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다단계 피해 대학생의 말처럼 다단계의 메카는 서울 강남이었다. 특히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다단계업체들은 지하철 7호선 학동역 주변에 몰려 있었다. 가구골목 뒤로 들어서자마자 20대 초반 학생들이 거리를 몰려다녔다.
'좋은 아르바이트 있다'가 다단계의 첫발
지난 5일 오후 9시 30분, 서울 논현초등학교에는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전화를 걸고 있었다. 누군가를 다단계로 끌어들이기 위한 사전작업중이었다.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 있다. 한번 해보지 않겠냐?"
"회사에 며칠간 자리가 났다. 한번 와서 일해보지 않겠냐?"
"방학동안 할 일 없으면 나랑 같이 있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두 달만 더 일하면 다음 직위로 승진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월급이 200(만원)이나 나온다"며 다단계 홍보에 열을 올리던 여학생과 인터뷰를 했다.
- 이곳에 있는 업체들이 주로 무슨 일을 하나?
"유통이나 무역 등의 일을 한다. 다단계업체들도 있고."
- 회원들의 연령대가 어떻게 되나?
"20대 초반이 대부분이고, 20대 후반과 30대 순이다."
- 사투리를 쓰는 걸 보니 지역에서 온 모양인데 서울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나?
"회사에서 원룸을 얻어줘 그곳에서 생활한다. 방값은 회사에서 지불한다."
▲ 서울 강남 논현동의 한 다단계 업체에 모여 있는 대학생들. ⓒ2006 최상진- 한 달 월급은 얼마나 되나?
"120만원~130만원 정도다.”
- 일한 지는 얼마나 됐고, 무슨 일을 하고 있나?
"5개월 됐다. 회의도 하고, 미팅도 하고, 교육도 받는다."
- 뚜렷이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데 월급이 120만원을 받는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나?
"회사가 좋기 때문에…."
- 이곳에 다단계업체가 많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많나?
"여기서 전화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다단계를 하고 있다. 전화내용을 들어보면 알 것이다."
- 왜 강남에 다단계업체가 많다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은 강남에 회사가 있다고 하면 믿을 수밖에 없다. 젊은이들에게 강남에서 일한다는 것은 꿈이 아닌가. 그리고 강남지역 학생들이 돈이 많아 500만원 어치의 물품 판매가 가능하다. 이런 점 때문에 강남에 다단계업체들이 많은 것 같다."
주변상인들 "다단계 대학생, 컵라면으로 끼니 때워"
주변 상인들은 이들을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논현초등학교 근처에서 야식집을 운영하는 곽원근씨는 그들을 바라보는 심경을 이렇게 밝혔다.
"여기 있는 대학생 다단계 판매원들은 돈이 없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다. 공원에서 컵라면에 식빵 나눠먹는 것도 자주 보는데 씁쓸하다."
또한 편의점 점원 최아무개(대학생)씨는 자신도 다단계를 경험해봤다며 빨리 빠져 나오는 게 최선책이라고 충고했다.
"다단계 학생들이 오면 라면밖에 안 사간다. 여기서 돈 버는 건 정말 소수다. 돈 잘 번다고 홍보하지만 사실 그렇게 홍보하는 사람들도 결국 여기서 라면 먹는 건 똑같다."
논현동에서 6년째 꽃집을 운영하는 이점숙씨에 따르면, 매일 아침저녁으로 꽃집 앞 초등학교에서 이색적인 풍경이 벌어진다고 한다.
"아침, 저녁 9시를 전후로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초등학교로 우르르 왔다가 좀 지나면 골목 곳곳으로 사라진다. 여기엔 대학교도 없어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단계 합숙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논현동에서 만난 다단계 대학생들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곧 큰돈을 만지게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논현초등학교에서 만난 또 다른 다단계 판매원은 대학생인 기자에게 이렇게 권유하기도 했다.
"한번 상담 받아봐라. 열심히 아르바이트 해봐야 시급 3000원 넘기 힘들다. 상담 받고 나서 하기 싫으면 나오면 되고, 좋으면 하는 거다."
과연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그들의 꿈들이 '환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