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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죽었다

장동엽 |2006.08.03 02:43
조회 47 |추천 0

오늘 내가 진행하는 인티넷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관련보도를 소개했다. 그 와중에 이 사진을 마주하는 순간 눈물이 쏟아져 더 이상 방송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간악하기짝이 없는 이스라엘은 "지속적이고 항구적이며 유지가능한 휴전"이 아니면 "즉각 휴전"은 안 된다며 무자비한 학살을 엄호해주고 있는 미국의 등에 올라타 '호가호위' 하고 있다. 그들이 추앙하는 신은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어린 양을 이다지도 무참히 학살하라 명령하던가.

 

이제 더 이상... '성전'은 없다. 예수는... 죽었다. `

 


` 이스라엘 공습으로 마을 전체가 허물어진 레바논 카나 지역에서 구호활동 중인 적십자 대원이 잠든채 즉사한 아이의 시체를 들어보였다. - AP

 

2006년 7월 30일 새벽 1시, 레바논 남부 카나 마을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한 56명의 주민들이 한꺼번에 학살되는 참극이 빚어졌다.

 

이스라엘은 이날 새벽 1시 헤즈볼라의 로켓 발사 지점이라는 이유로 카나 마을의 3층짜리 빌딩을 미사일로 공격, 이 건물에 대피해 있던 주민들 중 56명이 즉사했다. 사망자 대부분은 부녀자와 어린이로 레바논 보안 당국에 따르면 어린이 34명, 여자 12명이 포함돼 있다. `

 

 

 

또 다른 전쟁의 간악함... 그리고 참혹함...

 


 

'가짜교전' 현장을 가다

비자 없는 세상(68) : 카슈미르(5)

 

2006/7/31
이유경 기자 penseur21@hotmail.com


 

그건 가짜였다. 모든 언론이 ‘교전’이라고 보도했지만, 그건 국민군(RR) 14연대, 국경보안대(BSF) 90대대와 특수작전그룹(SOG), 경찰 등 수십 명의 군 집단이 적도 없이 쏘고 불지르고 부숴 된 ‘군사 퍼포먼스’였다. 24시간 동안 그들은 두 채의 가옥과 가축우리 한 곳을 파괴했고 파괴된 가옥 주민 무하마드(32)를 잡아갔다. “작전은 계속 간다. 오늘 밤 소년 몇 명 잡아다가 죽인 후 ‘무장세력’ 만들어서라도…” 마을 주민 파룩 아부둘라(가명, 30)는 작전 둘째 날 점심나절 두 군인의 힌디어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며 결정적 증언을 해주었다. ‘작전’시작 후 약 20시간이 지난 그 즈음, 잡겠다고 나선 무장세력을 찾지 못하자 군은 그런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무장세력이 현장에 있다는 또렷한 증거 없이 일단 개시하고 보는 군사 작전. 원하는 적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작전을 ‘성공’시키는 놀라운 군인 정신! 그날 그들의 계획이 좌절된 건, 정황상 보건대, 언론 때문이었다.


무장세력 될뻔한 소년들 목숨 언론이 살렸으나…

7월 17일 오전, 나는 지난 달 30일 발생한 가짜 교전에서 인간방패로 이용되다 사망 한 후 무장세력 딱지까지 달게 된 젊은이 가족을 취재하기 위해 카슈미르 북부 반디푸라(Bandipura)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는 길에 “반디푸라 지금 교전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음을 교전현장으로 돌렸다. 11시 30분경. 반디푸라로부터 17km 떨어진 상그리 구루라(Sangri Gurura) 고속도로 위에서 군은 모든 차량을 멈춰 세우고 샅샅이 검문했다. 반디푸라 거주 주민들은 우여곡절 끝에 통과되었지만 나의 일행은 고속도로 위에 남겨졌다.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 필요 없고 내 몸 내가 알아서 챙길 테니 통과만 시켜주오, 부디” 그때부터 현장을 가기 위한 전화질을 시작했다. 카슈미르인 경찰은 나를 통과시켜주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지만 무기력했고 인도 군은 무조건 막아 섰다. “마담, 지금 교전 중이라 위험하니 내일이나 며칠 후 와라” “교전현장 근처도 안 가겠다. 지난 달 발생한 무장세력에 의한 사망한 민간인-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군이 고용한 정보원이었다- 가족만 얼른 취재하고 돌아오겠다” 나는 ‘무장세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강조하며 매달렸고 그렇게 이 상관 저 상관 통화한 끝에 반디푸라 서브지구 경찰서장으로부터 가도 좋다는 구두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차에 오르는 일행을 또 다시 국민군 병사가 막아 섰다. “못 가!” 군과 경찰은 종종 이렇게 따로 놀았다. 그러는 사이 교전 소식에 밀려온 각종 언론사 차량 7-8대가 모두 멈춰 섰다. 그리고 미디어의 통행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약 4시간 동안 군은 차와 간식을 날랐고 카메라 기자들은 폼 잡고 선 군인들을 찍어대며 시간을 죽였다.

