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뒷면에 씌어진 "나보다 나은 유일한 작가에게 축하를 보낸다"라는 마르케스의 말에 별 생각 없이 클릭했던 사람들은 장바구니에 담기 버튼을 누를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으리라. 나 역시 그러했다. 때로 이런 마케팅 문구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와 공허한 원망을 사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잘 샀다는 느낌이다.
기본적으로 역사적 토대 위에 가상의 인물들을 올려 흥미를 돋운다. 그리고 당대의 위대한 과학자들-물론 실제 인물들이다-을 통해 지적 허영심마저 채워주니 일석 이조이다. 나로선 학문적 토대가 일천하여 이 책에 나온 각종 수학, 물리학 이론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걸 이해하고 읽는다면 더 재미있으리라.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비견할 수 있겠으나, 이 책에는 거기서와 같은 대단원을 제공하지는 않기 때문에 끝에 가서는 약간 허무해진다. 클링조르라는 이름 속에 엄청난 음모 내지는 악마가 숨어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인간 속에 감추어진 욕망이 가장 무서운 것일지도 모르지만.
과학은 게임이다.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는 현실의 게임. 하나의 그림을 조심스럽게 수천 개의 조각으로 잘라낸 뒤, 잘라진 조각들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그림을 다시 완성할 때 이 퍼즐게임은 끝난다. 이 게임에서 당신의 상대는 신이다. 신은 게임뿐만 아니라 게임의 규칙들도 만들어냈다. 이 규칙들이 무엇인지는 아직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규칙의 절반은 당신 스스로 발견하거나 유추해내야 한다. 실험은 날을 세운 검이다. 이 검을 휘둘러 어둠의 악령들을 몰아내거나 아니면 치욕스럽게 몰락해야 한다. 신이 얼마나 많은 규칙들을 만들어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규칙들이 인간이 게으름 때문에 생겨났는지는 분명치 않다. 해법은 당신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때만 가능하다. 이것이 이 게임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다. 당신은 당신과 신 사이에 놓여 있는 상상의 한계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러한 상상의 한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 에르빈 슈뢰딩거 (p.7)
어떤 것이든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 배후에는 반드시 누군가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이 세상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도 안다. 적어도 누군가가 무슨 이유로 이 세상을 창조할 생각을 했는지 곧 알게 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그렇다고 이 글의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불확실성들 중 그 어느 하나도 내 책임은 아니다. 작가들은 끊임없이 사악한 신학의 유혹을 받는다. 문학비평가들과 학자들은 텍스트를 성경의 현대적 버전으로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작가는 신과 같을 수 없다. 어떤 글도 언약궤나 복음서를 흉내내서는 안 된다. 펜으로 묘사된 작중인물들도 당연히 우리와 똑같은 존재가 아니다. 비유를 너무 좋아하다가는 큰코다치는 수가 있다. 최고의 신비라 할 수 있는 우주와는 달리, 우리가 쓰는 책들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확실한 이유가 없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p.26)
문학비평가들과 학자들이 텍스트를 성경의 현대적 버전으로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은 사실이다.
한 번은 어떤 리포터가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인생의 성공을 위한 공식이 존재할까요?"
"있고말고요."
"어떤 겁니까?" 리포터가 다시 물었다.
"성공을 A라고 한다면 공식은 A=X+Y+Z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X는 일이고, Y는 유희입니다."
"그럼 Z는 뭐죠?"
아인슈타인은 웃으며 천천히 대답했다.
"입을 다무는 것입니다." (p.76)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수를 막는 방법은 꼭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성도 하고...
얼마 안 가 베이컨은 사랑하는 여자를 경멸하게 될 때 그 애정은 잔인하고도 씁쓸한 악덕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믿고 있었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굴종의 몸짓 아래에서 서서히 증오가 싹트고 있는 것을 느꼈다. 비비안은 애인의 생각이 낯설게만 보였다. 그래도 그녀는 그들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양 일주일에 두 번씩은 계속 그를 찾아왔다. 언젠가는 주인의 식탁에 오르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열심히 자신을 살찌우는 토끼처럼 무심하게! (p.90)
부쩍 충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연인에게 곧바로 물어뜯을듯이 달려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묵묵히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결과를 보면 후자의 경우 자신이 받을 수 있는 존중을 스스로 내버리는 격이 되어 버리고 만다.
