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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번째 이야기

김기주 |2006.07.08 17:50
조회 51 |추천 1


Prologue...

 

 2006년 7월, 내 인생의 변혁을 맞은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대학 입학 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이야기...고교 반 배치고사에서 전교 250등을 받고 입학해 3년이 지나 전교 4등으로 졸업한 이야기. 고교 1년, 모의수능고사 총점 270점에서 2000학년도 수학능력시험 380점으로 서울대학교에 진학한 이야기. 이제 기억속의 언저리끝으로 저물어 갈테지만 사실 나는 부산 대동고등학교의 전설적 존재로 남아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10년 전의 기억속으로부터 나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Part 1...."내 어린날의 기억 조각"

 

 난 욕심이 많은편이었던것 같다. 누가 농구를 잘한다고 소문이 나면 나도 농구를 잘하고 싶었고, 누가 싸움을 잘하더라 하면 나도 싸움을 잘해서 전교를 평정하는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중학교 2학년의 사춘기 시절 우리에겐 공부를 잘하는 아이보단 잘놀고 싸움을 잘하는 학생이 소위 잘나가는 학생이었다. 이렇게 되기 위해 나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우리 중학교에서 제일 싸움을 잘했던 친구와 가깝게 지냈다. 그친구와 나 둘다 이미 중학교때 180에 가까운 덩치였으므로 자연스럽게 강한자가 되고있었다.

 그 친구와 어울리면서 친구들만의 의리와 우정들을 이야기 하고 강한자가 되려했으며, 담배를 배우고 술을 배우고 당구를 배웠다. 우리들은 청소년기 동경의 대상이었던 어른들의 문화를 일찍 알아갔다.

 어느덧 중학교를 졸업할 시기가 되었고 나와 어울리던 두 친구는 일찍 돈을 벌겠다며 상고에 진학하였다. 나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강요(?)와 어느정도의 성적도 있었고해서 연합고사 125점(당시 부산 인문계 커트라인 110점)을 받아 평준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냥 그렇게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공부는 곧잘 하였던것 같다. 시험을 치면 전교 등수 150등 정도의 중상위권 수준...하지만 무엇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없었다. 제일 뒷자석에 앉아서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게 일상이었고 선생님 말씀에 토를 달면서 아이들을 웃기는 소위 분위기 메이커(결국엔 공부방해 메이커)로 기억되고 있었다.

 

 

Part 2..."위기는 기회의 예고 일뿐..."
 

 내 인생 반전의 발단은 고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 수학성적에서였다. 23점을 받았다. 반에서 뒤에서 순위권... 그래도 이정도는 아닌데 아닌데하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내 자신에 대한 엄청난 실망감. 부모님께 성적표를 갔다드리고 난 어머니의 실망하시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나에게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신지 알게되었다. 사실 어머니는 나를 낳고 몸이 극도로 안좋아져 초등학교 교편을 놓으셨다. 그 후 몸이 회복되셨어도 많은 일들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유년기 기억속엔 어머니께서 항상 돈을 벌로 밖에 나가있고 나혼자 밥을 챙겨먹었던 기억이 눈에 선하다.

 아무튼 나는 그후 어머니의 눈물을 보았고, 어머니를 위해, 나자신을 위해, 이를 악물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1997년 7월이었다. 얼마나 많이 공부했던지 내 기억속에 고교 1학년 여름방학이 없었던것 같은 느낌이다. 하루평균 12시간씩 그렇게 한달 반정도의 방학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독서실에 있었다. 공통수학의 정석을 한문제 빠짐없이 3회정도 푼것 같고, 2학기 전과목을 예습한것 같다. 그 당시 나는 저녁 바람을 맞으며 하늘의 별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것이 하루중 최고의 일상이었다. 하루하루 지식이 쌓이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고 오늘도 12시간 공부량에 도달했다는 자족감에 어머니께 은혜를 갚고 있다는 생각, 이 두가지 감정이 장시간 공부로 인한 피로감을 씻어주고 있었다.

 

 

Part 3... "새로운 시작"

 

 개학이 되었고 나의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에 친한 친구들이 혀를 내둘었다. 일단 제일 앞에 앉아서 선생님의 모든 말씀을 책에다 받아적었다. 학원다닐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나는 대신 학교 수업으로 이것을 만회해보고자 하였다. 잘알지도 못하는 전교1,2등 친구에게 무턱대고 찾아가 자존심을 버리고 그렇게 다른 선생님의 수업 필기까지도 배껴적었다.(지금 약대,공대에 다니는 두친구는 그게 인연으로 나랑 가장 친한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학기 중에도 미친듯이 수업에 열중하였고 야간자습을 하고도 12시 반까지 텅빈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였다.

 땀의 결실. 중간고사 성적 전교 21등. 기말고사 성적 전교 9등. 전교 아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2년동안 생일도 잊을정도로 공부를 계속하였고 꾸준히 전교 3-4등을 유지하였다. 마침내 나는 나의 꿈이었던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었다.

 합격소식을 접한 그날, 나는 지난날의 노력과 땀을 기억하며 희열과 성취의 눈물을 흘렸다. 우선 내 자신에 대한 고마움, 노력에 대한 정직한 대가를 받을수 있음에 감사했고 무엇이든 해낼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되었다. 그리고 얼마후 어머니께 합격증을 보여줬던 그 날을 기억한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무말도 하지 않으신채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으로 어머니께 은혜를 다 갚을 수가 없었다.


 

Epilogue...

 

 TV에 이런 광고를 본적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하얗게 내리치는 폭포수 앞에서 새로운 도전의 결의를 하고 있고 “가능성, 그것은 내 안에 있다.” 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더군요.

 인간은 누구에게나 자기 안에 잠재력이란게 있습니다. 공부를 잘할수 있는 잠재력도 있고 예술적인 감각의 잠재력, 운동신경이라는 잠재력도 있습니다. 그 어느 누구라도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결단코 없습니다.

 자신안에 내제된 잠재력을 이끌어낸다면 못할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모든 이상과 가치를 실현시킬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고교 1학년때까지만 해도 서울대는 전교 몇등하는 사람들이 진학하는 남들 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부산에 있는 중상위권대학에 진학하지뭐 하는 그런 생각으로 공부했습니다. 말하자면 제 자신의 잠재력을 인지하지 못하고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하지만 굳은 결심 이후, 저는 불가능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덤벼들었습니다. 제 자신의 가능성을 믿었고 불굴의 열정으로 밀어 붙혔습니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열정과 의지로 이어졌고, 규칙적인 공부습관, 집중적인 학습태도로 실천화 되었습니다.

 결론컨대 저의 경험은 저에게 단지 성적의 급격한 향상과 서울대학교 입학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준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능성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라는 당연하고도 확실한 믿음, 바로 그것을 얻었다는것에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백번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진리 입니다. 우리의 꿈과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가능성,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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