 


24시간 동안 벌인 가짜 교전은 가옥 두 채와 가축우리 한 곳을 파괴했지만, 무장세력은 잿더미 속에도 없었다. - 이유경

 

“지금 방화 중이라네…주민 몇 명이 불타 죽은 것 같다는데…정확한 건 가봐야 알지” 약 1시경 반디푸라 현지 정보원과 통화한 한 인도 방송사 소속 기자가 말했다. 일부 기자들은 (정부 입맛을 잘 살려 보도하는) 인도방송까지 막아선 게 심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군 고위 간부들과 핫라인이 있는 기자들이 수시로 전화를 걸어대는 통에 3시 20분경 가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언론은 그날 밤 가짜 무장세력이 될 뻔했던 소년들의 목숨을 살린 셈이었다. 미디어가 들이닥쳤다는 걸 안 군이 작전을 ‘적당히 멈춘 것’으로 강하게 추정된다. 그렇다면 젊은이들의 목숨을 살린 언론이 현장의 진실은 얼마나 살려냈을까? 불행히도, 그 가짜 교전에 대한 보도 역시 가짜였다. 일부 언론은 “반디푸라 교전 중 무장세력 두 명, 경찰 한 명 사망”으로, 또 다른 일부는 무장세력 두 명만 사망한 것으로,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무장세력 교전 중 빠져나가” 로 보도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사실’ 들이 그날 밤과 다음 날 들쭉날쭉 보도되었다.


‘진짜’로 둔갑한 ‘가짜 교전’

4시경, 마을 입구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연기를 좇아 도착한 현장에는 군인 십 여명이 서둘러 빠져나가고 있었다. 만 하루 동안 숨죽여 있던 마을 주민들은 죄다 튀어나와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자들을 향해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삶터가 날라간 앞 못 보는 노인 마스라(80)는 잿더미, 돌더미 앞에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알아듣지 못할 통곡을 쏟아냈다. “봤지? 아무런 이유 없이 가옥들을 불태우고…저 80 노인이 무슨 죄냐고” 모 외신 소속 카메라 기자와 한 인도 방송사 기자가 내게 말했고 단언컨대, 이런 반응은 당시 현장 취재 기자들의 공통적인 정서였다. 며칠 후 나는, 혼란스런 언론보도를 두고 현장에 있었던 한 카메라 기자에게 물었다. “그 교전 진짜야 가짜야”? “진짜지. (왜?) 군 대변인의 공식발표가 ‘교전’이라고 했으니까.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싶으면 양측의 의견을 같이 실으면 돼” 그는 보도방향까지 잡아주었다. 객관보도 좋지! 그러나 그 ‘객관 보도’는 영자 일간지 인디안 익스프레스에만 담겼다. 현장취재를 못해 전화로 현지주민과 군 양측을 통화했다는 이 신문 기자 B는 마을 주민들의 주장을 한 문단 채움으로써 객관성을 갖추었지만 기사흐름은 교전이었고 제목은 군 대변인 바트라(V K Batra) 중령의 말을 인용 ‘무장세력 빠져나가’였다. 그러나 바트라 중령은 둘째 날 아침만 해도 “두 명의 무장세력을 교전 중 사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언론보도가 뒤죽박죽인건 이렇게 앞뒤 안 맞는 ‘공식 발표’에만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을 방문한 후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교전이 가짜였다고 비판한 강경파 지도자 길라니의 발언은 지역신문 ‘그레이터 카슈미르’에만 인용되었다.

점령군에 파괴된 현장은 이렇게 그럴듯한 그림만 제공하는 공간으로 농락당하고 있었다. 인도 언론은 ‘국가이익’을 보도의 최우선 가치로 얹어 놓은 지 오래고, 카슈미르 언론들은 ‘진실과 점령군 사이의 객관’이라는 또 하나의 ‘분쟁보도 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언론자체가 토벌작전에 동참하고 있는 꼴” 이라는 인권활동가의 의견이나 “언론만 제대로 보도했어도 카슈미르가 이 지경까지 왔을까”라는 한 청년의 반문이나 시위현장에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심심찮게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 모두 언론이 심어놓은 죄과였다. 이런 문제의식을 잘 파악하고 있는 기자 H는 나의 방문 초기부터 외국 기자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았드랬다. 그는 스리나가르에 사무실까지 둔 세계적 외신 C의 경우 하루가 멀다 하고 뭔가 벌어지는 마을 현장을 ‘절대로’ 뛰지 않고 ‘공식’발표만 적절히 섞어 보도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영향력 막강한 이런 외신들이 스리나가르 폭탄 소식 외에는 별로 전하는 게 없으니 국제사회가 카슈미르의 뒷 골목 얘기를 알 리가 없었다.


