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남편의 5대 행동강령
자축인묘 진사오미 신유술해출근하면 당을 따르고 퇴근하면 아내를 따라야 하는 중국의
남편들은 아내를 위하여 아래 12띠에 나오는 동물처럼 되어야 제 명에 살 수 있다.
(子 쥐” “丑 소” “寅 호랑이” “卯 토끼” “辰 용” “巳 뱀” “午 말” “未 양” “辛 원숭이” “酉 닭” “戌 개” “亥 돼지”)
남편은 모름지기 아내를 위해..
1. 쥐처럼 눈치가 빨라야 한다.
2. 소처럼 부지런해야 한다.
3. 범처럼 박력 있게 해야한다.
4. 토끼처럼 깔끔하게 청소해야 한다.
5. 용처럼 높이 쎄게 해야 한다.
6. 뱀처럼 길게 오래 해야 한다. ("토끼처럼"이면 즉결처분감)
7. 말처럼 아내를 잘 태우고 다녀야 한다.
8. 양처럼 온순해야 한다.
9. 원숭이처럼 재롱을 피워야 한다.
10. 닭처럼 새벽같이 일어나 일을 시작한다.
11. 개처럼 충직해야 한다.
12. 돼지처럼 아무거나 잘 먹는다.
요즘 세상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특히 중국에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우선 상대방의 부인을 잘 사귀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여인들의 순위 즉
1위 부인, 2위 장모, 3위 딸, 4위 세칸드, 5위 처제,6위 써드, 7위 처형
8위 장모의 엄마, 9위 포쓰, 10위 모친 등 여인권력 서열변동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사귀야 하는 상대방도 있어 골치아프다.
실권이나 영향력에서 여성이 훨씬 위력적이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우먼파워가 막강하다.
주부가운데 요리하는 방법을 아예 모르는 경우도 흔하다.
호칭도 그저 이름을 서로 부른다.
한국같이 일부 간큰 남자가 가부장적인 권위를 행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중국어로 "치관옌"하면 원래 기관지염을 뜻하였지만 "妻管嚴"(엄처시하)과
같은 발음이어서 공처가를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현재 중국 대륙이나 대만 홍콩 싱가폴 할 것 없이 중국 남성들은 사회적 지위와는 상관없이 집에 들어오면 부엌에 들어가 앞치마를 두른 채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요리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이 부엌일을 전혀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의 중국
가정을 볼 때 남자가 부엌일을 주로 하는 집이 많다.
남자가 주방에서 일할 때 여자는 응접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서 TV를 본다.
회사에서도 휴식 시간에 남자들의 애깃거리는 어디서 어떤 채소를 팔고 오늘 저녁 반찬거리는 무얼 사느냐 등이다.
베이징의 어느 회사 사장은 외국에서 온 바이어를 정중히 접대하기 위해서
그를 자기 집의 만찬 파티에 초대하였다.
그런데 바이어가 시간에 맞춰 그 집에 도착했을 때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 이유는 현관에 마중을 나온 사람이 정장 차림의 사장 부인과 앞치마를 두른 사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기의 눈을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날 중국의 여성들은 대부분 사회진출을 원하고 있으며 평생 직장에서
돈을 벌고 자신의 행복을 찾고 있다.
중국은 정부 관공서나 은행 방송국 국영기업체나 소규모의 회사를 막론하고 남녀 비율이 거의 비슷하게 구성되어 있다.
실업자인 듯한 베이징 청년 하나는 정부당국이 여성을 우선적으로 고용하고 그 다음 남는 자리를 남성들에게 배당한다는 불평을 공공연하게 외치고 다닌다.
여성은 현재 중국 전체 고용인구중 45%를 차지한다.
세계평균 32.5%에 비해 무척 높은 수치이다.
전체 도시노동인구의 42%가 여성이며 농촌지역에서도 생산액중 절반이 여성의 손에서 나온다.
2000년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중국 부녀 상황 백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장차관급에 해당하는 正 副 부장 가운데 17명이 여성이며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제9대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21.6%가 여성이다.
우리의 정 부지사급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의 정 부성장 가운데 21명이 여성이다.
전체 540개 도시에서 여성이 자그마치 315명이나 된다.
