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4월 23일 아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우리집개 뭉치가 내 침대위에서 정신없이 왔다갔다 한다. 귀찮아서 몇번 뿌리치다가.. 끌어안고 또 아침잠을 청한다. 30분쯤 지났을까.. 아무리봐도 이상하다... 눈에 초점이 없어졌다.. 또 안절부절 못하며.. 왔다갔다한다.. 이젠 내 얼굴을 그냥 밟고 지나간다.. 어려서부터 그런 장난을 자주 해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날 모르는것 같다...... 아침에 뭉치는 어느날과 다름없이 내 침대위로 올라와 내옆에 누웠다. 난 2-3달에 한번씩 집에 오기때문에 오면 언제나 미친듯이 좋아라하고.. 매일 아침마다 침대위로 올라와 날 쳐다본다.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전날 늦게까지 마신 술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고 아침잠에 빠져있었다.. 침대위에 구토를 했을때도 난 몰랐다. 소리를 듣고 오신 어머니가 화장실로 데려갔다.. 수도꼭지 밑에앉아.. 멍하니 어머니를 쳐다본다. 그녀석이 목욕을 하고 싶을때 가끔 하는 행동이다.. (다른개와 달리 목욕하는것을 좋아했다. 특히 외출후엔) 요즘들어 이상해진 행동과 가끔 경련기를 보여왔기 때문에 걱정되긴 했지만.. 어머니는 알고 계셨나보다.. 녀석이 떠나기전에 하고싶은것이 바로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목욕이란것을... 녀석은 물기도 마르지 않은채.. 허겁지겁 내가 자고있던 침대위로 뛰어오른 것이다. 그것도 예전처럼 쉽지많은 않은 모양이다.. 한참을 시도하다 어렵게 올라와선 내 얼굴을 밟으며 그렇게 나를 깨웠다. 일요일인지라 문을 연 동물병원이 있는지 몰랐다. 하도 중국에서 오래 생활을 해와서 "114"를 잊고있었다. 아침 11시경 집근처 롯데마트 안에 있는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거친숨을 몰아쉬며.. 뜨고있는 눈은 아무것도 보고있지 않는것만 같다. 가망이 없어보였다. 진통제를 주사하고 X-ray 도 찍어보고.. 그 병원에서 할수 있는 검사란걸 다 했다. 아니 그게 다였다.. 의사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대학병원에 가보는게 좋겠다고 말을 한다... 가망이 있어보이겠냐는 어머니의 말씀에 의사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일단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링거를 꼽고 한 5분쯤 지났을까.. 여전히 의식은 없어보였지만. 거친숨은 일단 멈추었다.. 너무 급하게 나와 차키 이외에 들고나온것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어머니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와 지갑을 들고... 대충 싯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의사는 보이지 않았다. 철창안에 누워있는 뭉치를 남겨두고 어머니와 난 집으로 돌아와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어머니는 의사와 나눈 얘기를 해주셨다. 일단은 특이한 증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것. 또한 아무리 동물병원이라지만..대학병원이라면 어마어마한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는것. 어머니는 아마 의사한테 대학병원까지 데리고 가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오후 2시경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녀석이 방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침부터 이어진 호흡곤란 증상이 계속되어 쇼크로 인한 사망이라고 했다. 동물애호협회(?... 정확한 명칭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그 사람들이 우리를 욕할수도 있겠지만.. 우리 어머닌 나에게 소식을 들으시곤.. 정말.. 정말.. 대성통곡을 하셨다. 5년이 조금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가 입대할때 우리집에 들어왔던 조그만 강아지.. 제대후에 다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던 나... 그 녀석이 날 대신해줄순 없겠지만.. 비교할수 없는 존재이지만 어머니에겐 하나뿐인 아들을 대신해서 언제나 옆에서 어머니를 즐겁게 해주던 그녀석.. 냉동실에서 비닐봉지에 싸인 그녀석을 넘겨받으면서 나도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의사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우리를 욕했을 수도.. 우리만의 사정이겠지만.. 어머니와 아버지도 몸이 많이 않좋으셔서.. 만만치 않은 병원비와 약값을 지출하고 있는 형편이란걸 알기에.. 난 어머니를 이해한다. 아니 내가 결정했더라도 마찬가지였을것이다. 곧바로 녀석이 좋아라하는 놀이터였던 집근처 산으로 데려가 묻어주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도 미친듯이 날뛰며 날 반기는 그 녀석은 없다. 그 녀석과의 추억은 나뻤던적이 한번도 없던것 같다. 그 녀석이 준 슬픔은 짧고.. 여운은 길다.. 내가 집에 있을때를 골라서 죽어준걸까? 내가 한국에 없었을때였더라면.. 어머니의 마음은 더 아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나마.. 살리기위한 노력을 했다는것이.. 어느정도.. 뭉치에 대한 미안함을 덜 느끼게 했으리라.. 아마도.. 우리가 지어준 뭉치란 이름처럼.. 행복만을 남겨주고 떠나고 싶었나보다. 아직도 어머니의 핸드폰 메인화면엔 돈다발을 물고있는 "돈"뭉치의 사진이 그대로 있을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