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카운트 베이시 악단
The Count Basie Bands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과거에 있어서의 어엿한 사건이다 그러나 역사의 기술은 완결할 수 없는 작업이다. 새로운 시대와 함께 새로운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A History ofJazzd, i # -
일반적으로 '스윙의 왕(King of Sz ing)'이라고 하면 베니 굿맨을 생각하지만 재즈 뮤지션들은 '스윙의 왕'이라는 타이틀은 카운트 베이시에게 가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훌륭하게 스윙하는 밴드'로는 플레처 헨더슨 , 듀크 엘링튼 , 지미 런스포드-우디 허맨 등의 밴드를들수 있지만, 카운트베이시 악단은 이들밴드와 비교해도 현저하게 극히 자연스럽게 스윙하고 있다. 1950년부터 1951년에 걸
쳐 카운트 베이시는 그룹을 캄보의 규모에까지 축소해야 했지만, 그 시기를 제외하면 1937년 이래 줄곧 빅 밴드를 이끌어 왔다, 그의 밴드에는 어느 시기에도 그시대를 대표하는 플레이어가 반드시 몇 사람인가는 재적하고 있었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베이시(Basie the.Pianist)
베이시는 패츠 월러의 영향을 받은 스트라이드 주법의 피아니스트로, 자신의 밴드를 이끌던 탁월한 솔로 주자였다. 그러나 1950년대, 60년대, 70년대로 시대가 흐름에 따라 피아니스트로서의 활약이 적어져서 감상자가 그의 피아노를 듣게 되는것은 콘서트에선도 레코드에서도 곡의 도입이나 마무리, 전조(쳔쳔) 부분 등에서 드라마틱하게 칠 때뿐이었다. 간결하고 치밀한 사운드는 베이시를 보증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그는 실제 솔로를 할 때 조용한 베이스와 드럼에 덧붙여 프레디 그린(Freddie Green)의 기타가 한 소절 4박자를 가볍게 치는 동안 실로 정교하게 간격뜰 두면서 피아노의 멜로디를 만들어 갔다. 베이시의 피아노 터치는 재즈 피아니스트 중에서도 특히 독특한 것이었으며 매우 경쾌하고 그러나 극히 정확했다. 또한 음의 선택도 드러머만큼 훌륭한 타이밍의 감각과 함께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베이시의 피아노는 통상 그의 밴드 연주의 무드나 템포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베이시 악단의 리듬 섹션(Rhythm Section)
베이시는 부드럽고 릴랙스한 분위기에서 일정하게 스윙하는 훌륭한 리듬 섹션을이끌던 재즈 역사상 최초의 밴드 리더이다.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전반에 걸쳐 활약했던 이 유명한 리듬섹션은 베이시(p)-프레디 그린(g)-월터 페이지(Waiter Fage-, 조 존스(ds)로 구성되어 있다.
다음은 베이시의 리듬 섹션의 특징이다.
1)뛰어난 템포 감각(excellent sense of tempo).
2)정력적이고 긴장된 어프로치를 피하고 확실한 타임 키핑을 한다tab펀ty tokeep time).
3)조용하고 여유있는 연주로 듣는 사람에게 편한 느낌을 준다◎rriet, relaxedplaring)
4)비트의 강세는 거의 균등하고 2박째와 4박째에 약간 강조한다(fairly evenamorrnt of stress on all four beats).
5)강렬함보다도 경쾌함을 중요시했다(emphasis on b oyancy rather thanmtensity).
베이스 주자 월터 페이지(Waiter Page 1900--1957)의 역할.
유연한 워킹 베이스-강력한 톤(jtrong tone),생생하고 분명한 사운드(articulated soun민. 이 점에있어서 지금은 존재감이 엷어진 모던 재즈 이전의 많은 베이스 주자와는 분명히획을 긋고 있다.
다른 파트와의 조화
기타리스트 프레디 그린(Fleddie Green 1911-1987)의 역할.
