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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사키 아유미 H I S T O R Y 。

윤세애 |2006.08.13 21:00
조회 130 |추천 1


일본 J-POP 최고의 여성 아이돌 스타 하마사키 아유미.

데뷔 후 발표 앨범만 싱글/정규  앨범/리믹스  앨범/베스트  앨범

포함 약 67장. 여기에 LP(Long Player)까지 더하면 약 97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일본 음악계의 독보적인 길을 걷고 있는

최고의 아티스트이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첫 연예계 데뷔는 가수가 아닌 아역 탤런트.

어릴적 부모의 이혼으로 엄마와 단 둘이 살게된 그녀는 7살때

고향 후쿠오카에서 지방 기업 CF등에 출연하면서 연기자의 길을

먼저 걸었다. 당시 예명은 '하마사키 쿠루미'.

 

그러던 그녀는 중학교 2학년때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도쿄로 상경.

선 뮤직회사에 소속되면서 본격적인 배우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1994년 16세 때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크고 작은 잡지에

등장. 아이돌 스타의 노선에 돌입하게 된다.

이 때 예명을 '하마사키 아유미'로 변경.

 

그러나 배우와 모델로서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더 이상

학교생활이 어려워진 아유미는 1995년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과감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배우로서의 활동에 더욱 매진한다.

그러던 그 해 겨울, 지금의 하마사키 아유미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 일본 최고의 기획사 avex의 총괄 프로듀서

'막스 마츠우라(Max Matsuura)'를 만나게 된다.

 

마침 연기자 생활에 한계를 느낀 아유미는 결국 선 뮤직을 그만두고

'마츠우라'의 조언대로 보이스 트레이닝을 받으며 가수로서의

레슨에 돌입한다. 당시 아유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에 몰입.

1개월간 뉴욕에서 정식 트레이닝을 받기도 했다.

또한, 어느날 '마츠우라'는 아유미가 쓴 글을 보고 나서 그의

글솜씨에 감탄. 아유미에게 작사까지 맡기게 되었다.

 

드디어, 1998년 4월 8일 아유미는 각고의 노력 끝에 첫 번째 싱글

[poker face]을 발표. 가수로서 정식 데뷔하게 된다.

그녀만의 독특한 하이톤 보이스와 자작곡, 그리고 서구형의

외모가 서로 잘 어우러지면서 대중에게 크게 어필한다.

 

그리고 두 번째 싱글 [YOU] 발표 후,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방송

(뮤직스테이션)에 처음으로 출연하게 된 아유미는 세번째 싱글

[Trust]가 일본 유명 화장품 "AUBE" TV-CF에 타이 업 되고,

다섯 번째 싱글 [Depend on you]가 각종 라디오 방송에서 수없이

리퀘스트 되면서 점점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 음악계에서는 아유미는 한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는 "반짝스타"라 불리어졌다.

 

하지만, 아유미는 절대 "반짝스타"에 머물 수 만은 없었다.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의 콧대를 꺾어주기라도 하는 듯

1999년 1월 발표한 정규 1집 앨범[A Song for XX]가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오리콘챠트 연속 5주간 '1위'를 선점(신인 여가수로서

19년만의 기록)하며 앨범판매량 약 150만장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게 된다.

 

또한, 4월에 발표한 일곱 번째 싱글

[LOVE~Destiny~]가 역시 오리콘챠트에서 싱글로서는 최초로

1위에 등극. 이로써 아유미는 일약 인기 스타 대열에 들어선다.

그녀의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같은 해 5월에 최초로 개최된 단독 콘서트를 성황리에 마친

아유미는 그 즈음 당시 최고의 인기 가수

였던 '스즈키 아미'와의 한판 대결을 벌이는데, '스즈키 아미'는

일본의 전설적인 그룹 'TRF'의 "BE TOGETHER"를 리믹스해

싱글로 발표, 아유미는 싱글로서 무려 10곡이나 수록된 싱글

[Boys & Girls]로 승부를 건다.

 

결과는 첫주는 '스즈키 아미'의

승리. 그러나 둘째 주 부터 아유미가 역전을 하며 이 싱글 역시

밀리언 셀러를 돌파하게 된다. 또한 8월에 발표한 열번째 싱글

[A]는 "Trauma", "monochrome", "Too late", "End roll"등의

대히트곡을 남기며 무려 17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데,

결국 이 싱글은 아유미의 최고의 판매량을 보유한 싱글이 된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아유미의 화려한 가수 활동에 있어 전초전에

불과할 뿐이었다. 같은 해 11월 2번째 정규 앨범 [LOVEppears]가

발매와 동시에 가볍게 밀리언 셀러를 기록(앨범판매량 약 250만장),

30만장 한정으로 연달아 발매한 싱글 [appears], [kanariya],

[Fly high]도 모두 30만장 전량 가까이 팔려나간다.

이러한 인기여세를 몰아 아유미는 일본 최고의 톱스타들만이

 출연할 수 있는 연말 에 처음으로 출연하게 된다.

 

점점, 톱 스타의 자리를 굳혀가는 아유미는 이듬해인 2000년 4월.

처음으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강행, 도중에 왼족 귀에 갑작스런

장애가 생겨 공연이 연기되기도 했지만, 장장 4개월에 걸친

총 33회의 대규모 공연은 순조롭게 막을 내린다.

