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본 영화들이 몇 편이나 될까? 영화보기를 유난히 좋아하여 정말 많은 영화들을 보았다. 어떤 영화는 영화를 보러 간다는 이벤트 속에서 그저 소비되어 지기도 하지만, 어떤 영화는 두고두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남아 생각이나 취향을 지배하기도 한다.
내게 그런 정서적 문신(?)을 새겨 준 최초의 영화는 “Blade runner”였지만, 그 영화에 대한 평가와 분석들은 이미 너무 다양하게 존재하므로, 오늘은 대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Eyes wide shut”에 대한 감상평을 짤막하게 써 볼까 한다.
영화는 뉴욕의 평범한 중상층 부부(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가 만 하루 동안 겪는 다양한 성적 일탈에 대한 유혹들을 꿈과 현실, 남편과 아내의 체험을 교차시키며 보여준다. 주인공 부부가 겪는 다양한 체험들은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존재를 알면서도 부정하고 싶은, 애써 모른 척하고 싶지만 결코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끈질긴 성적 욕망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집요하리 만큼 일관되게 배열되어 있다.
아내가 환상과 꿈속에서 겪는 체험들과 남편이 현실에서 겪는 유혹들은 일견 서로 달라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완전한 대칭 구조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들을 말하기 위한 의도적 배열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들끓는 욕망을 본능 깊이 간직한 이상, 그것이 잠재 의식 밖으로 튀어나와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낸 곳이 꿈 속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의 차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 유혹의 끝까지 달려가서 실제로 성행위를 했는가 또는 중도에 좌절되었는가의 차이 또한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배열 방식에 의해 남녀 성차에 따른 욕망의 본질이나 발현 형태에 차이가 없다는 주장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데, 이 점은 파티 후 집에 돌아와 두 부부가 벌인 설전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떨쳐 버릴 수 없는 욕망 때문에 집요한 유혹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불완전한 결혼 생활을 어찌 어찌 영위해 가는 부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목적인 듯 하다. 영화가 취하고 있는 이러한 객관적 입장 때문에, 그 의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보는 사람마다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실 글 쓰기를 무척 괴로워하는(?) 내가 이 영화에 대한 감상평을 쓰게 된 것도 어떤 평론가의 글에 대한 반박심이 많이 작용했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을 당시 어떤 이가 '큐브릭이 꿈틀거리는 욕망 위에 포장되어 있는 결혼제도라는 허위에 대하여 보내는 차가운 냉소’라고 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나는 그와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는데, 이제부터 그 이유에 대해 써 볼까 한다.
'눈물을 뒤집어 쓴 웃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학 신입생 시절 국어작문을 가르치시던 노교수로부터 들은 말이다.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탓인지 아직까지도 가끔 생각나는 말이기도 하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더듬어 보면……
“웃음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눈웃음, 비웃음, 함박웃음, 기뻐서 웃는 웃음, 미쳐서 웃는 웃음, 간지러워서 웃는 웃음 등등…… 그 중에서 가장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웃음은 '눈물을 뒤집어 쓴 웃음'이다.
우리는 광대를 보고 웃는다. 영화나 TV 코미디 프로그램에도 종종 바보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진짜 바보가 아니더라도 등장인물들이 바보같은 실수를 하거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여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들을 보고 우리가 웃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때의 웃음은 일견 우리보다 모자란 사람들에 대한 비웃음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바보들을 보며 웃는 이유는 그 덜 떨어진 행동거지 속에 투영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극중 상황에 몰입하게 될수록 저 바보같은 인물이 사실은 어리석고 실수 투성이인 나 자신의 모습임을 발견하게 되고,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그들에 대해서 공감하고 동질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부조리한 인생에 대한 뼈아픈 인식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웃음으로서 승화될 때 그것이 바로 '눈물을 뒤집어 쓴 웃음'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웃음이야말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 주는 웃음인 것이다.”
영화에서 탐 크루즈는 욕망의 탈출구를 찾아 끊임없이 헤메었지만 본의 아니게 번번히 실패에 이르게 되고, 니콜 키드만 역시 해군 장교와의 성적 환상을 잊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부적절한 관계를 현실화시키지는 않았지만 이미 절제하기 어려운 욕망을 인지하고 탈출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결혼이라는 허울이 잠시 무색해 진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큐브릭은 정말 위선일 수밖에 없는 결혼 제도에 묶여 아둥바둥 하는 인간들에게 냉소를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이 영화에서 본 것은 불완전한 인생에 대해 한 노인이 간직하고 있는 끈질긴 애정이었다. 초월자가 아닌 이상, 스스로 40여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사람이 결혼과 욕망의 부조리에 대해 진정한 냉소를 보낼 수 있었을까?
영화속에서 그들 부부가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신뢰는 각자의 체험 뒤에 무너져 버릴 한 꺼풀 거짓에 불과했던가? 그들이 서로의 욕망에 대해 고백하고, 이해하고 난 후에 내린 결론은 파국이었던가? 마지막 장면의 쇼핑몰에서 니콜키드만의 마지막 한 마디는 비참하지만 다행스럽게 들리지 않았었는지……
음험하고 뿌리깊은 욕망 - 비밀집단의 난교파티에서 잘 묘사된 것과 같은 - 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는 결혼이지만, 종종 실수하고 어리석은 인생이지만, 끈질긴 애정을 가지고 그 존엄성을 지켜나갈 때 인간이 가장 아름다와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지…… 유혹은 언제나 있지만 인간에 대한 신뢰와 노력이 있다면 적당히 비켜가면서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지 지금도 곰곰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