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정부의 모든 정책은 유대인 재벌과 프리메이슨의 목적을 위해서이며, 이를 위해서는 자국민을 비롯한
사람 목숨은 파리만도 못하게 생각합니다.
다음의 실례를 통해 이를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1) 진주만 기습
1차 세계대전은 유럽의 은행을 장악한 유대인이 양쪽 진영에 돈을 빌려줘 돈을 벌기 위해 일으켰습니다.
독일이 패망하고 가난에 허덕일 때 히틀러를 도와 돈을 빌려주고 군수산업을 발전시킨 사람은 미국의
유대인이었습니다.
독일을 부추켜 전쟁을 일으켜 또 다시 떼돈을 벌려고 했던 유대인은 독일이 예상 외로 잘 싸우고 유대인을
핍박하자 미국을 통해 이를 제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여러차례 중립을 약속했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역시 프리메이슨)은 전쟁에 참여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마침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이 동맹을 맺어 어느 한 나라가 공격당하면 도와준다는 군사동맹을 맺자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음모를 짭니다.
내용은 일본이 미국을 선제 공격하도록 해서 전쟁에 참여할 명분을 얻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태평양 함대를 하와이에 파견해 일본의 유류 보급선을 끊습니다.
중국과 전쟁을 치루고 있던 일본은 유류 공급이 끊기면 비행기, 군함, 자동차를 다 세우게 돼 나라가 망하게
생겼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무리인 줄 알면서도 진부만을 기습 공격하기로 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주일 미국 대사가 보고
했지만 미국 행정부는 이를 무시합니다.
미군 정보부대도 일본의 야마모토 작전 계획의 암호문을 해독해 육군성에 세 번 이상 보고했지만 역시 무시
당합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전투기들이 진주만을 공습했지만 루스벨트의 지시대로 둥글게 배치된 미군 비행기는
이륙도 못하고 파괴당합니다.
그렌데 특이한 점은 진주만에 항공모함은 없고 1차 대전 이전에 제작된 고물 군함 8척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엔터프라이즈호를 비롯한 항공모함 3척은 이미 호위 구축함과 함께 다른 곳으로 피신했던 것입니다.
진주만 기습에 의해 군인 2341명이 사망하고 1143명이 부상했으며 비행기 다수가 파괴되고 군함 8척이
침몰했습니다.
선전포고도 없이 일본의 비겁한 기습에 당한 미국민과 의회는 열렬히 전쟁을 원하게 됬고, 루스벨트는 무리 없이
전쟁에 참여해 군수 업체의 배를 불려주게 됩니다.
단지 전쟁에 참여할 명분을 얻기 위해 자국 군인을 무참히 희생시킨 미국 행정부를 보면 이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1995년 4월 19일 오전 9시 5분, 미국 중부 오클라호마주의 주도 오클라호마시티 중심가에 있는 알프레드 머라
빌딩에서 폭탄 테러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9층짜리인 이 건물에는 마약단속국 등 미국 연방정부의 각 기관 사무실과 탁아소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이 출근한 시간에, 탁아소가 있는 건물을 택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범인이 테러에 대한 선전효과의
극대화를 노렸다는 점이 주목되었다.
또 사고 당일은 바로 2년 전 사교집단인 다윗파의 방화자살 사건 날짜와 같다는 점이 중요한 단서였다.
범인으로 붙잡힌 티모시 맥베이(당시 26세)는 사건 발생 90분 후 발생 지점에서 100km쯤 떨어진 거리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중 속도 위반으로 순찰대의 검문을 받았습니다.
구금된 맥베이는 보석금으로 풀려날 수도 있었지만 담당판사가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하루 더 구금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검문 경찰관이 맥베이를 알아보고 검거했습니다.
맥베이는 사건 발생 2년 전 텍사스에서 집단자살한 사교집단 다윗파에 대한 연방정부의 불만족스러운 처리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이 사건으로 168명이 죽고, 600여 명이 부상당했다.
폭파 주범인 맥베이는 사건 발생 6년 2개월이 지난 2001년 6월 11일 인디애나주 테러호트 연방교도소에서
사형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고 사건의 내막은 완전히 다릅니다.
폭탄 전문가에 의하면 연방정부가 발표한 대로 건물 밖 트럭에 암모니아 사제 폭탄을 가득 싣고 터뜨려도
건물의 튼튼한 기둥을 날려 버릴 수는 없다고 합니다.
또한 폭탄은 내부에서 폭발해 유리창을 비롯한 건물 잔해가 외부로 튕겨져 나갔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의 언론 보도는 한결 같이 건물 내부에서 폭발이 있었다고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무
이유 옶이 정부 발표대로 언론이 태도를 바꿉니다.
