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로리스턴 가의 괴사건
솔직히 말해서,
나는 홈즈의 이론이 척척 들어맞는 증거를 눈앞에서 지켜보고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홈즈의 분석력을 인정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홈즈가 나의 기를 죽이려고 미리 연극을 꾸며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를 속여서 무슨 이득을 볼 것인가를 생각하니 역시 신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홈즈를 새삼스럽게 바라보니,
그는 막 편지를 읽고 나서 멍한 눈이 되어 있었다.
아마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추리가 가능했나?”
홈즈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슨 추리?”
“아까 그 남자가 해병대 중사로 제대했다는 것 말일세.”
“난 지금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네.”
홈즈는 내뱉듯이 쏘아붙였다가 곧 웃는 얼굴이 되었다.
“아차, 실례했네. 생각하는 일에 방해가 되었기에 그만…….
그렇다면 자네는 그가 해병대 출신이라는 것 정도도 몰랐단 말인가?”
“물론 짐작도 못 했네.”
“그런가? 나로서는 알고 모르고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설명을 할지가 더 어려운걸.
자네도 마찬가지겠지만, 2에 2를 더하면 4가 된다는 이유를 설명하라면 그 답을 뻔히 알면서도 어떻게 설명을 하겠나?
그 남자는 길 저쪽에 있었지만 손목에서 팔에 걸쳐 뚜렷한 닻의 문신이 있었네.
닻의 문신이라면 바다와 관계가 있지.
거기에다 몸의 동작이 절도가 있는 것이 신병을 호되게 다루는 고참병 냄새가 풍기더군.
중요한 건 그 콧수염일세.
해군에선 그런 카이저형의 콧수염을 기르지 않아.
그건 해병대 특유의 콧수염이지.
거기에 나이는 이미 중년에 접어들었잖나. 그러면 뻔하지 않은가.
장교도 아니고 능구렁이 상사급도 아니면,
중사 정도라고 단정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게 아닌가?”
나는 소리쳤다.
“두 손 들었네!”
“아니 대수롭지 않은 일일세.”
홈즈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내가 항복했다는데 대해서는 싫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나는 방금 범죄다운 범죄자가 없다고 했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구먼. 이걸 읽어 보게나.”
홈즈는 편지를 나에게 내밀면서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편지를 읽어보고는 신음하듯 말했다.
“허!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니군.”
홈즈는 침착하게 말했다.
“평범한 사건이 아닌 것 같네. 어디 한번 소리 내어 읽어 주겠나?”
나는 시키는 대로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셜록 홈즈 귀하.
지난 밤 런던 브릭스턴 로에서 떨어져 있는 로리스턴 가든 3번지에서 까다로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오늘 새벽 2시경, 같은 번지의 빈집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순찰중인 경관이 발견하고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살펴본 결과.
현관문은 열려 있는 채였고,
가구 하나 없는 응접실에 한 남자의 시체가 쓰러져 있었습니다.
옷차림은 말쑥했는데 주머니에는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시 이녹 드리버.’라는 명함이 몇 장 들어있었습니다.
소지품을 강탈당한 흔적은 없었고,
그 남자가 죽은 원인을 나타낼 만한 증거물도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실내에는 몇 군데 핏자국이 있습니다만,
시체에는 상처 하나 없습니다.
그 남자가 어떤 이유로 빈집에 들어갔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사건 전체가 안개에 싸인 느낌입니다.
오늘 오전 중에 이 집에 와주신다면 나는 그 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당신에게서 응답이 있을 때까지 현장은 그대로 보관하겠습니다.
별 지장이 없으시다면 와주시기 바라며,
못 오시게 될 경우엔 차후에 자세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고견을 들려주시면 크게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레그슨 드림.
홈즈가 설명했다.
“그레그슨이란 사람은 경시청에서 제일가는 민완 수사관이라네.
이 사람과 레스트레이드는 경감급에서는 알아주는 사람들이지.
