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의 개념과 정의
0. 판타지의 사전적 의미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로이 작곡한 작품. 보통 환상곡으로 번역된다. 이는 시대 ·작곡가 ·곡풍(曲風) 등에 따라 종류가 많으나 일반적으로는 다음의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① 즉흥적 성격을 띤 곡: 모차르트의 피아노용 《환상곡》(D단조), 베토벤의 피아노용 《환상곡》(작품번호 77) 등. ② 자유형식의 소나타: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월광》, 슈만의 《환상곡》(작품번호 17) 등. ③ 몽환적(夢幻的) ·몽상적 분위기를 띤 낭만파시대의 소곡: 브람스의 《환상곡집》(작품번호 116) 등. ④ 오페라의 아리아 등을 계속해서 연주하도록 한 곡으로 자유롭게 즉흥적으로 처리되어 있는 것: 리스트의 《돈 조반니 환상곡》 등. ⑤ 16∼17세기의 기악곡 명칭: 엄격한 대위법(독립성이 강한 둘 이상의 멜로디를 동시에 결합하는 작곡기법)을 따랐으며 후세의 자유로운 환상적 요소는 포함되지 않는다.(두산동아백과에서 인용)
1. 판타지의 정의.
판타지라는 말은 참으로 여러 가지의 이면적인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즈음 자주 언급되는 '판타지 문학'도 매우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있으며 아직 구체적으로 '이런 것이 판타지 이다.' 라는 정리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판타지 문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요소들은 매우 많습니다. 전설, 환상, 몽상, 동경, 로맨스, 신비, 신세계, 상상으로부터 시작하여 풍자, 비판 적인 것 까지도 모두 담을 수 있는 말이라고 여깁니다. 대부분의 현재까지의 알려진 판타지물들의 양상을 보면 서양 중세 시대와 흡사한 검과 마법과 로맨스의 이야기 가 주종을 이룹니다. 이는 톨킨의 '반지의 지배자' 가 그 모태 내지는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장르의 대표적인 것은 드래곤 랜스 나 던전 앤 드래곤스 시리즈, 일본의 로도스도 전기(들녘에서 마계마인전이라 번역 했지만.. ^_*;) 등등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그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장르의 것들이 존재합니다. 실로 현실 속에서의 환상적인 면의 추구나 영계 등의 이질적인 세계, 인간의 초능력이나 과학적인 SF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포괄적인 분야에서 판타지는 존재합니다.
유명한 영화인 '스타워즈'를 SF 판타지라고 하는 말도 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판타지라는 말을 한두 마디의 말로 정의내리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어떻게 말하면, '판타지는 이런 것이다' 라는 정의를 내리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지요. 그러면 판타지 자체의 정의보다는 그에 더불어 나타나는 양상으로서 판타지를 정의하는 것도 그다지 나쁘거나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판타지의 일반적인 양상은 무엇으로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상상력'에서 그 양상을 찾습니다. 물론 모든 소설은 허구(Fiction)이고, 상상력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말 자체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두 명의 가상의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는 이야기라고 하면, 실제로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들은 일반적인 상식선에서도 충분히 존재 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의 연애도 충분히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판타지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결국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판타지라는 것을 대별 할 수 있는 말은 '전혀 일어날 수 없거나 상식적으로는 그럴 수 없는 일'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글이라고 크게 보아도 무방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그래도 좀 애매한 면은 있지만 말입니다.
2. 판타지의 성격과 역할.
판타지는 그러면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고 사람에게 어떤 것을 '특별히' 가져다주는 것일까요? 물론 두말할 수 없이 상상력의 확대라는 즐거운 일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제한받지 않고 속박됨이 없이 거침없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앞뒤를 딱딱하게 따지거나 불가능하다, 말이 안 된다는 논의는 그 안에는 없습니다. 사람이 하늘을 날거나 무에서 유가 창조되어도 말도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입니다. 무한한 상상력만이 그 안에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물론 그런 것들도 어느 정도의 사전 전제 조건 안에는 들어가야 작품으로서의 구성을 이룰 테니, '기초 전제에 제한을 두지 않는 장르'라고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검과 마법의 세계도 좋고, 공상과 환상의 세계도 좋은 것이며, 과학과 신비의 세계나 모험의 세계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스타워즈'는 분명 과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누가 보아도(안 그런 분도 있겠지만 ^^;) 걸작이며, 그렇기 때문에 판타지의 장르 안에 자리 잡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렇게 본다면 판타지문학의 순수문학으로서의 측면은 조금 애매해 진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상식이나 논리의 틀 안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지요. 결국 판타지의 평가는 독자와 대중에게 맡겨져 있으며, 그러한 측면은 오히려 판타지의 강점이자 장점이 된다고 여겨집니다. 검과 마법의 세계는 성인들에게는 게임의 대명사.. 라고 인식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그런 제한적인 면만 지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한 욕(?)을 먹는데도 판타지는 살아 있으니까요. 결국 판타지는 사람들에게 상상력과 꿈을 북돋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 면이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물론 많겠지만 말입니다.
