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리뷰의 인물은 역시 하찌 님의 리퀘를 받아!
'베르사이유의 꽃', '비운의 왕비' 등등으로 불리운 실존인물.
살아 생전에도, 사망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연으로 구설수에 오른 유명인물.
마리 앙투아네트- 이시다!
[만화 작품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위주로 리뷰하도록 하겠다]
마리 앙투아네트(마리 앙뜨와네뜨) [1755.11.2~1793.10.16]
프랑스왕 루이 16세의 왕비
국적 프랑스/활동분야 정치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빈에서 출생. 1770년 14세 때 정략결혼으로 1774년 왕비가 되고 베르사유 궁전의 트리아농관(館)에서 살았으며, 사교·관극(觀劇)·수렵·미술·음악 등의 모임에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어 작은 요정(妖精)이라고 불림. 검소한 국왕 루이 16세와는 대조를 이루어 ‘적자부인(赤字夫人)’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으며, 1785년의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으로 인해 명성에 상처. 또한 스웨덴의 미남 무관 페르센을 비롯하여 몇 사람의 연인이 있었음.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혁명으로, 왕과 그 일족은 1789년 10월 6일 파리의 왕궁으로 연행되어 1792년 8월 10일까지 시민의 감시 아래 불안한 생활. 그 사이 그녀는 퇴영적(退的)이며 선량한 루이 16세를 격려하기도 하고 왕가의 안녕을 위해 미라보 매수에 일익을 담당하기도 하였으나 1792년 8월 10일의 시민봉기로 탕플탑(塔)에 유폐, 국고를 낭비한 죄와 오스트리아와 공모하여 반혁명을 시도하였다는 죄명으로 1793년 10월 16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왕과의 사이에 4명의 자녀가 있었으나, 장녀 '마리 테레즈'만이 성인이 되어 훗날 당글렘 공비(公妃)가 되었으며, 차남 루이 17세는 1795년 이후 생사 불명이 되었다.
- NAVER 백과사전에서 발췌

▲▲ 마리와 그의 자녀들
▲ 마리 앙투아네트가 착용했던 귀걸이
마리 앙투아네트, 그녀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프랑스 왕실에서 가장 기구한 팔자를 타고났다는 여인,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녀가 어째서 '비운의 왕비'로 불리는지 잘 모르겠다.
뭐- 그건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일단 그녀의 이름에 대한 것부터 논해 보자! :)
역시 NAVER 지식 KIN에서 뽑아온 내용이다.
1: Jos
phe-Jeanne-Marie-Antoinette
2: Marie-Antoinette-Josephe-Jeanne D'Autriche-Lorraine
3: Maria Antonia Josepha Joanna von Osterreich-Lothringen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음과 같은 원어 이름으로 불리우는데, 프랑스식 발음을 한글로 적으면
1: 조제프 쟌느 마히(마리) 앙뚜와네뜨
2: 마히(마리) 앙뚜와네뜨 조제프 쟌느 도트히쉬 로헨느
3: 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한나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 [모국 오스트리아식 이름]
원래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의 딸입니다. 그래서 처녀적 이름은 'Maria Antonia Josepha Johanna von Österreich-Lothringen(마리아 안토니아 요제파 요하나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입니다. 폰 외스터라이히-로트링겐에서 '외스터라이히'는 어머니의 나라인 '오스트리아'를 가리키고, '로트링겐'은 아버지의 출신지인 '로렌'을 가르킵니다. 이 이름이 너무 길어서 보통 처음 두 이름만으로 불립니다.
'마리아 안토니아' 이 사람이 루이 16세에게 시집가면서 이름이 프랑스식으로 바뀌죠. 그래서 'Marie-Antoinette-Josèphe-Jeanne D'Autriche-Lorraine(마리-앙투아네트-조제프-잔 도트리슈-로렌'이 됩니다. 이 이름은 위의 독일어 이름을 프랑스어로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Josèphe-Jeanne-Marie-Antoinette는 이름의 순서를 조금 바꾼 것뿐입니다. '마리아 안토니아'를 프랑스어로 옮기면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죠.
호오:) 이름도 알고 보니 재미있구나-
캔버스-유채로 그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과,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 작품에서 그려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캐릭터. 물론 아래 그림은 다소 어렸을 때의 그림이지만, 은근히 분위기가 닮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것은 다를 것이다), 프랑스 역사나 왕실 이야기, 복식 등에는 관심이 없는 터라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에서 나온 앙투아네트의 얼굴이나 의상이 얼마나 고증을 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에 당당하고 천진난만하면서도 화려함을 즐기는 자유분방한 여성" 의 앙투아네트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냈다.