두 사람 모두가 빈틈없고 정력적이지만,
아깝게도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네. 게다가 두 사람의 사이는 경쟁의 불꽃이 튀기고 있어.
두 사람이 제각기 이번 사건에 관여한다면 상당한 접전이 벌어질 걸세.”
나는 홈즈가 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급해졌다.
“자네 한가하게 이야기할 틈이 어디 있는가? 곧 마차를 불러옴세.”
“난 아직 가보겠다고는 말한 적이 없는데?”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기다리던 기회가 아닌가?”
“자네는 그렇게 말하지만 냉정히 말해 내가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나?
가령 내가 해결한다 해도 그 공로는 틀림없이 그레그슨이나 레스트레이드 경감의 것이 될 것이 아닌가?
공무원이 아닌 사람의 비애라는 거지.”
“그러나 간절히 부탁해왔는데…….”
“그야, 부탁해 오기 마련이지.
나에게는 못 당한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으니까.
머리를 숙이고 기어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일세.
남에게 부탁할 거라면, 그 자리를 그만두어야 하는 데도 말일세.
어쨌거나,
잠시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나는 내 방식대로 조사해 보기로 하겠네.
큰 소득은 없겠지만,
그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는 있을 게 아닌가. 자. 가세.”
홈즈는 급히 외투를 걸쳐 입으며 말했다.
“자, 자네도 모자를 쓰게.”
“아니, 나도 함께 가자는 말인가?”
“뭐 달리 할 일도 없다면.”
그로부터 1분 후에 우리는 마차를 타고 브릭스턴 로를 향해서 달려가고 있었다.
짙은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아침이었다.
멀고 가까운 집들이 회색 장막에 쌓인 듯 멀수록 희미했다.
홈즈는 활기에 차서 내내 바이올린 연주에 관한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한편 나는 생전 처음으로 대면하게 될 음산한 사건과 침침한 날씨 탓으로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푸념을 했다.
“자넨 지금 다루게 될 사건에 대해서는 생각도 해보지 않나?”
“아직 아무런 자료도 없지 않은가?
구체적인 증거가 갖추어지기도 전에 추리를 했다가는 실수를 범하기 십상이지. 판단을 흐리게 하니까.”
나는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료는 곧 입수되겠군. 지금 브릭스턴 로를 지나고 있네. 아, 저것이 바로 그 빈집이 아닌가?”
“그런 것 같군. 마부, 마차를 세워 주시오!”
그 집까진 아직 100m는 남아 있었으나,
홈즈가 끌어내리는 바람에 우리는 그 집까지 걸어가야 했다.
로리스턴 가든 3번지 일대는 보기에도 음산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슬그머니 겁을 먹게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한길에서 좀 떨어진 곳에 네 채의 집이 나란히 서 있는데 그 중 두 집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나머지 두 집은 비어 있고, 문제의 집은 그 중 하나였다.
인기척도 없는 음침한 창이 세 줄로 나란히 달려 있고,
세를 놓겠다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도로에서 집까지의 사이는 작은 정원이 가꾸어져 있었고,
아직 어린 나무가 여기저기 심어져 있었으며,
자갈이 듬성듬성한 흙길이 그 사이로 나 있었다.
길 언저리는 어젯밤의 비로 질펀했다.
집 둘레에는 목책이 달린 높이 1m가량의 벽돌담이 둘러져 있고,
문 쪽에 체격이 큰 순경이 한 명 서서 버티고 있었으나,
그의 주위에는 한가한 사람이 몇 명 서성거리며 집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조금이라도 보려고 목을 길게 빼고 있었다.
나는 홈즈가 곧 집 안으로 들어가 수사를 시작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홈즈는 그런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보는 눈으로는 일부러 딴전이라도 피우는 것처럼 도로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땅이나 하늘, 그리고 길 건너 쪽의 집과 울타리 같은 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런 관찰을 끝내더니,
이번에는 집으로 통하는 길에서 되도록 자갈과 옆의 잔디를 골라 걸어가며 땅 위를 살펴보았다.
