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스톤을 알게 된 것은 물론 프렌즈를 통해서였다. 그 여섯명의 친구 가운데서도 유난히 빛나는..하지만 애니스톤의 빛은 다른 사람을 가리고 자기 혼자 빛나는 빛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드럽게 융화되면서도 레이첼이 나오지 않는 장면은 어색하고 허전하게 느끼는...그런 오후의 노란 햇살같은 빛이었다.
애니스톤이 피트와 결별을 한 지금까지도 애니스톤과 관련된 기사는 빈스 본과의 기사가 무색할 정도로 안젤리나 졸리와 피트 그리고 애니스톤의 삼각관계를 자극하는 내용 투성이이다. 애니스톤을 동정하는 듯하면서도 언론은 애니스톤에게는 너무 잔인하고 인색하다. 내가 요즘 할일 없이 돌려 보는 채널 중 하나가 온스타일인데 오늘은 재미있는 내용이 나왔다. 할리우드 탑3를 보니 가장 떠들썩한 이별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스타커플 1위와 2위를 나란히 브란젤리나와 보니스톤이 차지했더라. 웃긴건 "졸리와 피트가 미스엔 미세스 스미스를 찍을때 졸리가 매일같이 피트에게 전화했었다는 사실은 넘어가도록 하죠"라는 멘트가 나왔다는 것이다. 졸리가 피트와 젠의 사랑의 방해자였다는 사실은 그녀가 아무리 변명한다 해도 누구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라는 걸 반영해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론은 안젤리나 졸리를 대놓고 비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졸리가 너무나도 언론 플레이를 잘하는, 언론과 쇼비즈니스의 긴밀한 관계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회 자선 사업과 입양에 엄청난 거액을 기부하는 사람을 쉽사리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묵인된 금기 사항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졸리의 행동을 보면서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마치 세계를 돌면서 쇼핑하듯이-어떤 잡지에서는 쇼핑이라는 단어를 써서 빈정거렸다가 비난을 받았다- 아이들을 줄줄이 쉽게 입양하는 행동이 정말 동정심에서 우러나는 어떤 구제 행위라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보여질 때가 있다. 심지어는 어떤 신문에서는 두번째로 입양한 자하라는 고아가 아니라 외할머니가 있었다고 한다.그녀를 돌보아줄 친척이 있는 아이에게 차라리 지속적인 원조가 필요하지. 입양이 과연 절실했을까? 세계 어린 아이들의 문제는 그 사회 구조가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문제지, 한명, 두명을 입양함으로써,끝나는 문제가 아니잖아?
돈 많고 사회적 명성까지 있는 엄마를 두어 호화로운 생활을 하게 된 두 아이에겐 정말 행운이겠지만,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아이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된 졸리가 요즘 하는 말이 좀 모순된 것 같다. 피트가 두 아이를 자신의 호적에 입적하고, 본격적인 아빠역할을 해주는 요즘, "아이들이 편모 가정에서 자라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말을 한 졸리의 모습이 정말 모순적이고 가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구 상에는 수많은 미혼모의 아이, 편모,편부의 가정이 존재한다. 그럼 졸리 말처럼 '다행스럽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난 수많은 아이들은? 내가 정신분석을 5년째 공부해봐서 아는데,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끌어줄 모델, 즉 사회적 아버지, 사회적 어머니만 있다면 다 정상적인 성장이 가능하다. 심지어는 레즈비언 커플 사이의 아이들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자라난다.
자기 자신은 결혼제도를 부정하면서 미국 사회가 꿈꾸는 완벽한 부르주아지적 가정상을 버리지 못한 졸리의 모순이 드러나는 순간이다.겉으로 보기엔 피트없이도 잘 살것 같지만 누구보다도 피트의 네임 브랜드에 기대고 있는 졸리. 졸리의 다행스러움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행은 하면서도 자신이 그런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은연중의 생각을 반영해주고 있는것 같다.
흔히들, 사람들은 안젤리나 졸리는 여신, 여전사에 비교한다. 아마 그녀도 모르긴 모르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이미지나 칭호들이 부담스럽기도 할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미지에 걸맞는 행동을 한다.