정부에서는 트럭 폭발로 건물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폭발 지점에는 폭 10m, 깊이 2.45m의 큰 구덩이가 패었다고
했지만 사진상으로 건물 앞에 큰 구덩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보안 검색이 강한 연방정부 건물에서 여러 기둥에 정밀하게 대형 폭탄을 설치하려면 내부의 공모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범인으로 잡힌 티모시 멕베이도 원래는 군인 출신으로 케네디 암살범으로 몰린 오스왈드처럼 세뇌된 희생양에
불과합니다.
미국 정부가 이러한 자작 테러를 일으키는 이유는 테러를 명목으로 군비를 강화하고 CIA나 NSA의 예산을 증액하고
국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수 있는 법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독교 쪽으로 화살을 돌려 사람들이 기독교를 혐오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개인 화기를 금지시킬 것입니다.
이러한 테러 사건은 국민에게 공포심을 줘 정부 정책에 순응하게 함으로써 세계정부 수립을 정당화 할 것입니다.
다음 동영상은 http://www.apfn.org/old/apfncont.htm 에 있는 자료로 한글자막을 삽입했습니다.
아마추어가 제작해 동영상이 슬라이드처럼 끊어짐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막을 보시려면 아드레날린 플레이어를 다운 받아 설치하시고, 동영상 코덱을 다운 받아 설치하셔야 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링크를 클릭해 보시거나 다운 받아 보시기 바랍니다.)
3) 자작 테러극의 역사
미국의 비밀공작을 파헤쳐 유명해진 언론인 제임스 뱀포드(James Bamford)1)에 따르면, 미군 합동참모본부는
1962년에 이른바 '노스우드 작전(Operation Northwoods)'을 수립했다고 합니다.
이 작전은 1961년 4월 17일 미 중앙정보국(CIA)의 배후조종과 지원을 받은 쿠바 망명집단이 쿠바를을 기습공격한
'피그만(Bay of Pigs) 침공사건'이 실패하자, 미국 군부가 직접 쿠바를 침략하기 위해 꾸며낸 침략전쟁 시나리오입니다.
노스우드 작전은 쿠바의 반미테러리스트로 위장한 미군이 미국의 대도시에서 미국 여객기를 공중납치하여 쿠바의
따나모에 있는 미 해군기지를 자폭공격으로 파괴하고 나서, 그 테러사건을 일으킨 범인은 쿠바 정부라고 조작하여
보복공격이라는 명분으로 쿠바를 침공한다는 시나리오입니다.
그런데 이 작전은 당시 대통령 케네디가 채택하지 않아 지금까지 40년 동안 비밀문서고에 파묻혀 있다가 2001년 말에
기밀해제되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지난 20세기의 세계전쟁사를 돌이켜보면, 적대세력을 공격하기 위해서 상상을 초월하는 자해테러극을 조작하고,
그것을 빌미로 하여 침략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언제나 제국주의자들의 관행이었음이 드러납니다.
1937년 7월 일제가 중국을 침략하기 위하여 북경의 노구교(Marco Polo Bridge)에서 자해공격사건을 조작한 것이
그러했고, 1939년 9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하기 위하여 자해공격사건을 조작한 것이 그러했으며, 1964년 8월
미국이 북베트남을 침략하기 위하여 날조했던 '통킹만 사건'이 그러했습니다.
미국이 자해 테러극을 조작함으로써 도발했던 최초의 침략전쟁은 19세기말의 미국-스페인 전쟁(Spanish-American
War)입니다.
미국은 1898년 2월 15일 쿠바의 아바나항에 정박해 있던 미국 전함 메인호를 스스로 폭파하는 자해테러극을 벌렸습니다.
그 다음날 미국은 스페인에게 식민지 쿠바를 포기하라고 최후 통첩을 보냈고, 미국 언론들은 스페인의 테러공격에
보복하라고 선동했습니다.
4월 10일 스페인은 미국의 요구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굴복하였지만, 그 다음날 미국은 스페인에게 선전포고를 하자마자
대기시켜두었던 병력 23만 명을 동원하여 쿠바를 봉쇄했습니다.
미국은 자해테러극을 조작하고 침략전쟁을 자행하여 쿠바에서 스페인을 몰아내고 쿠바를 자기의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쿠바의 사탕수수산업을 강탈하려는 미국 자본가계급의 음모가 배후에 숨어 있었습니다.
2. 911 테러, 음모의 증거들
1. 부시 가문과 빈 라덴 가문의 돈독한 관계
테러혐의 자금을 색출하기 위해, 오사마의 본가이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호인 '사우디 빈라딘' 그룹의 거래처를
추적한 FBI 수사관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역대 미국 행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이 관련자로 줄줄이 등장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였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들이 만난 부시 전 대통령의 대변인 진 베커 여사는 “부시가 1998년 11월 오사마의
가족들과 한 번 만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전 대통령과 라덴 일가가 여러 차례 만났으리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던 기자들이 그가 쓴 감사장을
제시하자 그녀는 말을 바꿨습니다.