도중에 두 번 걸음을 멈추었는데,
한번은 극히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이며 뭐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자갈이 섞인 진흙길에는 많은 경찰 관계자들의 발자국이 나있어, 그런 상태에서 무슨 단서가 잡힐지 나로서는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홈즈의 관찰력이 얼마나 예리한가를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홈즈의 눈으로는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을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현관에서 우리는 수첩을 손에 든 키가 크고 흰 얼굴에 갈색 머리를 한 남자의 영접을 받았다.
그는 집안에서 달려 나오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홈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잘 오셨습니다. 모든 상황을 손대지 않고 보존해 두었습니다.”
그 말에 홈즈가 정원의 흙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러고도 보존을 잘 해두었다는 것입니까?
설사 물소 떼를 풀어놨다고 해도 저 지경은 되지 않았을 거요!
하지만
당신도 보통 수준은 넘으니까 저 지경이 되기 전에 살펴볼 것은 살펴보셨겠지,
그레그슨 경감?”
그레그슨 경감이 말을 더듬었다.
“시, 실은 집 안의 일에 정신이 팔려서…….
동료인 레스트레이드 경감도 와 있길래 밖의 일은 그에게 맡겨두었지 뭡니까.”
홈즈는 흘끔 나에게 시선을 보내고는 심술궂은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나 레스트레이드 경감과 같은 베테랑급 두 분이 진두지휘를 한다면 다른 사람은 별로 얻는 게 없겠는걸요.”
그레그슨은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였는지,
두 손을 비비며 자랑하듯 말했다.
“가능한 한 모든 일을 실수 없이 진행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상당히 이상한 사건이라 홈즈 씨의 취향에도 맞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홈즈가 엉뚱한 질문을 했다.
“그런데 경감은 영업용 마차를 타고 이 곳에 왔소?”
“아뇨.”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방 안을 구경해 봅시다.”
홈즈는 집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 뒤를 따르며,
경감은 홈즈가 왜 마차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먼지가 쌓인 판자로 된 복도가 곧장 부엌과 세탁실 쪽으로 뻗어 있었다.
복도의 좌우로 한 개씩 문이 있고 그 중 하나는 여러 주 동안 닫혀진 채로 있었던 것 같았다.
다른 하나는 식당으로 통해 있었는데,
그곳이 이번에 일어난 불가사의한 사건의 현장이었다.
홈즈가 먼저 들어가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그 곳은 크고 네모진 방인데, 가구가 하나도 없어 더욱 넓어 보였다.
벽에는 싸구려 벽지로 도배되어 있었는데,
곰팡이가 슬어 얼룩진 곳이 있는가 하면, 군데군데 벽지가 벗겨져 누런 흙벽이 보이고 있었다.
문의 반대쪽 벽에는 흰 인조 대리석으로 된 벽난로가 있고,
그 모서리 위에는 타다 만 붉은 양초가 서 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유리창은 먼지가 뽀얗게 끼어.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마저 희미한 것이 모두가 회색으로 침침해 보였고,
그 침침한 느낌은 방안에 가득한 먼지로 더욱 심한 것 같았다.
그러한 세부적인 것은 나중에 가서야 내가 관찰한 것이고,
방안에 들어선 순간에는 바닥에 누워 퀭한 눈으로 천장을 노려보고 있는 시체에 정신이 팔렸던 것이 사실이다.
시체는 43~44세 가량에 어깨가 넓은 중키의 보통 체격으로 심한 고수머리에 턱에는 짧은 턱수염이 나 있었다.
복장은 고급 양복지로 재단한 검은 윗도리에 조끼까지 받쳐 입었고,
바지는 엷은 밤색, 와이셔츠는 그 소매와 깃이 때묻지 않은 새 것이었다.
그리고 곁에는 손질이 잘된 실크 헤드가 뒹굴고 있었다.
손을 움켜쥐고 팔을 길게 뻗었으며 발은 꼬여 있고,
죽음의 고통이 심했던 것 같았다. 굳어진 얼굴에는 두려움과 증오의 표정이 서려 있었다.