중국 남편의 5대 행동 강령
1. 월급은 봉투 째 아내에게 바친다.
길바닥에서 혹시 돈을 주우면 즉각 아내에게 바친다
2. 모든 빨래는 자신이 한다.
3. 식사 후 남은 모든 음식은 혼자서 먹어치운다.
혹시 상한 음식이 있으면 그것도 다 먹어야 한다.
4. 아내(장모 포함)의 말에 무조건 따른다.
5. 아내가 위(上)이며 먼저(先)즐거워야 한다(樂). 낮이나 밤이나 不關晝夜 女上先悅
중국의 CCTV. BTV를 비롯 거의 모든 TV의 중앙방송국이나 지방방송국이나 오후 8시또는 9시 정규뉴스시간은 거의 엥커우먼들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중국은행의 창구는 다행히 대부분 젊은 오빠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뒤에는 아주머니들이, 그 뒤에는 할머니가 여유작작 신문이나 보면서 가끔가다 앞줄의 젊은 오빠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修身齊家 治國 平天下가 남성에게만 통용되는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이 제가와 함께 치국도 하는 지금의 중국 사회분위기가 낯설다.
이러다가 자칫 중국 사회가 女性 齊家 治國 平天下로 변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예감이 든다.
일처다부제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J. F케네디의 부인이었던 재클린 여사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했을 때의 일이다.
미국의 저명한 시사 주간지 [타임]은 세기의 재혼이라 불리는 이 결혼에 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하고 객관적인 필치를 유지해 나갔다.
타임은 그 건에 대하여 이렇다 할 논평 없이 사실 보도에 치중한 기사만을 실었다.
그 기사의 마지막 면 바로 옆에는 그 당시 인도의 보호국이었던
시킴의 혼인 제도인 일처 다부제에 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여러 면에 걸친 제클린의 두 번째 결혼에 대한 논평없는 사실 보도에 뒤이은 일처 다부제의 나라 시킴(SIKKIM: 인도와 중국의 티베트 사이, 네팔과 부탄 사이에 있던 히말라야 산맥 중의 소국.
현재는 완전히 인도에 합병되어 있는 상태)의 절묘한 지면 배치는, 여타의 잡지에서 흉내내기 어려운 품격 높으면서도 산뜻한 비평 정신과 통렬한 풍자 기법이 돋보이는 인상적인 것이었다.
시킴의 북쪽, 그러니까 세계의 지붕 히말리야를 넘어가면 티베트고 거기에는 중국 56개 소수민족의 하나인 쫭족 (藏族: 인구 약4백만명, 별명: 티베트 족)이 살고 있다.
그런데 아직도 쫭족들 대부분은 시킴에서처럼 일처 다부제를 행하고 있다.
티베트의 일처 다부제는 두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 그것은 형제공처와 비형제공처다.
형제 공처라는 것은 만약 신랑쪽에 형제가 있을 때 신부가 그들 형제들 몽땅 펙키지 또는 옴니버스 식으로 결혼하는 것을 말한다.
신부는 시동생들과 1년에 한번씩 결혼식을 거행하지만 시동생과 나중에 이루어지는 결혼 의식은 신부가 처음 결혼할 때만큼은 성대하지 않다.
밤이나 또는 낮에 방사를 할 때는 방문 앞에다 옷가지를 걸어 놓아 표시를 해두는데 이는 불필요한 방해나 어색한 경우의 발생을 피하기 위해서 이다.
만일 아이를 낳는다면 첫째 아이는 장남 둘째 아이는 차남 셋째 아이는 삼남의 순서대로 아버지를 정한다
왜 그럴까
시킴이나 짱족이 원시 미개사회라서 아니면 그들 여성들 모두는 쌕걸이고
남성들은 전부 바부 쪼다 임포라서 그럴까
하기사 이를 참다 참다못한 중국 중앙정부는 1960년 대 초반 입심 좋기로 천하무적인 남성 당간부 하나를 티베트로 보낸 적이 있다.
그와 짱족 여성대표들과 벌인 일처다부제에 관한 논쟁은 아직껏 중국인의 입들에 회자되고 있다.