"게임이론이 내 흥미를 끄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야. 아니면 혹시 자네도 내가 동전던지기나 포커 같은 게임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편집증적인 성격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겐가? 아닐세, 베이컨. 게임에서 진짜 흥미로운 건 그것이 인간의 형태를 정확히 재현해낸다는 점일세. 특히 본성의 매우 유사한 세 가지 영역이라 할 수 있는 경제와 전쟁과 사랑에 대한 관찰을 가능하게 해준다네. 난 지금 그저 농담을 하려는 게 아닐세. 이 세 가지 영역에서는 우리가 타인과 벌이는 사움이 선명하게 드러나. 세 사람만 모이면 그중에 적어도 두 사람의 의지는 언제나 서로 충돌하게 되어 있지. 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서 가능한 한 많은 이익을 얻어내려고 하거든. 자신에게 너무 큰 위험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말이지." (p.97)
스타리그를 보다 보면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그의 성향이 여실히 드러내 보여지곤 한다. 플레이가 눈에 익은 선수들의 경우 그들이 평상시에 어떨 것이라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세계는 질서정연했다. 우주는 엄격하고 단호할 정도로 정확하게 구성되어 있었고, 전쟁, 고통, 공포와 같은 오류들은 경험부족으로 생겨난 유감스러운 예외에 불과했다. 부모와 부모의 부모들은 인류가 혈거인의 끔찍한 원시성에서 출발해 빛나는 미래를 향해 똑바로 진보하고 있다는 굳은 믿음 속에서 성장했다. 그들에게 역사란 두 개의 고압선 전주에 가로놓인 팽팽한 전깃줄이거나, 19세기에 어울리는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멀리 떨어진 두 마을을 연결시켜주는 철도와 같이 곧게 뻗어 있는 과정이었다. 이런 세계에서 태어나 자란다는 것은 지극히 도식적인 행위였다. 엄격한 교육은 우리를 처음부터 주어진 틀에 끼워맞춰 나갔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성실한 인간으로 다듬어졌으며 미래를 보장받았다. 당시 우리가 교육받았던 가치들은 질서, 정확성, 민족성 등 대단히 단순한 것들이었다. 또 주어진 과제는 얼마나 아름답고도 명료해 보였던가! 세계가 진보의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면 개인 또한 이 틀에 복종해야 했다. 대체 여기서 잘못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아이들의 교육을 주의 깊게 설계한다면, 그들의 손에 정신적 육체적 성장을 촉진시키는 도구를 쥐어준다면, 그들의 성격까지 동판을 가공하듯이 도덕의 모루 위에 올려놓고 다듬는다면, 그러면 사회는 점차 정신이상자, 범죄자, 거지들을 털어내고 성실하고 부유하고 유쾌하고 경건한 사람들의 공동체가 될 터였다. (p.151)
나는, 아니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이런 세계에서 태어나고 살아가기를 바라는 건지도 모른다. 요컨대 명료한 세상.
"마지막으로 미국에 가셨던 게 언제입니까?"
"1939년, 전쟁이 시작되기 전이었죠."
하이젠베르크는 돌연 당시의 일들이 떠오른 듯 말을 멈추었다.
"채 여섯 해도 안 되었는데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군, 안 그래요? 나는 당신 나라에서 살려고 여러 번 노력했죠."
베이컨은 냉혹하게 굴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이 마지막 말은 좀 지나치다고 느꼈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나요?"
하이젠베르크는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그는 천천히 머리카락을 쓸어올린 뒤 여자같이 섬세한 두 손을 포개어 잡았다.
"요즘은 세계 어디서나 맥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어요. 또 흑맥주, 호밀맥주, 심지어는 후추 맛이 나는 맥주까지 수백 가지 종류가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향 바이에른에서 만든 맥주를 마셔야 합니다. 설령 바이에른 맥주가 나빠지더라도, 벨기에나 네덜란드 맥주보다 더 나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더 좋게 만들어서 마셔야 합니다. 정치가들이 맥주산업에 해를 끼친다면 우리는 그에 반대하면서 맥주가 나날이 더 좋아지도록 온 힘을 기울일 것입니다. 내 말을 이해하시겠어요?"