파괴된 현장은 카메라 용 ‘그림’으로 농락당하고 …

 


집을 잃은 80세 노인 마스라. 파괴된 현장을 보지 못하는 눈이지만 그녀는 느꼈고 울부짖었다. - 이유경


 한편 아린 마을 현장의 진실은 마을 주민들과 군의 발표를 토대로 보면 이렇다.

16일 오후, 마을 주민들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던 군은 ‘수상한’ 소년들을 발견했다며 그 가옥으로 찾아 들었다. 3시경부터 약 두 세 시간 동안 두 가옥 거주민 모두를 불러내 취조했다. 한 가옥 주인 사이푸딘(Saifudin Mir, 55)의 큰 아들 무하마드(Muhamad Mabul, 32)가 잡혀갔고, 또 다른 가옥 주인 미스라(Misra, 80)의 아들 나지르(Nazir Ahmad)는 체포되었다가 몇 시간 후 풀려났다. 둘 모두 체포 전에 구타당했음은 물론 노인의 또 다른 아들 무스탘(Mushtaq Ahmad) 역시 구타당했다. 이 취조 때부터 주민들은 무장세력 따위는 없었다고 한결같이 내뱉었다. 마을에 소년들이 한 둘도 아니고 망원경 속 소년이 누구를 두고 한 말인지 알 길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부터 군인들은 집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군의 발표는 수색 작업 중에 두 가옥 안에서 무장세력이 먼저 총을 쏘기 시작했다고 말해 그들의 방화를 정당화했지만 무장세력은 잿더미 속에도 없었다. 방화는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되었고 군은 그때부터 박격포(mortar shell)도 쏘아대기 시작해 본격적인 ‘교전’을 만들어갔다. 불탄 현장에는 주로 무장세력이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구리빛 탄환 수백 발도 남겨놓아 교전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한 군의 노력을 짐작케 했다.
 
‘수색-> 방화-> 박격포’ 이 가짜 교전의 전형적인 형식은 지난 2일 반디푸라 감루마을에서도 똑같이 재현된 바 있다. 열 채의 가옥과 가축우리 다섯 채를 불태우고 100명의 홈리스를 낳았던 이 사건 후 주민들은 이렇게 말했다. “사건 다음 날 군은 우리에게 와서 두 명의 무장세력을 교전 중 죽였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거기에 무장세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잘 모르겠다니까”


반디푸라, 왜 이렇게 불타고 있나

사실, 이런 교전(진짜건 가짜건)은 카슈미르 남부 풀와마, 아난트나그 지구와 북부 쿠파라 지구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지는 소식이지만, 최근 반디푸라 지구가 유독 불타고 있는 배경에는 대략 세가지 배경이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익명의 군 관계자에 따르면 군은 ‘200명의 명단’이라는 무장세력의 자료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침해로 악명 높은 ‘이크와니’ 조직원과 군 정보원 민간인들이 그 명단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이 이크와니 조직은 반디푸라 지구의 아자스(Ajas) 마을에 기원을 두고 있는 만큼 반디푸라 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마을에서도 심심찮게 목격되는 사복무장 패러밀리터리 조직이다. 이 자료 입수 후 군이 작전을 강화하고 있다고 이 익명의 관계자는 말했다. 둘째, 지난 달 중순부터 군은 라슈카레 토이바(LeT : 최근 뭄바이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무장조직) 고위 사령관이 반디푸라 정글에 둥지를 틀었다는 얘기를 지속적으로 언론에 흘리며 군사작전을 강화해가고 있다. 셋째, 지난 달 30일 발생한 인간방패 이용 가짜 교전에서 추한(V R Chouhan) 중령이 사망한 것이 군사작전의 또 다른 ‘빌미’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사건은 대단히 구린내가 많이 나는 사건이다. 사건 당시와 이후 전개 상황을 살펴보자.