“부시는 라덴 일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두 번밖에 안 만났어요.”
지난 2000년 1월, 미국 대통령의 부친과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테러리스트의 가족이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이상은 지난 9월 29일자 『월스트리트 저널』 오스트레일리아 주말판의 기사입니다.
부시는 세계 최대의 상업은행으로 방위산업과 항공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는 칼라일 그룹의 아시아·중동 담당
상담고문직을 맡고 있습니다.
라덴 일가는 칼라일 그룹을 통해 미국의 국방산업에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오사마의 테러활동을 막기 위해 혹은 이번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면 부시 일가와
라덴 일가는 사이좋게 엄청난 수익을 누리게 되는 셈입니다.
빈라덴 가문은 사우디에서 성전 건축으로 돈을 번 회사로 1500억 달러에 이르는 사우디 미군기지 건설을 도맡아
한 바 있습니다.
2, 미국정부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이용해 왔습니다.
얼마전 MBC 다큐 스페셜에서 미국이 중미의 반군들을 지원하고 독재정부를 지원한다고 방송하였습니다.
미국이 부패한 독재 정부를 지원하는 것은 친미 정권을 유지시키고 후진국이 선진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역시 이런 더러운 일을 하는 곳은 CIA입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중앙아시아와 유고지역을 장악하기 위한 공작을 추진하였습니다.
중앙아시아는 주요 석유산지이고 유고는 아프칸 등지에서 재배한 마약을 수송하는 주요 루트이기 때문입니다.
CIA는 이 지역의 테러조직들이 마약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돈을 세탁해 주거나 무기로 바꿔주는 방식의 불법적인
지원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등지의 이슬람 테러조직 젊은이들을 분쟁지역으로 날라 반미 성향의 정부와
싸우게 했습니다.
이 같은 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조직은 파키스탄의 정보국이었습니다.
파키스탄 정보국은 CIA의 지령하에 1990년대 초·중반 중앙아시아 및 중동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과 함께
무기를 발칸반도로 수송해 당시 보스니아 사태에 깊숙이 개입했습니다.
영국의 정치경제 정보지인 '국제 미디어 코퍼레이션'은 1994년 10월 미국이 보스니아의 이슬람 반군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을 발칸 반도로 잠입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1994년 9, 10월 아프간의 무자헤딘(이슬람 전사)들이 보스니아로 들어가기 위해 크로아티아 플로체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미국 특수부대와 함께 왔는데, 미군들의 임무는 지휘체계 확립과 병력통제, 보스니아 내 이슬람 반군과의
정보망 설립 등이었습니다.”
미국 공화당은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과 불법적인 군사공작을 벌여온 사실을 알아낸 뒤
의회 보고서를 작성 대여 투쟁에 나섰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996년 9월 22일자 기사에서 이 의회보고서를 인용, 보도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1994년 4월 이란에서 사라예보로 무기를 공수하겠다는 CIA 건의를 승인했다.
CIA는 시민단체로 위장한 제3세계구호청(TWRA)이라는 조직에 보스니아로의 무기 공수를 위탁했는데
TWRA는 오마르 압둘과 오사마 빈 라덴의 이슬람 테러조직과 연관된 단체로 보인다.”
보고서는 클린턴 행정부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수천 명을 끌어들임으로써 보스니아를
이슬람 세력의 기지처럼 만들었다며 비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보고서는 클린턴 행정부가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를 비롯한 6, 7개에 달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조직과 공범관계를 형성했다고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화당에게 이 사건은 민주당의 도덕성에 결정적 흠집을 낼 수 있는 엄청난 호재였습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이 전의를 다지고 있던 1998년 중반 클린턴이 인턴 여사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르윈스키 스캔들’이 미국인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공화당은 다른 나라에 대한 내정간섭이나 테러조직과의 결탁보다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이 민주당을 공격하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워싱턴에서 이 같은 정치놀음이 벌어지고 있을 동안 보스니아의 불길은 코소보로 옮겨갔습니다.
이슬람 무장조직들이 알바니아계 KLA(코소보해방군)의 반유고연방 무장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코소보로 몰려간
것입니다.
미국은 보스니아에서의 경험을 코소보에서 다시 활용했습니다.
이에 앞서 1998년 11월 『선데이 타임즈』는 오사마 빈 라덴이 코소보 내전에 개입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정부가 오사마를 비롯한 테러리스트들과 유고 연방을 해체하기 위해 공동 작전을 벌였습니다.
더욱이 이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KLA는 마약거래로 조직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테러리스트들이었습니다.
