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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아니라도…

김덕곤 |2006.07.20 20:20
조회 166 |추천 2

 

 

자연은 때로 인간에게 재앙을 내리면서 인간의 능력과 의지를 시험하고 키워주기도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홍수가 찾아온다.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듯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물난리를 겪는다. 허공에서 퍼붓는 물세례를 인간이 지상에서 다 감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혜를 모으고 땀 흘려 재난을 줄이고, 또 재난을 자연의 혜택으로 바꿀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이번 장맛비로 한강의 홍수를 크게 우려했던 건설 당국은 소양강댐이 수도권 일대의 재앙을 막아주었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한다. 한강물 조절의 가장 큰 밸브가 소양강댐에 있다. 

수도권의 홍수피해 때문에 소양강댐은 이승만 정부 때부터 필요성이 제기되고 계획되었지만 박정희 정부에 와서야 만들어질 수 있었다.  

 

소양강댐이 착공되던 1967년만 해도 보릿고개 넘기가 아득해 보이는 시절이었다(식량의 자급자족은 그로부터 10년 뒤에야 이루어졌다). 서울에 전화를 가진 집이 듬성듬성하였으며 농촌에선 깜박이는 호롱불 주위가 암흑천지였다.  

 

댐건설의 자금과 건설자재 등이 모두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수도권의 고질적인 홍수피해를 줄이고 물과 전기를 확보해야겠다는 과제 또한 절박했다. 해서, 정부는 대일 청구권 자금의 일부를 재원에 충당키로 하고 소양강댐 건설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댐건설의 역학구조가 문제였다. 댐건설을 맡은 일본 건설사(일본공영)는 콘크리트댐 설계를 내놓았고, 이에 현대건설의 정주영이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국내 실정으론 콘크리트댐에 소요되는 철근과 시멘트 등의 자재가 부족해 그 수입 비용과 운반 비용 등 엄청난 자금이 고스란히 일본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정주영은 수차례 현장을 답사한 결과 주변에 무진장으로 널려 있는 모래와 자갈을 이용해 사력댐을 건설하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라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정주영의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무시당했다. 콘크리트댐 설계를 내놓은 일본 건설사는 일제시대 수풍댐을 건설한 세계적인 회사인지라, 정주영의 사력댐 안은 조롱거리밖에 안되었다.  

 

“사력댐은 비용이 덜 들어 경제적이지만, 공사 도중에 큰비가 와 무너지면 서울이 물바다가 됩니다” 

이렇게 건설부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판단은 달랐다.  

 

“사력댐에 물이 반쯤 찼을 때 무너져 서울이 물바다가 될 것 같으면 콘크리트댐이 완공돼 물이 찼을 때 이북에서 폭격이라도 하면 피해가 더 크지 않겠소?” 

 

댐이 파괴될 경우 콘크리트보다 모래와 자갈의 버티는 힘이 더 강하다는 논리였다.  

 

결국 대통령의 지시로 건설부 승인까지 난 콘크리트댐 설계가 밀려나고 사력댐 건설이 결정되었다.  

 

뒤에 일본 건설사 대표가 현장에 가보니 모래와 자갈이 많고 암반이 취약해 콘크리트댐보다 역시 사력댐 건설이 옳았다면서 정주영에게 허리 굽혀 큰절을 했다고 한다.  

  

6년 반이란 오랜 세월이 걸려 1973년 10월에 완공된 소양감댐은 당시 동양 최대의 역사(役事)로 큰 화제가 되었으며, 그것을 국내 건설사가 해냈다는 큰 자부심을 주었다.  

 

건설업계에서는 자본과 기술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듯 몸부림치던 국내 건설업을 오늘날 세계를 향해 내로라 하고 큰소리치게 만든 주인공으로 정주영과 대통령 박정희를 꼽고 있다.   

 

정주영은 현대라는 기업과 더불어 이 나라 기간산업을 뚝심으로 일으킨 신화의 주인공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대통령 박정희는 정주영 같은 인물을 키우고 그들과 더불어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대~한민국의 총지휘자였다.

 

소양강댐이나 충주댐 등의 홍수조절 능력을 보면서 박정희를 떠올리는 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무슨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도 아니다.  

 

홍수를 막아주는 것이 어디 소양강댐이나 충주댐 같은 시설뿐이랴. 텔레비전에 비치는 물난리 장면에서 배경으로 나타나는 숲을 주목해야 한다. 푸른 숲이 얼마나 물을 막아주는가는, 산야가 황폐했을 때 겪는 참상과 비교해야만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예가 바로 북한이다. 남북한에 똑같은 양의 비가 내려도 산이 벌거벗은 북한의 피해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한편에선 댐건설, 산림녹화 등등 지난날의 업적이 왜 박정희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냐고 아직도 볼멘소리들을 하고 있다. 박정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이고, 박정희가 공사장에서 삽질을 하지도 않았으며, 그 많은 나무를 모두 심은 것도 아닌데 왜 박정희만 떠받드느냐는 불만도 모자라 폄훼와 악담이 적지 않았다. 

 

박정희 정부 시절의 관료들은 사명감이 투철했다. 박봉과 열악한 근무조건을 탓하지 않고 국가를 일으킨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기업과 근로자들의 열성과 의욕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시대의 성과와 영광은 그들이 두루 나누어 가짐이 당연하다. 각론은 이렇다.  

 

총론은 그 시대의 지도자 몫이다. 국가관, 통치철학, 국가경영 능력, 창의력과 비전 등의 총화가 바로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박정희가 아니라도…”  

이 논리는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없어도 악단 연주가 잘 된다는 해괴한 선전에 다름 아니다. 

초등학교 아이들만도 못한 어리석음이다.  

 

공부를 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그렇다고 선생이 없어도 된다는 말은 아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것이다.  

 

이순신이 아니라도 누군가 이순신처럼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고, 정주영이 아니라도 현대가 생겼을 것이고, 히딩크가 없어도 월드컵축구 4강을 했을 거라는 식이다.

이런 어불성설이 어디서 왔을까는 뻔하다.  

 

한줌도 안되는 정치권의 반박정희주의자들이 선전선동으로 국민 정서를 적지 않게 오염시켜 왔다.  

 

박정희 때리기라는 퇴영적 사고, 패배주의, 파괴적 이기주의로는 미래를 도모할 수 없다.

 

노무현 집단이 4년 가까이 한 일이 무언가. 대답이 궁색하고 공허하다. 과거사 욕보이기, 박정희 때리기 외에는 보이지가 않는다.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것 외에는 내놓을 만한 게 없다.

 

소양강댐은 ‘하면 된다’는 신념의 산물이었지만,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노무현 좌파의 키워드는 ‘돼도 안한다’로 바뀌었다.  

있으나 마나 한 권력이라고 그냥 둘 일이 아니다.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익히 보아온 노무현 집단의 깽판 정치는 역사의 패륜이며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다. 그래서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국민의 퇴장명령을 외면하고 있는 권력은 하루빨리 치워버리는 게 상책이다. 홍수 속의 인명은 시급히 구조하되, 죄 많은 권력은 떠내려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

 

출처: http://kr.blog.yahoo.com/inman032 근혜의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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