베이징에서 온 당간부 아저씨 왈: "짱족 아줌마 여러분, 차주전자 하나에
찻잔 네 개가 달린 것을 보았겠지요,
그러나 세상에 어디 찻잔 하나에 주전자 네 개 가 달린 법이 있습니까?
일처 다부제는 원시 미개인들의 혼인제도, 없애버려야 마땅합니다.
안 그렇습니까, 哈哈哈"
그런데 티베트 산골 짱족 아줌마들, 눈썹도 까딱 않고 입을 모아 아저씨 국그릇 하나에 숟가락 여러 개 놓인 건 보았죠,
하지만 세상에 어디 숟가락 하나에 국그릇 여럿을 놓는 법이 있죠
우리네는 숟가락이 남아돌아요 어떻게 하죠, 好好好 "
인류학자들도 일처 다부제가 시킴이나 중국의 티베트에서 성행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여성 인구수의 절대 부족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아들을 딸보다 2~3배나 많이 낳는원인이 그들 민족만의 혈통적 유전 인자 때문인지, 아니면 히말라야 산맥의 수많은 영봉들의 정기를 받은 자연 환경적 요인 때문인지는 아직 정확히 학술적으로 증명된 바는 없다.
2000년 말 중국의 남성인구는 여성보다 7천 2백만 명이 많다.
우리 7천만 韓민족 전체 인구보다 많은 엄청난 수의 "잉여 남성"들이 현재 중국 대륙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전체 중국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남성들은 "일부일처제"의 제도 아래서는 아내를 얻을 수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왜 여성상위국인가
중국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가지가 있다한다. 첫째는 인삼, 둘째는 김치, 셋째는 이른바 大男人主義라고 하는 남성 지상주의 또는 남성우월주의라 한다.
(요즘은 축구와 바둑을 포함, 이들을 함께 한국의 5대 이미지라고 일컫고 있다.)
중국남성에게는 한국이 유토피아요, 천국이요 낙원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선망의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이와 반대로 한국 남성의 눈으로 본다면 중국은 깜짝 놀랄만큼 여성들의 천국이다.
여성을 천시하던 관념이 대개 유교의 전통사상에서 나온 것 정도로 알고 있는 우리는, 유교의 본고장이었던 중국이 우리보다 더욱 뿌리 깊은 여성 천시국일것이라는 예상을 갖기 쉽다.
그런데 왜 같은 유교 문화권 안에서 이런 정반대의 현상이 생겼을까?
중국이 여성이 한국 여성보다 자유로운 건 사회주의를 실시해서 그럴까 사회주의의 절대 가치는 평등이니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은 것일까
그런데 북한 경우를 보면 여전히 가부장적인 특성이 남아 있다.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데도 말이다.
우리 민족은 중국과 달리 예로부터 남성이 여성에 비해 1%정도 부족한 데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6.25등 개벽이래 끊임없는 전쟁과 동란들이 더욱 남성의 과소비현상을 부채질하여 왔다.
게다가 우리민족은 중국 민족과는 정반대로 여성의 수요에 비해 남성의 공급이 항상 미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것이 바로 한국사회가 지금껏 남성 우월적 지위를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가장 원천적인 이유와 배경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여성 지위가 유럽에 비해 높은 원인도 유럽인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 땅으로 처음 이민 가게 되었을 때 배안에서 타고 있던 사람의 80%이상이 남자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그 해답을 찾는 사람도 있다.
중국 56개 소수 민족중 性에 대해 가장 자유분방한 민족의 하나는 징퍼족(景頗: 인구 약 11만, 윈난성 산간지역 거주)일 것이다.
징퍼족은 50~60년 전만 하더라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식의 [통혼 체인 제]를 실시하였다.
말하자면 A가문의 남성은 반드시 B가문의 여성을, B가문의 남성은 반드시 C가문의 여성을,C가문의 남성은 반드시 A가문의 여성을 아내로 맞아들여야 한다. 이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통혼체인을 위반하여 B가문의 남성이 C가문의 여성을 얻지 않고 A가문의 여성을 얻는다면 징퍼족의 습속에 따라 엄격한 징벌을 당해야 했는데 남성은 죽음을 당하고 여성은 동네에서 추방되었다.
