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들 길어지면 절대 안돼.
그렇다. 이별장면에선 항상 비가 온다. 거참, 우리가 열대우림 기후 속에 살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왜 꼭 비가 와야만 한단 말인가. R.ef 형님들은 답하셨다. 햇빛 눈이 부신 날에는 슬픈표정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눈물이 빗물에 섞여 가려지기 때문이라고. 지하철 2호선의 외로운 벤처 사업가 노마진군은 말한다. "하지만~ 홀가분한 표정도 감출 수가 없다는 거." 꼭 헤어져야 한다면 비가 와줘야 한다는 거.
드라마 한편 보자. 오늘은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 장면이다. 사랑이 싹 틀까말까 하는 남녀가 어색하게 길을 걷고 있다. 작업멘트가 바닥난 남자에게 당황함이 엿보일 무렵, 어김없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고 장대비가 쏟아질 것이다. 남자는 재킷을 벗겠지, 그리고 그걸 ‘같이’ 뒤집어 쓰고는 냅다 뛰겠지. 잘 달리지 못하는 그녀는 그냥 그렇게 손을 잡혀 주겠지. 달리고 달리다 불빛이 예쁜 가게 처마 밑이나, 인적이 뜸한 터널 밑에서 멈춰서 뜨거운 눈빛을 교환할 테지. 그 정도 비 피할 곳이야 지나오면서 얼마든지 있었건만, 둘다 알고도 모른 척 일정 거리는 달려준 것일 테지. 가만, 남자는 날로 먹었다. 갑부집 아들 정도 되어서 소방차를 동원한 것이 아니라면 이 남자의 작업은 비가 다 해준 것이니까. 아! 한국인들의 로맨스에서는 정녕 이놈의 비가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인가. ‘알자지라' 방송이 로맨틱 드라마를 만든다면 남녀를 어떻게 엮어줄까? 모래 돌풍이라도 불어줄까?
알고 보면 비는 우리 민족의 운명공동체다. 화투장의 가장 특별한 패이자 ‘쌍피’의 대명사도 비가 아니었던가. 이럴 수가! 한국 최고 ‘훈남’ 가수의 이름까지 비다. 이 정도면 한국은 ‘비 권하는 사회’이다. 예로부터 ‘비님’이 안 오시면 제를 올리기도 하지 않았는가. 그것도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나이다.”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의 연 강수량은 1300밀리(노래 ‘독도는 우리 땅’ 2절에 나온다.) 정도로 지구평균을 훨씬 뛰어넘는다. 의아한 건 이렇게 함께한 세월의 추억에도 불구하고 매년 그렇게 원츄하던 비님이 장마로 오실 때는 넋을 잃는다는 것이다. 다우국가에서 비 많이 오는 걸로 고민한다는 것이 사막국가에서 모래바람 부는 것을 염려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밖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대목이다. 어제 오늘 일이었는가 말이다. 지진이 났거나 화산이라도 하나 터지면 모를까, 사실 비가 많이 오는 것은 특별한 것이 될 수 없는 ‘정상’적인 일이다. 매번 땅을 치며 우는 것이 ‘비정상’인 것이다. 나의 이 비아냥에 누군가는 답할 것이다. 이번에는 너무하지 않았느냐고. 나도 답한다. 매년 터져 버리는 둑은 너무하지 않느냐고.
다 끝났나 싶었는데, 어제 오늘 또 오고 계신다. 여기서 돌발퀴즈. 절대 길어지면 안 되는 것은? 꼬리! 밟힌다. 술자리! 사고친다. 장마! 찝찝하다. 게다가 드라마에서와 같은 유치한 로맨스가 일어날 확률이 많아 솔로들은 눈꼴도 시리다. 첫 번째, 두 번째 대답은 정답과 해설이 모두 좋다만 세 번째는 답만 맞았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요즘의 물들은 피보다 ‘징’하기 때문이다. 장마보다 더욱 속절없이 떨어지는 그 분들의 눈물은 ‘찡’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운명공동체 비에게 한마디 하자. "됐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