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 김재원&유민의 새해인사 / 설기현&윤미부부의 집공개..

악마의 유혹 |2003.01.31 16:54
조회 2,615 |추천 0

 

 

 

 

 



기획_이창훈 기자 취재_안순모(자유기고가) 사진_중앙포토

가고 오는 데만 3일이 걸렸다. 먼 나라, 벨기에에서 ‘설붐’을 일으키며, 아름다운 집으로 이사한 남자.
그 남자와 어리지만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기를 키우며 꿈을 키워가고 있는 그들만의 파라다이스.


★★ 15년 된 화이트 하우스

브뤼셀 서부 세인트 류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해 있는 전형적인 유럽 스타일의 이층집. 하마터면 지나칠 뻔했다. 집 앞에 택시가 섰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나온 집주인 덕분에 겨우 집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구단의 친구들이 집이 하얗다고 화이트 하우스라고 불러요. 그러면 백악관인 셈인가?(웃음)”

구릿빛 설기현의 얼굴이 건강해 보인다. 이 집으로 이사한 지 이제 겨우 열흘. 설기현(23)의 아내 윤미씨(22)는 기자 일행을 맞느라 집 정리하고 청소하느라 몸살이 나기 직전이다. 그래도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는 없는 듯 부부의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이 집은 설기현의 위상이 한마디로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키워드다. 널찍한 거실과 4개의 침실이 있는 이 저택은 소속 팀 RSC 안더레흐트가 마련해준 것이다. 이 집에 이사오기 전에는 구장 인근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그 아파트 역시 구단이 제공한 것. 지난 시즌과 올 시즌 설기현에 대한 구단의 대접이 얼마나 달라졌나를 알 수 있다.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오니 갑자기 유명인사가 돼 있었습니다. 팀 첫 미팅에서는 평소 아는 척도 안 하던 선수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TV에서 다 봤다’ ‘정말 잘하더라’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더군요.”

당시 벨기에 사람들은 설기현에 대해 설기현 본인보다도 더 놀란 상태였다. 그는 유럽에서는 그리 명문이 아닌 벨기에 주필러 리그의 한 프로팀 벤치 멤버였다. 거의 모든 국민이 축구 전문가인 벨기에에서도 그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선수가 한국 대표팀의 주 공격수를 맡아 소속 팀을 4강으로 진출시키는 것을 보고 벨기에 사람들은 멍한 느낌이 들었다.

설기현은 월드컵이 끝나고 새로 시작한 시즌부터 팀의 주전 자리를 꿰찼다. 브로스 감독은 설기현을 전폭 신임, 그에게 공격수의 임무를 맡겼다. 설기현은 첫 경기에서 결승골을 비롯해 2득점을 기록, 감독의 신뢰에 보답했다. 설기현은 이후 리그 경기와 UEFA 컵 등 팀이 출전하는 전경기에 주전으로 뛰고 있다. 한때 시즌 득점 랭킹 선두를 달리기도 했던 그는 현재 8골을 기록 중. 여전히 벨기에에서 ‘SEOL’(벨기에에서는 설기현을 이렇게 부른다) 핵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가난, 그리고 결혼

대학 2학년 때 지금의 반려자가 된 윤미씨를 만났다. 대학 축구부 친한 동기의 여동생이었던 부산 아가씨.

“오빠(윤철한씨)와 남편이 광운대 축구부에서 만난 친구 사이예요. 오빠가 운동을 하니까 집에서 끊이지 않고 개소주를 만들어다 줬는데 어느 날부터 오빠가 개소주 양을 두 배로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집에서는 오빠 혼자 그것을 다 먹는 줄 알고 계속 만들어줬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절반을 남편한데 갖다줬던 거예요.”

윤미씨는 지금도 오빠가 했던 말들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축구부에 정말 괜찮은 친구가 있는데 여덟 살 때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집안 형편이 어렵다. 친구로서 축구를 너무 힘들게 하고 있는 그 친구를 도와주고 싶다’.

