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곡 : 베르디(G. Verdi, 1813-1901)
대본 : 마리에트(Mariette)의 원안을 로클(C. du Locle)이 프랑스
어 대본으로 작성,
이를 기초로 기슬란초니(A. Ghislanzoni)가 씀(이탈리아어).
초연 : 1871. 12. 24. 카이로
때와 곳 :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왕의 전성 시대 멤피스와 테베
등장인물 :
이집트 왕 베이스
암네리스(Amneris 그의 딸) 알토
아모나스로(Amonasro 에티오피아 왕) 바리톤
아이다(Aida 그의 딸, 암네리스의 노예가 됨) 소프라노
라다메스(Radames 이집트의 장교) 테너
람피스(Ramphis 이집트의 제사장) 베이스
사자 테너
그 밖에 제사들, 무녀들, 고관들, 무사들, 노예들, 이집트 민중 등
주요 아리아 : 청아한 아이다 Celeste Aida (테너)
오, 나의 조국 다시는 그대를 보지 못하리 O patria mia, mai pi ti revedro (소프라노)
설명...
베르디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4막 7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869년 11월 수에즈운하 개통을 기념하여 당시 이집트왕이 카이로에 건립한 오페라극장 개장식을 위해 10만 프랑의 사례금을 받고 작곡한 작품입니다.
이 오페라는 당시 이집트 브라크 박물관장으로 있었던 마리에트에게서 얻었습니다. 그는 왕의 의뢰로 작품의 줄거리를 찾다가 고대 사원의 제단 밑에 남녀의 해골이 발굴되었던 일을 힌트로 하여 여기에 여러가지 사건을 첨가시켜 이 작품의 줄거리를 창안해 냈습니다.
처음에는 이를 골자로 하여 프랑스의 대본가 뒤 로클이 프랑스어로 쓴 것을, 마지막으로 기슬란조니에 의해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만들었습니다.
1870년 12월에 이 작품을 상연하기 위해 베르디는 작곡을 서둘렀으나 1870년 여름 보불전쟁이 일어나면서 다음 해로 공연을 연기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871년 12월 24일 카이로의 이태리 극장에서 초연되었으며, 유럽에서는 1872년 2월 8일에는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에서 상연되었습니다.두 젊은이의 고귀한 죽음에서 희망을 봅니다
'아이다'는 여주인공의 이름입니다. 가련한 흑인 소녀, 전쟁 끝에 포로가 되어 적국인 이집트에 끌려와 왕궁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다는 '암네리스'라는 왕녀의 몸종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왕녀가 사랑을 바치고 이쓴 젊은 장군 '라다메스'와 아이다는 사랑하는 사이인 것입니다. 삼각관계입니다. 그것도 왕녀와 노예와 장군의 삼각관계... 어떻습니까? 너무 뻔한 이야기라고 느끼십니까? 오페라라는 것이 의례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억지로 만들어 놓는 것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줄거리를 따라가 봅시다.
'청아한 아이다'가 압권인 1막라다메스는 사령관에 제수되고 막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적국 에티오피아가 또 쳐들어 온다고. 그래서 우리 군사를 이끌 사령관을 신이 지목하셨다는 이야기를 하고 사제장 람피스는 왕에게로 갑니다.
라다메스는 자기가 그 사령관으로 뽑히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그 공로로 아이다와의 결혼 승락을 얻게 되기를... 공주 암네리스는 아이다와 라다메스와의 사이를 의심하는데...
전령이 도착하고, 에티오피아 군대가 왕 아모나스로의 지휘하에 질풍처럼 몰려오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집니다. (참, 아모나스로는 아이다의 아버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이다는 에티오피아의 공주인 것이죠. 물론 이곳 이집트에서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얼마나 억지 이야기인지요?) 모두 분노를 쌓아가는데, 왕은 사령관으로서 라다메스를 지목합니다.
공주도 승리를 기원하는 기를 주고, 일동은 "이기고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아이다도 같이 외칩지요. 그리고 모두 퇴장하고 나면... 아이다는 아니, 내가 이 무슨 소리를 했나 싶어 괴로워 하고... 장면이 바뀌어 신전입니다.
엄숙한 의식이 진행됩니다. 라다메스는 여기서 출정의식을 거친 후 승리의 칼을 받습니다.여기까지가 1막입니다. 이야기는 간단하죠.그런데 말이죠... 이 억지스런운 이야기에 음악이 입혀지면서 모든게 생생하게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우선 서곡... 가냘픈 바이올린 소리로 시작되는 이 서곡은 어떤 깨끗한 사람들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그들이 겪을 수밖에 없을 어떤 고통, 운명, 그런 것을 전해줍니다.