이런 [통혼 체인제]가 없어진 까닭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남녀평등 이념의 사회주의를 실시해서라기 보다는 1940년대 일본군이 악착같이 저항하던 징퍼족 남성들의 1/3가량을 학살한 사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남성수의 결핍으로 통혼의 체인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방면에 천부적 재질이 뛰어난 징퍼족은 낙심하지 않고 "통혼 체인제" 대신 "꽁팡(公房)제"라는 걸 창안해냈다.
윈난성 산간벽지나 자그마한 벌판들을 끼고 오붓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마을 한복판에다 "꽁팡"이라는, 좀 크고 넓은 집을 짓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자유 연애 클럽 하우스"라고나 할까,
징퍼족은 아이가 커서 보송보송 콧수염이 돋아나고 얼굴에 여드름이 나기 시작하면 부모들이 등을 밀어 꽁팡으로 보낸다.
거기서 청년남녀들이 어울려 놀고 함께 눈을 맞춘다.
남녀 비율을 1:2 정도, 자유경쟁이 보장된다.
그렇다고 "꽁팡"은 온 동네 젊은이들이 거기 모여와 그룹섹스라도 하는 곳은 아니다.
그 자리에서 섹스를 하면 당장 쫓겨난다.
거기서 놀며 지내는 동안 서로 눈을 맞추고 느낌이 어울려지면 밖으로 나가 사랑을 맺는다.
그 중에서 만일 어느 처녀가 임신을 하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결코 그를 비웃지 않는다.
그 처녀는 시집갈 때 아이를 보란 듯이 업고 시집으로 간다.
만약 그 처녀가 어려서 다른 남자와 약혼을 했던 일이 있다면 그것도 무방하다. 이런 경우 두번째 남자가 이 전의 남자에게 일정한 재물로 배상을 하고 양해를 구하면 그뿐이다.
여자가 시집을 가서도 시집에 얽매어 사는 것이 아니다.
물론 옛날 우리 민족처럼 시집살이는 더구나 아니고 2~3년 동안 친정집에 돌아가 살수도 있다.
시집가자마자 그냥 시집에 눌러 살면 사람들은 오히려 웃는다.
이 민족에게 있어 약탈도 하나의 사랑의 표시로 된다.
총각이 자기 딸을 빼앗아 가도 부모들은 "익은 오이는 누가 따도 따가기 마련"이라고 여기면서 겉으로는 욕을 하는 채 하면서도 속으로 시원섭섭하다는 식으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또 처녀자신도 겉으로는 욕하고 울고불고 하면서 발버둥치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달콤하게 생각한다.
더구나 저희들끼리 이미 눈이 맞았을때는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사랑을 뺏기고 빼앗기는 것도 일종 낙이며, 그 민족의 사랑방식이기도 한다.
징퍼족 남성수가 갑자기 줄어들지 되지 않았더라면 사회주의를 하던 자본주의를 하던 "통혼체인제"는 아직도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징퍼족은 지금, "통혼체인제" 보다 훨씬 자유롭고 선택의 여지가 넓은 "꽁팡제"를 즐겁게 운용하고 있다.
유물변증법 대로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인이 빨갱이라 빨강색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1949년 공산화 훨씬 전부터, 빨강색을 좋아했듯, 한반도에 비한다면 황실과 귀족 일부사회를 제외하고 4~5천년 전부터 지금껏 중국대륙의 여와 남은 평등한편이었다.
4~5천년 이전은 물론 모계사회라서 절대여성상위였다.
그렇다고 중국이 여성의 천국임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에 비하면 여성의 지위가 높은 상대적 여성 상위국인 점을 강조할 뿐이다.
중국의 성어 物以稀爲貴( 물건은 흔치 않을수록 귀한법)처럼 어떤 물건의 공급이 수요에 비해 모자라면 가격도 자연 비싸지듯 여성수가 남성수에 비해 모자라면 여성의 가치와 지위도 존귀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여러가지를 두루두루 종합해서 살펴보아 여성과 남성의 평등 불평등 문제는 정치경제사회체제나 역사문화환경 등과도 깊은 연관이 있겠지만, 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은 남녀 성별 비례의 불균형 여부에서 출발해야 될 것 같다. 아무래도.
人有短長 氣有盛衰 사람에게는 장단점이 있고 기에는 성쇠(盛衰)가 있지요 과히 여인천하올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