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남자
어 나야. 뭐 해? 별일 없어?
어? 아직 밥 먹어?
아니 뭐 다른 건 아니고
아까 통화했을 때 깜빡한 게 있어서.
우리 다음주 토요일에 영화 보러 가기로 한 거
그거 네시 걸로 예매할까. 여섯시 걸로 할까?
아니, 뭐 아직 날짜가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미리 해 놓으면 좋잖아.
어? 알아서 하라구?
그래, 뭐 그럴게.
근데 무슨 밥을 아직 먹어?
너 아까 나랑 통화했을 때
밥하고 있다고 그랬잖아.
뭐? 밥 먹으면서 술도 마셔?
무슨 술? 무슨 술을 마시는데?
야, 너 지금 제정신이야?
너 소주 못 마시잖아!
너 나도 없는데 거기서 소주 마시면 어쩌겠다는 거야!
어? 너는 안 마신다고? 사이다 마셔? 진짜야?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아니이~ 감시라니!
나는 니가 워낙 술에 약하니까
내가 걱정이 돼서 그러지.
어? 이거 무슨 소리야?
뭐 배터리 다됐어?
야, 그런 건 미리미리 딱딱 충전해 놔야지!
너 충전기 안 가지고 갔어?
야, 넌 그런 걸 왜 안 챙기고 그래!
1박 2일이면 당연히 챙겼어야지!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여자
어, 끊어졌네
정말 충전기를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전화를 한 시간 간격으로 해대니까
배터리가 하루를 못 가네.
어제 밤에 꽉 충전한 건데!
하여튼 이럴 때 보면
남자들은 다 똑같은 것 같아요.
우리 아빠가 그렇거든요.
엄마가 외가에 며칠 가겠다고 하면
그러라고 선뜻 말씀을 하세요.
그래 놓고는 계~속 전화하시는 거죠.
"봐라, 가위 어딨노?"
"봐라, 냉장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봐라, 전화번호 적어 놓는 공책 어디 갔노?"
말씀이야, 뭐가 어디 있냐
그런 거 물어 보신다지만
사실은 시위하는 거잖아요. 빨리 오라고~
우리 집 식구가 되려는지
남자 친구도 오늘 보니 똑같아요
오늘 하루 종일 전화를 하는데요.
"우리 이번 주말에 뭐 먹을까?"
"다음다음 주에 무슨 영화 볼래?"
"나 머리 자르러 혼자 갈까. 너 오면 같이 갈까?"
평소엔 내가 뭐 하자고 해도 귀띰으로 안 듣더니
아니, 그럴 거면 처음부터 가지 말라고 하던가!
물론 그런다고 내가 안 올 건 아니었지만
뭐, 그게 아니면 차라리 솔직하게
딴 남자들하고 너무 친하게 놀지 말라고 말을 하던가.
아닌 척하면서 어찌나 샘도 많고, 걱정도 많고,
외로움도 많이 타는지 혼자 둘 수가 없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