3. 우리나라의 판타지의 현주소
조금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판타지의 현주소는 없다고 봅니다. 아예 주소도 없다고 할 수 있다면 지나칠까요? 분명 우리나라에도 판타지 팬들이 많으며,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는 분들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일단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감에 있어서, 외국의 판타지들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지 부터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아주 가까운 곳에 많이 있으니까요...
일단 서양식 판타지의 대명사인 검과 마법(판타지가 그렇게 제한적인 것은 아니지만)의 면모를 봅시다. 대부분의 롤플레잉(RPG) 게임들은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자체적인 알피지가 몇 개 나왔지만, 그 안에서 탈피는 하지 못하고 있지요.) 알피지 류의 게임들은 크게 미국과 일본의 것으로 나뉘어 집니다. 미국은 '울티마','위저드리','마이트 앤 매직'이나 우리나라 에서 얼마 나가지는 않았지만 정통파인 D&D (던전 앤 드래곤스) 등의 유명 게임들이 모두 이 환상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알피지들은 주로 게임기용의 것들이 수입되고 있는데, '판타지스타 시리즈','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등의 대부분의 유명 게임들이 역시 이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판타지물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검과 마법으로 대별되는 무력의 세계인데, 이것은 순수 인간적인 면에서의 회귀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력을 쌓고 더 수련하고 노력한 자가 더 강해지는 진솔한 세계. 그리고 그 외의 것은 영향을 발휘하지 못하는 솔직한 세계.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도 알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소외현상에 대한 강력한 반발심리 등이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다고 여겨집니다.
두번째는 환상적 생물들의 세게입니다. 엘프, 드워프, 하플링, 고블린, 리자드맨, 오우거, 트롤 등의 군집형태의 인간형 환상생물 들로부터 드래곤, 골렘, 자이안트 등의 괴수형 생물들, 스켈톤, 좀비, 리치, 고스트 등의 유령형 생물(?) 들까지의 다양한 것들. 대강 제가 조사하여 가진 바로는 500종 이상의 환상생물군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물들이 나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러한 생물들은 대부분 신화나 전설에서 그 소재를 찾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 신화나 전설이 어떤 자연력이나 재난, (당시로서는) 알지 못하는 어떤 힘, 다른 부족 등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것도 분명합니다. 결국 이 환상적인 세계에서는 그러한 면모를 그대로 수용한 것입니다. 또다른 신화와 전설을 만들어가는 세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는 지금의 세상과는 다른 이국적인 세계입니다. 알지 못하는 머나먼 곳. 지금 사는 세상과는 다른 기후와 다른 지형과 다른 습성을 지닌세상. 확실히 매력적이고 낭만적입니다. 낭만주의의 정의가 현실에서 멀면 멀수록 더욱 낭만적 이라는 어느 옛사람의 견해도 있지만 이러한 면모도 여실히 드러나 있지요. 이러한 세계관을 만들어낸 것은 누가 뭐래도 '반지 전쟁' 시리즈를 만들어낸 톨킨의 공로가 큽니다. 서양 각국의 전설과 민담을 모아 단순히 이름만 알려져 있던 그런 환상생물들에게 인간성과 사회성까지 부여하여 생동감을 준 그의 공로는 판타지 계에서는 매우 클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그야말로 확실히 매력적입니다. 모 동호회는 아예 그러한 명칭들로 자신들끼리 부르는 습관까지도 지니고 있더군요... 자. 그러나 이것이 과연 전부일까요? 앞에서 저는 판타지는 상상력의 세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세계, 확실히 매력적입니다만 이 세계는 우리의 세계입니까? 글쎄요. 저도 이 세계의 장점은 수용합니다만 어딘가가 어색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크와 트롤이 들끓고 있는 이레니아의 우거진 수풀 속을 걸어가는, 플레이트 아머로 두텁게 무장하고 배틀엑스와 카이트쉴드를 쥐고 등에는 바드터드 소드를멘 우리의 용사 이우혁이 있었다...' 우습지 않나요? 꼭 이름이 좋지 않아서만 우스운 것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어차피 환상의 세계 인데 이름을 좀 바꾸는 편이 좋겠지요...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으로 직접 뛰어드는 기분은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상상은 할 수 있겠지요. '내가 지그프리트 왕자였다면 하겐의 음모를 알아차리고 브륀힐데를 군터와 결혼시키지 않는건데...' 