그 무섭게 일그러진 얼굴은 이마가 좁고 콧등이 낮으며,
턱이 비어져 나온 모습에다,
몸을 구부린 부자연스러운 자세 탓으로, 원숭이와 아주 닮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여러 시체를 보아왔지만 그 시체만큼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시체는 처음이었다.
그때
여전히 깡마르고 족제비 같은 인상의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입구 쪽에 나타나 홈즈와 나에게 아는 체를 했다.
“이번 사건은 꽤 떠들썩할 것 같습니다. 나도 경찰 밥을 먹을 만큼 먹었지만, 이런 사건은 처음입니다.”
그레그슨 경감이 말했다.
“전혀 단서를 못 잡겠는걸.”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맞장구를 쳤다.
“응, 전혀.”
홈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시체 옆에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명히 상처는 없습디까?”
홈즈가 사방에 튄 핏자국을 살피며 묻자 두 경감이 동시에 대답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피는 범인의 것이겠군.
하기야 타살이라고 가정해서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1834년에 유트레히트에서 있었던 반 얀센 살해 사건이 생각나는데,
그레그슨 경감은 그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아뇨.”
“그럼 공부를 겸해서 사건 기록을 읽어 보시지요.
참고가 될 겁니다
. 대개의 범죄는 비슷비슷한 것이 있기 마련이니까.”
홈즈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시체를 만져보고,
눌러보고, 단추를 풀거나 검진을 해보는 등 민첩하게 손가락을 놀렸다. 눈에서는 무엇인가에 정신이 팔린 표정도 읽을 수 있었다.
그의 동작은 지나치게 빨라,
신중을 기한다는 느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홈즈는 마지막으로 시체의 입 언저리를 냄새 맡아 보고는,
에나멜가죽 구두 밑창을 살피고 나서 물었다.
“시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나요?”
“우리가 조사하는데 필요한 이상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시체는 운반해 가시오. 이제 더 살펴볼 것도 없으니.”
그레그슨 경감은 들것을 준비해 놓았던 모양인지 부하에게 시켜 거기에 시체를 올려놓고 운반토록 했다.
그런데 시체를 들어올렸을 때 반지 한 개가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레스트레이드가 그것을 주워들고,
이상하다는 듯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거, 여자 것이로군. 여자의 결혼반지가 틀림없는걸.”
그리고는 반지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내밀어 보였다.
우리는 레스트레이드를 둘러싸고 그것을 눈여겨보았다.
장식이 없는 그 금반지는 결혼반지가 분명했다.
그레그슨이 말했다.
“사건은 더욱 얽히고설키는군. 그러잖아도 복잡했는데…….”
그 말을 홈즈가 받았다.
“그 덕분에 오히려 사건이 간단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살펴본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소.
그보다도 주머니에는 어떤 것이 들어 있었지요?”
그레그슨 경감이 주머니 속의 물건을 꺼내어 늘어놓은 창가로 걸어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게 전부입니다.
런던의 바로드 회사 제품의 일련 번호 97163의 금시계 하나,
시계에 매달린 사슬, 이것은 무게가 나가는 순금입니다.
그리고 불도그의 머리 장식이 달리고,
그 눈에 루비를 박은 금으로 된 넥타이 핀, 러시아제 가죽 지갑, 지갑 속에는
‘미국 클리불랜드시 이녹 드리버.’
라고 인쇄된 명함 몇 장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셔츠에 수놓인 E.D라는 이름의 머리글자와 일치합니다.
돈지갑은 보이지 않고 푼돈으로 7파운드 13실링.
그 밖에
문고판 소설 한 권,
첫 장에 조셉 스탠거슨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편지가 두 통,
한 통은 받을 사람이 드리버로 되어 있고,
다른 한 통은 스탠거슨 앞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소는?”
“런던 스트랜드 가의 아메리카 환전소 유치로 되어있습니다.