‘지구적 범죄조직 퇴치프로그램’의 프랭크 클리포 수사관은 2000년 12월 미국 의회에서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KLA는 마약거래를 통해 일부 자금을 조달한다. 알바니아와 코소보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마약재배
지대인 ‘금 초승달 지역’을 유럽의 마약시장으로 연결하는 이른바 발칸 루트의 중심부에 있다. 유럽에 밀수되는
헤로인의 80%가 통과하는 이 루트에서는 매년 4천억 달러에 상당하는 마약이 거래되고 있다.”
문제는 의회가 정부와 국제 테러리즘의 연계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프리메이슨(역사)' 단원을 보시면 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기 전 마약장사로 돈을 번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후에 국제적인 마약거래에 관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3. 빈 라덴은 CIA 요원이거나 프리메이슨일 확률이 높습니다.
빈 라덴은 1979년 소련의 아프카니스탄 침공때부터 CIA의 도움을 받아 아프칸 반군을 지휘했습니다.
30년 동안 빈 라덴은 CIA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마약거래, 반군활동, 테러 등의 활동을 했고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빈 라덴 가문도 부시 가문과 돈독한 관계를 맺으며 무기사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런 빈 라덴이 하루 아침에 자신과 아무 관련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핍박 받는다는 이유로 미국을
상대로 테러 행위를 할 확률은 극히 적습니다.
CIA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암살할 수 있고, 인공위성으로 얼굴까지 식별해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무서운 조직이란 것을 아는 빈 라덴이 CIA를 배반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빈 라덴은 CIA의 지령을 받는 요원으로 이중 간첩과 같이 활동하며 공작을 벌이는 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911 테러로 빈 라덴과 이슬람이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회교 원리주의 국가인 아프칸의 멸망과 회교인들에 대한 탄압과 알카에다의 와해밖에 없습니다.
빈 라덴이 돌머리가 아닌 이상 아무 실익이 없는 일을 할 리가 없고, 돌머리라면 그런 정교한 테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ISI(파키스탄 정보국)은 CIA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이슬람 테러리스트를 모집해 중앙 아시아나 유고로
송출하는 일을 해 왔습니다.
2001년 여름 ISI 부장인 아마드가 자기 심복을 시켜 아타(911 사태의 실질적 지도자)에게 10만달러를 송금한
사실이 들어났고 FBI도 이를 시인했습니다. (2001.10.11 타임즈 오브 인디아)
이 일로 아미드는 사임했습니다.
그렇다면 빈 라덴을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는 회교인들도 속고 있는 것입니다.
회교인들에 대한 경멸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압박을 무마시켜 줄 것이고, 이는 미국을 지배하는
유대 재벌들이 바라는 바 입니다.
어떻게 빈 라덴이 회교인들에게 해가 되는 짓을 할까 의문이 든다면 빈 라덴이 프리메이슨일 확률을
따져 봐야 합니다.
프리메이슨들은 이념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애국주의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4. 테러에 대한 경고와 보고가 무시 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911 테러와 같은 고도의 동시 다발적인 테러를 일으키기 위해선 4년의 준비기간과 100명의 준비요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매년 300억 달러의 예산을 쓰면서 통신과 e-mail을 감청하고, 암호를 해독하고, 인공위성으로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해 내는 미국 정보 기관이 테러리스트들이 미국에서 활개를 치고, 자금을 조달하고, 수 없이 많은 지령을
받았는데도 몰랐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만약 진짜 몰랐다면 이는 명백한 직무유기로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나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2002년 3월 미국 맥키니 의원은 행정부와 정보기관에 대한 의회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의원들의 반대로 무산됩니다.
2001년 2월에 미국 국가 안보국(NSA)는 테러리스트들의 비밀암호를 해독했다고 발표했습니다.(UPI)
그러므로 미국 정보기관이 빈라덴의 테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2001년 6월에 독일 정보부 BND는 미국 정보부에 '중동의 테러분자들이 민간 항공기를 납치하여 그 비행기를 미국
상징물을 격파하는 무기로 사용할 것'이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2001.9.14. 프랑크푸르트 알케마이네 자이퉁)
2001년 7월 애리조나 주재 FBI 요원은 애라조나 비행학교에서 많은 중동사람들이 조종훈련을 받는데,
빈라덴이나 테러리스트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보고하였습니다.