사실 앙투아네트는 내게 있어서 좋지도 싫지도 않은- 걍 이런 인물이 있다는 인식 정도의 인물이다.
어렸을 때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TV 애니메이션으로 시청했을 때도 마리 앙투아네트보다는 주인공 오스칼의 카리스마에 주목할 정도였으니.(그런데 사실 오스칼이 마리의 경호원으로 있었을 때가 나는 좋았다; 후에 곰팡내나는 총각부대로 자진해서 갔을 땐 "싫어어어어" 라고 외쳤던-┍;)
일단 내가 어째서 '비운의 왕비'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글을 쓰려고 했으나 역시 NAVER 지식 KIN을 뒤지다 보니 내 생각과 딱 들어맞는 글이 보여 걍 그것을 보여드리도록 하겠다;←
[전략]
마리 앙투아네트가 유명한것은 프랑스 혁명의 과정에서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죠.
프랑스 혁명은 사상혁명이었습니다. 시민혁명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불리웁니다.
쉽게 말해 계급과 왕이 존재했던 봉건시대에서 시민과 사유재산이 등장하는 시대로 변해가는 중심이 바로 프랑스 혁명입니다. 이 때 마리 앙투아네트가 등장하는것은 그녀가 보여준 당시의 행동이 봉건시대의 폐해를 보여주기에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랄까요.
마리 앙투아네트는 많이 알려진대로 사치가 굉장히 심했다고 합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도박 사건과 목걸이 사건은 그녀가 많은 민중에게서 미움을 받는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어찌보면 공포 정치의 희생양이라고 볼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는 시대가 그녀의 죽음을 필요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일화 중에 많이들 알고 있는 내용으로 농민들이 먹을 빵이 없다고 농성을 하자 "빵이 없으면 쿠키를 먹으면 되잖아?"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직접 말했다기보다는 그녀의 악행을 부추겨 알리기 위해 지어진 말이라고 봅니다. 쿠키가 아니라 케익이다, 케익도 아니고 고기다 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위의 내용은 루소의 참회록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발언이 아닌 어느 공주의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 라는 내용이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로 옮겨져 온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쨌건 마리 앙투아네트의 국민을 돌보지 않고 부린 사치, 혹은 프랑스 혁명 도중 외국과 내통해 정보를 빼돌린 일, 혹은 루이 16세를 움직여 바르지 못한 정치를 한 일 등등 그녀에 대한 많은 부정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었건 지어진 얘기건간에 그녀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지 못했고 시대가 요구하는 국왕비의 모습을 취하지도 못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사치는 루이 14세 때 베르사유 궁전을 짓기 시작하면서 이미 시작되었던 문제이지 특별히 마리 앙투아네트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사치로 인해 처형당했다라고 단순히 보기 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파악한 뒤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챙기면서 그녀는 점점 왕비로서의 긍지를 잃었고 민중은 그녀를 더 이상 국왕비로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존경해야 할 국왕비가 아닌 제거해야 할 혁명대상으로 보았을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가들에게는 그런 그녀의 행동이 혁명가들을 단결시켜 주는 좋은 계기가 된 셈이죠.
결론적으로 혁명으로 변하는 시대상에서 마리앙투아네트는 그녀가 취했던 행동들 때문에 결국 단두대까지 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good_boy (2004-04-13 20:47 작성)
▲ "빵이 없으면 과자를 먹으면 되잖아♡" 라는 명언을 남긴
또 하나의 요주의 인물, 달기(봉신연의)
그녀가 처음부터 국민들에게 "악녀"적인 존재로 보인 것은 아니었다. 처음 프랑스로 시집왔을 당시, 프랑스 국민들은 천사와도 같이 아름답고 상냥한 그녀를 열렬히 환호하며 환영했다. 원작 만화에서도, 그 때의 앙투아네트를 그리며 "그녀가 그 때의 그 마음가짐을 잃지만 않았어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ㅡ라고 언급했었다.
그 때의 앙투아네트는, 백성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벅찬 가슴과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나의 백성, 이 나라에 부끄럽지 않은 왕비가 되겠다" 고 다짐한 바 있었던 것이다.
또한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녀의 남편 루이 16세는 자유분방하고 아름다운 그녀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그 뿐만이 아니라 왕좌에도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다).