1)어쿠스틱 기타에 의한 파삭파삭한 4박자( forrr stro es to the measure onunamplifiedguita ).
2)드럼과 호흡이 맞는 연주(close coordination rerith drtrms).
드러머 조 존스(Jo Jones 1911-19◎)의 역할.
1)정확하지만 딱딱하지 않은 연주◎rense playing, brrt not stiff precrnon)와 자신이 넘치는 여유있으면서도 정확한 연주.
2)스윙 시대의 드러머 진 크루파와는 달리 존스의 연주는 훤씬 부드럽고 조용하다. 때로는 베이스 드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
3)하이 해트에 와이어 브러쉬를 조용히 사용하고, 하이 해트의 개폐로 라이드리듬을 친다triet rrse of 2 2re brrrshes on high-hat).
4)스네어 드럼이나 크래쉬 심벌에 위한 '필 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베이시의 연주 도중에 싱커페이션의 탄력 넘치는 피아노 주법은 콤핑(comping)으로 알려진 모던 재즈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1936년 작품 (Shoe Shine Boy)에칼 스미스(Carl Smtth)의 트럼렛 솔로 사이에서 작게 들려 오는 피아노 소리에 매우 주의해 들어 보자. 여러분은 몇 년 후에 모던 재즈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도입되는 베이시의 콤핑 스타일을 들을 것이다. 이 칼 스미스에 대한 그의 반주가 모던재즈 콤핑 주법의 초기 레코딩 실례 중 하나이다. 1940년대에는 많은 훌륭한 재즈피아니스트라도 콤핑 주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19M)년대나 30년대의 스타일로 연주했으며, 결국 스트라이드 스타일로 리듬 기타와 마찬가지로 각 박자에 코드로치거나 또는 카운터멜로디와 장식음을 치는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시대의 콤핑의 예는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1928년 11월 30일에 녹음된 듀크 엘링튼 악단의(The Mooch쓰가 있다. 주의깊게 들으면 쟈니 호지스의 알토 색소폰의 첫번째 코러스 부근에 반주되는 엘링튼의 콤핑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1920년대로서는 매우놀랄 만한 일이다. 그 당시 엘링튼을 포함한 대부분의 피아니스트가 싱커페이션으로 코드를 순간적으로 짧게 치는 연주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곡(Arrangements)
1930년대 후반에 베이시 악단의 편곡에서 많이 보였던 것은 단순한 프레이즈의되풀이이다. 그 리프(운킨는 12소절의 블루스 코드 진행이나 (Honeysuckle Rose),(I Got RhythmS, (Shoe Shine Boy), (Lady Be Good)등 팝의 코드 진행에 따라연주되었다. 리프는 앙상블 연주와 함께 솔로 임프로비제이션의 배경 음악으로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미리 악보에 버여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연주 중에누군가가 생각해낸 것을 다른 플레이어가 잘 듣고 외워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형태의 편곡은 혜드 어레인지먼트껀ead arrangement짓로 불려지는데 1930년대 캔자스시의 많은 악단(예를 들면제이 맥 샨(Jay McShann)이나 베니 모튼(Bennie Moten)등의 밴드-에 자주 사용되는 스타일이었다. 많은 리프 작품이 처음에는 밴드의 멤버에 단순히 번호로 불리우고 있었지만 후에 정확하게 이름이 붙여지고 작곡자의 명예를 갖게 되었다. 베이시도 이와 같은 식으로 (One O'ClockJump)와 (rUmpm at초e Woodside)(rThe Best of Count BasieJ)의 작곡자로 불리운다.
