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오래전.
어느날......
한 사내는 일주일을 방안에만 틀어박혀 술을 마시며
한 여자에게 이메일로 편지를 보냈었죠.
"보고싶어..."
라는 말밖엔 다른 할 말을 쓰지 못했던 떄.
편지지가 아닌 이메일이라서 쉽게 쓰고 쉽게 고치곤 했었죠.
적어도 종이를 구겨 버리는 일은 없었으니까.
1994년.
고등학교 1학년. 어느 철없던 녀석의 겨울.
처음.
처음으로 시작했다.
그 뒤로 2년이 지난.
1996년.
고등학교 3학년.
여전히 철없던 녀석에게 또다시 찾아온 겨울.
같은 곳이 아니였으므로 역시 처음이였다.
왼팔에 은밀한 타투를 세겼다.
처음 목적은 첫 사랑이던 한 여자를 위해.
내가 손수 지어준 별명.
'BANSHEE'
두번째 목적은 그런 커다란 고통의 자해를 통해
작은 고통을 잊기위함.
평생 지워지지 않는 나만의 타투.
고통엔 전통적인 방식 뿐이다.
고전적으로 바늘을 이용해 한달이 넘는 시간동안
수십만번을 찌르고 또 찔렀다.
재수없이 혈관이라도 잘못 찌른 날엔 멈추지 않는 출혈과,
쇳독에 잔뜩 부어버린, 파상풍 상처로 앓아 눕기도 했다.
어른이 겪는 고통보다 어린 아이가 겪는 고통은
이루말할 수가 없다.
타투가 주는 고통이 아니다.
타투의 고통을 제물로 바쳐 대신 잊으려는
그 어떤 고통 말이다.
1994년 부터 1997년 겨울까지 자신의 몸을 상처내어
썩게 만들고, 스스로 굶주린 하이에나가 되어
자신의 썩은 살을 뜯어먹는 악순환을 되풀이 했다.
왼팔엔 꼴보기조차 싫은, 색이 바래진 타투와,
오른팔엔 8개의 담배불 자국.
그리고 손목위 3가닥의 면도칼 자국과,
약에 내성이 생겨버린 미쳐버린 위장.
2002년. 내 광기어린 객기의 마지막 종점.
모터사이클을 경매로 아주 싸게 사버렸다.
4기통. 개같이도 제 멋대로인 녀석.
새로 섬기는 나란 주인에 대한 반항인지
녀석은 처음 본 날부터 오른쪽 뺨에 굵은 기스가 있었다.
터무니 없이 싼 가격. 나중에 알고보니 역시...
녀석은 주인 2명을 왼 다리와 왼쪽 어깨를 불구로 만든,
교활한 녀석이였다.
컨트롤 키를 녀석의 입안에 억지로 쑤셔넣고 녀석의 엉덩이에
채찍질을 했더니
내 애마라는 사실을 망각한체, 자신의 뒷발질에 채여
병신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을 함부로 건들지 말라는 듯,
나를 죽일듯 굉음을 내뿜었다.
녀석을 길들이는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타고난 카우보이냐고?
아니다.
녀석은 이미 두명을 천국의 문 앞 1cm 직전 까지
데려다준 녀석이였다.
녀석은 도도한 야생 종마처럼 주인이고 뭐고 없었다.
애초부터 자유와 반항으로 무장한 놈이었다.
그냥 우리 서로의 자유로움이 블랜딩 된것 같았다.
어느날 난 눈도 뜨지 못할만큼 취해 녀석을 껴안고,
직선으로 펼쳐진 도로를 달리자며 속삭였다.
녀석은 그다지 반기는 모습이 아니였다.
난 녀석의 투정이라 여기곤 녀석의 입에
억지로 키를 물렸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땐 속도계가 이미 150km를 넘고 있었다.
녀석의 곁눈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이제 더는 안돼."
"아냐. 무슨 소리야. 개소리하지마. 더 달려봐."
"이 미친 똘아이 새끼야.
내 심장이 이제 곧 터질것 같단 말이야."
"상관없어. 씨발놈아. 넌 달리기만 하면 돼."
사투구니 안쪽에 미친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녀석의 1800cc 가슴컵을 가진 심장은 곧 폭발할 것 같았다.
난 이미 어느 고가 다리의 시멘트 기둥을 향하고 있었다.
그때 왜인지는 모르나 눈물이 잠깐 흘렀었다.
'충돌'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였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재미없는 시트콤처럼 눈앞에 스쳐갔다.
무언가 부숴지는 파열음.
한없이 미끄러지는 금속성의 마찰음.
커다란 호박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
가죽이 찢겨지는 비음.
마찰에 의해 가죽이 타는 내음.
두블럭 가까이 난 아스팔트 위에서
나의 녀석과 뒹굴며 미끄러졌다.
