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재즈 2
1960년대 초기 -- 70년대 말기
10 오네트 콜멘(Ormette Coleman) 215
11 빌 에반스(Bill Evans), 선 라(Sun Ra)
세실 테일러(Cecil Taylor)
아트 앙상블 오브 시카고(Art Ensemble Of Chicago) 225
12 찰스 밍거스(Charles Mingus) 236
13 존 콜트래인(John Coltrane) 243
14 1960년대 - 70년대의
마일즈 데이비스 그룹과 사이드멘(Sidemen) 258
15 빅 밴드(Big Band) 287
1960년대는 재즈의 사운드에 있어서 변화가 특히 많았던 시대였다. 1950년대에 최초의 레코드를 선보였던 많은 개혁자들의 영향력은 1960년 후기까지 새로운 플레이어에게 침투되었다, 집단 즉흥 연주(딕시랜드 재즈의 큰 특징)가 오네트 콜맨-존콜트레인-선 라-세실 테일러, 그리고웨더 리포트등의 연주에서 보여지며, 다른 변화로는 재즈 이외의 스타일에서 온 부분적인 영향이 있다.
예를 들면 돈 엘리스는 인도 민속 음악의 특이한 박자를 사용하여 곡을 썼고 존 콜트레인 역시 인도의 모드 음악에서 부분적으로 자극을 받아 임프로비제이션 방법을 탐구하였다, 또 빌 에반스와 칙 코리아는 20세기의 작곡가 에리크 사티에게서 영향을 받고 있다,
1970년대에는 실로 많은 재즈 그룹이 록 뮤직의 리듬과 악기를 사용하였다, 악기 구성에서는 트럼펫, 트롬본,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드럼의 스탠더드한구성 외에 플루겔혼, 플루트, 소프라노 색소폰, 퍼커션 등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전기적인 악기나 장치를 사용하는 것이 1970년대에는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피아니스트는 일렉트릭 키보드와 신디사이저를 사용하게 되었고, 우드 베이스(스트링베이스)는 베이스앰프를 사용함으로써 한음 한음이 매우명료해졌고, 더우기 일렉트릭 베이스(펜더 베이스)의 사용도 두드러졌다. 이러한 것은 재즈에서의 베이스 연주를 크게 변화시켰으며, 드러머는 보다 많은 타악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새로운 악기를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재즈 뮤지션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기존의 악기를 연주하였다. 예를 들면 1960년대 후기부터 1970년대 초기에 걸친 관악 주자의 평균적인 고음역은 1930년대, 40년대에 비해 보다 높아졌다. 트럼펫 주자인 캣앤더슨과 메이나드 퍼거슨은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에는 찾기 힘든 존재였지만 1970년대에는 많은 트럼펫 주자가 고음역을 불었다. 마찬가지로 1940년대에는 일반적이지 않았던 토미 도시의 고음역도 1960년대, 70년대에는 많은 트롬본 주자에 사용되었다. 색소폰 주자에서는 1950년대에 일반적이지 않던 일리노이 자켓과 얼 보스틱의 고음역은 1960년대 후기에는 흔한 일이 되었다. 또 색소폰 주자는 피치나톤 컬러를 크게 바꾸어 동시에 몇 개의 음을 분다거나, 비명이나 --익'하는 음이 많이 섞여진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테크닉은 196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비약적으로 향상하였다.
재즈 사운드는 다른 악기나 테크닉의 사용에 의해서만이 아니고 종래의 악기의새로운세팅에 의해서도변했다. 예를들면 오네트콜맨-아치 계프-앨버트아일러 .아트 앙상블오브시카고,엘빈 존스,샘 리버스의 레코딩에서는피아노가빠졌으며, 또 많은 듀엣 앨범도 만들어졌다. 흥미 깊은 것으로는 색소폰의 존 콜트레인과 드럼의 라시드 알리(Rashied Ali),피아노의 빌 에반스와 기타의 짐 흘, 색소폰의 안소니 브랙스톤(Anthony Braxton)과 조셉 자만(Joseph Jarman),피아노의 칙 코리아와 비브라하프의 게리 버튼, 색소폰의 데이빗 리브맨과 피아노의 리치 바이라크(aiChie Be=rach)등이다. 1970년대가 되면 피아니스트의 솔로 앨범이 눈에 띄게 되고 예를 들면 키스 자렛은 무반주 피아노 임프로비제이션을 앨범에 수록하였는데, 일렉트릭 악기가 많이 사용되는 시대에서 이와 같은 어쿠스틱 피아노의 솔로 연주는 매우 특이한 것이었다.