베이시 악단은 무엇보다도 우선 스윙하는 것과 단순한 것을 중요시했다. 1950년대나 ①년대에 어니 월킨스(Erme Wilkins)-퀸시 존스(Qilcy Jones)닐 헤프티(Neal Hefti),베니 카터 등의 작,편곡가가 악보를 담당할 때조차도 베이시 악단을 위해서 단순하고 생각하기 쉬운 리프를 쓴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30년대후반부터 40년대 전반에 걸쳐 베이시 악단은 캄보보다도 한층 규모가 큰 편성으로
화려한 편곡보다도 스윙하는 솔로 쪽을 중요시했다. 이것은 고도로 세련되고 또한정교하게 편곡된 지미 런스포드 악단이나, 임프로비제이션과 편곡 부분이 뛰61나게 돋보이는 엘링튼 악단과 비교하여 눈에 띄게 다르다. 베이시 밴드는 기본적으로는 솔로를 위한 밴드이고, 런스포드 악단과 같은 밴드는 편곡자를 위한 밴드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에 들어서면 베이시 악단은 점차 캄보 스타일에서 벗어나고 이 경향은 60년대, 70년대로 이어졌다. 훌륭하게 스윙하는 연주에서는 솔로의기회가 적어지고 짧아졌으며, 레코딩에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에 가끔 솔로를 하는 정도로 변해갔다. 베이시 악단은 고도로 세련되어져서 그 결과 20년 전의 런스포드 악단과 같은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베이시 악단은 앙상블 사운드의본보기가 되어 앙상블에 중점이 모아지게 되었어도 악단에는 변함없이 많은 우수한 솔로 주자가 있었다.
1930-40년대의 사이드맨(Sidemen)
1930년대 및 4O년대에 있어서 이름 있는 트럼펫 주자나 색소폰 주자의 대부분은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연주한 경험을 갖고 있었으며 이 점에서 그의 밴드는 플레처 헨더슨 악단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다. 플레처 헨더슨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최고의 솔로 주자들을 모았었다.
레스터 영(Lester Young 1909--1959)-1930년대부터 40년대에 걸쳐 베이시 악단에 재적했던 가장 주목할 만한 솔로 주자는 테너 색소폰 주자 레스터 영이다.
그는 매우 뛰어나서 '프레스(Pres)'또는 '프레즈(Fret) '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데 이것은 '테너 색소폰의 대통령'이라는 의미를 함축한 말이다, 영은 그보다이전에 활약했던 어떤 즉흥 연주자보다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정확하고 길고 매끄럽게 스윙하는 음의 라인을 연주했다. 그는 모던 색소폰의 음색, 비브라토, 리듬,프레이징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영은 콜맨 호킨스로 대표되는 무거운 톤과빠른 비브라토, 그리고 장식음이 많은 스타일과는 전혀 다른 맑은 스타일이었다.영의 가벼운 음질긴여유있는 비브라토(slo vibrate),쾌활한 프레이즈는 스탄 겟츠 -주트 심즈(Zoot Sims), 브류 무(BrewMoore)-허비 스튜어드(Helbie Steward)-알렌 이거(Alien Eager)등을 포함하여시대나 세대를 초월한 테너 색소폰 플레이어의 표본이 되었으며, 데이브 펠(DavePell )-리치 카뮤커(Richie Kamuca)-밥쿠퍼(Bop Cooper),빌 퍼킨스(BillPerkins )등 1950년대 웨스트 코스트 테너 색소폰 주자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영은 음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생각에 있어서도 많은 플레이어에영향을 주었다. 영을 신봉하는 플레이어는 그의 솔로를 한 음도 빼뜨리지 않고 주의 깊게 모방했기 때문에, 그들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종종 레스터 영의 유명한 프레이즈가 완전히 그대로 나오곤 했다. 영은 또 워델 그레이(Wardell Gray), 덱스터고든,진 아몬즈(cene Ammons)-소니 스티트 등 보다 어두운 음색을 가진 색소폰 주자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영향은 테너 색소폰 주자뿐 아니라 모던 재즈발전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알토 색소폰 주자 찰리 파커에까지 나타난다.