그 겨울에 입었던 내 가죽 자켓은 아스팔트위에 끌리며
흔적조차 없이 타버렸고,
무릎뼈가 살갖을 뚫고 나왔고,
헬멧은 시멘트 기둥에 부딪힌 뒤 두동강이 나버렸다.
녀석은 형체도 알아볼수 없을만큼 살육되었다.
불이 붙은 녀석의 뼈대와
내 몸밖으로 튀어나온 나의 무릎 뼈를 봤다.
어디서 뿜어져 나오는 것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내가 누워있는 바닥에 진득한 액체가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다.
녀석도 피를 흘리고 있었고 나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죽어가고 있었다.
수도 파이프가 터진듯 무릎 근처 혈관에서 펌프질을 하며
만신창이 되어버린 얼굴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듯 피가 터져나왔다.
녀석과 난 그렇게 한 몸으로 껴안은체 죽어가고 있었다.
"나... 도착한거지?"
"그래. 이제 좀 쉬어라."
"오고 싶었어. 내 벤쉬의 집 앞..."
"넌 너무 지쳤어."
"... 나도 알아."
"미친놈. 나도 망가졌어. 더는 못움직이겠다."
"안다니까."
"미안해. 개네 집까지 못가서."
"아냐......... 다 왔어...."
"잠들지마."
"어......"
헬멧과 함께 머리가 깨지는,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갈갈이 찢겨지는 고통에도,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그 아이의 집 까지 도착했었다.
누군가 신고해 도착한 엠블런스 안에서
그냥 죽게 놔두라며 울며 절규하던 기억...
사랑의 상처는 이토록이나 강렬하다.
버려짐의 상처 역시 이토록이나 섬뜩하다.
거지에게 1억을 주며 일주일동안 써야한다고 협박하면
결국 힘들게 다 써버린다.
부자에게 100원을 주며 일주일동안 써야한다고 협박하면
역시 힘들게 다 써버린다.
1억이던 100원이던 사람은 생존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자신을 맞추게 된다.
거지에게 써본적이 없는 1억을 일주일간 쓰라면
힘들 것이다.
부자에게 1주일간 100원만을 쓰라 해도 역시
힘들 것이다.
하지만 둘 다 죽지는 않는다.
인간이기에 어떻게든 그것에 적응한다.
부유한 고민과 빈곤한 고민의 차이일 뿐이다.
사람은 어떻해서든 살아남는다.
이런 평범한 사람의 습성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쉽게 삶을 포기하는 자들에게
그들은 냄담한 것이다.
아무도 이해할수 조차 없는 아픔을 가진 사람은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바이러스'
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ps: 아픔의 치료는 아스피린을 먹는 것 처럼 간단합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너무도 거대하다면 몇 개의 아스피린을
먹어야 하는 걸까요.
그 아픔이 치유되기도 전에 아스피린의 부작용으로
먼저 죽지는 않을까요?
전 이런 상황을 "플라시보" 라 부르곤 합니다.
플라시보.
가짜 약을 먹고도 병이 낫는 것.
언젠가 나아지리라는 믿음.
믿음에 의한 치유.
믿음.
죽음의 순간에 내 손에 쥐여 있던, 나의 벤쉬에게 받은
싸구려 십자가 목걸이.
선물이라 목에 달고 지냈었지만 한번도 거들떠 본 적 없는
십자가 목걸이.
차가운 도로에 누워 죽어가며 손에 꼭 쥐던건
그 십자가 목걸이.
믿음은 평소엔 숨어있다가 갈 곳 없는 인간에게
찾아오곤 합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 곁에 기거하시면서
우리를 사랑으로 인도하시죠.
한 여자를 너무도 사랑해 더 이상 무언가를
사랑할 공간이 없는데도 사랑을 강요하시곤
그런 인간에겐 자신을 사랑할 빈 자리를 만드십니다.
그 여자를 데려가셔서라도 말입니다.
하느님은 사랑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우신가 봅니다.
당신이 아무리 그러하셔도
제 사랑은 이제 더이상 못 데려 가십니다.
당신에게 이제 배웠어요,
사랑하고도 사랑하여 죄인이 된다면.
그 사랑 당신에게 잃지 않으면서도 지키는 방법을.
당신에게 자유로워 지렵니다.
'선' 에서 자유로워 지려면 '악' 을 택해야하니
하늘에서 당신을 섬기기보단 제 사랑을 위해
지옥에서 제 사랑을 숭배하리다.
천사의 날개보단 악마의 뿔을 택하겠나이다.
하느님.
사랑을 강요하지 마세요.
당신이 만드신 결점이 많은 인간.
길가의 풀을 사랑할수도 있습니다.
그러한데 어찌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죄입니까.
당신보다 더 사랑한다는 것이...
당신은 사랑을 더 배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