1960년대의 혁신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하여 그 전 20년간의 여러 사건이나 방향을 조사해 보자. 1940년대와 50년대를 통해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가 주로 타임 키핑을 계속하여 밴드를 스윔하게 하는 스타일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베이스 주자인 슬램 스튜어트는 단순한 타임 키핑을 초월하여 베이스 주법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고, 베니 굿맨 악단의 드러머 진 크루파도 드럼 솔로로 인기를 얻었다,
1940년대 후기에는 밥 드러머 케니 클락과 맥스 로치가 드러머와 솔로 주자 사이의 의사 소통 방법을 넓혔다. 그러나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의 솔로 능력이 향상되어도 곡의 전체적인 구성에 있어서 그들의 역할은 일반적으로 커지지 못했다. 1950년대에는 캄보 드러머의 음악적인 매력이 점차 증가하고 그룹 사운드의 중심으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미 단순한 타임 키퍼에 머물지 않고 캄보 사운드의 창조성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다른 멤버와 적극적으로 대화(interpla낀를 하게 되었다.
1960년대 초기에는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베이스 주자 스코드 라파로, 드러머폴 모션(Paul Motion)의 트리오처럼 감수성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상호 작용을 유지하면서 음악적인 대화를 계속해 가는 연주들이 들리게 되었다. 1970년대의 그룹 웨더 리포트는 솔로와 리듬 섹션의 종래의 관계를 깨뜨리는 시도를 전개 했는데, 멤버간의 상호 작용이 실로 다채로와서 솔로 주자와 반주자를 확실히 나
누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종종 나온다. 어느 플레이어가 일시적으로 두드러져도 곧 전체적인 음악의 흐름에 녹아 들어 갔다. 모던 재즈의 리듬 섹션의 해방(가능성확대)과 일렉트릭화되는 많은 구체적인 실례가 1960년대, 70년대의 마일즈 데이비스의 레코딩에 나타나고 있다. 1960년-61년의 충격적인 빌 에반스 트리오의 연주의 영향은 1963년-68년 마일즈 퀸텟의 피아니스트 허비 핸콕과 베이스 주자 론 카터의 연주에서 확실하게 보인다. 또 맥스 로치 -필리 조 존스 루이 헤이즈에 의해 발전한 쾌활하고 상상력 풍부한 어프로치는 토니 윌리엄스의 스타일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리듬 섹션 개념의 근본적인 변화와 록 필링의 도입은 1969-75년의 마일즈의 레코딩에서 보이며, 1969-72년의 마일즈 레코딩에서 리듬 섹션은 다른 뮤지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재즈 뮤지션의 음악의 기본적인 요소에 대한 어프로치는 1960년대에 크게 변했다. 세실 테일러 ,오네트콜맨,아트앙상블오브시카고, 그리고선 라등의 연주에서는 정확히 박kr를 취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또 드러머나 베이스 주자는 종래와는 다른 흥미 깊은 기법으로 비트를 나누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때까지 사용되고 있던 의미에서의 스윙을 하지 않는 연주나, 혹은 스윙 그 자체가 없는 연주도 있었다, 또 리드미컬하고 퍼짐이 있는 록 지향적인 연주를 '스윙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1960년대 그리고 70년대의 임프로비제이션은 밥과 비교하면 훨씬 단순한 코드 진행에 기초하여 이루어졌다. 실제 많은 곡이 싱글 코드를 기본으로 하고 있었으며, 많은 플레이어는 미리 코드 진행을 정해 두지 않고 즉흥 연주할 때 하모니를 창출했는데, 이와 같은 음악은 '프리 재즈'라고 불리워졌다 이렇게 씌여진 곡의 멜로디 스타일은 밥과는 달라서, 존콜트레인-맥코이 타이너 -웨인 쇼터 . 조 자비눌 등의 작곡자들은 밥의 작곡자와 비교하면 싱커페이션을 많이 쓰지 않고 음 자체도 적어지게 되었다. 계속된 톤과 무음 상태(silene늑는 굉장한 빠르기의 8분 음표와 같이 쇼터와 자비눌(웨더 리포트) 스타일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4도 음정도 1960년대, 70년대의 작곡의 큰 특징이 되었으며 음악에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다 주었다.작곡 형식도 변했다. 새로운 곡의 대부분은 브릿지도 턴 어라운드도 없이 비여졌으며, 대부분 구성상의 기본으로서 사일런스를 사용하였다. 드물게는 전통적인 12소절 블루스와 32소절의 A-A-B◎형식의 코드 진행도 사용되었다.