이 서곡이 연주된 다음에는 무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는 그 어느것도 농담이 될 수 없습니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모두 진짜여야 하고, 그 상황들도 억지일 수가 없게 되는 것이죠.
라다메스의 유명한 아리아, '청아한 아이다'를 한번 읽어 볼까요?
"하늘에서 내려온 듯 청아한 아이다, 빛과 꽃이 어두러진 신비여!너는 내 맘속의 여왕,내 목숨의 꽃이다. 조국의 아름다운 하늘,향기로운 들판을 네게 돌려주련다.
영광의 관을 씌워주고,빛나는 자리에 앉게 하련다.아!하늘에서 내려온 듯 청아한 아이다,빛과 꽃이 어우러진 신비여!...
"어떻습니까? 아름답지요? 무슨 군인이 이런 노래를 할 줄 알까요? 무식하고, 무뚝뚝하고, 잔인하고... 또 비겁하고... 그런 군인이 아니고... 남을 짓밟고 올라서고, 부하들에게 가혹하고, 적을 만나서는 무자비하게 칼을 휘두르고... 이런 군인이 아닌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멋과 풍류를 아는 평화주의자 같은 느낌이 들기까지 합니다. 더구나 전쟁에 이겨 적국의 여인에게 네 조국의 아름다운 하늘을 돌려주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군인으로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아주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열정이 담겨 불려지고 나면, 우리는 이 라다메스라는 젊은 장군이 더이상 억지로 만들어 거기 세워 놓은 '극중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진지하게, 그리고 '순진하게' 이 세상을 보고 살아가는 멋진 청년으로 우리 앞에 다가서는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이기고 돌아오라'는 외침을 입 밖에 내 버리고 만 아이다, 그의 심정을 읽어 볼까요?"신들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네,그이와 아버지,어느 편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어느 편을 위해 울어야 할지...
한 분을 위한 기도는 다른 분께는 저주,눈물도 한숨도 죄가 되네,밤은 깊어 나는 길을 잃고,이 고통 속에서 나는 죽을 것만 같네!신들이여, 이 고통을 살피소서,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이 어쩔 수 없는 사랑,가슴을 찢어 놓습니다.신들이여, 이 고통을 살펴 주소서!...
" 아이다의 괴로움이 전해집니까? 상황은 억지로 만들어진 게 분명한데도, 그 상황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마음을 음악가가 진지하게 자기 것으로 하여 같이 괴로워하면서 그려낼 때, 이와 같이 억지 인물과 상황은 금방 살아 움직이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육박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아이다는 "신들의 이름...", "신들이여..." 이렇게 부르고 있군요. '신들'? 왜 그렇죠? 물론 여러 신들을 믿던 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옛날엔 신이 많았죠.
그래서 예컨대 행운을 가져다 주는 신, 아이 낳게 해주는 신, 싸움에 이기게 해 주는 신 등등. 온갖 경우에 알맞는 신들이 있어서 그때그때 알맞는 신의 이름을 부르고 또 그 신의 신당에 가서 기도하고 제사지내고 했던 것이죠.
고대 이집트의 신들은 수없이 많았는데, 오페라에서 당시의 신들을 다 부를 수는 없기 때문에, 오페라에서는 주된 신으로서 '이시데'신,(또는 '이시스'신) 전쟁의 신으로 '푸타'신이 나오는 정도죠.
아이다는 이집트인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냥 '신들'을 부르는 것으로 처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신들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신들은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 나라가 이집트처럼 엄청나게 커졌을 때, 그 신들도 엄청난 힘과 권위를 갖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집트하면 생각나는 큰 것들,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기타 거대 유물들을 연상하면서, 그 뜨거운 햇볕 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등에 채찍을 맞으며 그 힘겨운 일을 하다가 쓰러지고 죽어 갔을까 생각지 않을 수 없지요?
그 수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몰고가는 힘, 그것이 신들이죠.이 오페라에는 신과 관계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출정 의식을 하는 푸타 신전입니다.
이 세상엔 도저히 없을 것 같은 어떤 신비한 세계... 뭔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함께 묘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
그러면서도 어떻게 거스를 수 없는 엄숙함... 위압감... 그런 속에서 의식은 진행되고, 그 의식 끝에 라다메스는 빛나는 칼을 받게 됩니다. 그 칼을 들고 싸우면 어느 누구인들 이기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종교는 그런 위엄, 사람을 억압하는 그런 권위가 있는 것일까요? 그래야 하는 것일까요? 민족간의 전쟁은 왜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요? 누가 그런 일을 만들고, 그 희생자는 누구일까요?
