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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Let it rain'-Gotthard

황경옥 |2006.08.08 13:17
조회 39 |추천 0

천로역정

 

'Let it rain'-Gotthard

멜로디가 넘 좋다.

이웃한 블로거가 선물한 곡인데, 아이디가 '고호'이다. 7월 28일에 남긴 건데 이제사 발견했다. 고호, 한때 넘 좋아했던 그 화가, 신앙으로 불꽃처럼 자신을 태우다 간 빈센트 반 고호... 내 안에도 그런 기질과 열정이 있기 때문에 그가 그렇게 좋았던 건 아닐까..... 난 그렇게 자신을 내던질 수 없기에 대리만족처럼 그가 그렇게 좋았던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자신을 투사하는 것처럼 어머니가 나에게 자신을 투사한 것이 그렇게 죄될 일은 아니다. 그렇게 용서받을 일도 아닌 것 같다. 지난 서른 일곱 해 동안 나를 용서 못하고 어머니를 용서 못하고 나를 파괴시키는 것으로 분노를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나의 고단했던 유년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윤정이 말대로 나의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은 어깨의 짐이 너무 무거웠다. 어떻게 윤정인 그렇게 밝게 웃을 수 있었는지 난 그게 너무 신기했다. 나와 너무 다른 그애에게 마냥 끌렸었다. 그 웃음이 나도 웃고 싶었나 보다. 이미 오래 전에 상실한............... 내 안에 없는 그 웃음, 미소, 밝음, 긍정의 힘...................

 

그러나 내게 오래도록 그 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내 나이 올해 서른 일곱, 그러니까 장장 26년이란 긴 세월동안 나는 그 길을 순례하고 또 순례한 것이다. 의 '크리스천'처럼............. 그것이 천국으로 가는 길인 줄은 몰랐지만 결국 내가 갈구하고 찾았던 것은 진실된 생명, 바로 영생이었던 것이다.

언젠가 11살 때, 다니던 교회를 도화지에 옮겨놓고 나도 모르게 빛을 그렸던 생각이 난다. 저 언덕 너머 저 위에 그 ** 교회가 마치 붕 떠있는 것처럼, 그렇게 도화지에 그려놓고 뿌듯했던 생각이 난다. 창작으로, 마치 무릉도원을 그리듯이 그렇게 교회당을 그렸었다. 왠지 이 세속적인 곳에는 그 교회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어린 마음에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보니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다 하늘 나라'인데...... 그 교회당에 나도 가고 싶었나 보다. 태환이 말처럼 죽지않고 그 교회에, 천국에 가고 싶었나 보다. 현실이 넘 버티기 어려워서............. 빨리 가고 싶었나 보다. 하늘 위에 구름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올 때, 저 곳에 천국이 있겠지, 나도 언젠가는 저 영원한 천국에서 쉴 수 있겠지, 거기 가면 공부 안해도 되겠지 그런 생각하며 18세까지를 살았다. 그리고 20세, 21세,24세를 살아냈다.

 

공부 안하고도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다들 나처럼 사는 줄만 알았었다. 이 학력지상주의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아파도 공부하고 슬퍼도 공부하고 멍해도 공부하고 그렇게 살아야 성공하는 것인 줄만 알았었다. 성공은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라, 부를 쌓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배우자로서, 영적 지도자로서 성공하는 것임을 서른 일곱이 되어서야 알았다.

 

 

공부 외에는 인생의 목적을 제시해 주지 못했던, 비전을 키워 줄 수 없었던 어머니 그 또한 시대의 희생양이다. 6.25세대, 전쟁고아 아닌 전쟁고아로, 어머니는 있으되 어머니가 없는, 아버지는 있으되 아버지가 없는, 형제는 있으되 형제가 없는, 남편은 있으되 남편이 없었던 한 여인의 고단한 삶의 모습이 스쳐간다. 또다른 6.25세대, 능력은 있으되 부정부패로 물든 대한 민국의 그늘진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직함으로 오히려 무능하기를 선택한, 사랑받지 못해 사랑을 줄 줄 몰랐던, 한 지아비의 고단한 삶의 모습이 스쳐간다.

그 관계 속에서 사랑없는 결혼 생활의 결과물로 잉태된, 그러나 태초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한 어린 아이의 모습이 스쳐간다.

 

계획없는 임신은 있을 지 몰라도 계획없는 태어남은 없다. 릭 워렌 목사님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나는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적어도 하나님에게 나는 걸작품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 정체성을 주님 안에서 회복해 간다.

어쩌면 삐걱거리는 숱한 부부싸움 속에서 나는 모태에서부터 존재의 불안을 안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태어났듯이 나의 생명력은 정말 끈질기다. 나의 생명력은 '잡초'처럼 끈질기다. 부모님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라게 하려 애쓰셨으나 그 잡초 근성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심어 놓으신 나의 가장 탁월한 달란트, 그것은 생명을 향해 뻗어가는 생명력이다. 성령님이 아니시면 결코 이해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생명력이다. 이미 내 안에 그분이 살고 계셨다.