리듬 섹션의 움직임은 보다 복잡하고 격렬한 것이 되었는데 그 스타일의 변화는1960년대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과 존 콜트레인 쿼텟의 레코드에서 들을 수 있다. 많은 감상자가 1960년대와 70년대의 재즈에 그때까지의 재즈와는 다른 음악적인 의도를느꼈다. 세실 테일러,선 라,존콜트레인이나그외 몇 몇 플레이어들은멜로디, 하모니, 재즈의 스윙감 등의 요소보다도 오히려 사운드 그 체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또 리듬에 대해서도 멜로디와 반주의 전통적인 패턴에 따른 리듬이 아닌 리듬 그 자체가 주목되어졌다,
10 오네트 콜멘(Ormette Coleman)
1930.3. 19 --
내가 처음 밥을 들었을 때는 단지 음표를 함부로 사용하는 음악이라는 인상밖에는 갖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밥이라는 것은 노래 형식(a song form)과 그 코드를 사용하여 다른 멜로디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훌륭한진보이며 바흐 이후의 대발전이었던 것이다.,,,
- Ormette Coleman
1960년대와 70년대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뮤지션은 오네트 콜맨이다. 그를 찰리 파커나 존 콜트레인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고 생각하는사람도 있다, 콜맨은 트럼펫이나 바이올린도 연주하지만 원래는 알토 색소폰 주자이다. 1958년부터 59년에 걸친 레코드에는 그의 부드럽고 선명한 톤과 거침 없는 프레이즈를 들을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악기로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었지만 파커나 캐논볼 애덜리 , 리 코니츠와 같은 능숙한 명인의 테크닉은 보이지않았다.
콜맨은 또 밥 이후에 있어서 가장 신선하고 아이디어 풍부한 작곡가이다. 그의 스타일은 실로 독창적이며 멜로디에 대한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었는데 그 특이한 리듬과 하모니에도 불구하고 사운드 전체는 단순한 인상으로 셀로니어스 몽크와 비슷한 점이 있었다. 콜맨 작품의 쾌활함도 또한 몽크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콜맨의 스타일은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키스 자렛의 작품에서도 들리는데, 그는 (Piece fo-Omett쓸라는 곡을 콜맨에게 바쳤다 또 색소폰 주자 로스코 미첼(RoscoeMitcheU)도 (omett쓱라는 곡을 썼으며, 다른 뮤지션도 콜맨의 작품에 주목했다. 랜 블레이크(Ran Blake)-데니 자이틀린(Denny Zeitlm)을 비롯하여 모던재즈 쿼텟은 콜맨의 (Lonely Woman)을 레코딩했으며, 뉴욕 컨템퍼러리 파이브(NewYork Contemporary Five)는 콜맨의 (Emotion)을 레코딩하였다.