"조금은 알 것 같군요." (p.199)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서비스를 사용해야 한다. 설령 우리 서비스가 상대적으로 나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든 더 좋게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그 직선적이고 오만한 눈길 뒤에 숨은 겁많고 내성적인 젊은이를 즉시 알아챘다. 이것은 매일매일 찾아와 괴롭혔던 저 난폭한 군인들 앞에 섰을 때 못지않게 나를 두렵게 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이런 특성을 의식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내면의 약점은 오히려 단호함으로 표출될 것이고 이것은 다른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란 걸 내가 전혀 눈치 채지 못할거라는 듯이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p.216)
중학교 3학년때 선도부가 되었다. 전통적으로 선도부는 덩치가 좋고 운동을 잘 하는 아이들이 해왔었다. 거칠고 비뚤어진 녀석들을 통솔하고 고등학교 선배들에게 줄기차게 불려가 빳다도 줄기차게 맞으려면 깡다구와 체력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선도부가 된 것은 모두에게 의외였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전통적으로 선도부의 지나친 얼차려와 구타가 문제가 되어 우등생 위주로 선발을 한 것이었다. 나는 당황했다. 일단 중요한 것은 나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의식적으로 잔인해졌다. 쑥맥으로만 여겨졌던 나에 대한 평판은 학교에 급속도로 퍼졌다. 결국 나는 그 짓을 두어 달도 해내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유약한 내 모습을 덮어보려 시도했던 씁쓸한 기억이다.
"그곳엔 성스러운 기사단이 모여 있었어. 바로 성배의 기사들이지. 전설에 따르면 성배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 때 사용했던 잔이야. 그런데 나중에는 로마 병사의 창에 찔린 예수의 옆구리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를 이 잔으로 받았다고 하지. 가이우스 카시우스란 이름의 그 병사는 그때부터 롱기누스라고 불렸어......" (p.229)
그러면 악마는 어떤 특정한 이유 때문에 사악한 걸까 이 물음은 조금 더 복잡하다. 악마는 순전히 자족적인 쾌락을 위해서 사방에 독을 뿌리는 걸까? 아니면 어떤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일까? 이 점에서 이론들은 서로 엇갈린다. 어떤 사람들은 악마의 의도가 창조의 계획을 어지럽히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악마의 임무는 혼란을 조장하고, 우주를 혼돈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악마는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엔트로피의 군주다. 그는 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악마는 왜 그렇게 집요하게 우리를 죽음에 빧뜨리려고 애쓴느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자기가 그의 경쟁자 못지않게 강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다. 어떤 악령학자들의 생각은 물론 이와 다르다. 사탄은 아무런 이유 없이 악하다. 그에게 어떤 동기가 있다면 우리는 그가 '완전히' 사악하지 않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주의 지배자가 되려는 그의 소망에는 어떤 납득할 만한 논리가 숨겨져 있을 것이며, 따라서 최후의 심판 때 적어도 그의 오만은 어느 정도 용서가 될 테니까. 반대로 악마가 이유가 없는 맹목적인 사악함을 지녔다고 한다면 우리는 비이성이라는 절대적인 공포와 마주치게 된다. 타락한 천사 루시퍼는 지옥만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우연도 지배한다고 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물론 첫 번째 이론의 화신, 즉 이류의 악당들이다. 그들은 목적에 다라 행동했고, 스스로 정당성을 확신했으며, 심지어는 그러한 믿음 속에서 눈을 감았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기껏해야 이단자로 단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클링조르는? (p.243)
"단지 생각만으로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소. 혼돈에서 곧장 질서가 생겨날 수는 없지. 창조적인 정신이 체계적인 취사선택을 통해 혼돈 속에서 질서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지. 그리고 질서가 수립되려면 언제나 정신의 계획이 개입해야 해. 미래를 미럿속에 그려보는 힘과 궁극적인 성공에 대한 믿음이 반드시 필요한 거요." (p.258)
일단 지옥 같은 현재를 디뎌 밟아야 이십 센티미터 위에 있는 공기를 마실 수 있다.