오페라 아이다는 그런 물음들을 우리에게 묻게 합니다. 화려한 개선, 그러나 뜻밖의 불행이 기다리고...
2막을 볼까요?
전쟁은 끝났습니다. 물론 이집트의 혁혁한 승리. 온 이집트는 기쁨에 들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암네리스의 기쁨은 유별납니다.
개선 장군 라다메스를 기다리기 때문이지요. 어쩌면 아버지가 그분을 부마로 삼으실지도 몰라... 헌데, 한가지, 확인해 둘 게 있어... 암네리스는 아이다를 부릅니다.
조국의 패전에 상심해 있는 아이다를... 그리고는 위로해 주는 척 하면서 라다메스가 전사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절망하는 아이다... 그래, 알았다, 너 사랑하지? 하지만 두고봐라, 나, 이집트의 왕녀가 네 경쟁자다! 개선의 그날이 왔습니다.
모두들 광장에 모였지요. 화려한 행진 끝에 개선장군 라다메스가 도착하고, 왕은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하라고 합니다. 라다메스는 포로들을 끌어내 달라고 합니다.
(이때 왜 아이다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하지않았을까요? 아직은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 같은 처지인 포로들의 참상을 보이고 동정을 얻으려 했던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이 대목은 아무리 연극이라고 하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포로 중에는 뜻밖에도 아이다의 아버지가 끼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가 왕 아모나스로인줄 아는 사람은 아이다 밖엔 없지요. 아모나스로는 신분을 숨긴 채, 우리 왕도 죽었고 하니 자비를 베풀어 놓아달라고 간청합니다.
사제들의 반대가 집요하지만, 일단 풀어주고 아이다의 아버지만 인질로 잡아 둔다고 결론이 났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왕은 중대 발표를 합니다. 라다메스를 암네리스와 결혼시켜 후계자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아이다와 라다메스에게는 크나큰 슬픔이지만, 다른 모두에게는 큰 기쁨이어서 2막은 장대한 합창으로 막이 내립니다. 또 다시 좀 억지스런 상황전개인 셈이죠.
그런데 말이죠. 고대 국가가 특히 이집트처럼 당시 최고의 부와 권세를 누렸던 나라가 중요한 전쟁에서 이겼을 때 그 축제가 어땠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굉장했겠죠? 베르디는 그 굉장한 붕위기를 음악으로 잡아보려 했던 것 같습니다.
암네리스와 시녀들의 장면에서의 노래와 춤, 개선장면의 저 힘차고도 웅장한 합창, 화려한 행징과 춤 등이지요.그런가 하면 그 화려한 모습 뒤에 가슴 찌르는 아픔들도 끼어 있습니다.
아이다의 수모는 또 그렇다치고, 아모나스로의 입장을 한번 생각해 보지요. 왕으로서 싸움을 이끌다가 패배하고, 그리고 구차하게 신분을 감추고 살아 여기까지 끌려 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 후일을 기약하기 위해 목숨을 간청하는 모습, 들어 볼까요?"아이다의 아버지, 나도 싸웠지만,싸움도 지고, 죽지도 못했소.내 옷을 보면나의 조국와 왕을 위해 싸운 사람인 것을 알 거요.
운명은 우리에게서 등을 돌렸고용기도 헛것이 되었소.내 발 밑에 왕께서상처 투성이로 누워 계셨소.나라 사랑이 죄가 된다면우리 모두 죄인이요.죽어 마땅하오!하지만 막강한 왕이시여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오운명이 오늘은 우리를 쳤지만내일은 그대들을 칠지 누가 아오?" 라다메스를 부마로 삼는다는 선언은 그리하여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이 됩니다.
암네리스는 저 노예가 이젠 내 사랑에 도전하지 못하겠지?... 이러고 있고... 왕과 백성들은 이집트의 신들께 영광, 이 땅을 지켜 주셨네... 이러고... 포로들은 너그러운 이집트에 영광, 우리에게 다시 자유를 주었네... 이러고... 사제들은 이시데 신께 찬송을, 조국의 번영을 기도하세... 이러고... 아이다는 이제 아무 희망이 없네. 그이에겐 영광과 왕관이, 나에게는 사랑을 잃은 슬픔뿐...라다메스는 이 무슨 뜻밖의 불행일까, 아이다를 잃게 되다니... 이러고... 아모나스로는 용기를 내고 기다려라. 복수의 날이 멀지 않았다...