2001년 8월 부시는 빈 라덴이 민간 여객기를 납치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습니다.(2001.5.15. CBS, CNN)
2001년 8월 FBI가 보스턴에서 빈 라덴과 관련된 무장 단원을 체포했는데, 그는 비행훈련을 받은 적이 있고,
체포될 당시 보잉 항공기 정비교본과 비행요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01.9.13 로이터 통신)
미 해군 정보장교였던 브리랜드는 러시아에서 정보원(나중에 암살당함)으로부터 911 테러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지만 미국으로가 봤자 안 통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브리랜드는 케나다 정부에게 이를 폭로하려 했지만, 이를 알아차린 미국 정부는 그를 신용카드 사기범으로
몰아 케나다 경찰에 체포를 요청했고, 그는 2000년 12월 6일 체포되 구금당합니다.
2001년 8월 11일 그는 911 테러에 대한 내용을 종이에 적어 봉투에 넣어 간수에게 전해 주었는데, 2001년 9월 14일
에서야 열람되었지만 비밀로 묻혀버립니다. (2001.10.23 토론토 스타)
2001년 9월 초 미네소타의 FBI 요원이 테러 용의자 무샤우이를 체포해, 그가 비행교습을 받았고, 비행기로 세계
무역센터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그의 노트북의 검사 허가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2002.5.20. 뉴스위크)
진주만 기습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채널에서 보고와 첩보가 접수 되었지만 일부러 무시하거나 방해했습니다.
5. 부시 대통령 측근이 테러공격이 있기 며칠 전에 항공사 주식을 전량 매각했습니다.
2001년 9월 17일 일요일 "60분(60 Minutes)"이라는 CBS 텔레비젼 프로그램은 부시 대통령의 가까운 동료들이
갑자기 그리고 불가사의하게, "테러리스트" 공격들이 있기 단 며칠전에 그들의 모든 항공사 주식들을 팔았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곧 이어 CFR(프리메이슨 조직)에 의해 조종받는 언론에 의해 묻혀버렸습니다
또한 항공기 충돌 테러가 벌어지기 직전 무역센터 내부에 입주한 금융회사와 민간 항공사 사이에는 주식을 팔고
사는 대량거래가 있었습니다.
수 많은 거래 회사 중에 유독 항공사 주식으로는 테러로 피해를 당한 2개의 항공사 뿐이었습니다.
이는 테러가 일어날 것을 미리 안 세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블룸버그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9.11 사건이 일어나기 하루 전에 아메리칸 항공사의 주식거래량은 통상 거래량의
5배 정도로 폭증했고,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주식거래량도 9.11 사건이 일어나기 3일 전에 폭증했습니다.
또한 세계무역센터에 입주해 있었던 금융회사 모건 스탠리와 사건 현장 부근에 있는 금융회사 메릴린치의 주식거래량도
통상 거래량보다 최저 12배에서 최고 25배나 폭등했습니다.
미국 증시감독위원회의 조사를 인용한 『월 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2001년 10월 2일자 보도에 따르면,
9.11 사건으로 폭락할 주식들, 예를 들면 항공사의 주식, 보험사의 주식, 여행사의 주식을 미리 내다 팔고, 그 대신
불경기에 가장 잘 나가는 5년 만기 국채를 사들여서 50억 달러의 이익을 챙겨간 세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6. 아마추어 경비행기 조종사가 대형 여객기를 조종할 수 있나요?
미국 비행학교에서 경비행기를 몰아본 경험밖에 없는 초보 조종사가 첨단 장치로 가득찬 대형 여객기를 조종할
수 있겠습니까?
테러범들이 항공교육을 받았던 플로리다의 비행학교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테러범들이 경비행기 조차 서투르게
조종할 정도의 아마추어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세계무역센터가 먼 곳에서도 잘 보이는 매우 커다란 목표물이라고 해도, 매우 빠른 속도로 저공비행을 하면서 목표물에
돌진하여 오차 없이 충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착륙 유도 장치도 없는 건물에 대형 여객기를 순전히 육감으로 정확하게 들이 받는 것은 항공모함에
전투기 착륙시키는 것보다 어려운 예술입니다.
비행기 조종은 항로를 정확히 유지해야 하는데 관제탑의 도움없이 육안으로 목표물을 찾아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맨해튼 상공에서 여객기를 저공으로 조종하여 단 한번에 목표물에 충돌한 것은 매우 숙련된
조종술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것은 여객기를 완만한 횡경사의 각도를 유지하는 고도의 조종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한 비행기에 4명에서 5명씩 탑승해 수십명의 승객들과 대치하고 있는 긴박한 순간에 이렇게 정확히 목표물과
충돌한다는 것은 베테랑 조종사가 아니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지적입니다.
직선 비행으로도 힘든데 보스턴에서 내려오던 아메리칸항공 소송 항공기는 뉴욕만 북쪽에서 방향을 바꿔 크게
선회를 한 뒤 세계무역센터 빌딩과 부딪쳤습니다.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에 충돌한 여객기의 속도는 시속 586마일(943km)이었으며, 북쪽 건물에 충돌한 여객기의
속도는 시속 486마일(782km)이었습니다.
