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7.8.25~1794.7.28) 프랑스혁명 말기에 활약한 로베스피에르파(派)의 정치가 니베르네에서 출생, 피카르디의 농촌환경에서 자랐으며, 아버지는 기병장교였다. 콜레주를 졸업하고 랑스에서 법률을 배워 수아송에서 검사서기가 되었다. 서사시《오르강 Organt》(1789)을 창작하여 성의 해방을 구가하였으나 금욕주의가 평생 동안 그 특징이 되었다. 혁명이 일어나자 국민군에 가담하여 논문 집필 등에 힘쓰면서 혁명가로 성장하였다. 1792년 9월, 25세의 그는 수아송에서 국민공회 의원으로 선출되어 매력적인 외모, 극단적인 사고방식과 행동, 그리고 능란한 웅변술을 발휘, 자코뱅당(黨)의 중심세력인 로베스피에르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어, 루이 16세의 처형을 비롯한 정치 및 라인 군단의 재편성, 오스트리아군과의 전투 등 군행정에 관계하여 비상한 수완을 보였다. 1794년 2월 국민공회 의장이 되어 3월에 ‘팡토즈법’을 추진하였으나 로베스피에르파의 반대세력이 집결하여 1794년 7월 테르미도르의 쿠데타가 일어나 그도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