"내 말은, 누군가를 사귀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알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사랑이 꼭 지루해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관계가 되는 건 어쩔 수 없죠. 사랑은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오랜 여정인데 막상 목적지에 도달하고 나면 모두들 실망하게 되지요. 목숨을 바쳐 무언가를 갈망할 때, 가장 나쁜 일은 거기에 너무 빨리 도달하는 것이지요." (p.275)
"하렘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당신은 나를 오해하고 있어요. 나는 매일 밤 다른 여자를 원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세헤라자데를 원하는 겁니다. 「천일야화」는 완벽한 비유예요. 세헤라자데가 더 이상 새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게 되면, 그러니까 술탄을 위한 새 버전의 사랑을 생각해내지 못하면 그녀는 형리에게 넘겨져요. 이건 잔혹 행위가 아니라 애정 게임의 규칙이에요. 이 이야기의 교훈은 사랑이 더 이상 새로운 방식으로 체험될 수 없다면 차라리 사라지는 게 더 낫다는 겁니다." (p.276)
이렇게 그 의미를 생각해보면-만들어내다 보면-옛날 이야기 속의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매끈하게 다듬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 정치를 과학에 끌어들이고, 비학문적인 판단에 근거한 생각들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다녔다는 것이군요. 아인슈타인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고요. 그들이 아인슈타인을 얼마나 혐오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을지 짐작이 갑니다, 교수님." (p.288)
이건 현대에도 반복되는 일이다.
어느 순간 우리 셋의 관계는 내게 더 이상 은밀한 도착적 만족감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나탈리아를 가까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참아내야만 하는 불가피한 고통으로 바뀌었다. 처음에 우리는 일주일에 두 번씩 만났지만 나는 점차 이 은밀한 의식이 벌어지는 빈도를 줄여나갔다. 나는 질투하고 있었다. 그랬다. 마리안네가 나탈리아의 몸을 쓰다듬거나 키스를 하거나 유혹을 할 때마다 질투심이 솟구쳤다. 그건 오직 내게 속한 육체여야만 했다. 놀랍지 않은가! 남편과 아내가 똑같은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니! 우리는 서로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녀를 상대방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움을 벌였다. (p.138, 2권)
충격적이군...
그 순간 이후 우리는 절대로 우리를 묶고 있는 사슬을 입에 담지 않았다. 우린 마치 새로운 세계가 열린 것처럼 행동했다. 비록 이제부터 세 개의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할지라도,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속여야 한다고 해도, 나는 나탈리아에 대한 내 사랑이 확인된 그 순간 구원받았다고 확신했다. 나는 오직 그녀와 함께, 그녀를 위해서 존재했다. 다른 모든 것들, 전쟁도 모두, 감각의 기만이며 나와 무관한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 혼돈의 시절에 나탈리아아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밤에 도망을 친다, 과연우리에게 도피처가 있을까? 기회가 있을까? 희망이 있을까? 당연히 없었다. 형벌은 확실했다. 이별과 죽음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우리를 향해 쉬지 않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내 생애에서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p.139, 2권)
이십대 초반, 내 인생에서 결정된 것이라고는 다만 이대로 살면 정말 보잘것 없는 인생이 되겠구나 하는 것뿐이었다. 아무리 잘 봐줘도 미래의 밝은 전망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매달 빠듯한 주머니 사정은 여러 장의 카드를 고통스럽게 돌려가며 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이제까지의 생애에서 그때만큼 행복했던 적이 있었을까 싶다. 여러 불안들이 뒤섞여 만들어내는 그 환상적인 하모니와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들.
우리는 움직이는 방식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이 클링조르의 장기말인 것은 아닐까? 클링조르는 혹시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낸 허구가 아닐까? 혹시 우리 자신의 불확정성에서 생겨난 게 아닐까? 공허를 메우기 위해 우리의 정신이 창조해낸 결과물이 아닐까? (p.143, 2권)
저런 상상의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면 신은 참으로 소심하면서도 무책임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Alea iacta est.(주사위는 던져졌다). (p.183, 2권)
"간단해. 그건 엄청난 실패의 역사거든."