시속 586마일의 속도는 당시 그 여객기의 고도를 감안할 때 그 여객기의 최고비행속도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었다고
보잉사는 밝히면서, 그러한 속도로 계속 저공비행을 하는 경우 공중에서 폭발할 가능성도 있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당시 저공에서 고속으로 돌진하는 여객기의 속도와 바람 등을 감안한다면 목표물에 접근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조종사들이 장애물이 없는 태평양 상공에서 미군 항공모함이나 순양함을 대상으로
자살공격을 자행했지만 그 성공률이 50%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그럼 진실은 무엇일까요?
납치범들은 비행기를 납치해 조정실을 장악한 후 비행기 조정은 하지 않고, 자동비행으로 전환시킨 것입니다.
현재 여객기 기술은 조종사가 없어도 이륙, 착륙, 비행이 모두 가능할 만큼 발전했습니다.
또한 무인 조정 기술도 발전해 얼마전 무인 비행기인 프레데터가 알카에다 조직원에게 정확히 미사일을
날린 적도 있습니다.
실상은 자동비행으로 전환된 비행기를 지상에서 조종해 세계무역센타 주변해 착륙 유도 시스템을 갖춘 후
충돌시킨 것입니다.
여객기를 원격조종하여 안전하게 착륙시키는 기술을 이미 오래 전에 개발하여 사용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공작은 CIA가 첨단 항공 기술자들과 함께 합니다.
7. 공개하지 않는 블랙박스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항공기 2대, 미 국방부 건물에 충돌한 항공기 1대, 워싱턴으로 향하다
공중에서 미 공군의 요격을 받아 파괴된 것으로 보이는 항공기 1대 등 4대의 항공기에는 총 8개의 블랙박스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들 블랙박스 중에서 회수된 것은 2개 뿐이며 이것마저도 현재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피랍 여객기의 원격조종장치를 가동할 경우, 블랙박스는 자동적으로 작동을 중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블랙박스를 찾아내어 그 기록 내용을 분석하면 원격조종장치의 가동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블랙박스의 음성기록장치(CVR)는 마지막 30분 동안의 조종실 대화를 녹음하며, 비행정보기록장치(FDR)는
비행속도와 고도 및 사고 당시 비행기 작동체계의 작동상태를 기록합니다.
그러므로 블랙박스는 9.11 사건의 의혹을 풀어줄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블랙박스는 항공기가 충돌할 때 충격을 가장 적게 받는 항공기의 꼬리부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블랙박스는 충돌하는 순간 자기 무게의 3,400배의 충격에도 견딜 수 있고, 섭씨 1,100도의 고열 속에서 30분 동안
견딜 수 있도록 특수제작되어 있습니다.
블랙박스에는 주파수 발신장치가 들어있는데, 발신장치의 건전지 수명은 6년입니다.
펜실베니아주 서부지역에 추락했다고 발표된 여객기(유나이티드 항공 제93편)에 설치되어 있던 블랙박스는 다음날인
9월 12일에 발견되었습니다.
국방부 청사에 충돌했다고 발표된 여객기(유나이티드 제77편)에 설치되어 있던 블랙박스는 9월 13일에 발견됬습니다.
미국 정부는 세계무역센터에 충돌한 두 여객기에 설치되었던 블랙박스를 찾지 못했다고 발표했는데,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항공유가 한꺼번에 타면서 생기는 온도는 섭씨 800도에서 1,000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블랙박스는 섭씨 1,100도의 고열 속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제작되었는데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미심쩍으며,
미국 교통안전국(NTSB)은 미국에서 비행기가 추락한 뒤에 블랙박스를 발견하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블랙박스는 심한 충격과 외부 압력 등에 견디게끔 대단히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어 항공기가 폭발, 추락해도
사라지지 않고 회수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블랙박스 2개만이 회수되고 또 이것 마저 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은 테러에 사용된 항공기가 누군가에 의해
원격 조정장치로 움직여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블랙박스를 공개하면 원격 조정 한 것이 들통나기 때문입니다.
블랙박스의 기록내용을 완전히 해독하려면 통상 3개월이 걸리며, 만일 블랙박스가 손상되었을 경우에는 그 기록내용을
완전히 해독하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합니다.
이 뿐 아니라 세계무역센타 붕괴현장은 어느 각도에서도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8. 항공기 탑승자 명단에 없는 테러범들
9.11테러가 일어난 직후 미국 정부는 테러가 일어날 상황을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고 발표했습니다.
FBI도 이들 테러범들의 테러 기도 징후를 파악하지 못했고 NSA(도청을 주임무로하는 감청 정보기관)를 통해
전세계 통신을 감청하는 CIA도 테러범들의 동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정보기관은 테러가 일어난지 단 이틀만에 테러범 19명의 명단을 내놨습니다.