콜맨 곡의 대부분은 임프로비제이션이 단순한 출발점이지만 몇 곡인가는 앙상블로 편곡되어 있다. 그의 (Fonns and Sounds)는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프렌치 호른을 위한 악보로 씌여졌으며, (Saints and Soldier죠와 (space Flight)(rTheMusic ofOrnette Coleman))는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해 편곡되었다. 콜맨의 최고 작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Skies of Amenca)는 심포니 오케스트라용으로 악보가 만들어졌다. 콜맨은 첫 앨범의 몇
곡에서는 피아니스트를 기용하고 미리 코드 체인지를 정해 즉흥 연주를 펼쳐 나갔다('somethilpEIse'), 그러나 그 이외의 작품과 피아니스트 폴 블레이(Paul Bley)와의 라이브 레코딩에서는 원칙적으로 미리 짜여진 코드 진행을 사용하지 않고 임프로비제이션을 했는데, 그때부터 그는 코드 악기(피아노, 오르간, 기타 등)를 제외시켰다(rpaulBley at the Hillcrest ClubJ).코드 체인지를 미리 짜지 않고 임프로비제이션하는 콜맨의 음악은 프리 재즈로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정한 템포와 마찬가지로 그의 프리 재즈에 기초한 코드진행은 일관적인 방향과 임프로비제이션에 대한 추진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평범한 솔로에 재미를 더해 줄 수 있으며, 훌륭한 리듬 섹션이라면 코드 체인지를사용하여 솔로 주자를 도와 주고 연주를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콜맨은 짜여진 코드 체인지를 사용하지 않을 때 하나의 문제를 야기시킨다. 즉 코드 체인지가 아니라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의 시사가 그의 창작을 음악적으로 도와 주고
영감을 주는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각 소절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라인으로 채우는 것이 요구되고 그의 창작력에 의지하게 된다. 콜맨은 짜여진 코드 체인지, 그리고 규칙적인 코러스의 길이, 턴 어라운드, 브릿지 등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들에게 추상적인 음악 체험을 가져다 주었다.
콜맨의 임프로비제이션은 그 자유로운 어프로치에도 불구하고 코드 진행에 기본을 두고 있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다, 콜맨에 있어서는 멜로디가 첫번째이고 하모니는 그 다음이서, 그가 즉흥 연주를 할 때는 마치 그가 코드 진행을 만들어내는것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전에 콜맨 이외의 연주에서 들었던 코드 진행을 기본으로 한 라인의 하모니 이론과 비슷할 뿐이다. 콜맨은 자유롭게 연주하고 있지만 우리들은 그 라인에 짜여진 하모니에 기초한 임프로비제이션과 비슷한 구성을 들을 뿐이다. 또 그는 연주 중에 원하는 대로 조를 바꾸고 있지만(예를 들면 'At The Golden Circlei의 (Dee Dee)에서 임프로비제이션은 9개의 다른 키가 쓰이고 있다-뚜렷한 조 감각은 그의 솔로의 각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
다. 콜맨 음악의 연주 방향은 주로 콜맨과 그의 베이스 주자(특히 찰리 헤이든(CharleHaden))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미치며 연주를 이끌어 갔다.
콜먼(COleman)과 파커(Parker)-즉흥 연주 한가운데 새로운 코드 진행을 제안한 것은 실은 콜맨이 최초는 아니었으며, 1930년대에 레스터 영과 콜맨 호킨스가 이것을 하고 있었다. 또 부가 코드(additional chord)도 1920년대의 루이 암스트롱의 라인에 나타나고 있었다. 1940년대에는 아트 테이텀 -돈 바이어스 -찰리파커 . 디지 길레스피와 그들에 이어지는 뮤지션이 임프로비제이션할 때 코드 진행을 보인다거나 코드 대용을 했다. 그들의 어프로치와 콜맨과의 차이는 출발점에있는데 테이텀과 파커 그리고 그 외 뮤지션들은 코드 진행을 짜고 연주를 시작, 거기에서 코드를 더하거나 바꾸었지만 콜맨은 오직 한 개의 키, 한가지 템포, 무드로곡을 시작하였다(만약 찰리 파커가 1960년대에도 활약했다면 콜맨이나 파커에 이어지는 뮤지션에 의한 프리 폼의 재즈 세션에도 잘 어울렸을 것이다. 파커는 그만큼 다재 다능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임프로바이저였다. ),
파커와 콜맨을 비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모두 알토 색소폰 주자이고 힘이 넘치는 임프로바이저이며 멜로디에 대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 콜맨의초기 몇 개 레코딩에서 톤컬러의 조절 등은파커에 가깝다고할수 있다. 초기의 콜맨 연주에는 혹인 보컬 스타일의 영향이 보였지만 그것은 파커보다도 더욱 블루지했다.