여기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지그프리트 왕자 였다면.... 항상 였다면.. 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자신이 그 왕자가 정말 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글이나 이야기를 듣는 중간에라도 나에게도 그런 일이... 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에게 듣던 개암열매로 도깨비를 물리친 총각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가 그런 일을 당해도 지혜롭게 넘어가야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이엘프 레골라스가 되어서 드워프인 김리와 우정을나누는 것은 감히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생각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그러면 자신을 버려야 합니다. 그 이야기에 어울리는, 귀가 길고 키가 훤칠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검은 머리에 좀 낮은 코와 황색의 피부색을 지닌 나는 잠시 사라져 주어야 합니다...
제가 무섭게 여기는 것은 이 점에 있습니다. '내가 없는 판타지...' 물론 잠시 내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작자가 의도한 바라고는 볼 수 없을겁니다. 서양 사람들은 그 이야기 속에 쉽게 몰입되어서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이 된 것처럼 여길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 는 그러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전래동화나 전통민담을 왜 모두가 중요한 문화유산이라 여기는지 의문을 가지는 분은 설마없겠지요? 불행하게도 이러한 판타지는 매우 훌륭합니다만 이러한 단점이 있습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심각한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그러한 검과 마법 이야기 보다는 단연 무협지가 많이 읽힐 겁니다. '반지전쟁' 완역본이 나온지 수년이 넘어가는데 아직 초판도 다 안팔렸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무협지는 모두의 욕과 불건전한 독서의 표상처럼 취급받으면서도 꾸준히 애독자가 늘어가는 실정입니다.
저는 그 무협지야말로 완벽한 중국형 판타지라고 봅니다. 물론 그무협지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엄청난 곡해와 외설, 황당한 구성으로 무수히 베껴지고 모작을 내어서 이렇게 괄시받는 지경으로까지 떨어진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중국에서의 무협소설은 역사소설과 동등한 지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비디오방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초류향 신전' 이나 '의천도룡기', '고검은구기' 같은것들이 모두 대만이나 홍콩의 텔레비젼 연속극들이라는 것을 아시는분은 아실겁니다. '영웅문'을 쓴 김용이나 '군협지'의 와룡생(우리나라에는 이 사람들의 이름 단 가짜소설들이 아마 원 저작의 수십배나왔을 겁니다.) 같은 사람들이 과연 우리나라의 무협지 작가들 같은 대우를 받을까요? 아마 우리나라의 문단 원로이신 분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한 대우를 받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면 왜 그런 중국의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글들이 우리나라에서는 평가절하되는 것일까요? 역시 당연합니다. 중국 무협지의 세계도 나름대로 거의 완벽하게 다듬어진 세계입니다. 태산북두인 소림사가 있고, 무당파, 곤륜파, 화산파 등등의 파들과 (그런데 다 실제로도 있는 파들입니다. 다만 그 파들이 가진 무공이나 능력적인 면이 경천동지하기 때문에 판타지라 할 수 있는 거겠죠) 세외 고인들과 협객영웅들, 절세가인들, 무림세가들, 괴짜기인들, 흑도무림과 녹림호걸들, 서방마교와 정사 양대 무림 등이 '무림' 이라고 하는 국가와는 다른 조직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무림의 인물에게는 일반적인 법률도 통하지 않습니다. 자신들끼리의 복수와 음모, 사랑과 고민과 집념과 눈물이 있고 그리고 자신이 지닌 무공의 깊이와 정의로운 마음이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러한 또 나름대로의 멋진 세계의 배경은 아쉽게도 항상 '중원' 입니다. 간혹 천축이나 티벳, 왜국이나 고려국 등등도 나오지만 어디까지나 사악한 이방인이나 야만족으로 등장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들을 두고 '쓸데 없다'고 해서 학생층이 가까이 두기를 꺼립니다. '허황되다...'는 말은 애당초 판타지적 분석이 아니니 접어둡시다. 그 다음으로 들리는 말은 '그거 너무 접하면 빠져든다. 그러나 나중에는 후회하고 다 쓸데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누구나 무협지 손에 쥐어본 사람이면 다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이 말에 주목합시다. 누구나 듣고 수긍하는 말이라면 그 말이 바로 진리입니다.