 


인간방패로 사망 후 무장세력으로 둔갑한 23세 청년 아비드. 좌우는 각각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사진. - 이유경

6월 30일 오전 9시 45분경, 반디푸라 중심지인 나우푸라의 ‘Peer & Sons’ 쇼핑센터로 일단의 국민군(RR)이 닥쳤다. 가게 문을 모두 닫게 한 후 상인들을 일렬로 줄 세운 군은 두 명의 젊은이를 골랐다. 건물 주 아들 아비드(Abid Hussain Shah, 21)와 전파상을 운영하던 만조르(Manzoor Ahmad Dar, 24)가 ‘인간방패’로 색출되었다. 당시 아비드의 가게 안에 함께 있던 아비드의 친구이자 이 사건의 거의 전 과정을 목격한 라이(Rayees Ahmad Shah, 23)에 따르면, ‘무엇을 원하냐’는 상인들의 질문에 군은 수색작전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이 건물에 무장세력이 숨어들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통상적인 발언은 하지 않았다. 두 인간방패를 앞세워 추한(V R Chouhan) 중령이 사병 서너 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바깥 군 누군가에 의해 셔터 문이 닫혔고 10분 후 안에서 폭발소리가 났다. 이 폭발 소리에 군은 즉각 총격을 가했다. 안에 있던 이들이 모두 숨진 건 당연한 결과였다. 군은 이 사건에 대해 건물 안에 있던 무장세력이 먼저 공격을 시작해 교전이 오고 갔다고 발표했다. 군은 건물 꼭대기 층에 있던 무장세력은 물론 인간방패로 이용된 이 두 젊은이가 무장세력이었다고 발표했지만 경찰은 두 젊은이 무장세력 주장은 채택하지 않았다. 군은 또한 건물이 파괴된 건 무장세력의 박격포 때문이라고 했지만 목격자들은 바깥 군이 불을 질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여, 두 젊은이는 인간방패에서 무장세력으로 둔갑하며 운명을 달리했다. 작전은 오전 9시 45분부터 1시 30분까지 계속되었고 소방 차 하나 허락되지 않아 건물은 완벽하게 불탔다. 이 가짜 교전에 대해 아비드의 삼촌 무하마드(Muhammad Suliaman, 50)는 물론 마을 주민들은 군 고관들 사이의 갈등관계를 강하게 의심했다. 그러나 군은 고위 상관을 잃은 이 사건을 이후 군사작전에 이용하고 있다. 마치 두 병사 납치사건을 빌미로 폭탄을 퍼부어대는 이스라엘의 거짓 논리처럼.

 

사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7월 12일 국민군 14연대, 15연대, 군 18여단, 특수작전그룹(SOG)와 경찰은 희생자 아비드의 집이 있는 팝찬(Papchan) 마을에서 대대적 단속을 벌였고 아비드의 아버지 사이푸딘(Saifudin Shah, 62)를 연행해갔다. 피카 소총 (Pika rifle)을 소지했다는 게 그의 혐의인데, 단 보름 전 인간방패로 이용되다 사망하고 무장세력으로까지 둔갑한 아들을 둔 아버지가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건 카슈미르 영토의 상식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정황이다. 가족들은 이 단속과 연행을 가족들이 준비하고 있던 소송에 대한 보복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군은 종종 이 집을 찾아와 이번에는 아비드의 남동생 마루프(Maroof Ahmad Shah, 18)의 소재를 묻고 있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마루프는 지금 피신 중이다.


무고한 집안 몰살시키는 군사 작전, 재개발 보따리로 막을 수 있나?

 

이렇게 무고한 집안을 몰살시키는 가짜 교전 한편으로, 인도 대통령 칼람(APJ Kalam)은 28일 ‘돈 보따리’를 들고 스리나가르를 찾았다. 대통령 방문을 앞두고 이틀 전부터 시작된 ‘단속’은 총잡이 군인들이 여행자 구역으로 불리는 달 호숫가 숙소들 방문까지 두들기는 무례함을 보였고, 도로는 하루 전부터 통제되는 등 민간인 삶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 한편 스리나가르 시민들은 변호사협회와 강경파 지도자 길라니의 ‘총파업’ 제안에 99% 화답, 거리의 모든 셔터를 내리고 말았다. 대통령의 돈 보따리가 진짠지 가짠지도 의심스럽지만 무고한 민간인들을 비열하게 전사시키는 이 땅에서 그 재개발 프로젝트 따위는 누구의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희생자 가족들은 단 한 건의 예외도 없이 경제적 보상을 ‘거부’ 했다. “경제적 보상 따위는 우리 아들의 목숨과 견줄 수 없어. 우리는 저 군인들이 정말 꼴도 보기 싫거든. 군 초소가 이 구역에서 사라지고 우리가 존엄을 갖게 되는 것, 그게 최대의 보상이야”
 
29일 새벽 4시. 어김없이 들려오는 모스크의 새벽 기도 소리는 그러나 다른 어느 때 보다도 짙은 음으로 울려 퍼지고 있다.


 

스리나가르 / 반디푸라(카슈미르 북부) = 이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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