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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를 좋아했었던 서민 대통령, 박정희

신현호 |2006.08.25 10:47
조회 23 |추천 1
저녁 때 박 대통령이 특별보좌관단과 청와대 식당에서 회식할 때 술은 주로 원당에서 가져온 막걸리였다.
박 대통령에게 막걸리는 술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농촌에서 자란 박 대통령은 막걸 리가 단순한 술이 아니라 허기를 달래주는 음식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농촌을 잊지 못하는 박 대통령은 운명적으로 막걸리를 놓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박 대통령이 시해당한 궁정동 만찬장에는 시바스리걸이라는 양주가 있었다. 그렇게 양주를 마시는 술자리는 청와대내에서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시기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마지막 나날인 79년에 들어서였던 것 같다.

91년 중앙일보에 연재됐던 ‘청와대비서실’이라는 시리즈에서 나는 박 대통령의 전속이발사가 이렇게 증언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박 대통령 그 양반만 생각하면 참 가슴이 아픕니다. 러닝셔츠를 입었는데 낡아 목부분이 해져 있고 좀이 슨 것처럼 군데군데 작은 구멍이 있었어요. 허리때는 또 몇십년을 매었던지 두겹가죽이 떨어져 따로 놀고 있고 구멍은 늘어나 연필자루가 드나들 정도였다니까요. 자기 욕심은 그렇게 없던 양반이....”


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이 흉탄에 서거한 다음 날, 본관 2층 박 대통령의 주거공간을 수색하던 보안사 수사팀은 박 대통령의 욕실 변기물통에서 벽돌 한 장을 발견했다고 한다. 박대통령이 아낀 수돗물은 그 양은 적지만 오랫동안 시냇물이 되어 국민의 가슴에 흐를 것이다.

박 대통령이 서거한 후 “부정축재한 재산을 빼돌렸다” “스위스 은행에도 거액이 숨어있을 것”이라는 온갖 음해성 풍설이 돌았다. 그가 죽은 후 18년이라는 세월은 그런 소문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증명했다.

간혹 박 대통령은 경제개발과 성장면에서는 크게 공헌했으나 국민의 정신면에서는 소홀히 한 듯한 평을 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지 않다.


박대통령은 우리 세대의 사명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국력신장, 즉 경제 및 안보면에서의 부국강병정책이 필요하며 그 기본은 경제력이라는 점에서 경제건설에 주력한 것도 사실이다. 증산,수출,건설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근면 검소 저축을 호소한 것도 사실이지만 근대화의 물량적 측면을 보완하고 공산주의와 이념적으로 싸워 이기는 국민정신의 함양과 진작에 항상 힘을 기울여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박대통령은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하였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을 설립하여 국민정신의 연구 함양 진작에 힘써왔다. 또한 새마을 운동을 창시하여 고식적이며 퇴영적이고 체념에 흐르기 쉬웠던 우리에게 자조 자립 협동의 근면정신을 일깨워 ‘하면된다’ ‘잘살아보자’ 라고 국민 전체를 분기 분발시킨 일이야 말로 세계 각국이 칭찬하는 경제발전 이상으로 박 대통령의 커다란 업적이라 하겠다.

(당시 김정렴 비서실장 저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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