콜맨은 또 임프로비제이션에서 밥 프레이즈를 사용하고 파커의 곡(KlactoVeesedsten쓰을 레코딩하곤 했는데 그 중에서 그는 파커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콜맨은 파커처럼 좋아하는 팝의 프레이즈를 인용하여 (Ir ILOved YoU), (Hawauan War Chant), (Cherokee), (Blues in the Night)등의 테마가 그의 즉흥 연주에 삽입되었다.
콜맨을 'jUst dnOther bebop alro player'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여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필자는 콜맨의 스타일과 비밥 스타일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의 연주에서 들리는 밥적인 톤 컬러, 프레이징, 그리고 일정한 템포나 블루지한 멜로디가 그렇게 부르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는 재즈 신에 있어서 혁명아였지만 그 기본에는 밥이.있음이 확실하다. 콜맨은 찰리 파커가 호킨스나 영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파커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콜맨(COleman)의 영향-콜맨의 곡은 독창적이고 또 그 색소폰 스타일은독특했지만 이러한 것들은 임프로비제이션과 함께 모던 재즈로부터 커다란 영향을받고 있었다. 코드 체인지로부터의 해방을 보여 주었던 그의 스타일은 1960년대,70년대의 대부분의 임프로바이저(색소폰 주자뿐만 아니라-그리고 작곡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존 티카이(John Tchlcai),마리온브라운(Marion Blown)-듀이 레드
맨.지미 라이온스(Jimmy Lyons),소니 시몬스(Sonny Simmons)-프린스 라샤(PrinceLasha),헨리 스레드길(Henry Threadgill)-아치 계프-을리버 레이크(OliverLake).앨버트 아일러 ,존 콜트레인,카를로스 워드(Carlos Ward)-로스코미첼-얀7F바렉-안소니 오테가(Anthony Ortega)-존카터(John Carter),찰스브랙킨(CharlesBrackeen )-키스자렛 바비 브래드포드(Bobby Bradford),돈 체리(Don Cheny)-찰리 헤이든-팻 메스니(Paat Methenyl-조셉 자만-폴 블레이 제임스 '블러드' 울머(James'Blood'긴Imer),로날드 샤논 잭슨(Ronald ShannonJackson) -자말라딘 타쿠마(Jamaaladeen Tacuma)등의 뮤지션에서 콜맨의 여러 가지 영향이 보인다.
콜맨의 1960년 앨범 'Free Jazz)(그의 최고 앨범은 아니지만-는 임프로비제이션어프로치에 있어서 그 역사적인 효과는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i에 견줄만한 것이었다. rKlnd of BlueJ는 모드 어프로치였고 'Free JazzJ는 프리 폼(fieeflm」의 집단적인 어프로치로 제각기 주목을 집중시켰다. 콜맨은 'Free JazzJ에서 피아노 없는 두 쿼텟을 스테레오 채널 좌우에 배치하였다. 좌측에는 알토 색
소폰의 오네트 콜맨, 트럼펫의 돈 체리, 베이스의 스코트 라파로, 드럼의 빌리 히긴스(Bi1ly Higg-가 있고 우측은 베이스 클라리넷의 에릭 돌피, 트럼펫의 프레디허바드, 베이스의 찰리 헤이든, 드럼의 에디 블랙꿸(Eddie Blackwell)로 구성되어있다. 이 여덟 명의 뮤지션은 함께 인주했고 때로는 전원이 동시에 임프로비제이션을 펼치기도 했다. 거기에는 미리 짜여진 주제의 편곡이나 코드 체인진 또는 정해진 코러스의 길이가 없었다.