그가 조금 더 강인하고 카리스마 있는 장부 형의 남성이었다면, 조금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카리스마적인 인물이었다면,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할 만한 인물이었다면 그녀를 바꿀 수도 있지 않았을까.(물론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 자신이 외모로 인해 페르젠 등에게 끌렸으므로)아내가 남편의 인격을 바꾼다는 이야기도 맞을 수 있을테지만, 남편 역시 아내의 인격을 바꿀 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물론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치, 도박, 부도덕한 생활(불륜 등, 그게 아무리 육체적 관계가 없었더라도), 유혹에 젖기 쉬운 조랑말 같은 아내를 엄하게 *다스려야 하는 것도 군주의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자신의 아내조차도 추스리지 못하면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까?
(그런데도 그는, "나는 너무나 부족하여 당신과는 어울리지 않소" "당신은 너무나 아름다워 가까이 하기 부담스럽소" 라며 자격지심에 휩싸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아내를 붙잡지 못했다)
어쨌든 마리 앙투아네트를 그런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그녀 자신에서부터 주위의 인물들의 성격, 그리고 상황들ㅡ 이 모든 것이 비극적으로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시 그녀 스스로에게도 잘못은 있었으며, 결국 그녀는 뿌린 대로의 대가를 거둔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는 알다시피 수많은 일화가 존재하는데, '푸른색 다이아몬드의 저주' 역시 유명한 이야기이다.
존 밥티스트 태버니어는 16세기에 호프라는 이름의 112.6캐럿짜리 푸른색 다이아몬드를 인도에서 프랑스로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어디서 그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는지 밝히지 않았지만 소문에 따르면 미얀마 만달레이의 어느 사원에 있는 종교적 우상의 눈에 박혀 있던 것이라고 한다.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이 태버니어라는 사람은 그 보석을 프랑스에 가지고 온 뒤, 그 당시에 가장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팔았다.
저주의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태버니어는 후에 사업에 실패하고 러시아에서 죽었다고 한다. 반면 루이는 제명대로 살았고 후손들에게 그 보석을 물러주었다. 루이 16세가 보석을 물러받았을 때, 그는 아내인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그것을 보여주었다. 후에 이들은 '프랑스 혁명' 이 나서 기요틴(단두대. 물론 기요틴은 기요틴이란 박사가 만든 작품이여서 기요틴이라고 한것입니다.)에서 목숨을 잃는 비운을 당했다.
추측된 것으로는 이 다이아몬드는 혁명기간에 도난 당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사라진 이 보석은 바다 건너 영국 런던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러나 처음에 112.5캐럿짜리 푸른색 다이아몬드는 런던에서 드러났을때 44.5캐럿으로 크기가 줄어 있었다고 한다.(정제한 것 같다)
이 다이아몬드를 산 사람은 은행가 헨리 호프였다. 그는 그 특별한 '저주'를 받지 않고 제명대로 살았다. 그리고 그 다이아를 가족들에게 물러주었고 역시 저주는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호크의 아내 메이 요어는 다이아가 자신에게 불운을 가져왔다고 투덜거려댔고, 요어는 투자 잘못으로 간난에 시달리다 1938년에 죽었다. 호프가족에게서 받은 소유자들은 불운을 겪게 되었다. 그 다음 소유자와 또 그 다음 소유자는 둘 다 보석상이었는데 한 사람은 파산했고 다른 한 사람은 자살했다. 바야흐로 다이아몬드의 저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듯했다.
그 다음 소유자인 러시아의 귀족은 러시아의 혁명가에게 칼을 맞고 죽었다. 또 그것을 소유했던 그리스 보석상은 절벽에서 떨어져 주었으며 터키의 술탄은 권좌에서 물러났다.
나중에 카르티에라는 사람이 미국의 언론재벌 상속인인 에드워드 B.메클린에게 그 보석을 팔았다.
불운은 끝이 아니었다. 메클린의 외아들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메클린은 자신의 아내인 베벌린과 이혼하고 나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에벌린 메클린은 재난이 계속되어도 그 다이아를 계속 지니고 있었다. 1946년에는 메클린의 딸이 자살했다. 이듬 해 에벌린 메클린은 나이보다 약간 일찍 죽었다(나이에 비해).