영의 플레이는 콜맨 호킨스와 같이 복잡하지는 않지만 그 멜로디에 담긴 음악적아이디어는 정말 뛰어났다. 그가 베이시의 피아노 반주로 솔로를 하고 있는 1939년의 (Taxi WarDance)와 (Tive at Fiv쓱에서의 임프로비제이션을 꼭 들어 보기 바란다. 호킨스가 복잡한 코드 체인지를 하고 빈번하게 장식음을 넣는데 비해 영은 스탠더드 팝의 코드 진행에 새로운 부가 코드를 넣어 차갑고 극히 간결한 방법으로
연주한다. 그러나 때로는 많은 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1939년에 베이시의사이드맨과 캄보를 이루어 레코딩한 (Lester Leaps In)의 솔로에서도 대부분은 8분음표로 이루어져 많은 음이 사용되고 있지만 각 음의 연결은 분명하다.
영은 호킨스와 같이 각 프레이즈마다 아이디어를 추가해 가지 않고 어느 중심이되는 멜로디 소재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사려 깊게 자기를 억제하는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솔로를 잘 조절하였기 때문에 씌여진 편곡 부분과 솔로 부분이 훌륭하게 균형을 이루었다. 또 영은 음악을 이야기처럼 만들어 들려 주는 특이한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는 1938년의 (I Want a Little Girl)과 (p질= ◎e Devil)
에서 클라리넷 솔로를 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의 자기 억제가 잘 된 연주의 좋은 예이다. 영의 경쾌하고 꾸밈 없는 클라리넷의 음은 1930년대에 있어서는 매우 특이한것이었다. 1939년의 (Pound Cak쏜와 (Ham'n' E또◎에서 빅 밴드의 테너 색소폰솔로는 그의 멜로디에 대한 재능과 절묘한 템포를 들을 수 있는 대표적인 예가 된다[(Ham= E모◎에서 영은 세컨드 테너 솔로를 맡고 버디 테이트(Buddy Tate)는 퍼스트를 맡고 있는데 그의 스타일은 영과는 확실히 다르다).
레스터 영이 그 음악상의 발상에 있어서 보다 진보된 높은 수준에 있다는 것은코드 진행 가운데 되풀이되는 부분이나 브릿지 부분에서 매우 부드럽게 스윙하고프레이즈를 만들어 가는 것을 들으면 명확해진다. 2소절부터 4소절 연속의 코드진행을 기본으로 멜로디를 구성하던 모던 시대 이전의 플레이어의 프레이징에 영은 훨씬 앞서 있었다. 그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자유로운 느낌의 긴 멜로디 라인을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영의 솔로에는 얽매이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영의 또하나의 뛰어난 발상은 코드 체인지에 대해 직접 코드의 구성음을 사용하는 연주대신에 코드를 배경읖으로 써서 연주를 구성해 가는 것이다. 기본이 되는 하모니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된 멜로디를 형성하는 것은 재즈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임프로바이저에 공통되는 것으로 레스터 영은 그 선구자였다.
영의 연주는 1930년대 후반에 있어서 그 최전성기를 맞았지만 그의 첫 레코딩이야말로 그의 음악 경력에 있어 최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40년대 베이시 곁을 떠난 이후 그의 톤은 어두워지고 비브라토는 빨라지고 게다가 리듬의정확성도 희미해져 갔다. 그의 많은 팬들은 그의 음악의 결정적인 쇠퇴가 1944년부터 시작했다고 하지만 이미 그 이전에 이러한 경향은 나타나고 있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는 1959년까지 그의 연주는 점점 빛을 잃어갔으나 듣기에 참을 수 없는 연주를 했던 적은 결코 없었고 그는 항상 지적이고 잘 스윙했다, 사실 그의 이야기를(storytelling-늑를 하는 임프로비제이션은 말년이 되면서 더욱 원숙미를 더해 갔다. 