빠져든다..는 면은 무협지가 확실히 판타지의 재미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판단으로는 틀림없이 그렇다고 확신합니다. 검과 마법의 세계보다는 무공과 내공의 세계에 심취하고 빠져드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나는 무협지 보고 내공수련하면 되지 않을까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검과 마법 이야기 보고 마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못보았습니다. 그건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앞에서 제가 했던 말의 증명입니다. 무협지는 그래도 '우리들 자신'과 보다 더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 안으로 들어가기가 조금 더 쉽다는 말이 되지요... 김용의 '영웅문'은 미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중국학 교재로 쓰이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내공수련하고 달마삼검이나 강룡십팔장 연마할 생각을 해본다는 것은 아예 꿈에서도 생각나지 않더군요. 분명히 그들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많은 차이.. 아무리 상상의 세게라고 할지라도, 그 세계를 사람이 만든 것이고, 보는 것도 사람이라면, 판타지에서조차(직접적으로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건) 사람의 요인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판타지에서의 엘프과 인간의 차이는 동양인과 서양인의 차이보다도 오히려 작습니다. 이 두가지 판타지라고 볼 수 있는 창작물들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해 보고, 저는 우리나라에서의 판타지가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조금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은 다시 무협지의 이야기로 돌아갑시다.
그러나 무협지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배경은 항상 중원이고 습관이나 양식은 모두 중국적입니다. 물론 자신이 중국인이더라도 과거의 무림으로 실제 들어갈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일단 우리나라도 한자를 씁니다. 그리고 중국과는 매우 흡사한 문화적 면이 많지요. 서양판타지 세계로 말하자면 나이트와 팔라딘의 차이보다도 작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수용될 수 잇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그 한계라는 것은 결국에는 걸리고 느껴지기 마련이라서. 물론 현실에서 벗어난 세게속에 너무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질리고 후회하는' 것이겠지만, 그 안에서 그러한 요소들은 작용하지 않는 것일까요?
한가지 더 예를 들겠습니다. 일본의 판타지를 말입니다. 일본은 자체적인 판타지가 그렇게 크게 성공한 예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무라이나 검에 대한 애착심, 그리고 집념과 정신력의 대단한 강조 같은 것들이 로봇물이라는 형태를 띄고 나타났지만 일본 자체 내에서도 로봇물들은 판타지라는 개념으로는 이야기 되고 있지않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니 일단 보류합시다. 그리고나면 일본의 판타지는 거의 서양것과 유사합니다. 이 면에 주의합시다.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일본만큼 서양지향적인 나라는 없습니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영어섞인 발음으로 말을 물으면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정말입니다. 일본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지요. 머리 염색 예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주체성을 다 버리고 흐느적거리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양적인 것을 누구보다도 '좋아' 합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많은 여주인공들중 일본인으로 보이는 얼굴은 하나도 없습니다. 최근 전국적으로 난리를 친 '베르단디'의 얼굴.. 절대 동양인의 얼굴은 아닙니다. 전에 없던 인기를 보이는 '세일러 문'의 여주인공들을 보면, 또 그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눈길을 못 끌 그 만화의 내용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거의 전설이 되어버린 '건담' 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높아서 만화상에서 죽은 것으로 방영되었을때 여자들의 데모까지 일어났다던 최고의 인기주인공은 금발머리의 '샤아 아즈나블' 이었습니다. 일본만화의 원조이자 대부였던 '데츠카 오사무'씨.. '아톰'과 '리본의 기사 (사파이어 왕자)', '레오'를 그린 그 분의 스타일은 모두 눈이 크고 늘씬한 서양형의 인물만을 그렸고 그 전통은 지금도 90% 이상의 일본 '애니메'의 풍만하고 늘씬한 몸매와 얼굴만큼이나 큰 눈, 그리고 치렁치렁하고 다양한 색을 지닌이국적 여자의 모습으로 그대로 수용되고 있습니다. 지금 그러나 일본인들의 정신자세의 평가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그들은 잘 공존을 시키니까요. 