메클린 집안으로 인해 호프 다이아몬드가 저주를 부른다고 널리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추측한다. 그 다음에 뉴욕의 보석상인 해리 윈스턴은 그 보석을 구입하여 몇년간 전시했다가 1958년에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다. 결국 그 다이아는 그에 어울리는 화려한 팡파레를 받지 못한 채 뉴욕에서 워싱턴 시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행히 그 다이아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렇게 다이아는 3국 여행을 떠나면서 (프랑스,영국,미국) 이제는 편한히 잠을 잘 수 있는 휴식처로 옮겨졌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다이아가 소유자들에게 불운을 주는 그런 물건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중간 사이사이에 호프나 에벌린, 해리 윈스턴은 자신에게 아무런 불운을 겪지 못했다. 에벌린 같은 경우는 자신이 소유하는 자식이나 아들이 죽었지, 자신에게서는 직접적으로 나이보다 좀더 일찍 죽은 것 외에는 직접적으로 불운의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어쨌든 '저주의 다이아몬드' 이야기는 거짓인 것이 확실하고, 위에 소개된 일화들마저 전혀 뜬금없는 이야기들이라는 것까지 밝혀졌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예전에 TV에서 했던 [백만불 미스테리]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위 설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조사했으나, 결과적으로 저 사례들이 모두 허무맹랑한 거짓임이 드러났다고 한다.(직접 봤었다-┍;)
이렇듯, 역사는 때로 터무니없는 거짓을 전하기도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로 인한 많은 구설수 중 하나로, 흥밋거리 위주의 가십으로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어쨌든 그녀는 지나치게 순진했다. 그렇게 순진했던 만큼 유혹받기도 쉬웠을테고, 더구나 호기심 많고 활발하며,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그녀가 저지른 만행의 다수는 주위에서 부추긴 일도 있을 것이다.
우리도 친구들과 쇼핑할 때 그러지 않는가?(여자들에게만 해당;)
예쁜 옷이나 구두를 발견했을 때ㅡ
오, 예쁘다. 하지만 난 별로 사고 싶지 않고, 돈도 없고,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 친구한테 어울리네. 저 녀석 돈도 많은데.
야, 질러라!!!←
질러! 질러! 질러!
본인이 돈을 쓸 때는 신중하게 고민하는 주제에. 친구가 물건 하나를 집어들고 망설일 때면 옆에서 부추긴다. 질러라!!!
...어쨌든 마리의 경우 그것이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고, 아무리 주위에서 부추기는 일이 있어도 스스로 주체성을 가지고 행동했어야 했다. 초기에는 "어머나, 아름다우시네요" "잘 어울리는 옷이에요" 등 그녀의 외모로 인해 그런 행동들이 용서가 되었지만, 그것이 반복되면서 반대되는 입장의 사람들을 기아에 허덕이도록 만들게 되면서부터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으며 용서해서도 안 된다.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왕비'라고는 생각하지만, '비운의 왕비'라고까지 생각해야 하나? ㅡ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정략결혼으로 생각에도 없던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 이외에는, 도무지 비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점들 뿐이다. 목걸이사건(목걸이 사건으로 인해 잔느는 앙투아네트의 가십을 책으로 써서 내기도 했으며, 만화 내에서는 그녀의 레즈비언 상대로 오스칼-가상인물-이 꼽히기도 했다) 등도 그녀가 평소에 처신을 잘했더라면 얼마든지 가볍게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다.←내가 프랑스 역사에 무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일단 본인은 [비운의~] 하면 마리 앙투아네트보다는 [제인 그레이]가 생각난다.
그야말로 그녀는 기구한 운명의 여왕이었다. 뭐, 제인 그레이 리뷰가 아니니 패스하겠다.
궁금하시다면 각자 찾아보시길 추천한다:)
▲ 필자가 꼽는 최고의 비운녀, 제인그레이 [9일간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는 '페르젠'과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드라마틱하게 다루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내가 보기엔 불륜은 불륜이다. -_- 그 정도의 차이일 뿐, 부정한 사랑은 어떻게 해도 미화시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사람 마음이지마는...
▲ 페르젠과 마리, 오스칼의 첫 대면. 아래 그림은 흉폭하게 날뛰는 말을 탄 마리의 모습이다.
(물론 전부 논픽션인지는 모르겠다)
▲ 익후, 설마 좌측의 저 무시무시한 입술을 가진 인물이 페르젠인 건 아니겠지-┍
(앙투아네트의 메두사 같은 머리 하며;; 혹시 베르바라 안티가 그린 거 아니야?!)