아무튼 무대에 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조금씩 다른 감정들을 다 쏟아내고 있는데... 그것은 마치 한 시대가 어떤 큰 일을 당했을 때 그 시대 구성원 모두가 크건 작건 가슴에 안게 될 감정의 총화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을 통해 희생되었을 많은 사람들과 그 가족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 좀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 철저한 휴머니스트였던 베르디로서도 이 장대한 승리의 장면에서 그것까지는 같이 소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겠지요.)
전막을 이끌어가는 사건의 우연성 3막을 보지요.
밤. 조용히 흐르는 나일강가. 이시데 성전 앞입니다.암네리스가 기도하러 옵니다. 결혼을 받아 놓기는 했는데, 남자의 사랑은 아직 받아오지 못했으니, 그걸 위해 기도해야겠지요.
아무도 없는 강가에 아이다가 나타납니다. 여기서 라다메스와 마지막 만남을 약속 한 것입니다. 만약 헤어지자고 하면 물에 빠져 죽을 결심입니다.그런데 뜻밖에 아버지가 나타납니다.
라다메스와의 관계를 알아챈 아버지가 라다메스에게서 군사기밀을 탐지하고 요구하러 온 것이지요. 딸은 기겁을 하지만, 조국과 민족을 위한 일이라는 데 거절할 수 없게 됩니다.
라다메스와의 만남에서 아이다는 결국 군사기밀을 알아내고, 이때 아모나스로가 나타나자 자신이 조국을 배신했다는 것을 깨달은 라다메스는 후회하는데... 암네리스 일행이 나타나 격투가 벌어지고, 아이다와 아모나스로는 도망가지만, 라다메스는 그 자리에서 체로되는 것으로 3막이 끝납니다.
이쯤 되어서는 3막에 나오는 우연한 만남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요? 하필이면 암네리스가 기도하러 온 그곳에서 아이다와 라다메스가 밀회를 하게 되는지. 또 암네리스 일행이 적절한 때에 다시 나와서 "저 놈 잡아라!"하게 되는지...
이런 의문들 말입니다. 요컨대 이 연극은 그런 것들을 제대로 '사실적으로' 갖추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뭐가 목적이죠? 극적 상황이 어떻게 만들어졌던 간에 그 만들어진 상황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당당한 모습이냐... 이런데 주 관심사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다메스가 군사기밀을 말한 그 순간에 왜 아모나스로가 불쑥 나타나서 일을 다 그르쳐 놓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무래도 남습니다. 너무 기뻐서? 또는 라다메스가 완전히 우리 편으로 포섭되었다고 믿어서? 글쎄요, 어느 편으로 설명하든지 간에 아모나스로의 성격에는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적국에 포로로 잡혀와서까지도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면서 재기를 이루어낼 정도라면, 대단히 치밀하고 조심성 많은 인물이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지 때문이지요.)
아이다의 감동적인 아리아가 있습니다."오, 나의 조국다신, 다신 볼 수 없겠지?오, 푸른 하늘, 오 부드러운 시달바람아,내 어린 시절을 감싸주었지오 푸른 언덕, 향기로운 바닷가...오, 선선한 계곡편안히 쉬던 곳,사랑하는 이와 가고 싶던 곳그 사랑의 꿈은 깨어지고 말았네오, 나의 조국다신, 다신 볼 수 없겠지?...
" 나일강물에 빠져 죽기로 마음을 정한 후에 고요히 안타깝게 고향, 조국을 그리는 아이다의 심정입니다. 그때 나타나는 아모나스로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나라를 되일으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이 어린 딸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딸의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하자 아버지는 사자처럼 포효합니다.
"그럼 우리의 도시들은 이집트인들의 불에 타버리고 말 것이다!죽은 사람들의 모습이 너를 쫓아다닐 것이다!넌 내 딸이 아니다!고국땅이 모두 피로 물들어갈 때,어둔 계곡에서 죽은 자들의 망령이 나타나 소리지를 것이다.
'너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라고!처참하게 죽은 이들, 어둠 속에서 네게 팔을 내 뻗고,네 어머니까지 너를 저주할 것이다!넌 내딸이다!저 이집트 왕의 종년이다!"불쌍한 아이다, 마지막 기댈 곳에서까지 내쳐지고, 마지막 자존심까지도 짓밟히는 이 순간 아이다는 울면서 아버지 앞에 무릎 꿇습니다.
