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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옷문양 디자인

황란미 |2006.08.21 21:41
조회 1,236 |추천 3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렇지만 한 번도 그림을 그리면서 살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종로에서 이름만 대면 모두 알만한 주단집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한복에 대해서도 낯설지 않았고, 두 언니가 모두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림에 대해서도 매우 친숙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라는 동안 한복이나 미술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랬던 그녀가 한복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성악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입시를 준비하며 재수를 하고 있던 때였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집안이 어려워지기 시작했을 무렵 때마침 한복에 수를 놓는 대신 그림을 그려 넣는 일이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어느 날 우연히 삼촌이 들고 온 고운 한복 위에 펼쳐진 아름다운 문양들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망설일 이유도 뒤로 미룰 여유도 없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워 온가족이 함께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고, 하고 싶은 일보단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 수를 놓은 한복은 그림 한복과 10배 이상의 가격차이가 났어요. 그림 한복이 등장하면서 자연히 찾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수요가 많아지니까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서 그림 한복을 그려내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림 한복이 붐처럼 인기를 끌면서 공급은 대량화 되었는데 어느 순간 수요가 따라주지 못하자 가격은 떨어지고,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서 수를 놓은 한복이 들어오면서 그림 한복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시쳇말로 한 때 잘 나가던 때는 그녀 역시 직원을 15명이나 두고 운영해야 했을 만큼 주문량이 성황을 이루어 눈 코 뜰 새 없이 분주했지만 점차 수요가 줄어들면서부터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이제 혼자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옛 말에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다시 오르막이 있다고 하잖아요. 재미있는 사실은 붐처럼 일어났던 그림 한복이 한 순간에 가라앉으면서 이제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아 오히려 희소가치가 높아졌고 20년 만에 수한복보다 가격이 더 비싸졌다는 거예요. 하는 사람이 많을 때는 도안이 한번 나가면 비슷하게 흉내 내어 제대로 된 평가를 못 받았지만 지금은 맥을 이어가는 사람이 줄어들면서 한복업체에서도 하나의 독립된 세계로 인정해 주고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죠.”
한복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으로는 크게 원단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과 완성된 한복에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이 있는데 한복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은 물감을 말리면서 작업을 해야 하고 솔기부분의 이음새 처리를 매끄럽게 해야 하기 때문에 원단을 펼쳐놓고 그리는 것보다 두 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실크 원단에 사용하는 특수물감으로 색을 배합시켜 기본색을 만들고 펄(조개가루), 지당(돌가루), 메탈(금박) 등의 효과를 내게 되는데 라인잡기를 시작해 도안 작업이 끝나면 평면채색 과정을 거쳐 입체감을 살려주는 그라데이션 처리법으로 음각화를 표현하고 본격적으로 원단위에 그림을 그리게 되면 잎과 가지치기를 거쳐 꽃과 학 등의 메인그림을 그릴 수 있다.
한복은 그 자체만으로도 분명히 곱고 아름다운 옷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그 예쁜 옷에 그녀의 손을 거쳐 전통문양이 조화를 이루면 훨씬 더 고급스럽고 멋스러운 옷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된다.
“전통문양으로는 부를 상징하는 모란문을 가장 많이 사용합니다. 그림으로 표현했을 때 화사하고 탐스럽죠. 학을 비롯한 십장생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복을 누리고 귀하고 살라는 수복문과 고결하고 고상함을 나타내는 국화문 그밖에도 부부화합을 뜻하는 원앙과 기러기가 있고 떡살문양과 와당문양은 오래두어도 질리지 않고 입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문양은 그 소재가 무엇인가에 따라 짐승, 조류, 어패류, 곤충, 양서류, 식물, 광물, 기물, 기하 문양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의미하는 바에 따라 자연 현상, 길상 벽사, 다산 기자, 수복 장수, 공명 출세, 부귀 유여, 부부 화합, 가내 평안 등을 상징한다.
이처럼 다양한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는 전통문양을 선택해 한복 위에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바로 원단 컬러와 체형 그리고 때와 장소에 맞게 그림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원단 컬러에 맞추어 치마색이 노란색이면 그림을 골드배색으로 처리하고 핑크색이면 화려한 진핑크와 자주색을 맞춘다. 잔잔한 꽃들은 살찐 체형에 목단처럼 큰 꽃은 마른 사람에게 권하고, 키가 작은 사람에게는 난초처럼 선이 긴 꽃을 사용해 커보이도록 그림을 배치하며 키가 큰 사람은 잔잔한 꽃을 치마폭 밑에 깔아주어 작아 보일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결혼 예복, 무대복, 파티복등 한복의 사용 용도에 따라 그림과 문양이 달라지는데 깃, 고름, 끝동에 수복 문양을 사용하고 예복의 경우 원앙 무대복에는 용, 학, 나비 문양을 사용하며 파티복은 되도록 탐스러운 꽃을 차마 하단에 화려하게 펼쳐지도록 배치한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서 처음엔 구도 잡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엔 공간을 비우지 못하고 무조건 채우기에만 급급했죠. 시간이 흐르면서 어디에 여백을 두어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초창기 작품을 보면 가끔 웃음이 날 때가 있어요. 그때보다 지금 분명히 실력과 노하우가 쌓인 건 알겠는데 늘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활옷처럼 화려하고 그림이 많이 들어가는 옷은 꼬박 한 달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대략 치마 한 폭과 깃, 고름, 끝동에 그림을 그려 넣는데 하루 한 벌에서 두 벌 정도 제작이 가능하고 한 달에 평균 50벌에서 60벌 정도가 만들어진다. 모든 물량을 혼자 작업하다보니 결혼 시즌인 봄· 가을엔 밤을 새워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라는 그녀는 며칠씩 걸려 완성된 작품을 세상 밖으로 내보낼 때가 가장 서운하면서도 보람을 느낄 때다.


“늘 자식 내보내는 기분이 들곤 해요. 도안에서부터 하나하나 붓으로 그림을 그려 넣고 몇날 며칠을 함께 지내다보면 정이 들거든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들이기에 그 가치가 더 높은 것 같아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 앞에 내 그림을 내 놓을 수 있는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어요. 우리문양을 도안한 도안전과 그림으로 표현한 그림전 그리고 우리의 문양이 한복과 어우러져 하나의 미로 완성된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가끔 재미삼아 가방이나 신발, 티셔츠 등에 다양하게 그림을 시도해봤지만 한복에 표현했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아요.”
20년 동안 한 길을 걸어오면서 힘든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 본적 없다는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한복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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