마리와 페르젠의 눈물겨운 사랑
어익후
어익후
어익후
쿠월렉
...아름다운 그녀는 별 것 아닌 행동 하나하나로 많은 남성을 매혹시켰던 것 같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였을 때, 그녀의 사랑을 탐낸 맛이 간 성직자(주교였나, 기억은 안 난다-┍)에 대한 일화도 만화에서 다뤄졌었다. 또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시 그녀에게 매혹되었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만화에서도 매우 짧게나마 다루어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차르트가 어렸을 때,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직 오스트리아의 공주였을 때(공주가 모차르트보다 한 살 위였다)의 이야기이다. 1762년경 음악계의 신동으로 유명했던 그는 빈 궁전에 초청받아 연주를 하러 갔다. 그 빈 궁전에서 모차르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훌륭하게 연주회를 끝냈고, 앙투아네트 공주를 향해 달려가는데(이미 반해 있었군-┍;) 아직 어린 터라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것을 공주가 일으켜 주었는데, 이 때 어린 모차르트는 "커서 공주와 결혼하겠어요" 라는 말을 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는 이야기.
다른 일화로는, 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가 신동 모차르트에게 원하는 선물을 내려 주겠노라고 하며 무엇을 원하는가고 물었을 때, 그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리켰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어디까지가 픽션이고 논픽션인지 나는 모른다-┍(무식해서;)
어쨌든 모차르트는 마리앙투아네트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나, 앙투아네트의 오빠인 요제프 2세와도 잘아는 사이였다:)
- 지식 KIN 에서 인용
▲ 자녀들에게는 아름답고 인자한 어머니였던 그녀,
그러나 그녀로 인해 가련한 루이 17세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다.
(루이 17세의 죽음에 대해서는 생사가 확실치 않아 논란이 많았으며, 지금도 그렇다.)
그녀를 프랑스 왕실과 결혼시키면서, 현명한 여성 주군 테레지아는 자신의 막내딸이 그러한 정략결혼의 희생물로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시집보내게 된다.
테레지아는 자신이 우려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끝까지 앙투아네트를 자신의 가까운 곳에 두고 교육시켰고, 시집을 보낸 뒤에도 계속해서 편지를 쓰거나 가정교사를 보내 상황을 알아보게 시키는 등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려고 했다.
ㅡ그러나 선견지명으로 앞을 내다봤던 테레지아도 결국 딸의 자유분방한 행동들을 전부 막지는 못했다. 결국 앙투아네트의 죽음만을 두고 엄격하게 말하자면, 그녀의 노력은 헛수고였던 것이다.


▲ 유명한 또 하나의 만화, '쎄느강의 별'에도 마리 앙투아네트는 탕플 탑에 갖힌 채로 등장한다.
(앙투아네트를 본 것은 그 부분 뿐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내가 앙투아네트를 좋게 봤던 것은 딱 한 번, 시아버지인 루이 15세의 애첩 듀바리 부인에게 끝까지 대항하려 했던 모습이었다. 비록 시아버지의 국왕으로서의 뜻을 꺾지 못하고 그녀 앞에 무릎꿇었지만, 분노와 원통함을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에서는 그것을 지켜본 오스칼과 같은 감동을 받았다. ㅡ굳이 거기에 한 번을 더하자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루이 16세의 비로서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얼굴을 내비쳤을 때, 백성들의 환호에 감동하여 스스로 다짐하는 장면에서였다.
...그러나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방팔방으로 설쳐댄 그녀의 그 이후부터의 모습은 나를 안타깝게 만들었고, 끝내는 실망시켰다.
내가 그녀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녀가 그렇게 단두대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다는 점 자체보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스스로의 다짐을 기억하여 경박한 행동을 자제했다면 적어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ㅡ 하는 것이다.
성격상으로 본다면 나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엄청나게 싫어해야 맞겠지만, 그녀는 이미 그에 대한 벌을 받은 인물이므로 새삼스럽게 이제 와서 욕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 '좋지도, 싫지도 않은 인물' 수위에 머물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무도 두렵지 않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다짐을 망각하지 않고 스스로 옳은 방향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ㅡ 라는 교훈을 준 인물이다.
※ 20060713 木
네이버 정보@today 공개로 인해, 링크 스크랩 허용을 본문 스크랩 허용으로 바꿨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60715 金
많은 분들께서 랑유가 리뷰한 앙투아네트의 모습이 크게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시엔 어느 정도 왜곡되었다고는 생각했지만 알면 알수록 상당히 심하더군요;ㅂ;
일부러 모르는 일화들도 제시해 쓰시며 앙투아네트에 대해 설명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역사상 실존인물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여기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마리아 테레지아까지 포함해서)은 99% 만화에서 리메이크된 인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