둘 다 과이언 회사에서 보낸 것으로, 내용은 리버풀에서 출항하는 기선의 항해 예정을 알려 온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이 피살자는 뉴욕으로 돌아갈 참이었나 봅니다.”
“그 스탠거슨이란 사람에 대해서 뭔가 조사해 봤습니까?”
그레그슨이 대답했다.
“곧 손을 썼습니다.
신문에 광고를 내게 했고, 환전소에도 부하를 보냈습니다만,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미국 클리블랜드 시에는 조회를 했나요?”
“오늘 아침에 전보를 쳤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이번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무엇이든 참고될 만한 사항을 알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단서가 될 것 같은 사항을 지적해서 조회는 하지 않았습니까?”
“스탠거슨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그밖에 이 사건의 핵심을 찌를 만한 사항은 없을까요?
다시 한 번 전보를 쳐보면 어떨까요?”
“필요한 것은 모두 조회했소.”
그레그슨이 내지르듯이 말했다.
못마땅한 눈치였다.
홈즈는 혼자 실실 웃으며 뭐라고 말을 하려 했다.
그때 사건 현장에 남아 있던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얼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다가왔다.
“그레그슨 경감, 지금 극히 중대한 것을 발견했네.
내가 벽을 세심하게 살펴보았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큰 실수를 할 뻔 했는걸.”
그의 표정에는 그레그슨보다는 자기가 한 수 위라는 자만심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자, 모두들 이리로 와보십시오.”
그가 앞장서서 사건이 일어난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뒤따라 들어가 보니,
시체를 치워서 그런지 방안이 한결 밝아진 느낌이었다.
레스트레이드는 구두 바닥에 성냥개비를 문질러 불을 켜서는 그것을 구석진 벽으로 가져갔다.
“여길 보십시오.”
그의 목소리는 승리감으로 아주 의젓했다.
벽지가 여기저기 벗겨져 있다는 것은 앞서 이야기한 바 있으나,
그곳은 벗겨진 부분이 다소 커서,
거친 흙벽이 누렇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흙벽에 다음과 같은 글씨가 피처럼 붉은 것으로 쓰여 있었다.
RACHE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마치 곡마단의 흥행사가 손님을 끌어들일 때의 제스처를 흉내 내듯 입을 열었다.
“자, 어떻습니까?
이것은 이 구석이 가장 어두운 관계로 아무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기에,
그냥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범인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으나,
하여간 범인이 자신의 피로 이 글씨를 썼을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글씨마다 피가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자살이라는 가정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다음에 하필이면 왜 이런 구석에 글씨를 썼느냐 입니다.
여기에 대한 본인의 추리는 이렇습니다.
벽난로 위에 초가 있지요?
그것은 범행 당시 켜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 구석은 가장 어두운 장소가 아니라
거꾸로 이방에서 가장 밝은 곳이었던 겁니다.”
레스트레이드의 장황한 설명에 그레그슨이 콧방귀를 뀌듯 빈정거렸다.
“흐흥, 그래.
자네가 발견한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겐가?”
“의미라고?
머리가 안 돌아가는군.
이것을 쓴 범인은 레이첼(Rachel)이라는 여자의 이름을 쓰려고 했지만 다 쓰기 전에 어떤 방해를 받은 거라네,
두고 보라고.
이 사건의 해결을 보게 되면 반드시 레이첼이라는 여자가 떠오를 테니까.
어,
홈즈 씨가 웃으시는군요.
물론, 당신의 머리가 비상하다는 건 잘 압니다.
그러나
나도 이 방면에서는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입니다.”
홈즈는 웃음을 터뜨려 레스트레이드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을 사과했다.
“이거 뜻하지 않은 실례를 범했습니다.
우리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이것을 발견한 것은 큰 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글씨는 지금 말씀하신대로,
모든 점으로 미루어보아 어젯밤 사건에 등장한 범인이 쓴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나는 아직 이 방을 조사할 틈이 없었는데,
이제부터 한번 조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주머니에서 줄자와 대형 돋보기를 꺼냈다.