 

왕 같은 제사장이나 종의 현실일지라도.... 나는 왕이기에 의 왕자처럼 늠름할 수 있다. 당당할 수 있다. 주눅들지 않을 수 있다. 왕이기 때문에 넉넉히 섬길 수 있다. 왕이기 때문에, 이미 넘치도록 많이 가졌기에, 내가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이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다.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하여 기꺼이 섬길 수 있다. 헤드십이 아닌 리더십을 소유할 수 있다. 혼자 가지기가 넘 미안해서 나누어 줄 수밖에 없다. 현철이가 말했던 것처럼, 너무 많이 가진 사람은 가지지 못한 사람을 보면 혼자 누리기가 미안한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그 미안한 마음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는 지도 모를 일이다. 루이 14세 같은 군림하는 군주가 아닌 예수님처럼 섬기러 오신 만왕의 왕,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이후부터 혼자만 누릴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그분이 이미 내 안에 심어놓으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찬송가 519장, 중학교 2학년 15세, 수요 저녁 예배 반주할 때 내 가슴을 때리던 가사

가 오늘 내 귓전을 맴돈다. 너무 도전적인 가사라 흔쾌히 대답할 수 없었던.... 멜로디만 흥얼대고 외면하고픈 가사의 찬송가였다.

 

차마 '주여,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할 수 없었던 나의 완악하고우유부단했던 청년 시절이 스쳐간다. 순종하면 왠지 많은 것을 손해볼 것만 같아서, 부분적인 순종만을 취사선택하려고 했던 교만했던 지난날이 죄송스럽다.

기드온처럼 싸인을 보여 달라고 간구하고 싶다. 모세도 거절했는데, 기드온도 그랬는데.... 나라고 뭐 용가리 통뼈인가...... 나도 거절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핑계를 대며 부르심에 거절했던 지난날이 다시 오버랩되어 떠오른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18세, 고등학교 2학년 되던 초봄, 개척 교회 설교를 듣고 돌아오던 중 차 안에서 마음문을 두드리시던 생각이 어렴풋이 난다. 그게 무신 말씀인고???

 

난 너무 어렸다.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려면 먼저 대학은 졸업해야 잖은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게 공부하는 것 아닌가....... 목사, 전도사 사역자는 숭고한 직업이기는 하되 내것은 아니라고 제껴 두었다.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전도사님, 기독교교육을 전공하던 사람들은 내게 남자가 아니라 그저 사역자일 뿐이었다. 정중하게 데이트를 거절한 적도 있다. 내게는 신학이라는 공부는 모든 학문 중 제외된, 나에게는 금지의 구역이었다.

 

세상에서의 입신양명과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공부는,  나의 '공부'는 명예욕과 철저한 이기심으로 가장된 공부였을 뿐이다. 섬기기 위한 공부가 아닌, 나혼자 더 누리기 위한 일종의 방편으로서의 공부 그 이상이하도 아니었다.

명예욕과 이기심에 눈이 멀어 공부에 매진하려고 했을 때마다 그분이 눈을 가리우셨다.... 나의 두뇌는 아무래도 나의 안일을 위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명예에, 세상에 집착하면 할수록 불안증, 불면증은 더욱 심해졌다. 공부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집중이 되지 않고 금방 읽은 책 귀절이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시험기간이 닥쳐올수록 불안증과 불면증은 증상이 심해져만 갔다. 의사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때이른 고 3병과 자율신경실조증이란 진단을 받고서야 나는 공부에서 쉼을 얻을 수 있었다.

건강을 해쳐가면서까지 성적에 집착한 이유로, 더이상은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공부를 할 수 없으니 생존을 할 수가 없었다. 나의 생존의 이유와 목표는 오로지 공부였기 때문이었다.

 

18세 되던 어느  봄날, 급기야는 학교를 휴학하기에 이르렀다. 규칙을 벗어나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학교 밖의 생활이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거리에, 시장에, 버스 안에 내가 있었다. 건강이 회복되어 다시 복학하기 전까지 나는 창살없는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그렇게 10개월을 방황해야만 했다. 적이 없다는 것이 나를 또다른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복학 후 내게 찾아든 따뜻한 위로, 그것이 그였다. 내 인생에서 황금기였던 2년이 그와 함께 흘러갔다. 공부를 해도 이전처럼 두렵지 않았다. 내 말을 들어주는 그가 옆에 있었기에 처절한 외로움에 더이상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예수님 대신 천사가 나를 찾아온 것만 같았다. 꿈만 같았다. 그러던 그가 대학 합격 발표와 동시에 내곁을 떠났다.

대학 입학보다 내게 더 큰 의미를 차지해 버렸던 그가 떠나고 다시 혼자가 된 이후, 새로운 관계에의 두려움이 그 자리를 메워버렸다. 또 다시 혼자가 될까봐 이전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게 될 까봐 누가 곁에 다가오면 뒷걸음쳤다. 나를 좋다는 사람이 집요하게 달라붙어도 절대로 곁을 주지 않았다. 다시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혼자가 되기 싫어 둘이 하나가 되기를 거부했다. 혼자가 편안했다. 혼자 밥먹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음악회가고 혼자....... 혼자의 일상에 길들여질 무렵 또 한 사람의 친구, 천사가 나타났다. 아무래도 하나님은 내가 혼자있는 것이 보기 싫으셨던 모양이다.