"아버지, 용서하세요...저는 그런 노예가 아니에요.저를 너무 꾸짖지 말아주세요.아버지의 딸로서, 조국을 위해 할 일을 하겠어요."아버지도 같이 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 사랑하는 백성들을 위해 너를 괴롭힐 수 밖에 없구나!""오, 나의 조국, 조국, 무엇까지 바쳐야 하는 거냐?" 이렇게 가사를 써놓고 보면, 글쎄, 평범한 대화같이 느껴질지 모르지만, 베르디가 여기에 담고 있는 격정은 어마어마한 거시어서, 눈물없이는 좀체로 넘어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더욱 허망한 것은 이렇게 모든 것을 바쳐서 알아낸 군사기밀이라는 것도 결국 결국 라다메스의 말 한마디에 물거품이 되고, 아모나스로는 잡혀 죽고, 아이다도 간신히 몸만 빠져 달아나고, 라다메스도 체포되는 것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대체 뭣 때문에 이 부녀는 이런 고통은 겪어야 했던 것이냔 말입니다. 왜 베르디는 이렇게 썼느냐는 말이지요.그 물음에 답하기 전에
4막을 보십시다.
두 젊은 주인공의 사랑과 죽음 4막, 마지막 막입니다.암네리스가 후회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질투심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게 아닌가? 암네리스가 라다메스를 불러오게 합니다.
마음을 돌리기만 하면 살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라다메스는 듣지 않습니다.마침내 사제들의 재판정으로 끌려간 라다메스는 "조국의 배반자"라는 죄명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사형선고를 받게 됩니다.
'산채로 무덤 속에' 갇히는 선고를 받습니다... 암네리스는 무정한 사제들에게 격렬하게 항의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마지막 장면, 화려한 신전 밑에 돌무덤이 있습니다.
라다메스는 무덤 속으로 내려옵니다. 이제 햇볕도 마지막. 아이다도 볼 수 없겠지...그런데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 기운은 없지만 귀에 익은 목소리... 이런, 아이다가 아닌가?아이다는 아버지까지 잃은 후 라다메스의 판결을 예상하고 미리 그가 묻힐 무덤에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그렇게 예쁘고 순결하고 아직도 꽃같은 나이에... 그러나 아이다 편에서는 오히려 담담합니다. 벌써 죽음을 결심하였고, 또 이 돌무덤 속에 들어와 있는 동안 생명의 진이 먼저 말라가고 있었던 것이죠.
신전에서는 죽어가는 사람을 위한 마지막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이 지하 돌무덤 속에서는 두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작별의 말이 교환됩니다. "땅이여 안녕, 눈물의 골짜기, 기쁨의 꿈도 고통 속에 사라지고...우리 앞에는 하늘의 문이 열리고, 영원한 곳으로 우리 혼은 날라가요!"막이 서서히 내립니다.
어떻습니까? 슬픈 이야기지요? 이 깨끗한 두 젊은이가 왜 이렇게 죽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왜 이렇게 괴로움만 실컷 당하다가 억울하게 죽어야 합니까? 도대체 왜요?
이 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전쟁, 나라와 나라 사이의 원한, 이익, 이런 것들이겠지요. 하지만 그에 앞서서? 도대체 왜 '나라'라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왜 이집트라는 덩치 큰 나라가 있어야 하고, 그에 대항하는 에티오피아라는 나라가 있어야 하는 거지요?
그리고 그 나라를 지켜나가는 저 어마어마한 신들, 동교 체제, 그런 건 왜 있어야 하지요?
'아이다'라는 이 오페라는 화려하게 하고, 그래서 1871년 초연된 이래 120여년이 지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큰' 것들, 종교의식, 전쟁, 승리, 왕, 왕녀, 개선행진.. 등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가만 따지고 보면 이 두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그들은 가엽게도 희생되었습니다.
베르디 이야기를 조금 하지요. 베르디는 오랫동안 분열되어 여러강대국에 지배되어왔던 이탈리아의 통일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작곡가입니다.
그래서 1860년 이탈리아가 마침내 미완성으로나마 통일되었을때, 그 공로로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의회 의원으로 위촉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통일 이탈리아의 정치는 베르디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나가주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통일을 이끌어내었던 정치 지도자, 그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카부르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면서 베르디는 이탈리아 정치에 대해 흥미를 잃어갑니다.
한편 통일에 이바지해온 베르디의 오페라들도 이탈리아 안에서는 시대에 뒤진 것으로 되어갔습니다. 베르디는 통일 이후에는 이탈리아 국내용으로는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게 되고, 외국 무대를 위한 작품만을 쓰고 있었습니다.
'아이다'도 이집트의 카이로 극장을 위해 썼다는 사실은 유명하지요.그런 배경을 생각하면서 '아이다'를 봅시다. 우리에게 '조국', 그것은 너무나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마어마한 국가, 종교, 이런 체제들, 과연 우리 삶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겠지요.
두 젊은이의 희생은 참 가엽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들의 죽음에서 희망을 봅니다. 그렇게 깨끗하고, 또 당당한 사람을 우리가 가까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