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전까지 소수의 귀족 장교와 천민 취급을 받는 평민 졸병의 몫이었던 군복무는, 19세기에 와서 일체 ‘군민’의 ‘신성한 의무’로 탈바꿈하였다. 국민 개병 제도의 확산에 따라, 1816년부터 군복무를 의무화시킨 노르웨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물론 별다른 전쟁을 하지 않았던 스웨덴과 합방돼 있었던 노르웨이는, 징병제를 상당히 ‘부드러운’ 방법으로 실시할 여유를 가졌다. 자연 여건이 어려운 북부 지역의 주민 전원이 면제되고 대부분의 도시민들이 면제가 갖가지 특혜를 받은데다, 실제 복무에는 제비뽑기로 선발되는 소수의 인원만이 들어갔다. 이와 같은 ‘부드러운’ 체제는, 유럽에서 군국주의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20세기 초까지 존재해 왔다. 그러나 노르웨이식 국민 개병 제도의 융통성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신성한 군복무의 의무’에 반기를 든 사람들은 많았다.
살생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예수의 가르침이 신성하며, 팽창해 가는 국가가 개인의 종교적 양심을 유린한다고 믿었던 퀘이커(Quaker)와 같은 종교 소수자들은, 군복무 반대 운동에 앞장섰다. 살생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그들은, 그리운 고향을 버려 미주로의 이민을 택하는 서러움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내면을 철저하게 지켰다. 그리고 19세기 후반부터는, 자본가들의 이득만을 챙겨 주는 국가를 위해 다른 나라의 프롤레타리아들의 피를 흘리게 할 필요가 없다고 굳게 믿었던 일부 사회주의자들도 반(反)군복무 운동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었다. 결국 예수와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노르웨이 땅에서 유럽적 근대성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인 ‘국가적 폭력의 보편화’가 어느 정도 견제되어, 민주적 ․ 인권적 근대의 모습이 지켜졌던 것이다.
1922년 양심적인 병역 거부를 허용해 주고 대체 복무 제도를 도입하는 최초의 법안이 노르웨이 국회에서 채택됐다. 이 법안 채택의 배경에는, 국내 반(反)군복무 운동의 성과뿐만 아니라, 제1차 세계 대전의 참상에 분발한 평화주의자들의 열띤 투쟁의결과로 영국, 덴마크, 네덜란드 등지에서 통과된, 대체 봉사 관련 법률의 영향도 있었다. 사실 대체 봉사 제도를 가장 늦게 법적으로 인정한 프랑스(1963), 벨기에(1964), 스위스(1996)만 제외하고는, 이미 1920~30년대부터 노르웨이를 포함한 대다수의 유럽 민주 국가에서 ‘유럽적 민주주의’와 ‘병역 거부권 인정’은 동의어로 통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현재로서, 통계상 1년에 징집되는 젊은이들의 약 10%는 16개월(정상적 병역 기간의 거의 2배)의 대체 복무를 택한다. 복무의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중 ․ 고등 학교에 학생 간의 싸움을 방지하는 상담 요원으로 파견되어 자신의 반(反)폭력전 신념을 실천적으로 살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좌익계 거부자들이 아동 구조 ․ 대외 원조 기구에 취직하여 세계적 불평등 구조를 조금이나마 고치려는 자신의 의지를 실천에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국가와의 이와 같은 타협까지도 뿌리치고 ‘완전 거부’의 어려운 길을 택하는 사람들도 1년에 100~200여명이나 된다. 자신의 신념과 어울리는 복무까지도 안 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말을 한국에서 하면 ‘배부른 사람들의 장난’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국에는 아직 대체 봉사 제도가 없는데, 이 제도가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이 진보 진영에서조차 희미한 근본적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보통 이와 같은 질문을 한국 지식인에게 하면 ‘전통적인 국가주의’를 탓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전통 시대의 말기에 조선 천주교 신도들이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자기 희생의 정신을 보여, 양심의 자유를 위한 비폭력 운동을 전개하지 않았던가? 개인의 양심과 신념보다 ‘국가적 필요성’이 한국인들의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군사적 광기가 짙었던 일제 말기의 ‘국민 총동원’ 시기다. 태평양 전쟁 시기의 군국주의적 ․ 국가주의적 세뇌의 장치들을 남 ․ 북한 정권이 각각 그대로 이어받아 “국가를 위한 살생도 종교적 ․ 도덕적 죄”라는 단순한 논리조차 생기지도 못하게 국가와 군대를 이전의 일본 천황과 같은 ‘신성불가침’한 존재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 한국의 반(反)군복무 운동의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은, 남북의 분단과 대치 자체라기보다는, 남 ․ 북한 정권의 많은 공통점 중의 하나인 일제식 세뇌 장치의 무분별한 이용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각종의 터부들이 점차 무너져 가고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세뇌의 메커니즘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양심과 엇갈리는 국가의 요구를 거부할 권리도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의 수는 점차 많아질 것이다.
- 박노자,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