그러나 1940년 이후는 의식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초기 솔로에서의 활력이나 신선함은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허셜 에반스(Herschel Evans 1909--1939)-콜맨 호킨스 계열의 테너 색소폰 스타일의 한 중요한 지류를 대표하는 뮤지션에 허셜 에반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호킨스보다도 훨씬 매끄럽고 우아한 연주를 했던 플레이어로, 솔로 임프로비제이션에서도 호킨스가 좋아했던 복잡한 어프로치는 하지 않았다. 에반스는빠른 비브라토와 다른 어느 스윙 테너 플레이어보다 깊고 어두운 톤을 갖고 있었
으며 그 톤은 호킨스보다도 어두웠다. 그의 음색이 어두운 것은 그가 색소폰의 낮은 음역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의 멜로디 라인은 호킨스만큼 길지도 않고 또 장식음으로 꾸미지도 않았지만 반대로 레스터 영과 칼이 간결함을 추구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벤 웰스터나 호킨스와 마찬가지로 발라드 계통의 연주에 뛰어났다. 그가 베이시 악단에서 1938년에 레코딩했던 (Blue and Sentimental)은 많은 플레이어가 모방했다. 그의 영향은 버디 테이트 일리노이 자켓 . 아이크 큐벡(IkeQuebec)-아넷 코브(Amett Cobb)등의 연주에서 들을 수 있다. 에반스는 1936년부터 그가 눈을 감는 1939년까지 베이시와 함께 연주했다
오란 '핫 림스' 페이지(Oran'Hot Lips' Page 1908--1954)-트럼펫 주자 오란 '핫 립스' 페이지는 극적이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만들었고 또한 사비를 취하는 방법에도 뛰어난 감각을 갖고 있었다. 그의 음은 크고 두터운 맛이 있었고 고음부의 음도 매력적이었다. 페이지는 브라스 같은 오픈 혼(open-horn)의 음, 뮤트를 사용한 그로을 스타일의 음 등 어떤 것이나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처음에는루이 암스트롱의 영향을 받았지만 암스트롱보다는 멜로디 라인이 약간 길었다. 또로이 엘드리지와 비교해 보면 그다지 리듬적으로나 멜로디적으로 진보적인 것은아니었다. 그는 두 개의 캔자스시 밴드에서 활약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하나는 월터페이지의 'B-ue Devils'이고 또 하나는 베니 모튼의 밴드이다. 결국 이 두 밴드의멤버는 후에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 들어 가게 되었지만 페이지는 카운트 베이시
곁에서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연주했다.
벅 클레이튼(Buck Cliaton 1911---페이지의 뒤를 이어 벅 클레이
튼이 1937년부터 1943년까지 베이시와 활동을 했다. 클레이튼은 스윙 시대의 가장뛰어났던 트럼펫 주자의 한 사람이자 베이시와 함에 연주했던 트럼펫 주자로서는195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최고의 트럼펫 주자였다. 초기의 베이시 악단의 트럼펫주자 중에는 그만큼 지적인 연주를 했던 사람은 없었다. 세련되고 온화한 톤과 트럼펫의 전 영역에 걸천 여유있고 우아하게 연주할 수 있는 테크닉은 굉장한 것이었다. 1930년대 초기 무렵에 그가 암스트롱의 솔로를 몽땅 외워버렸던 사실에서 알수 있듯이 벅 클레이튼이 주로 영향을 받았던 사람은 루이 암스트롱이었다. 클레이튼은 점 뮤트(C mU'팃도 종종 사용했는데 뮤트를 사용한 그의 톤은 다른 예를찾지 못할 정도의 폭과 길이를 갖고 있었다. 1938년의 (I Want a Little GirUol]에서곡의 처음 부분에 그의 섬세한 감각의 컵 뮤트 연주와 끝 부분의 화려한 오픈 혼사운드를 들어 보자. 그리고 같은 1938년의 (Good Momin' Blues>에서의 뮤트 연주도 들어 보자. 클레이튼은 컨디션이 좋아지거나 슬럼프에 빠지거나 하는 등의주기를 타지 않는 매우 견실한 플레이어였다. 그는 그의 뛰어난 테크닉을 유지하여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활동을 계속했다.
