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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 걸어온 야구 인생

이상호 |2006.08.03 03:58
조회 73 |추천 0

이승엽이 걸어온 야구인생

시련 있었기에 더 진한 감동이…
95년 고교 졸업후 어깨수술 '타자전향' 아픔
지독한 훈련…2003년 56홈런 아시아 신기록
'ML 상처' 딛고 日진출 … 3년만에 열도 정복    경북고 졸업생인 열아홉 살의 이승엽이 95년 삼성에 입단했을 때만 해도 크게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왼손투수 출신인 그가 어깨가 아파 수술을 받았으니 오히려 '실패한 스카우트'가 될 가능성이 커보였다.

 입단 첫해 타율 2할8푼5리, 13홈런으로 가능성을 보여준 이승엽은 96년에는 타율 3할3리를 쳤지만 9홈런으로 오히려 퇴보한 모습이었다. 타자 이승엽의 기량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97년. 타율 3할2푼9리에 32홈런을 기록하며 정규시즌 MVP가 됐다. 여전히 깡마른 체형에 앳된 얼굴이었던 이승엽은 당시 스물한 살에 불과했다.

 98시즌에 38홈런으로 한 걸음 나아갔지만 당시 OB 우즈의 42홈런 신기록에 가려 빛을 잃었다. 절치부심한 이승엽은 99시즌 5월 한 달에만 15홈런을 몰아치며 기세를 올리더니 오 사다하루(왕정치)의 아시아 한시즌 홈런 기록(55개)에 하나 모자란 54홈런의 대기록을 세웠다. IMF의 악몽이 채 가시지 않았던 시절, 시원한 홈런쇼로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줬다 해서 '국민타자'란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승엽이 또다시 한 시즌 50홈런 이상을 기록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54홈런 기록은 타격 재질이 뛰어난 이승엽이 어쩌다 보니 시즌과 궁합이 맞아떨어져서 기록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후에도 줄곧 최정상에서 낙오하지 않았던 이승엽은 2003시즌에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만다. 정규시즌 최종전인 대구 롯데전에서 2회에 이정민을 상대로 시즌 56호 좌중월 솔로홈런을 터뜨려 오 사다하루 감독(소프트뱅크)의 55홈런 기록을 넘어섰다. 56호 홈런볼을 잡기 위해 전국 야구장에는 매미채가 가득했었다. 그해 기록한 144타점 역시 지금도 한시즌 최다 타점으로 남아있다.

 2003년 말 미국 진출을 추진했던 이승엽은 그러나 예상 밖의 냉대에 낙심한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삼성 잔류와 일본 진출을 놓고 고민한 끝에 결국 지바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지바 롯데의 발렌타인 감독 밑에서 2년간 뛰었지만 플래툰시스템에 휘둘려 '반쪽 선수'가 돼버렸다.

 올 초 요미우리로 이적할 때만 해도 희망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집요하기로 유명한 센트럴리그 투수들을 상대로 더 부진한 성적을 남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하지만 이승엽은 개막전부터 홈런을 터뜨리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일본 최고 타자 위치에 올랐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누군가, 난 반드시 올라선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첨부파일 : 이승엽400호(6969)_0400x0411.s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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