독특한 카리스마를 노출시키기도 하고, 일반인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자선 사업, 게다가 영화 활동, 그리고 엄마라는 역할을 하면서도 날씬한 몸매까지. 정말 완벽한 인간상을 보여주려 한다. 거기에 비해 애니스톤은 언론플레이를 잘 하지 못하는 서투른 배우다. 졸리는 사랑에도 성공하고, 아이를 가진 엄마가 되는 것에도 성공하고, 그녀의 사회 사업도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리고 그것이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듯이 의기양양한 졸리에 비해 자신의 활동을 위해 아이 갖는 것을 미룬 애니스톤이 쭈그러져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언론이 떠들썩하게 칭찬하는 졸리의 모습은 우리들의 현실의 삶을 반영해주지는 않는다.졸리는 슈퍼우먼인지 모르지만, 아니 슈퍼우먼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배우인지 모르지만, 일과 사랑 아이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자, 애니스톤의 솔직한 모습이 우리 삶과는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 아닌가?사랑과 이별에 울음을 터뜨리고, 연연하는 애니스톤이 우리의 진실이라면, 언론의 비난쯤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케일 크게 자선과 아이 키우기에 전념하는 그녀의 모습은 멋지지만 평범하지 않은 허상이다.
그리고 제일 치사한 언론 플레이는 아이를 내세운 플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니스톤을 버리고 졸리에게 간 피트가 혹은 상대적으로 비난을 덜 받는 것 역시 아이들과 다정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자주 잡혔기 때문이다. 누구도 엄마, 아빠의 모습에 돌을 던질 수 없는 것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애니스톤이 영 사회 자선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 것같다. 아니, 그녀도 꾸준히 기부하고 있었다. 다만 졸리처럼 떠들썩하게 플레이 하지 않을 뿐이다.-파파라치에게 자기 아들과 공원에 나올테니 사진찍으러 와라 라고 전화하는 등... -최근, 리즈 위더스푼과 유방암 자선 바자회에 각각 애니스톤 재단과 리즈 재단 이름으로 거액을 기부하는 선행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 그녀가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연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우리나라 언론들은 애니스톤이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졸리를 대작 배우로, 애니스톤은 시트콤 배우 정도로 묘사하는데, 그건 배우로서의 애니스톤을 전혀 읽어내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레이첼이라는 한 캐릭터를 그렇게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 수 있을까? 10년 동안 레이첼이 되려면, 작품과 스텝의 완성도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한 캐릭터에서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모습과 섬세한 부분들을 캐치해 낼 줄 알아야 가능한것 아닐까? 애니스톤에게는 사랑스러우면서도 이기적이고, 흐트러진 듯 하면서도 긴장감이 있고, 변덕스러우면서도 밉지 않은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같다. 특히 우리 일상 속의 평범한 여성성도 영화거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극대화시켜주는 그런 능력 말이다. 프렌즈 위드 머니같은 작품은 정말 애니스톤을 위한 영화다. 안젤리나 졸리가 그런 작품에 나올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안젤리나 졸리라는 배우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을 갖게 된 건 정말 우연히 볼 영화가 없어서 남자 친구와 함께 툼레이더를 봤을 때였다. 온갖 의식 있는척은 다하면서, 다분히 미국중심적인 패권적인 가치관이 깔려있는 액션영화에 캐스팅 된 것을 보고, 영화 고르는 안목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특히나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영화 중간에 보면 동남아의 한 사원에 들어가 보물을 수호하는 원숭이 상을 때려 부수는 오리엔탈리즘을 떡칠한 장면들이 나오는데 정말 거북스럽더라.
그에 비해 애니스톤이 선택한 영화는 자기 자신을 조금씩 키워가기 위한 행보였다고 생각된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에 출연하면서 자신과 밀착된 캐릭터를 하면서 조금씩 영화의 어법을 익히고 프렌즈 위드 머니 같은 작품으로 자신을 변신시킬 줄 아는...좋은 배우라는 생각이다.
폴리와 함께에서 곱슬머리를 하고 서글서글 웃고 있는 해맑은 그녀의 미소를 다시 보고싶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