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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_02

최훈태 |2006.07.29 21:11
조회 18 |추천 0


차범근에 대해

 

나는 차붐선수를 존경한다.

난 어릴떄부터 차붐을 보고자라났다.

나도 그선수처럼돼고싶다. - 오웬

 

여기가 차붐의 나라입니까. 그는 나의 우상입니다. - 발락

 

차붐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영웅이다. - 피구

 

난아직 어리다.

그러나 차범근은 세계최고의 공격수이다. - 마테우스

 

난 차붐을 낳은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가 독일에있었다면

어김없이 독일 대표팀으로 넣고싶다. - 베켄바우어

 

차붐은 진정으로 축구를 할줄안다. - 펠레

 

내가 그런 공격수랑 붙지 않은게 정말 다행이다. - 말디니

 

내 자신은 어느정도 성공한 공격수로 평가받지만

차붐정도는 아니다. - 클린스만.

 

차범근에 관해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1. 독일에서 활약하는 동안 기록한 98골중에 페널티골은 단 한골도 없었다.
2. 독일에서 활약하는 동안 경고(엘로우)카드를 딱 한 장만 받았다.
3. 겔스도프에게 의도적인 태클을 당해 척추가 부러져 선수 생명의 위기에 몰렸으나 병상에 오래누워있다가 나온후에도 그 선수를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 전 독일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4. 차붐이 활약했던 당시 독일축구계가 그를 귀화시키려고 무던히 애썼지만 그는 자신의 조국을 버릴 수 없다고 단호히 사양했다.
5. 차붐이 병상에서 일어났으나 후유증으로 슬럼프가 길어지자 한국의 언론에서는 그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독일언론에선 정말 한심한 사람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6. '상대방이 반칙을 하면 당신은 무어라 말할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건 규칙위반이다. 그러면 안된다'라고 말한다고 하였다.그럼 그 선수에 대해 보복을 할 경우도 있냐는 질문에 '나는 신앙인이며 그런 행동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7. 차범근의 경기가 녹화방송되던 80년대 초의 월요일밤은 술마시는 사람들조차 귀가를 서둘렀다고 한다.
8.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한국대표로 차붐이 출전하자 상대팀에서는 그를 막으려고 기본이 2명, 많게는 3명이 달라붙었었다. 

 

"느낌이 잘 안오신다..?

박찬호가 데뷔 첫해부터 풀타임 메이저리거로 뛰어 데뷔하자마자 메이저리그를 통털어 투수부문 7위의 성적을 거두고, 그 다음 해 동양인 최초의 사이영상을 수상하고, 얼마 후 동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MVP를 먹고,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결승에 두번이나 진출시키고 그때마다 마지막 7차전에서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가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시라.


그리고는 그가 마운드에 등장하면 관중들이 전부 찬호를 연호하며 박수를 치고,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유니폼이 영구전시되고 도대체 박찬호를 모르는 미국시민이란 없는 그런 상황... "

차범근이 한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가 어떤 인물인가.조선일보에서조차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에 선정한 위인이다.

1998년 독일 축구역사가협회에서는 20세기최고의 아시아선수로 차범근씨를 선정했다.

1999년 축구잡지로는 최고의 명성을 자랑하는 월트사커지는 차범근씨를 잊을수 없는 100대 스타로 선정했다.

그가 차지했던 분데스리가 MVP 는 지금의 세리에 리그의 MVP나 다를바가 없다.80년에는 세계축구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인 차범근인 것이다.그가 바로 변변한 홈페이지 하나 없이 매장당해버린 대한민국이 낳고 대한민국이 버린 차범근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내 축구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고 가장 위대한 선수인 차범근.

차범근 축구교실의 강태풍군은 한 인터넷까페에 차범근씨의 사진과 함께 이런글을 올려놓았다.
"저 뒤에 망치들고 계시는 저분 저분이 바로 우리 감독님 이시다.우리다칠까봐 망치들고 얼음 깨는 저분. 저분이 바로 세계속의 갈색 폭격기 우리 감독님이시다."


그리고 저기 작은 축구교실에서 아이들이 다칠까봐 묵묵히 얼음을 깨고 있는 허리숙인 저 사람이 바로 우리가 묻어버린 .. 그를 버린 한국축구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차범근인 것이다.

2002년에 또 하나에 일화는 차범근이 독일대표팀을 걱정하는 발언을 했는데 그걸 들은 푈러감독이 발끈하며 남에나라 신경쓰지말라는 비스무리한 발언을 하니까 독일언론이 위대한 분대스리가에 영웅말에 감독이 너무 경솔하게 행동하는거 아니냐며 도리어 푈러감독을 질타했다고합니다.

 

독일에서 선수생활을 할때도 누구처럼 요란스레 태극기로 치장을 하고 다니지 않아도 항상 그는 한국인으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한국을 알렸다. 그가 부상으로 긴 재활을 거치는 동안 국민들은 지금 박찬호에게보다 더한 야멸찬 비난과 조소를 던졌지만 그는 스스로 단 한번도 국민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독일로 귀화하면 더 큰 기회와 혜택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하지 않았다. 국가대표로의 부름에 만사를 제쳐두고 임했으며 입버릇처럼 이 축구의 기쁨을 우리나라에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감독으로서 경력은 밝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축협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로 모든 축구활동에서 파문당했을 때도 끝까지 놓치 않았던 것이 유소년축구였다. 모 방송사는 이 축구단이 비리가 있다고떠들어대기까지 했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2002해설 중에도 그는 국민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가 바로 이게 너무 부러워서 한국에 축구를 전하고 싶었다고, 이래서 내가 축구에 미쳐 산다고 말했다.
어떤 언론은 예전에 그를 비판하면서 이런 제목을 달았다.
축구대표팀감독이 축구와 가정 신 밖에 모른다고.
축협과의 원활한 교류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지만
오늘날 외국인감독들이 오면서 이 얘기는 하나의 코미디가 되었다.

4백을 처음 시도한 대표팀감독.

지금은 안하면 난리칠거 같다는 파워프로그램을 처음 도입한 감독.(그러나 당시 축협이 우린 체력은 무적이라고 거부)

평소의 선후배관계는 중요하지만 경기장에서는 대화를 위해 호칭을 빼라고 한 감독.

기자회견시간을 정해놓았던 첫번째 감독.

당시에 수없이 비난을 받은 이 모습들을 우린 2001년 히딩크감독이 그대로 재현하는 것을 보며 히딩크식 리더쉽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결코, 단 한번도 그 당시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유는 한가지. 자신은 패장이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이름을 높이 올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국민들에게 쓴소리를 던진다.
자기를 위하여 다른 이들에게 쓴소리를 한적이 없는 이 사람이
지금 이 순간 쓴소리를 던지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
그는 애국자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독일인이었다면 지금쯤 베켄바워를 능가하는
축구지도자가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곧은 성격이 감독으로도 행정가로도 나설수 없게 만드는
(물론 감독의 능력에 대해서는 의견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네의 모습이 안타깝고 부끄럽다.

 

차범근.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가장 최고의 선수.

긱스&쉐바 = 포스트 차범근이라고 불리워져도 될 만큼

나라를 잘못만나 실력을 월드컵에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선수.

그래도 77년 말레이시아전때 4:1로 패색이 짙었던 종료 5분전 3골을 몰아 넣은 선수.

그를 너무나도 존경해 그를 태어나게 한 그의 조국을 찬양하는 시를 쓰는 작가가 있을 정도의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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