앨범 타이틀은 'Free JazzJ였지만 그 음악은 엉터리도, 무계획적으로 마구 되는대로 하는 것도, 무감동한 무조(atona꾸의 음악도 아니었다. 몇 개의 솔로, 특히프레디 허바드의 연주는 짜여진 코드 진행에 기본을 두고 있는 것처럼 사운드를 내고 있지만 실제는 솔로간에 자연스럽게 진행된 연주이다. 간결한 주제가 임프로비제이션에서 재현되었고 또 그룹 멤버의 솔로 전후에 들렸다. 여덟 명 전원이 동
시에 임프로비제이션하는 것은 드물었으며, 양쪽의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를 제외한 관악기의 경우는 한 주자(콜맨-돌피 ,허바드 또는 체리)가 전면에서 연주할때는 다른 플레이어는 쉬고 있고 때때로 연주 전체에 악센트를 주기 위해 주자 전원이 연주를 하였다. 다른 재즈 그룹도 같은 시기, 혹은 그 이전에 자유로운 형식의 곡을 즉흥 연주하여 레코딩한 것이 있지만 그 시도가 재즈의 주류는 되지 않았
다. 그러나 콜맨의 'Free JazzJ이후로 다른 많은 뮤지션이 영향을 받아 레코딩을하게 되었다. AACM(Members of◎e Chicago-based Association for◎e dvance-ment ofCreativeMusmans )은 콜맨의 'Free Jazz'와 사운드가 유사한 프리 폼의 집합적 임프로비제이션을 레코딩했는데 이것은 그들 자신이 찾아 낸 어프로치라고는하지만 콜맨 작품보다 후이므로 'Free Jazzi에서 적어도 부분적이나마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프리 재즈(Free Jazz)
프리 재즈'라고 부르는 콜맨의 음악에는 실째에 있어서 자신이 약간 제약을 하는 부분이 있다. 일정한 템포가 유지되고 있었고 악보에 씌여진 곡이 그의 연주에서 다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물론 그와 그의 사이드맨의 연주에서 자유란 단순히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임프로비제이션할 때 서로 주의 깊게 듣고 자신들 음악의 계획을 세워 연주해 나갔다. 미리 씌여진 멜로디, 일정한 템포, 조감각, 의식적인 자기 편집(self-editing),다른 멤버에 대한 배려 등에 덧붙여 콜맨의 '프리 재즈'는 또한 전통적인 솔로와 반주의 역할을 의식하며 악기를 사용했다, 콜맨은 그의 트리오에서 베이스 주자와 드러머가 반주하는 동안 항상 솔로를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거기에는 상호 작용이 있고, 주고 받음이 있고 서로 자극을 하고 있지만 콜맨이 솔로 주자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약 연주가 정말로 관습에 대해 자유롭다면 각 악기의 관계도 자유로와질 것이다. 왜 관악기는솔로 악기이어야 하고 베이스와 드럼은 반주 악기일까? 정말 자유로운 상황이 된다면 색소폰에 드럼이 반주를 하는 것처럼 드럼이 색소폰이나 베이스의 반주를 받으며 연주되는 형태도 나타날 것이다. 프리라는 것은 규정된 역할 또는 형식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솔로와 반주의 개념은 일정한 템포, 박자,조, 코드, 체인지 코러스의 길이 등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프리(자유)는 예측되는 스타일로 연주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의미한다. 