해리 -스위트-에디슨(Harry 'Sweets' Edison 1915---베이시 악
단 초기에 재적했던 트럼펫 주자로 주목할 만한 사람으로 해리 에디슨이 있다, 그는 엘드리지와 같은 강렬한 트럼펫 스타일이 아닌 보다 단순한 스타일로 밝고 감미로운 분위기의 프레이즈를 좋아하여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레가토로 불었다. 또컵 뮤트보다도 메틀 뮤트 쪽을 좋아했는데 그 뮤트 트럼펫으로 실로 풍부한 연주를 했다. 그는 베이시 악단에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재적했고 그 후도 자기 스타일을 발전시켜 가면서 1970년대까지 뛰어난 트럼펫 주자로 차속 활동을 했다.
딕키 웰즈(Dicky Wells 1909--1985)-1930년대 후반에 베이시 악단에서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트롬본 주자라면 테네시 출신의 딕키 웰즈일 것이다. 그는항상 놀라을 정도로 선율이 아름다웠으며, 명쾌하고 유머에 넘쳐 있었다('TheComplete Co1lection of Count Basie Orchestra On Decca(1937-1939)J),
1930년대의 캔자스 시티 스타일 뮤지션과 출생지
Count Basie(NeWJersey)
pianist-bandleadeT
GusJohnson(Texas)
drummer
WalterPaga(Mi-swri)
bassist-bandleadBT
Coleman HawkinslMissouri)
saxophonist
Laster Young(Mississi pi)
saxophonisl
Luck Clayton(KBnsas)
trumpeter
Andy Kirk(KentUckv)
bandleader-saxOphonist
Ban Weer(M-ssouri)
saxophonist
Henchel Evens-Texas)
saxophonist
Eddie Durham(Teras)
딜uitarist-arrangar-trombonist
Buster mithrraxes
saxophonist
pianist-bandleadBr
Mary Loll Williams(Georgia)
pianist-composer-arranger
&Iddy Tate(Texas)-
saxophonist
Pete Johnson(Missouri)
pianist
Charlie Parker(MissMlri)
saxophonistcomposer
캔자스 시티 파이브(Kansas City Five)
Jay McShann(OMahom리
pianist-bandleadBr
Budd Johnson(lTBra되
saxophonist-composer
Hot Lips Page(Teras)
trumpeter
Jo Jones(ll inoiS-
drummer
JassatonelKanSE
pianist-arrange--bandleader
George Lee(MiSsouri)
saxophonist-piBnist-bandleader
캔자스 시티 파이브(Kansas city five)
베이시 악단 멤버들로 구성된 캄보가 몇 매의 레코드를 녹음했다. 이들 캄보는-캔자스 시티 파이브: 혹은 '캔자스 시티 식스' 등 그 구성 멤버의 수에 의해 여러 가지로 이름이 붙여졌는데, 여기에는 베이시의 리듬 섹션 전원과 레스터 영 -벅 클레이튼 , 딕키 웰즈 등이 참가하였다. 1939년에 그들이 녹음한 (Dickie'sDleanS과 (Lester Leaps IrS은 루이 암스트롱의 '찻 파이브'와 '찻 세븐'의 레코딩
이나, 마일즈 데이비스의 'Stearmn'J, rCook 'J, 'Work 'J,TRelaxm' 등 일련의 프레스티지 앨범과 같이 역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캄보 클래식이 되었다. 이들 캄보 가운데 드러머 조 존스와 트럼펫 주자 칼 스미스가 참가하는 것이 있는데이 그룹은 'Jones-Srmth, Inc'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1936년에 이 그룹이 레코딩했던 (sheeshile Boy)와 (Lady Be Good)은 재즈의 걸작으로, 레스터 영 -스미스, 그리고 베이시 등은 이 훌륭한 연주에서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950--70년대의 사이드맨(Sidemen)
1940년대 이후 베이시의 리듬 섹션은 스윙 스타일 그대로(기하의 프레디 그린은1937년 베이시 악단에 처음 참가한 이래 똑같은 스타일로 연주를 계속했다) 남아있었지만 솔로 주자의 대부분은 50년대, 60년대, 그리고 70년대에 있어 모던 스타일이었다.