 

이 후 아유미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하는데, 기존 주로 선보였던

댄스풍에서 벗어나 잔잔한 발라드 느낌의 곡 [SEASONS]으로도

순조롭게 밀리언 셀러를 달성.

 

같은 해 9월 발표한 정규 3집 앨범

[Duty]는 무려 300만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역시 같은 해

12월에 발표한 싱글 [M]은 싱글로서도 무난히 밀리언셀러를

기록한다.

 

이로 인해 아유미는 2000년 한해 동안 에서

싱글 [SEASONS]으로 "최다 리퀘스트 가수상"을 수상.

에서는 역시 싱글 [SEASONS]

으로 "우수작품상"을 앨범 [Duty]로 "베스트앨범상" 및 "앨범대상"

그리고 "작사상"까지 총 4관왕의 명예를 얻는 등 일본 가요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의 인기는 단연 가수에서 뿐만이 아니었다 .

각종 리믹스 버전의 앨범을 내놓으면서 "리믹스의 여왕"으로 군림

하게 된 아유미는 이 외, 2000년 한해 동안 , , 이렇게 3관왕의

영예를 안으면서, 효가라(표범무늬), 코싸지, 튤립 모자 등 젊은이

들의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리더"로서도 널리 인정받게 된다.

한편, 광고계에서는 아유미가 등장한 모든 제품이 대히트를 치자

"아유 효과"라며 아유미 모시기에 혈안이 된다.

 

그런 그녀의 인기 행진은 2001년이 되어서도 전혀 변함이 없는데

아유미는 [poker face]를 비롯한 자신의 데뷔 초기의 싱글 총 8타이틀을 12cm형태의 맥시싱글로 재발매, 이

런 그녀의 놀라운 판매력을 인정받아 2001년 3월 모나코에서 개최된 에서 "World's Best-selling Asian Artist (세계 최대 판매 아시안 스타)"상을 수상하기도 한다.

또한 3월에 발표한 베스트 앨범

[A BEST]은 무려 430여만장의 판매고를 달성, 6월부터 진행된

총 제작비 20억원 규모의 전국 투어 콘서트에서는 총 관객수 30만명

을 불러모으며 인기 절정의 탄탄대로를 걷는다.

 

결국 2001년도 역시 그녀의 해.

 

에서 처음으로 대상을 획득,

에서도 싱글 [Dearest]로 2년

연속 아티스트 세일즈 부문 "대상" 수상 (243억8천만엔 매출)및

싱글/앨범/싱글 디렉터 부문 "대상"까지 총 5관왕의 쾌거를 이룬다.

2년 연속 200억엔을 돌파하며 1위를 차지한 것은 일본 역사상

최초의 일이기도 했다.

 

이렇게 2001년 연말 시상식에서 각종 상을 휩쓴 아유미는 2002년

1월 1일, 정규 4집 앨범 [I am...]을 발표, 같은 해 2월 싱가폴에서 개최된 세계 톱 스타들의 축제 에서

"Most Influential Japanese Artist in Asia(아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인 아티스트)" 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계속 25번째 싱글 [Daybreak]를 비롯해 [H], [Voyage],

그리고 각종 리믹스 앨범 및 정규 5집 앨범 [RAINBOW]까지 발표한

아유미는 역시 2002년 연말 에서

[Voyage]로 대상의 영예를 안는다.

 

이런 아유미는 2003년이 되자 그 무대를 아시아 전역으로 넓히기 시작. 2003년 1월 19일 중국 상해에서 펼쳐진 중국어권 최대 규모의 이벤트 에 일본인으로서

처음으로 참가해 5000여명의 팬들과 기자단이 환영하는 가운데 중국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무대에 올랐으며,

4월 4일에는 대만에서 개최된 에서 "Best Selling J-POP(최대 판매 J-POP 아티스트)"상을 수상, 10월 12일에는 에서 "Best Japanese Artist(최고의 일본가수)"로 선정되기도 한다.

 최근 일본도 극심한 음반 시장의 불황으로 가수들의 전체 앨범 판매량이 예전과 달리 많이 축소되기도 했지만 아유미는 이에 굴하지 않고 2003년 3월 발매한 첫번째 발라드 베스트 앨범

[A BALLADS]로 약 95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는가 하면,

29번째 싱글 [&]와 31번째 싱글 [No Way to Say]는 각각 60여만장과 40여만장의 판매량을 달성,

일본 역사상 최초로 앨범 수록곡 전곡의 뮤직비디오 영상을 함께 담아 발표한 첫 번째 미니앨범 [Memorial address]는 100만장을 넘기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역시 2003년 연말 에서

[No Way to Say]로 3연속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룬다.

 

이렇듯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아유미의 인기 행진.

물론 얼마 전 아유미는 모 방송에서 남자친구를 발표한 후

돌연 은퇴설이 나돌면서 일본 음악계는 물론 국내 팬들까지

한때 술렁이기도 했지만,

아유미는 이를 부인이라도 하듯 최근 32번째 싱글 [MOMENTS]를 발표, 당당히 오리콘 챠트 1위에 오르면서

그 동안의 소문을 모두 잠재우고 다시금 화려한 인기 행진에 오른다.  일본 음악계에서 약 7년째 거의 독보적인 존재로 거침없이 달려온 하마사키 아유미.

그녀가 세운 놀라운 기적들이 국내 음악계에도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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