프리는인토네이션「intonation), 조, (연결되는 멜로디에 대한 기대(ex-pectatlOnS Ofmelodic continuit빈, 코드 체인지(chord changes), 템포악기 연주 테크닉 그룹의 다른 멤버의 연주(theplaying of other groclp members), 청중의 기(theexpectations of the audlellC끗라는 것에 무관심하며 어떻게 해서라도 연주할 수 있는 상황에 존재한다 그와 같은 사운드는 이미 인간의 영역을 초월하여 우리들의 음악에 대한 규칙, 기교, 습관 등에서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만약 '프리 재즈'가 뮤지션의 모든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는 음악을 의미한다면콜맨의 음악은 '프리'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모든 규칙과 역할과 기대로부터 해방된 음악을 말하는 것이라면 콜맨의 음악은 프리로부터 어느 정도 먼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 의미에 합치한다는 것은 즉 함부로 하는 주법, )마음대로 하는 음표, 제멋대로의 음의 길이, 제멋대로인 음의 구성이라는 것이바탕이 되어야 하며, 임프로바이저가 그와 같은 자유를 이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콜맨의 음악은 몇가지 점에서 자유롭다 짜여진 코드 진행이나 코러스의 길이에서 해방되어 있고 중간에는 박자나 일정한 템포가 없는 것도 있다. 콜맨은 자유롭게 조를 바꾸었지만 우리들은 언제나 그 조를 알아낼 수 있다. 그의 조 변경(Key change)은 필연적으로 확실한 것이었으며, 그의 음악은 조 감각(Key feeling)을 항상 잃지 않고 있다.
돈 체리(DonCherry 1936---
콜맨은 12매의 앨범에 트럼펫 주자 돈 체리를 기용했다('Somethmg ElseJ, 체리는 부드러운 톤으로 1960년대 전기 마일즈 데이비스의 억눌린 음을 연상시키는연주를 한다. 그의 임프로비제이션의 기저에는 밥 스타일이 있었지만 그의 초기레코딩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전통적인 밥 트럼펫 라인과는 틀렸다[(Tayne)('Somethlng ElseJ) 체리는 프레디 허바드와 함께 1960년대와 70년대에 있어서 몇 안되는 독창적이고 훌륭한 트럼펫 주자이다. 그는 1970년대의 꽤 오랜 기간을 유럽에서 지냈으며 작곡가로서 또 밴드 리더로서 활약했다. 근년에 그의 음악의 대부분은 프랑스나 스웨덴의 레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아치 셰프(ArChie Shepp 1937---
콜맨의 첫 레코딩 후 형식에 잘맞지 않는 색소폰 스타일 몇 가지가 나타났는데 그 하나는 테너 색소폰 주자 아치셰프에 의해 만들어졌다. 셰프 스타일의 주요한 특징은 다른 포스트 콜맨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밥 프레이징과 리듬의 개념으로부터의 이탈이다.
포스트 콜맨 플레이어들의 초기 레코딩에는 다소 밥과의 유사점이 보였지만 그것도 대개 2년에서 3년 사이에 없어졌고 밥에서 사용된 프레이즈와 코드 체인지의 형태는 대부분(완전히는 아니지만)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새로운 스타일에서는 밥에 비해 톤 컬러의 범위가 넓었다. 초기 셰프의 톤은 웹스터와 비슷했다. 많은 포스트 콜맨 플레이어와 마찬가지로 셰프는 연주할 때 '가가-'라는 아우성치는 소리나 째지는 소리 같은 음을 자주 사용하였다. 멜로디에 대한 콜맨-셰프의 개념은 밥의 피치나 리듬의 관습을 효과적으로 변하게 하였다.
콜맨과 셰프의 프레이징은 특이했으며, 째지는 소리와 신음하는 소리 같은 음은 그들의 음악에서는 보통이었다. 음역을 넓히는 것이 활발하게 연구되어 귀에 거슬리는 음이 저항 없이 들리게 되었다. 셰프의 여러 가지 시도와 리듬에 대한 연구는 소니 롤린스를 연상시키는데 롤린스처럼 셰프나 콜맨의 연주에서도 유머스러운 면이 들린다, 셰프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콜맨과 웹스터의 특징을 합쳤지만, 웹스터도 콜맨도 밥 스타일 플레이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웹스터는 허스키하고 거친 톤을 갖는 스윙 시대의 플레이어이고 콜맨은 짜여진 코드 체인지 없이 즉흥 연주하는 플레 이어 였다.