고3 때 처음 만나 그녀가 동아대 섬유미술과에 합격함과 동시에 연인 사이로 발전한 이들. 2년 전 설기현이 벨기에의 로열 앤트워프 선수생활을 하다가 허리를 다쳤을 때 당시 마침 어학 연수 겸 배낭여행을 하느라 벨기에 와 있던 윤미씨가 극진히 간호를 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두 사람 나이 이제 스물셋, 스물둘. 또래 같으면 아직 대학생활을 할 이들은 남들보다 빨리 사회를 알고 세상을 알고 삶을 살아가고 있다. 프로축구 선수 생활 3년, 결혼, 게다가 한 아이의 부모가 됐으니. 아이가 생긴 후 이들 부부의 생활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완전히 아이 중심의 라이프 스타일로.

사실 설기현은 아내가 아이를 낳기 전까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더 솔직히 말하면 싫었다. 그런 그를 보고 어머니는 너도 네 자식 낳아보면 알 것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이제서야 느낀다. 인웅이는 지난 7월 27일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3.8kg의 건강한 남자 아이. 탯줄은 설기현이 직접 잘랐다. 아내의 출산 과정을 지켜본 것을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보지 않았더라면 아내가 그렇게 고생하며 아이를 낳았는지, 그리고 가슴을 뭉클거리게 만든, 생명이라고 힘차게 외치는 울음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 Life Style in Brussels

아이가 태어난 후 두 사람은 3개월 동안 각방을 썼다. 충분한 수면은 몸이 무기인 운동 선수한테는 중요한 필수조건. 하룻밤새 몇 번씩 깨서 우는 아이나 아내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낳기만 하면 알아서 크려니 싶었는데 그게 절대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낑낑대며 아이를 키우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애기 아빠가 되니까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생겨요. 운동장 나가서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그리고 집안이 시끄러워지고, 휴식 시간이 줄어들고…(웃음).”
은근한 자랑이 푸념으로 바뀌자 스스로 웃어버리는 그를 보고 아내도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 대해 매력이 있다고 표현했다.

“무뚝뚝하지만 자상하고 심성이 착해요. 심지가 굳고, 곧은 스타일이에요. 요즘은 몸에 좋다니까 포도주는 가끔 마시지만 얼마나 자기 관리가 철저한지 몰라요. 술은 물론이고, 몸에 좋지 않은 기호 식품들은 절대 먹지 않아요. 연습 벌레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운동하구요.”
두 사람을 ‘미녀와 야수’ 같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아내는 처음부터 남편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자기가 보기엔 남자답게 잘생겼고, 게다가 웃는 모습이 얼마나 순박한지 마음에 쏙 들었다고.

벨기에 생활 3년째에 접어들면서 부부는 알게 모르게 유럽식 라이프 스타일에 젖어들고 있다. 남편은 가정적이면서 자유로운 부부관계에 익숙해졌고 아내는 한국처럼 정은 없지만 약속 시간 철저히 지키고 남한테 피해 안 끼치는 문화에 호감을 느끼고 있다.

그녀가 아기를 볼 때 남편은 자연스럽게 식탁을 차린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편안하게 역할 분담을 하는 게 익숙해졌다. 고급 주택에 살아도 경차를 타며 검소하게 살아가는 유럽 사람들. 젊은 부부들보다 오히려 나이 지긋한 부부들에게서 멋쟁이 차림을 많이 보았다. 멋스럽게 차려입은 노부부가 여유롭게 여행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저렇게 인생을 살자 마음 먹었다.

“빅리그의 스타들이라고 발이 셋은 아니죠. 똑같은 사람인 만큼 한번 해보자, 그렇게 돼보자 다짐합니다. 힘들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촌놈’다운 우직한 멘트엔 그만의 웃음과 정이 실려 있다. 구단에서는 더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을 하자고 제의하지만 그는 더 큰 리그로 가서 부딪혀보고 배우고 싶다. 도전하는 자만이 한 단계 발전하는 게임의 법칙을 알기 때문이다.

인터뷰 다음날 관전한 브뤼셀 홈경기로 열린 주필러리그 롬멜전. 낯선 동양인들의 출현에 안더레흐트 팬들은 금세 ‘SEOL’을 연상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이날 경기에서 설기현은 골을 넣는 데는 실패했지만 팀 공격을 이끌며 상대 수비를 교란, 안더레흐트의 2-1 역전승을 견인했다. 역시 ‘설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펌)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연예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