무슨 소린지 몰라 의아해하는 표정을 보니 거의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알겠소? 내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다시 잘 떠올려보구려. 얼마나 많은 작은 실수들의 연발이 그 쿠데타의 성공을 가로막았는지 한 번 직접 확인해보라고. 어처구니없는 작은 실수들이 우리 시대의 역사가 또 다른 역사로 넘어가는 걸 방해한 거요. 채 스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의 무리가 수백만 명의 삶을 거의 바꿔놓을 수도 있었는데. 그런데 그게 사소한 방심 때문에, 단지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하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글러버린 거야!" (p.203, 2권)
실패의 경험을 돌이켜보면 결정적인 무언가는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나 작은 일들이 그 실패를 도왔던가.
그들은 제단에서 성체를 집어드는 사제와 같이 경건하게 원자로의 흑연 뚜껑을 들어올린 뒤 그 안에서 벌어질 기적을 살펴보려고 몸을 숙였다. 고딕식의 성궤 위에는 우라늄이라는 특이한 재료로 만들어진 수백 개의 작은 성물들이 알루미늄으로 도니 사슬 끝에 매달려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거대한 잔에 담긴 중수를 바로 그 위에 쏟아부을 것이다. 순간 그들 중 누군가가 생각했다. 이것은 내 피의 잔이다. 새롭고 영원한 내 피의 잔. (p.225, 2권)
원자반응의 실험을 미사 의식에 비유한 것이 탁월하다.
나는 그녀를 비난할 자격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는데도 그녀의 이런 행동을 경멸했다. 정말 구제불능인 죄인은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죄를 좀처럼 참지 못한다. (p.241, 2권)
"그녀는 널 걱정하더군. 네 행동이 뭔가 불안하다는 거야. 그래서 연구소로 전화를 걸었는데 그곳에도 네가 없더라고 했어. 난 결정적인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어, 구스타프. 서둘러 집으로 가면서 네가 내 집에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어. 그리고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지."
"그, 그건 오해야, 하인리히."
나는 시간을 좀 벌어보려고 노력했다.
"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구스타프."
하인리히의 이 말이 나의 가슴을 몹시 아프게 찔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난 네 목을 분질러버렸을 거야, 친구.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대신 부탁이 하나 있어. 만약 내가 죽고 네가 어떤 이유로든 살아남는다면, 그러면 그들을 돌봐줘. 그녀와 내 아이를.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해?"
"하이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내게 맹세할 수 있지?"
그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그래 맹세할게."
그는 내게 악수를 청하지도 눈길을 주지도 않은 채 방을 나갔다. 다음날 그는 파리 행 열차에 올랐다. (p.261, 2권)
슬픈 대목이다. 하인리히는 자신을 배반한 친구를 여전히 '친구'라고 부르며 그에게 자신의 가족을 부탁한다.
어떤 이론도 전적으로 맞지 않고, 어떤 법칙도 절대적이지 않으며, 어떤 규칙도 시간의 변화에서 자유롭지 못한다는 걸 과학자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그리고 그 모든 짓거리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여전히 그중 한 사람이다.) 뉴턴의 법칙들이 비판과 검토와 조롱을 끝내 견뎌낼 수 없는 것이라면, 아인슈타인의 이론들 역시 탁월한 오류, 놀라운 착각, 아름답지만 틀린 설정의 범주 안에 머무릴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과학이 수정되어야 할 불확실한 주장들의 집합체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렇다면 나는 그리고 나의 시대는 결국 착각과 오해의 결정체이며 나쁜 기억의 산물에 불과한 게 아닐까? 나는 주인공이었고 악당이었으며, 나중에는 정신병자까지 되었다. 나의 삶과 같은 하잘것없는 공간에서도 그렇게 많은 변신이 이루어졌다면, 모든 위대한 영웅과 악당들, 우리 시대의 모든 위대한 이념과 거짓들의 공간에서도 똑같은 일들이 벌어졌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모두들 인류의 정화와 공포의 종말을, 시대의 종말을 노래하고 있다. 히틀러가 죽은 지도 벌써 40년이 더 지난 지금 소련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기쁨이 그리 오래 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세계가 갑자기 한마음 한뜻이 되어 현재의 모든 잘못들을 과거의 악당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의구심을 끝내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가 공연히 기분을 망쳐놓는다고 생각된다면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유일하게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뿐이다. 역사에서 나의 역할은 결코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가능성이(예전에는 이것을 희망이라고 불렀다) 열려 있을 것이다. 아마 모든 것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이 단순한 계산착오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언제나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p.269,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