제가 여전히 이야기 하는 것은 판타지 입니다. '로도스 도의 전설'이나 '하이엘프의 숲' 같은 것들은 일본 색이 전혀 없는데도 일본적입니다. 왜 일본적일까요? 서양쪽을 환상 적으로 여기고 바라는 그들의 심리에 부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내용적인 환상 보다도, 자국에서 그러한 글이 나왔고, 그 내용이 그런 쪽을 다루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지닌 잠재적 환상심리에 부합되었기 때문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반론도 있으리라 고 보지만 제 생각은 거의 확실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지금 일본 것이 옳다 그르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폭넓고 크게 결코 받아들여질리 없습니다... 일본인들은 또 일본인들일 뿐입니다. 국내에서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모래시계'가 해외시장에서 실제로는 거의 찬밥이 되었답니다. '그건 당신네 나라에서 그랬던 것 뿐이다'는 말, 공식적인 언론지에서 틀림없이 보았습니다. 그 역은 과연 말이 안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에서 반향을 일으킨 것이 외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고 할 때, 외국의 것도 우리나라에서 그만큼의 반향은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명제가 참일때 대우도 항상 참이니까요.(음 수학이군.. ^^;;)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에스에프적인 판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분야까지 잘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분명 SF는 국경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에스에프 시장은 놀랍게도 너무도 엄청나게 작습니다. 그것은 말을 바꾸어 보면, 사람들이 대부분 (소수의 옹호자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 쪽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개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멋진 것을 썼는데 감히 안보냐?' 는 거의 무식하다 못해 발광적인 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차차 시간을 갖고 흥미를 가지게, 무엇보다도 일단 보게 만들어야 합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조바심만 내어서 무엇합니까? 이 문제는 SF출판을 고려하는 많은 출판 중요관계자들과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결국 결론은 '우리나라는 토양조성이 되어 있지 않다' 라고 합니다.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같은 대작은 결국 그 출판사가 기울어질 정도로까지 심한 결과를 주었습니다. 번역이 조금 그랬지만, 작품의 질로 볼때 최고급의 것이었는데도 말입니다. 결국 우리의 SF는 최고의 것 만 요구하다가 설득력을 잃어버린 지도 모릅니다. 유치원 학생에게 미적분의 유용함을 일러주면서 배우라고 해 보십시오. 그게 되는가.. 답답하더라도 더하기 빼기부터, 그것도 동물이며 먹을 것이며 온갖 예를 들어 유치하게(?) 가르치는 것이 더 좋지 않겠습니까? 그런 노력도 없이 '우리나라는 글러 먹었어' 하면서 특정작품의 전문용어 같은 것을 남발하시거나 대안도 없으면서 비판만 장기삼는 비뚤어진 전문가연 하시기 좋아하는 분들이 아주 간혹 있는데, 미국 한달 다녀왔다고 혀꼬부라진 소리 내는 사람 보는 것 같아 아주 민망합니다. 좌우간 저는 에스에프 쪽으로 한국형을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능력도 없고 그쪽은 별로 아는 바도 모자랍니다. 좀 더 연구하면 모를까.. 그것보다는 조금 더 빨리 다가올 수 있는 쪽을 생각할 뿐입니다. 다른 뜻있고 능력 있는 분이 일어나 주시기 바랄 뿐입니다.
결국 이야기는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한국형... 그것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저도 모르고, 누구도 그것을 이루어낸 사람은 아직 없다고 여깁니다. 저도 장담은 못하겠고요.. (^^;)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앞에서 보인 바대로 뭔가 감을 잡을 수 있는 증거는 충분히 있습니다. 앞의 장르들은 판타지의 작은 한 부분만을 든 것이고, 제가 쓰는 판타지도 한국형이라는 말은 붙이지만 그중에서도 한 부분일뿐일 겁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한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우리나라는 다른나라보다 역사가 길고, 농경민족적인 전통과 유교,불교,토속종교 등의 복합적인 종교가 공존하는 특이한 전통을 지니며, 다른 민족과는 모든 면에서 확실하게 구분되는 사고관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지 않고서는 전반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그 독자적인 체계란 전통적인 면과 특유의 관습적인 면모를 어느정도 수용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
2) 우리나라의 전설이나 신화들의 공통점이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그러한 면을 잘 배합했을때, 보다 호응도가 높아지게 되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의 판타지 물들과 마찬가지이다.
