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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와 프시케

김기범 |2006.08.13 03:04
조회 49 |추천 0


사랑의 신과 영혼의 사랑

그리스 인들에게 있어서 프시케는 '영혼'을 의미했으나, 그것에 대해 그들이 품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그것은 본래 나비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었던 듯하다. 호머 시대에, 영혼은 인간의 육체에 대한 그림자, 또는 빛의 반사광처럼 덧없는 것이어서, 육체가 사망하면 함께 저승으로 훌쩍 떠나 버리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일단 저승에 들어가면, 영혼은 멍청하게 실신 상태에 빠져 있다가 한 컵의 신선한 피를 마셔야만 정신을 차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의 예술가들은 영혼을 보다 젊고 아름다운 처녀의 시적인 이미지로 만들기 원했다(철학자들 역시 영혼을 여성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결국 그와 같은 영혼의 여성적 묘사는 영혼이 의인화된 프시케의 신화를 낳았고, 그녀는 사랑의 신 큐피드의 연인이 되었다. 이 두 사람이 바로 키스를 발명한 행복한 한 쌍이다.

욕망이 영혼을 사랑한다고 하는 생각은 분명히 추상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로마의 재사(才士) 아풀레이우스(서기 2세기)로 하여금 기억에 남을 요정 이야기를 탄생시키도록 하였는데, 그 이야기는 풍자 문학인 《변형》(일명《황금 당나귀》)속에 담겨있다.

이야기 속에서 프시케는 공주였는데, 세 딸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녀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그녀를 새로운 미의 여신(비너스)으로 삼고자 하였다 - 사실 진짜 비너스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더군다나 그녀는 아직도 처녀였다. 사람들 사이에 진짜 비너스는 까맣게 잊혀지고 그녀에 대한 숭배도 등한시되었다. 당연히 비너스는 질투심에 불타오르게 되었다.

비너스는 장난기 많은 자기 아들 큐피드를 이용, 복수의 계획은 착착 진행시켜 나갔다. 그녀는 아들에게, 프시케를 이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남자의 품에 안기도록 하라는 주문을 했다. 그러나 비너스의 이 계획은 큐피드 자신이 공주의 미모에 홀딱 빠짐으로써 완전히 역효과를 나타내게 되었다. 그 길고도 긴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해서 말한다면 이렇다.

큐피드는 서풍(西風)에게, 산꼭대기에 있는 프시케를 이런 경우를 위해 세워놓은 궁전으로 데려 가도록 명령했다. 그 곳에서 그는 두 사람만의 결혼이라는 의식을 치루기 위해 가장 어두운 밤에 그녀를 찾아갔다. 기쁨에 차 있던 프시케에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려고 생각한 큐피드는, 그녀가 자기를 한 번이라도 쳐다보면 자기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프시케의 가족들은 그녀가 사라지자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언니들은 그녀가 사라졌던 산꼭대기로 올라 가 보았다. 이를 본 프시케의 명령에 따라 서품은, 자매들끼리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녀들을 궁전으로 데려 왔다. 그러나 프시케의 여신과 같은 화려한 생활 모습에 압도당한 언니들은 질투심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녀들 또한 왕들과 결혼해서 온갖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치 그녀들의 행복이란 오직 프시케의 행복한 생활을 얼마나 파괴하느냐에 - 아니, 필요하다면 프시케 자체를 파괴하는데 - 달려 있기라도 한 듯이 행동했다.

그녀들은 다시 서풍의 도움을 빌어 궁전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임신 중인 프시케를 다그친 끝에, 프시케가 실제로는 남편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가 신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 언니들은, 동생이 남편을 감히 보려고 한다면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결국 끔찍한 계획을 세웠다. 프시케에게, 그녀는 괴물같은 커다란 뱀과 결혼한 것이며, 그 뱀은 그녀가 아이를 낳게 되면 잡아 먹을 계획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는 덧붙여, 램프와 나이프를 숨겨 놓았다가 그날 밤 그 괴물 뱀을 죽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순수해던 프시케는 그 말을 곧이듣고는, 큐피드가 자기 옆에서 잠이 들기를 기다렸다가 나이프를 집어 들고서 램프의 불을 남편의 얼굴에 비쳤다. 순간, 그녀는 자기가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음을 깨달았으나, 램프에서 떨어진 기름이 한 방울 큐피드의 어깨를 태웠다. 깜짝 놀라 잠이 깬 사랑의 신은 프시케에게 호통을 치고는 울면서 그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버렸다.

큐피드의 궁전에서 쫓겨난 프시케는 이제 외톨이가 되어서 그리스의 방방곡곡을 정처없이 방황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우연히 언니가 여왕으로 있는 도시에 닿게 되었다.프시케도 이제 옛날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머리를 써서 언니에게, 자신의 남편은 뱀이 아니고 큐피드였는데, 큐피드는 큰언니와 결혼하기 위해서 자신과 이혼했다고 털어 놓았다. 큰언니는 너무나 허영심이 강해 그런 말에도 전혀 의심의 빛을 띠지 않았다. 그리고는 즉시 동생이 갔던 산꼭대기로 뛰어 올라가, 예전처럼 서풍이 궁전에 실어다 줄 것으로 믿고는 산에서 뛰어 내렸다. 그러나 바람은 휴가 중이었고, 그녀는 바위 투성이인 산기슭에 떨어져 산산조각이나 버렸다. 둘째 언니에게도 같은 일이 되풁이해서 일어났다.

그러한 탐욕스런 언니들이 죽고 나자, 이번에는 아들에게 배반당했다는 사실 때문에 훨씬 더 무서워진 비너스가 프시케의 피를 목마르게 구하게 되었다. 프시케는 어떤 신도 자신을 보호해 주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비너스와 일종의 거래를 해 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비너스는 흥정에 응할 기분이 아니었다. 대신에 프시케에게 일련의 가혹한 시험을 부과하기로 했다.

신들과 달리, 자연을 프시케에게 동정을 느끼고 여러 가지 조언과 경고로 그녀의 어려운 시험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 시험 과정을 모두 무사히 통과하려는 순간에 프시케가 망쳐 버렸다. 호기심에 사로잡힌 그녀는 저승에서 비너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받은 상자 속을 훔쳐 보았던 것이다. 그러자 그 상자 속에서 죽음의 잠이 튀어 나와 재빨리 그녀의 몸을 뒤덮어 버렸다. 바로 그 순간 큐피드는, 비너스가 가두어 놓은 감옥으로부터 탈출, 프시케 곁으로 달려와서는 죽음의 잠을 상자 속에 다시 집어 넣었다.

급하게 된 큐피드는 즉시 올림푸스 산으로 날아 올라 가서,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을 제발 끝내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주피터는 큐피드의 여러 좋지 않은 행동들에 대해서는 책망을 했지만, 모든 신들에게 큐피드와 프시케는 이제 합법적으로 결혼했음을 선포하고, 비너스에게는 못된 장난을 즉각 그만두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랑의 여신에게는 그 결혼 때문에 그녀의 품위가 떨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위로해 주었다. 한편 프시케에는 영주(靈酒, 신들이 마시는 음료수)를 마시게 했는데, 그것을 마시자 그녀는 즉각 신의 반열에 올랐다. 곧 이어 프시케는 딸을 낳았고 이름을 '기쁨pleasure'이라고 지었다. 그 뒤로는 모두들 행복하게 살았다.

실제로는 아름다운 민간 설화라고 할 수 있는 이 이야기에 하나의 교훈이 있다면, 아마도 고통을 통한 영혼의 정화라는 문제일 것이다. 그것은 성스러운 사랑을 값어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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