그는 그 두 도구를 갖고 방안을 소리 없이 걸어 다니다가,
때때로 걸음을 멈추거나 무릎을 꿇기도 하면서,
한번은 배를 깔기도 했다.
얼마나 거기에 열중해 있는지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잊은 듯, 쉴 새 없이 중얼거리고,
휘파람을 불기도 하고,
희망에 찬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나는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면서 잘 훈련된 순종의 폭스테리어 종 사냥개가 코를 땅에 대고 짐승의 냄새를 추적해 나가는 광경을 연상했다.
홈즈는 내 눈으로는 별다를 것도 없는 흔적과 흔적 사이를
공들여 재어 보기도 하고 때로는
벽에 줄자를 대보는 등 약 20분을 작업에 몰두했다.
그리고
잿빛 먼지가 바닥 한곳에 얼마간 쌓인 것을 조심스럽게 모아 봉투에 넣어 간수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벽의 글씨를 하나하나 돋보기로 주의 깊게 조사했다.
그것이 끝나자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흐뭇한 미소를 띠고서 줄자와 돋보기를 주머니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천재란 얼마든지 노력으로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엉뚱한 말이 되겠지만,
탐정이란 노력보다도 타고난 재능이 없이는 눈 뜬 장님이나 다를 바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홈즈가 일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그레그슨과 레스트레이드 두 경감은 신기한 듯 때로는 비웃듯 홈즈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홈즈가 행동할 때는 언제나 분명하고 일정한 목표가 있어,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그 방향으로 향해 나간다.
나로서는 그것이 조금은 납득이 갈 만했으나
두 경찰 실무자에게는 아직 그것이 납득이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두 경감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물었다.
“의견을 들려주시지요.”
“내가 지금 불쑥 조언 비슷한 것을 했다가는 옆에서 두 분의 공로를 가로채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요?
당신들도 그럭저럭 나름대로의 단서를 잡고 있을 테니까,
내가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선수를 치는 부질없는 일입니다.”
홈즈의 말에는 알게 모르게 비꼬는 냄새가 풍겼다.
홈즈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수사의 진전도를 알려주면 나도 기꺼이 가능한 한 협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시체를 처음에 발견한 경관을 만나보고 싶군요.
이름과 주소를 알 수 있겠습니까?”
레스트레이드가 수첩을 꺼내 들었다.
“존 랜스라는 경관입니다.
런던 케닝턴 파크의 정문 앞 오들리 코트 48번지로 가면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홈즈는 주소를 적었다.
“자, 와트슨 가보세.
그 경관을 만나면 도움이 될 걸세.
참, 여러분.
참고가 될 만한 것을 하나만 알려 드리겠습니다.”
홈즈는 두 경감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건 살인 사건입니다.
범인은 남자, 키는 180cm 이상의 중년입니다.
키에 비해서 발이 작고,
앞이 네모난 가죽 장화를 신고 있으며,
인도산의 트리치노폴리라는 싸구려 잎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범인은
네 바퀴 달린 영업용 마차를 타고 피살자와 함께 이 곳에 왔습니다.
마차를 끈 말은 오른쪽 앞다리 발굽에만 새 징을 달고,
나머지 세 개는 낡은 것입니다.
그리고 범인의 얼굴은 십중팔구 불그스레한 편이며,
오른손 손톱을 아주 길게 기르고 있습니다.
극히 사소한 특징에 지나지 않지만 조금은 도움이 될까해서 말씀드립니다.”
레스트레이드와 그레그슨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레스트레이드가 물었다.
“타살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떤 방법으로 살해되었습니까?”
“독살입니다.”
홈즈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걸어나가다가,
현관 쪽에서 뒤돌아보며 말했다.
“레스트레이드 경감, 또 한 가지 말해 두겠습니다만.
‘RACHE’란 독일어로 ‘라헤’라고 읽으며 ‘복수’라는 뜻입니다.
L자가 빠진 것이 아닙니다.
공연히 레이첼이라는 아가씨를 찾아 헤매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