3) 단순한 과거에의 복귀나 회고는 의미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느 경우에나 정당한 인간적인 시각이 존재해야 하며 인간성과 감성이 죽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전제를 제 할 수 있는 바대로 구상하여 정리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제가 종결자를 쓰면서 가지게 된 생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1)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면을 강조한다. 정당한 과거의 재평가(특히 조선시대- 그래서 배경으로 삼았습니다)를 하되 현실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시키게 되지 않도록 인간계가 아닌 영계를 대상으로 삼는다. 인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조심스럽게 유지하기 위해서 이다. 나아가서는 동양적인 운명관과 인과율이 존재하는 상상의 세계를 구성, 창조한다.
2) 서양이나 다른나라보다도 오히려 풍요한 편인 전설이나 신화적인 면에서 등장인물이나 기타 환상생물(?)들을 다룬다. 인간형 환상생물과 같은 것의 전설은 동양에는 거의 없고 인식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과 근사한 체계를 유지하고 기존의 개인적 데이터 베이스를 활용하기 위해 주 등장인물들은 친근한 저승사자와 우리나라 특유의 환상생물인 구미호와 맹호로 잡는다. 기타의 것들은 중국과 중복되는 점이 많지만, 중국의 책에 나오는 것이라고 우리나라의 것과 크게 다르다고는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북유럽 신화 체계도 미국에서 쓰는 것을 뭐라 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환상적인 고대의 생물관 등에 한해서는 문화권의 차이만 아니라면 국가간의 차이는 어느정도 용납될 수 있다.) 서양적인 환상관도 일부로 포함되지만, 주종은 어디까지나 한국적인 민담, 신화류를 총발굴하여 소재로 삼고 부수적인 것들은 고전인 '산해경'의 생물들을 기본으로 삼는다.
3) 인간계와는 다를 수 있는 영계와 환상적인 면을 극도로 살린 다른 세계들을 이용하여 상상력의 폭을 기존의 것보다도 대폭적으로 신장시킨다.
이상이 종결자를 쓰면서 제가 생각했던 내용입니다. 오로지 제 개인적인 구상이었지만 그래도 거의 평생 해왔던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니 너무 심하게 비웃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저 자신, 문학적인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능력이 있는것도 아니며, 어쩌면 부끄럽게 여길 비평과 질책을 받아 마땅하겠지요. 그러나 교조주의적인 비난 같은 것은 어떨까 싶군요... 사실 여기 이렇게 긴 글을 (이 정도 쓸 노력이면 글 3편은 만들 수 있었을 텐데요) 필요없이 (저 개인적으로는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쓰는 것 조차가 그런 오해나 불신을 나름대로 막아보기 위해서 쓰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말하고 토론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그 일에 대해 공헌했다고는 여기고 싶지 않습니다. 여담이지만 모 동호회에서 한국형 판타지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애쓴 일이 있는 것을 (참여는 못했지만.. 당시의 저는 글하면 저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알던 사람입니다. 퇴마록 하나도 힘에 겨웠죠) 압니다. 그러나 결과는 나오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어 버렸습니다. 탓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그렇게 되었을 때 그 결과는 애당초 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게 되어버린 겁니다. 신경쓰고 애만 쓰면 뭘합니까? 하나라도 만들어야죠. 그래서 평가라도 받고, 실패하더라도 지침이나 타산지석으로라도 삼을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일단은 만들어야만 한다고 여깁니다.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언제까지 눈치 보고 정리되기만 기다리고, 남의 시도를 보고 비판만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모자란 실력으로 주제넘게 신성한 분야를 건드린다고 욕하지 마시고, 어여삐 보아주시면서 질책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보시는 많은 분들이 평가해 주시겠지요...
뒤가 좀 이상해졌습니다만 이게 본론은 아니고 단지 그냥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 하는 것 좀 덧붙였다고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 혁 -
출처: 이우혁 공식홈폐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