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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ur Rubinstein (1887-1983)

신문섭 |2006.08.30 08:23
조회 129 |추천 2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Artur Rubinstein (폴란드 1887-1983)

80이 넘는 나이에도 고귀하다고 할 만큼 청량한 음악을 연주하였고, 무대에 나타나는 것만으로 청중을 설득하는 품격이 있고, 첫 곡부터 사람을 사로잡는 품격이 있는 피아니스트. 언제나 "무대에 나오는 것은 나의 즐거움, 나의 기쁨 입니다"라고 말한 진정한 낭만주의의 거장 아르투르·루빈스타인. 낭만주의 본래로 자유로운 인간정신의 구현에 가장 먼저 접근한 이가 루빈스타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자유롭지만 호소력 있고, 선이 굵으면서도 윤기 있는 그의 음색은 루빈스타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인 그는 바르샤바 근교의 로츠 출생으로 쇼팽이래 최고의 쇼팽연주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자유분방한 낭만적 정취를 피아노에 듬뿍 담아내던 인물이었다. 10세 때는 베를린으로 가서 명·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하임의 추천으로 리스트의 제자였던 하인리히·바르트를 비롯해 로베르트·칸, 막스·브루흐 같은 대가들을 사사했다. 1897년에는 러시아 순회공연을 떠나 안톤·루빈스타인(러시아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재래라고 불렸으며, 1905년에는 파리로 이주해 연주를 계속했다. 당시 그의 연주를 들은 생상은 '내가 아는한 가장 위대한 연주가'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데뷔 무대 역시 성공적이었으며, 1916년 스페인 연주 여행은 단 네 차례의 공연이 무려 120회까지 연장 될 정도였다. 그러나 1919년과 21년의 미국 음악여행에서 비평가들로부터 여러 가지 문제가 지적되었는데, 당시의 루빈스타인의 연주는 폭발적인 연주 효과를 겨냥하고 있어서, 그 반면에 세부의 거친 음이 문제가 되었고, 복잡한 음은 자주 빼어먹고 연주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비판을 계기로 루빈스타인은 스위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짧은 기간 안에 자신의 약점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1922년부터 1937년까지 유럽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주법을 개선하고 인간적인 아름다움이 따뜻함과 정열을 유지하면서, 조형력을 강화하고 기교적인 조잡함을 제거하는데 힘썼다. 그 결과 그의 연주는 대성하여 1937년 미국 연주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이 때 유명한 오린·다운즈는 그의 빛나는 기교를 절찬하여 "6개의 손과 30개의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라고 형용하고 있다. 1937년부터 그의 주요한 레퍼토리가 된 쇼팽의 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에 정착해 야샤·하이페츠, 에마누엘·보이어만 등과 함께 피아노 트리오를 만들어, 실내악에서도 그의 명성을 재차 확인시켜주었다. 1954년 할리우드를 떠나 파리로 향하게 되고 유럽에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콘서트를 개최함으로서 청중들의 열광을 받았다. 그는 근 70이 가까운 나이에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이때 백발을 휘날리면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지금의 음악가들에게 하나의 상으로 비쳐진다. 그가 음악을 만드는 방법은 50세 무렵부터 평형이 잡힌 것으로 정리되고, 기술적으로도 보다 투철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70세무렵부터 세련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루빈스타인의 활동은 50세까지가 전기, 그리고 70세까지가 중기, 그 이후가 후기로 대충 분류할 수 있는데 이는 루빈스타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연주 중 특히 쇼팽의 연주는 그가 폴란드인이라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접해 볼 만한 훌륭한 것들이다. 젊은 시절 또 한 사람의 쇼팽 전문 연주자였던 호프만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본인의 말처럼 그의 쇼팽 연주는 비교적 주관적이었으나, 자유롭고 깊이가 있으며 부드러운, 호소력 깊은 그의 쇼팽은 작품에 대한 기본 정서를 섭렵하고 난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기에 그를 최고의 쇼팽 전문가라 불러도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방대한 레코드는 대부분 RCA레이블을 통해 출반되었으며, 호연으로는 먼저 쇼팽의 작품 중 마주르카와 폴로네이즈는 오래전부터 표본적인 쇼팽연주로 알려진 것들이며,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2번은 완성도나 대중적인 지지도면에서 볼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는 두 번 쇼팽 협주곡을 녹음했는데, 첫 번째 녹음은 1936년 EMI에서, 두 번째 녹음은 RCA이탈리아에서 1960년대에 녹음했는데 첫 번째 녹음이 신선함과  해석에 있어 두 번째 레코딩보다 낫다고 하고 두 번째 녹음도 인생의 만년에 무엇가 달관한 듯한 깊이를 들여주고 있어 흑백영화를 보는 것처럼 순수하고 깨끗해서 좋다고 한다. 그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과 낭만주의 계열의 피아노 연주에 있어서도 그의 연주는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는 블라디미르·호로비츠와 더불어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로 불려졌고 음악 못지않게 와인에도 달관한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휴머니스트이었다.



첨부파일 : artur rubinstein 01(6937)_0400x0493.s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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