1950년대 및 60년대에 베이시 악단은 태드 존스와 조 뉴먼(Joe Newman)두 사람의 독창적인 트럼펫 주자가 제각기 특색 있는 모던한 스타일의 연주를 하였다 특히 존스는 디지 길레스피 이후 가장 독창적인 트럼펫 주자로서 많은 사람들에 인정받고 있다.
1950년대 초반 찰스 밍거스 그룹에서의 연주 등은 테크닉으로
나 음악적으로나 실로 뛰어났다. 그의 라인은 보통과는 틀린 인터벌(interva구로 불어서 예상을 뛰어 넘는 의외성으로 가득차 있었다. 게다가 그 인터벌은 트럼펫이라는 악기에 있어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특이할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생각하기에 매우 곤란한 점도 있었다. 1966년부터 존스는 태드-멜 쌍두 밴드의 공동 리더를 하여 그 자신이 연주하는 일은 적어졌다. 그는 베이시 악단 시절에도 편곡을 제공하곤 했지만 자기 밴드를 갖게 된 후부터는 더욱 작 편곡에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베이시 악단의 색소폰 섹션은 특히 뛰어난 플레이어가 모여 있었다. 1950년대,60년대에도 이 경향은 계속되어 워델 그레이 ,프랭크 포스터(Frank Foster)-에디'락조우' 데이비스-빌리 미첼(Billy Mitchell)-에릭 딕슨(Eric D그on)등 강력한멤버가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에 베이시 악단의 두 사람의 색소폰 주자 프랭쳐웨스(FrankWess)와 에릭 딕슨은 또한 플루트도 불었으며, 그들은 재즈 플루트 주자의 리더적인 존재였다. 이 두 사람은 베이시 악단에는 참가하지 않았던 동시대의 플루트 주자(샘 모스트(Sam Most), 허비 맨(Herble Mann)등)보다 확실히 뛰어났다.
1950년대와 60년대 색소폰 섹션의 트레이드 마크는 마샬 로얄(MarshallRoyal)의 리드 알토 색소폰 스타일이다. 그는 임프로비이제이션을 하는 솔로 주자라기보다도 앙상블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으며, 베이시 악단의 향기 좋고 확실한사운드를 받쳐 주고 있었다. 베이시 악단의 리드 알토로서의 로얄은 메이나드 퍼거슨이 스탄 겟츠 악단의 리드 트럼펫 주자로서 맡고 있던 역할을 그대로 색소폰
섹션에서 하고 있었다. 듀크 엘링튼의 리드 알토 주자인 쟈니 호지스가 죽은 해에마샬 로얄도 베이시 악단을 탈퇴한다, 이 두 사람은 제각기 악단의 스타일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베이시 악단은 부드럽게 연주를 하면서 반면 잘 스윙하는, 사실상 유일한 빅 밴드라는 평가를 거의 20년간이나 계속 갖고 있었다. 이 악단은 재즈 연주에서 보통기대되는 미묘한 드라이브의 감각을 잃지 않고 정확성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또 확실한 연주이면서도 결코 기계적으로 하지 않았다.
1950년대 후반 및 60년대 초반에 닐 혜프티 , 베니 카터 ,퀸시 존스 등이 베이시를 위해 수많은 곡을 썼는데 그들은 대담하게 음의 강약을 사용하는 이 밴드의 특징을 크게 부각시켰다.예민하게 큰 음을 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금새 유연하고 작은 음으로 변한다거나반대로 돌연 포르테로 나가거나 하여 음량의 변화가 급격한 것에도 불구하고 이화감 없이 실로 자연스럽게 연주하기 때문에 청중들은 마법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되었다.
1970년대에 카운트 베이시 악단의 사운드는 새로운 편곡이 수없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그 편곡은 예전 스타일로 씌여 있어 50년대, 60년대의 사운드와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50년대에 재적하고 있던 강력한 솔로 주자를 70년대에는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