교양영어 시간에 출석 번호로 한시적으로 짝이 된 친구가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입학 이후 처음으로 다섯이서 점심을 먹었다. 혼자가 아닌 둘이 도니다는 것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그렇게 2년을 보냈다. 숱한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군중속의 고독을 앓았다. 그를 떠나 보내지 못하고 그의 망령에게 붙틀린 채로 점철된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잔인한 세월이었다.

 

이 다음엔 누가 나를 떠날 것인가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항상 먼저 끝냈다. 이유도 불분명했다. 그저 기간이 길어지면서 혼자 있는 시이 짧아지면서 다시 혼자있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고 둘이 있어야 편안한 그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웠다. 혼자서도 잘 서 있을 수 있다고 외치고 싶었다... 그렇게 3학년을 맞이했다.

23세, 3학년 꽃다운 나이에 나는 또 이유없는 몸살을 앓았다. 중간시험이 다가오던 몇 주전 갑자기 당일날 차출되어 대타로 미팅에 나가게 되었다. 누군가 또 내게 다가오려 했다. 이번엔 또 어떻게 거절하나 방식을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덜 상처주면서 덜 무안하게 하면서 거절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 현철이가 생각났다. 내가 받은 상처를 그 누군가에게 되돌려 주고 싶지 않았다...

 

24세, 대학 4학년, 우등생 장학금을 받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학점을 내려놓았을때 그 때 내 인생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총애하시던 지도 교수님이 백지만 내지 않으면 C학점을 주시겠다고 했었다. 애국가 가사라도 쓰라고 가르쳐 주셨다. 그래서 한 학기도 휴학없이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두 학기를 보내고 나니 A로 우등생 학점에 속했던 나의 평균 누적 학점은 졸업 당시 B로 하락해 있었다.

나의 교만을 꺾기 위해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나 보다.  B학점이 억울했고 아픈 것도 억울했고 우등으로 졸업하지 못한 것도 억울했다. 아파서 대학원 3학기에 도중하차한 것도 억울했다.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데 공부가 왜 그렇게 되질 않는지..... 하나님도 정말 너무하시다 원망도 많이 했었다. 그런데, 나의 가시는 바로 그것이었다. 나의 자고함을 꺾기 원하신, 네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내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하신, 아버지의 마음이.... 이제는 안다.... 

 

서울대를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등으로 졸업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남 8학군 모교에서 정교사로 곧바로 취업하지 못했다. 변칙적인 기회는 있었으나 하나님이 막으셨다. 정직하게 살려고 하다 보니 취업할 수 있는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차마 잡을 수가 없었다. 정직의 댓가가 이것이라면 실업을 택해야 했다. 정직의 댓가가 정말 크지만,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 진심으로..........

 

내게 보내주신 세 번째 천사, 남편, 그는 나보다도 더 나를 사랑한 사람이다. 그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통해 나는 인간 황경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 누군가에게 삶을 살게하는 동기부여가 되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로 인해 처음 해봤다. 나도 그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일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한 사람이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해서 실패자로 더 낙인찍히기 이전에 삶을 마감하고 싶었던 인간 황경옥에게 삶에의 동기를 부여해주고 삶의 기간을 연장해 지금 영생을 맛보게끔 이끌어준 사람이다. 이성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더 끌렸던 사람....... 그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을 맛배기로 맛보았다. 조건적이지 않은 사랑도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서울대 졸업장이 없어도, 여자로 태어났어도, 교사가 아니어도, 건강하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존재이었다... 결핵을 앓고 계셨던 당시 사모님을 만나 이제껏 사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신 옥목사님이 생각난다. 어쩌면 내가 그에게 준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을는지 모른다. 나의 여생을 주고 영원한 생명을 받았으니...  나의 시간을 주고 태환이라는 기업을 얻었으니.... 안일한 삶을 버리고 성숙한 인격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얻었으니..............

 

내 나이 서른 일곱, 어쩌면 나도 단련되었기 때문에 성군이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단련되기 이전에는 유약한 왕이 될 수 밖에 없었을는지도 모르나, 인고의 세월을 겪어냈기 때문에 다윗처럼 쓰임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십대부터 20대까지, 병고, 휴학, 실연, 병고, 좌절, 온통 잿빛으로 가득한 광야에서 처절하게 외로웠기 때문에 모세처럼 쓰임 받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쓰임받게 하시기 위해서 그 커다란, 내게는 버거운, 나는 감내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만 해도 아찔했던 고통들을 허락하셨는지도 모른다.

 

내가 구한 것은 하나도 받지 아니하였으나 구하지 않은 것까지 주신 그분의 놀라우신 은혜를 찬양하기 원한다.

이제는 십자가를 질 수 있을 것 같다. 억지로가 아닌, 자발적인 순종으로...............다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믿음의 눈으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를 지으신 그분의 선하심을 신뢰하며..............내 안에 계신, 그분의 임재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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