이러한 요소는 셰프의 몇 개의 레코드에서 코드 체인지나 모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소화되고 있다. 웹스터나 엘링튼에 대한 셰프의 관심은 그가 많은 엘링튼의 발라드를 연주한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그룹을 이끈 적도 있었지만최고의 연주는 피아니스트 세실 테일러가 이끌고 있던 그룹에서 들을 수 있다, 테일러와 셰프의 공동 LP는 임펄스에서의 셰프의 리더 앨범보다도 그의 재능이 더 잘 나타나 있다.
앨버트 아일러(Albert Ayler 1936--1970 -
파커 ,롤린스.콜트레인 그리고 콜맨의 뒤에 나타난 가장 독창적인 색소폰 주자로서 앨버트 아일러의 이름을 들 수 있다.
그의 음악은 혁명적이고 콜트레인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콜맨과 마찬가지로 아일러 또한 파커의 곡 (Billie's Bounce)를 초기 레코딩에 선택했다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이다('My Name Is Albert Ayler ). 아일러는 밥을 인정하고 있었지만 실제의 연주에는 밥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는 않았다. 아일러의 리듬 개념은 밥의 리듬 개념과는 다른 것이었고 아마도 다른 어떤
스윙 재즈 스타일과도 닮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멜로딕하고 리드믹한 어프로치는 재즈보다도 클래식 음악이나 민속 음악과 통하는 면이 더 많은 것 같다.
콜맨과 셰프는 종래 재즈의 스윙감에 가까운 형식으로 연주하고 있을 뿐으로 그대부분의 연주는 대개 스윙하지 않았는데, 이 스윙감의 결여는 종종 수준 높은 긴장(tensiO운의 연속으로 일어난다. 아일러는 '스윙 '이라는 말의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스윙한다고 할 수 있지만 스윙 시대, 밥, 웨스트 코스트, 그리고 하드 밥 스타일에서의 의미로는 스윙하지 않았다. 아일러는 코드 악기가 없는 그룹 연주를 좋아했다. 그의 베이스 주자는 빌 에반스나 오네트 콜맨에 기용되었던 유능한 사람들이었다. 또 그의 드러머는 '프리' 지향으로 단순한 타임 키핑에는 거의 흥미를 나타내지 않고, 그룹 멤버의 상호 작용과 여러 가지 톤 컬러의 창조에 보다 관심을 갖고 있었다.
아일러는 실로 특이한 테너 색소폰 주자이다. 그의 연주는 매우 어려운 기술을 요구했기 때문에 가령 다른 사람이 아일러의 라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실제로 똑같이 연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아일러의 연주는 테너 색소폰의 전음역을 사용하여 종래의 최고음보다 적꺼도 한 옥타브 높은 곳까지 도달하였다. 그는 그 범위에서 어느 때는 흐르는 듯한 레가토로, 또 어느
때는 가볍고 불안정한 톤으로, 혹은 C-멜로디 색소폰을 연상시키며 불었다. 그는 때에 따라 비브라토에 변화를 주었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연스러운 흐름중에 이루어졌다. 아일러의 연주는 기계적인 것도 아카데믹한 것도 아니었다. 아일러는 넓어진 고음역을 쉽게 불 수 있었고 그 연주는 종종 빠른 레가토의 바이을린 연주와 같은 소리를 만들어냈으며 이들 요인이 공상의 세계에 있는 것 같은 전체적인 느
낌을 만들었다. 그의 음악은 감정의 기복이 풍부한 체험을 감상자에게 주었던 것이다. 그는 모국 미국보다도 유럽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음악 활동은 매우 짧았다. 그의 미국에서의 첫 레코딩은 1964년에 발표되었고 1970년에 세상을 떠났다
('SpiitUal Unity , rLast Recor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