특히 이들 19명은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엘리트 유학생들로서 대부분이 그동안 테러리스트 명단에 올라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신상명세까지 공개됐습니다.
그러나 CNN이 항공사가 보관하고 있던 탑승자 명단 자료를 확인한 결과 이들 납치범들의 이름은 탑승자 명단에
없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은 이들 중 5명은 비행기에 탑승한 적도 없고, 죽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스튜어디스 스위니가 핸드폰으로 알려준 납치범의 좌석번호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9.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도착한 재난 구호팀
부시 대통령은 연방 비상 관리국(FEMA)을 관리하는데 공격이 실행되기 바로 전날 밤에 뉴욕으로 도시 검사 및
구호 팀을 보냈습니다.
FEMA 관리, 톰 케네디 언론에서 2001년 9월 11일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 재앙에 있어서 뉴욕 시를 지원하고자 배치되었던 최초의 팀중 하나이다. 우리는 월요일 밤 늦게
도착하였고[그날은 9월 10일로 바로 전날 밤] 화요일 아침에 작업에 바로 착수했다."
10. 테러 두 달 전에 빈라덴은 CIA와 접촉했습니다.
2001년 10월 31일에,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는 오사마 빈 라덴이 2000년 7월에 고위 CIA 직원을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때 빈 라덴은 이미 두 건의 미국 대사관 폭파와 콜 군함 공격에 가담하였기 때문에 재판을 위해 체포영장이
발급되어 수배중이였습니다. (현상금 500만 달러)
빈 라덴은 2001년 7월 4일부터 14까지 아랍에메레이트 두바이의 미국 병원에 신장병 치료차 입원했습니다.
그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 가족, 고위 인사, CIA 요원 등이 방문했습니다.
7월 14일 그는 자신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떠났습니다.
11. 비행기 충돌 이후 저층에서 또 다른 폭발이 있었습니다.
ABC 뉴스는 2001년 9월 11일에 "폭파지점"에서 탈출한 사람들과 인터뷰했습니다.
자신을 밝이지 않은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잠시동안 계단에 갖혔다. 나는 85층에서 아래로 내려왔다. 우리가 막 그 빌딩을 떠나려 할 때,
(내부에서) 폭발이 한 번 더 있었다."
한 여자의 증언이 뒤따랐습니다.
"나는 계단에 갖혔다. 우리가 로비에 도착했을 때 폭발이 있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워낙 튼튼하게 설계된 세계무역센터가 혹시 안 무너질까봐 저층 부위에서 기초를 흔드는 폭발을 시도한 것입니다.
CIA는 정말 악날하고 철두철미한 사람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 세계무역센터 피격 후에도 워싱턴을 방어하지 않는 전투기
8:20 AA11 레이더 접촉 끊어지고 항로를 벗어남.
8:30 AA11 승무원이 납치 당하고 있다고 보고함.
8:45 AA11 세계무역센터에 북쪽 타워에 충돌함.
8:55 AA77 관제탑과 교신이 끊어짐.
9:05 UA175 세계무역센터 남측 타워에 충돌.
9:06 뉴욕 경찰은 테러행위라 단정하고, "테러단의 공격이다. 펜타곤에 알려라"라고 하는 것이 방송됨.
9:25 AA77기에 탑승한 법무장관 올슨의 부인 바바라 올슨이 남편에게 핸드폰으로 비행기 납치 사실을 알림.
9:30 부시가 TV를 통해 틀림 없는 테러단의 행위라고 단정함.
9:38 AA77을 통제하기 위해 랭리 공군 기지에서 F-16 두 대가 출격함.
9:40 AA77 펜타곤 앞에 추락.
9:50 엔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전투기 처음 출격
10:00 UA93 탑승객이 911에 전화를 걸어 납치 사실을 알림.
10:10 UA93 펜실바니아주 생크스빌에 추락.
북미 대공방위사령부인 NORAD는 AA21이 납치당한 지 18분 후에 관제탑으로부터 보고를 받았습니다.
비행기가 항로를 벗어나면 전투기가 출동해 제어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격추시킬 수 있습니다.
가까운 공군기지가 있었는데도 200마일이나 떨어진 오티스 공군기지에 출격을 지시해 건물 충돌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미국의 상징물인 세계무역센터가 첫 번째 피격되 비상상황에 처하고, 두 번째 피격되 테러가 확실해져 뉴욕경찰이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 워싱턴을 보호할 전투기는 출격하지 않습니다.
AA77기는 8시 55분에 비콘 발신이 끊어졌고 9시 25분에 핸드폰으로도 납치 사실이 알려졌지만, 9시 38분에서야
워싱턴에서 130 마일 떨어진 랭리 공군기지에서 전투기가 출격합니다.
