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월드 다이어리에 글쓰는것을 치부거리로만 여기고만 있다가
왠지 내가 소외되고 시들어가는 장미처럼 느껴져서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글을 쓰고 있다.
나에대한 정보를 남들에게 말하는 것을..어쩌면 정보의 공유라 할 수 있지만 어찌보면 입이 가벼운 사람으로 낙인될까봐 조심스레 주위의 가까운 친구들에게만 귀띔해주기만 했다.
그런데 나에 대한 정보없이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몰상식한 인간들을 더이상 두고볼 수 없어서 나의 이야기를 잘쓰진 않지만 한 번 적어보려고 한다.
고3시절..때아닌 사춘기가 찾아왔던 걸까? 아님 내면의 김법이라는 자아가 중심을 잡지못하고 흔들렸던 걸까? 미용에 대한 미련이 남았었기 때문일까? 지금 생각해도 내가 공부의 손을 놓고 그렇게 방탄한 생활을 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암튼 조금 심하게 놀아본지라 공부의 감각을 잃고 겨울을 맞이 했다. 모든것이 지루하고 20살이 다가온다는 시계의 외침때문에 나의 미래를 진지하게 걱정하게 되었다. 그냥 지원해본 소방행정학과도 적성과 맞지않아서 안가고 (물론 적성보다 더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대표적인것이 적성) 그렇게 갈피를 못잡고 헤매이다 다시한번 일어나보고 싶어서 대구에 내려갔었다.
대구에서 지난 몇 개월간 흐트러진 나의 정신상태와 공부감각을 되 찾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 아쉬운게 있다면 그때 노력의 값을 형용할 수 없는 단어가 없어서 "피나는 노력"으로 적는 것..
아무튼 나는 남들이 내 모습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던 공부에 대한 열망과 투지의 태도로 나는 몇개월간 생활을 했고.. 심신이 지친지도 모르고 오직 내 꿈을 향해 전진만 했다. 하지만 공부라고 하는게 무작정 앉아서 책만읽는다고 되는게 아니였다. 앉아서 책보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한건 대기의 흐름이였다. 또한 기회비용이였다.
처음에는 신경쓰지않고 몰입했으나 점점 갈수록 내 주위의 대기는 어느덧 토네이토가 되어 날 휩쓸 준비를 하고 있었다. 4월 1일 만우절의 거짓말 처럼 난 내 손에서 펜을 한번 떨어뜨리게 되었다.
그리고 펜을 줍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펜으로 다시 책을 읽는데 수십만번의 번뇌에 시달렸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포기"가 아니라 "잠정적 중단"이였다. 포기라 말하기엔 내 자신이 아직 젊고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기에 언젠가 기회가 주어지리라 믿기때문이다.
5월25일 생일이였다. 어느 순간부터인지..생일에 대한 관념이 없어져서 그냥 내가 태어난 날이구나 라고만 생각했을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떻게 태어나는 것 보다 어떻게 살아가는것이 중요하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생일날부터 서울 상경을 위해 준비를 했고 28일 서울로 왔다.
서울에 와서도 왠지 미련의 불씨가 남아 그것을 완전이 소화시키기 위해 독서실에 다녔다. 공부에 대한 정나미를 떨어뜨리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기는 아니기에 지금 이 순간엔 다 잊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였다. "공부는 나중에 할 수 있으니까"
이런 저런 이유로 20살 백수가 되어버린 나는 박제처럼 집안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창밖의 세상을 구경하며 몽상에 잠기기만 하였을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역시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다보니 게을러지고 게을러지다 보니 나태해지는것 같았다. 결국 내가 찾은건 노동이였고 그 당시 노동의 댓가를 바라기보단 몸을 움직여보고 싶었다. 그래서 카메라스탭보조라는 일을 한번 해보았다. 하지만 나와 맞지않는 다는 것을 알고는 하루만에 관두고 나와 여의도 번개표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또 다시 몽상에 잠겼었다.
시간이 흐르고 7월이 되던 어느날 집근처 쇼부에서 알바생을 구했고 난 거기서 일을 하게 되었다. 주문받고 테이블 정리만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였지만 술취한 사람을 대한다는 일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피곤한 일인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일이였다.
꼭 사회에서 대접못받는 인간들이 술집에와서 웨이터나 사장에게 대접을 받으려고 한다. 세상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다는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경험해본 사람들은 다 그랬다. 그리고 일을하며 색다른 경험을 했었는데 티비에서만 보던 연인들의 이별상황이였다. 남자가 헤어지자는 말을 했는지 여자가 조금은 보채는 태도를 취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접시위의 안주들이 다 없어질때쯤 남자가 먼저 일어나고 여자만 홀로앉아 울고 있었다. 교과서에서는 보지못했던 상황이라 어떻게 대처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빈병들만 치웠다.
그렇게 132시간을 일하고 받은돈은 435.600원.. 나에게도 자본이 생긴샘이다. 그 자본으로 이리저리 다른 일을 알아봤고 메가박스 신촌점과 에버랜드 캐스트모집에 서류합격을 하게 되었다.
두곳다 내 적성과 맞는곳이라 머뭇거림없이 지원을 했고 에버랜드는 면접까지 봤으며 지금 현재 최종합격상태이다.
공부에서 관심을 떼고 세상을 바라보니 보이는것들이 너무 많았다.
인터넷속에서 찾은 익스프레션의 마리오네트공연..아침 뉴스속에서 보는 mbc 김수진 아나운서..열아홉순정의 양국화..어쩌면 나는 지금 지식을 택하는 대신 지혜를 택한 길로 가고있는지도 모르겠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여기서 멈출 내가 아니다. 난 가방끝이 짧기 때문에 도덕적인 범위내에서 배울만한 것들을 찾아 능동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지금은 정신적인것보단 육체적인것에 치중하지만..
내또래의 아이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거나 토익에 전념하는 대한민국의 표준 대학생 생활을 하고 있는 이때에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어쩌만 이런 생활이 남들에겐 동정을 또는 동경을 받겠지만 개의치않고 싶다. 고질적은 겸손병을 고쳤기 때문이다.
사소한 곳 까지에 겸손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적은것이 2006년 초부터 지금까지..과거의 내 모습에서 현 재의 내 모습까지를 회고하며 적어본 epic 이다. 그리고 지금 내 머릿속엔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모습들이 서로 공존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미래까지 섣불리 계획하다가는 사는대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생각하는대로 살기위해 현재에서 노력하며 만족하려는 태도를 가지려 한다.
겉으로 보았을때 지금 당장은 누더기 모자에 찢어진 청바지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서 남들로 하여금 비호감에 가진것없이 그저 떠돌아 다니는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이 와중에 나는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을거라 믿고 이런 시간이야 말로 나를 견고하게 다져주리라 믿고 있다.
그래..나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돈도 명예도 사랑고 빽도 없이
말그대로 맨주먹으로 살아가고 있다. 한번쯤 이런 생활을 생각해보았었기에 이 생활에 불만은 없다. 왜냐하면 태양은 언제나 떠있고 밤하늘의 별과 달도 언제나 떠있기 때문이다. 즉..내가 살아 있기때문에 불만없다. 그리고 난 약속한다 먼 훗날 난 남들이 갖지못한 행복을 온 몸가득히 싣고 있는 그레이트한 남자가 되어 있을 거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