때문에 9시 40분 펜타곤 피격을 막을 수 없었고, 9시 50분에 워싱턴에서 15 마일 떨어진 엔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전투기가 출격합니다.
엔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즉각 전투기가 이륙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마이어스 합참 본부장은 9월 14일 엔드류스
공군기지에 전투기가 없다고 변명하였습니다. (CBS 저녁뉴스)
엔드류스 공군 기지는 수도를 방위하는 주요 공군 기지로 2개 편대(121, 113 전투편대)가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말이 되지 않음을 깨닭은 행정부는 엔드류스 공군기지에 전투기는 있지만 비상 대기 상태가 아니었다고
정정했습니다. (2001.9.17. USA Today)
하지만 엔드류스 공군기지는 수도 방위를 책임지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전투대기 상태에 있습니다.
이렇게 큰 음모를 자행해 놓고도 앞뒤가 맞지 않아 모순점이 많은데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습니다.
스포츠 연예 오락 등에 정신이 팔리게 한 우민화 정책이 성공을 거두어 아무도 깊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3. 총기와 흉기를 가지고 검색대를 통과한 테러범
20명의 테러범들은 3개의 다른 비행장 검색대를 총기와 흉기를 가지고 통과하였습니다.
첨단 X ray 검색대를 한 명도 걸리지 않고 통과한 것은 내부에 공모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이한 점은 이 비행장들은 이스라엘계 회사가 관리한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과 정보조직 모사드는 프리메이슨이자 세계적 금융재벌인 로스차일드의 사조직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14. 비무장으로 발진한 전투기
미 공군의 크레그 맥킨리 소장은 2003년 5월 23일 9.11 테러사건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2대의 민간항공기가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충돌한 직후 백악관경호팀의 요청에 따라 백악관 경비를 위해 긴급발진한 2대의 F-16기는
모두 비무장상태였다고 밝혔습니다.
이들 전투기들은 훈련비행을 마치고 갓 귀환한 전투기였으며 백악관을 향해 비행하고 있던 것으로 당시 추정됐던
아메리칸항공 93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무기를 탑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들 전투기들은 앤드류공군기지에 있던 제113 영공수비대에 소속돼 있었습니다.
또 긴급상황에 따라 버지니아공군기지에 있던 공군 북부방위사령부 소속 F-16기들이 즉각 발진했었으나 여전히
아메리칸항공 77기가 국방부 건물에 충돌한지 12분이 흐른 후였습니다.
더구나 무장을 했다 하더라고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맥킨리 소장은 F-16기들이 무장을 하거나 제 때 발진을 했다 하더라도 전투기가 민간기를 격추시킬 권한은 공군에
부여되지 않았다고 증언했습니다.
9.11 테러사건 발생 때 북미영공방위사령부의 미국방위사령관이었던 래리 아놀드 예비역소장은 아메리칸항공
93기가 펜실베이니아주의 시골지역에 떨어진지 5분 후에야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자살테러를 시도하려는
민간항공기를 격추시키라는 명령이 하달됐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9.11 테러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 영공을 비행중인 민간항공기를 공군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적 목표물'로
지정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오직 대통령만이 그같은 조치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연합뉴스] 2003년 05월 24일
수도를 방어하는 전투기가 비무장 상태로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혹시 무장한 전투기가 일을
그르칠까봐 미리 대비시켜 놓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5. 부시 행정부가 결정적인 증거물로 제시한 영상녹화물(videotape)은 조작된 것이 아닐까?
2001년 12월 13일 미국은 9.11 사건이 오사마 빈 라덴의 지령에 의해 일어났음을 입증한다는 결정적인 증거물을
공개했습니다.
미 국방부가 11월말에 입수했다고 하는 그 영상녹화물에는 11월 중순 파키스탄의 수도 카불에서 찾아간 방문객을
맞이한 오사마 빈 라덴이 자기 부관들과 함께 9.11 사건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촬영되어 있습니다.
그 영상녹화물에 나타난 오사마 빈 라덴은 오른손잡이입니다.
그러나 1999년 6월에 미 연방수사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현상수배하면서 그가 왼손잡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영상녹화물에 나타난 오사마 빈 라덴은 귀고리를 달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의 사진 가운데 손목시계 이외의 다른 장신구를 단 모습은 없었습니다.
그 영상녹화물은 대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잡음이 심하고, 화면도 사람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둡습니다.
그런데 카불에서 찾아간 방문객은 오사마 빈 라덴에 비하면 음성도 분명하고 얼굴도 번번이 화면 정면에 나타납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음성은 더듬거리는 소리로 되어 있고 얼굴은 옆모습만 보입니다.
영국 언론 『가디언(Guardian)』 2001년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